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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일하는 회사의 구내식당 점심시간. 메뉴를 보자마자 한숨이 나온다. 한식과 일품 요리 두 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한식은 돼지고기를 넣고 끓인 뚝배기 김치찌개, 일품요리는 데리야끼 닭안심 볶음밥이다. 추운 날이니 찌개도 맛있을 것 같고 고슬고슬해 보이는 볶음밥도 입맛을 돋울 것 같고….
하지만 잠시 고민하다 그냥 문을 나선다. 모두 고기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준채식인(페스코)이다. 육류는 먹지 않고 어패류는 먹는 중간 단계의 채식이다. 불편하지만 바깥에 나가서 혼자 야채죽이라도 먹기로 결심한다. 그렇지 않으면 맨 밥을 받아서 고추장에 비벼 먹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배가 너무 고프다.
지난 1월 7일 기자가 실제로 겪은 일이다. 지금도 이 기사를 쓰다가 야근을 위해 구내식당에 다녀왔는데, 메뉴가 돼지고기 제육볶음이라 밑반찬만 받아 밥을 먹었다. 식초에 절인 무와 배추 겉절이, 콩자반이었다. 너무 짜서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물을 한 컵 마시고, 아침에 동료가 돌린 백설기를 집어 먹었다.
채식을 만나다
처음 채식을 시작한 건 2002년이다. 중간에 군대 때문에 중단한 적이 있으니 7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다. 처음엔 어패류도 먹지 않는 비교적 엄격한 채식인 락토오보 채식을 1년 정도 유지했지만,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해산물은 먹는 준채식으로 바꿨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육류는 거의 먹지 않았다. 지금은 솔직히 통닭 등 극히 일부만 빼고는 고기 맛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채식을 하면서 느낀 게 있다. 한국에서 채식 또는 준채식을 하기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많은 음식에 고기가 섞여 있어 매 끼니가 고민의 연속이다. 우르르 함께 식사하는 문화가 있고 회식도 종종 있다. 이런 사정을 짐작 해서일까. 채식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로, 간혹 고민이라며 이것저것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들어보면 채식을 하고 싶은데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는 내용이 많다. 힘들지 않냐, 고기가 먹고 싶지 않느냐, 먹고 싶어지면 어떻게 하냐는 질문도 있고, 채식을 하면 정말 건강해지느냐고 묻기도 한다. 살이 빠지느냐는 질문도 단골이다. 이럴 때마다 하는 답이 있다.
“채식이 건강에 좋은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골고루 드시는게 좋아요.”
살이 빠지느냐는 질문에도 이렇게 답한다.
“저 지금보다 고기 먹을 때 더 말랐어요.”
고민을 해결해주려고 최대한 ‘쿨하게’ 하는 답인데, 대개 사람들은 묻기 전보다 더 혼란에 빠진 표정으로 자리를 뜬다. 믿기 힘들다는 뜻이다. 건강에 좋고 살도 잘 빠진다고 들었는데, 직접 경험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니 ‘멘붕’이 오나 보다. 뭔가 강력한 동기가 될 만한 말을 해줬으면 하고 바랐는데, 김이 빠져 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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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도대체 채식 왜 하는데?
채식이 별로 몸에 좋은지 모르겠다는 건 위악을 부리려고 한 말이 아니다. 정말 특별히 건강에 더 좋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쁘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남에게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권할 정도로 탁월한 ‘효험’을 보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오히려 채식을 가지고 이토록 찬반 논쟁이 많다는 데 조금 의문이 있다. 그러니까, 채식이 건강에 이로운지 여부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저 취향처럼 선택 가능한 여러 식습관 중 하나일 뿐이다!
뒤에 나오겠지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스스로가 ‘좋은 채식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맨 앞에 든 식단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기자의 직장뿐 아니라 대한민국 대부분의 식당에서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을 위해 메뉴를 따로 준비하는 곳은 거의 없다. 고기가 들어 있을 때는 그 음식을 먹지 않거나 수고를 감수하고 따로 먹어야 한다. 여기서 따로라고 하면 혼자 외식을 하거나 도시락을 싸서 다닌다는 뜻이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그 결과? 적당히 고기 반찬을 빼고 먹거나 김 등 간단한 밑반찬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할 때가 많아진다. 고추장에 비벼먹기도 한다. 게으름이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겪어보면 고기를 먹는 게 당연한 사회에서 채식자가 살아남기 위해 장착해야 할 부지런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럼 이쯤에서 의문이 든다. 채식은 육식이 나쁜 식습관이라는 비판에서 나왔지만, 채식도 만만치 않게 폐해가 있는 것 아닐까. 솔직히 육식 외에도 건강에 나쁜 식습관은 수두룩하다. 그 중에는 채식이 주는 장점을 상쇄할 만큼 영향이 큰 것도 있을 것이다. 즉 채식이 아무리 건강한 습관이라 해도, 꼼꼼하게 준비해서 부지런하게 실천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사실 채식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주장과 건강에 좋다는 주장은 둘 다 식상하다. 누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채식은 영양에 불균형이 온다는 주장을 기사나 책, 인터넷 문서의 형태로 차고 넘치게 찾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별로 나쁠 게 없다거나, 좀더 적극적으로 각종 질병의 발생률을 낮춰 건강을 좋아지게 한다는 주장 역시 모자라지 않을 만큼 많이 찾을 수 있다. ‘과학동아’에서도 이미 2002년 기획으로 채식에 대한 찬반 의견을 여러 전문가의 논거와 함께 소상히 소개했다. 2002년이면 기자가 채식을 처음 시작할 즈음인데, 그때 조사해 알고 있던 내용이 이 기사에도 상당히 들어 있다. 문제는 요즘 나오는 이야기들이 10년 전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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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이 건강에 좋다’는 믿음과 그 반대
예를 들어보자. 먼저 채식이 영양이 좋다는 연구 결과다. 지난 2011년 7월 ‘미국식이협회저널’에 발표된 논문은 “(반대론자의 우려와 달리) 채식 식단이 육식보다 영양이 풍부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고 조지 리파 미국 이스트미시건대 인간환경및소비자자원학과 교수팀은 1999~2004년까지 5년 동안 모은 ‘미국국립보건 영양실험조사’의 결과와 19세 이상 자원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질적 연구결과를 분석했다. 채식 식단은 미국의 영양 기준을 모두 넘었을 뿐 아니라, 식이섬유, 단백질, 비타민 B12, 칼슘, 아연, 철 등 보통 육류에서 주로 섭취한다고 보던 영양소도 부족하지 않았다. 특히 식이섬유와 비타민 A, C, E, 티아민, 리보플라빈, 엽산, 칼슘, 마그네슘, 철 등 미네랄 성분은 오히려 채식자 쪽이 더 풍부하게 섭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똑같은 주제로 반대 주장도 있다. 2007년 네이처 자매지인 ‘유럽임상영약학저널’에 실린 폴 애플바이 옥스퍼드대 의학과 교수팀의 연구 결과다. 이 연구는 칼슘을 대상으로 했다. 20~89세의 영국인 남녀 3만 4696명을 육식자, 페스코, 완전채식인(비건), 채식인(락토오보)로 나눈 뒤 5.2년 동안 칼슘 섭취량과 뼈 골절 사고 발생률을 조사했다. 그 결과 칼슘 섭취량은 완전채식자부터 락토오보, 페스코, 육식자 순으로 높아졌다. 채식인의 칼슘 섭취가 적었던 것이다. 더구나 육식인과 완전채식인은 섭취량이 무려 15%나 차이가 났다. 자연히 골절률은 반대였는데, 가장 높은 완전 채식인의 골절률은 육식인에 비해 30%나 높았다.
상반된 주장은 건강의 대표적인 관심사, 수명 연구에도 있다. 2003년 프라밀 싱 캐나다 로마린다대 보건대 교수가 미국임상영양학저널에 발표한 리뷰 논문을 보자. 북미와 유럽인들을 대상으로 ‘고기를 잘 안 먹는’ 식습관을 연구한 논문 6개를 분석해 봤더니 4개에서는 사망 위험이 준 것으로 나왔고, 1개에서는 의미 없는 수준으로 줄었으며, 나머지 1개는 거의 관계가 없었다. 연구팀은 20년 이상 채식을 고수한 경우 수명이 3.6년 늘어나는 경우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채식이 아닌 다른 요인이 장수의 원인이라는 연구도 있다. 2002년 같은 저널에 실린 애플바이 교수팀의 연구가 대표적이
다. 애플바이 교수는 영국인 21만 명을 조사한 뒤 “채식인 사망률이 전체 인구에 비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과 비교해봐도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다른 요인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흡연을 적게 하거나 사회경제적 지위를 원인으로 제시했다.
일부 질병에만 연관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 1998년 ‘공중보건영양’지에 실린 티모시 키 영국 왕립암연구재단 박사팀은 7만 6172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10년 이상 추적 연구를 했다. 그 결과 채식인은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 심장질환에 의한 사망률이 24% 낮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다른 요인에 의한 사망률에서는 큰 차이를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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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채식’은 소용 없다
의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채식을 하는 의사들은 어느 정도 적극적이냐에 따라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먼저 채식이 건강을 개선하고, 약으로 치료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적극적인 입장이 있다. 반면 채식이 의학적으로 문제가 될 부분은 없다는 선에서 입장을 정리하는 의사들도 있다.
적극적인 입장까지 가지 않더라도, 채식을 하는 의사들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의학적으로 안심이 되기는 한다. 적어도 채식을 해도 건강에 문제는 없으며, ‘상식적으로 채소는 몸에 좋으니’ 건강에 유리할 수도 있다고 일반화해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바로 ‘쓰레기 채식’의 유혹이다.
언젠가 트위터로 준채식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러자 종종 이야기를 나누던, 역시 준채식(페스코)을 하는 한 대학병원 의사가
말을 걸었다.
“의사인 제가 보기에 건강에 최소한 악영향을 끼치진 않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였는데 이 말만큼 채식의 원래 의미를 드러내고, 반대로 쓰레기 채식의 문제를 잘 꼬집어 낸 말도 없다.
“신중히 잘 골라낸 식단으로 매 식사를 꾸려나가는 느낌도 좋고요.”
채식은 신중히 공들여 실천해야 비로소 장점을 드러내는 조금은 까다로운 생활 습관이다. 채식을 한다고 아무 것이나 먹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보자. 아까 밑반찬만으로 시원찮은 저녁을 먹고 야근을 하다 출출해진 기자는 지금 팀 간식 서랍을 뒤져서 양파맛 감자칩을 꺼내 먹고 있다. ‘한 번 열면 멈출 수 없다’고 선전하는 그 과자다. 물론 원료를 확인했다. 말린 감자, 식물성 유지, 밀전분, 양파맛 시즈닝, 버터, 크림, 구연산, 로즈마리, 유화제, 합성착향료(양파맛)…. 어디에도 육류는 없고 심지어 어패류도 없다. 락토오보 채식인이 먹어도 무방하다. 그런데 문득 서늘한 기분이 든다. 대표적인 인스턴트 식품인 과자가 몸에 좋을 리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쓰레기 음식(정크푸드)을 먹으면서 ‘나는 육류를 먹지 않았다’고 안도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게다가 이렇게 나쁜 식습관을 유지하면서 “채식을 하는데 건강에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게 과연 옳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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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은 사랑이다
결국 채식에 앞서서 제대로 된 식습관을 세우는 게 먼저다. 제대로 된 식습관은 쓰레기 음식을 피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쓰레기 음식은 정크푸드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균형을 맞추지 않은 식습관이 모두 포함된다. 기사 맨 앞에, 밑반찬으로 짜게 저녁을 먹고 백설기를 집어먹었다고 했다. 잡곡이 섞이지 않은 흰 쌀밥과 흰 떡은 탄수화물이 도드라진 음식이다. 분명 채식은 채식이지만, 균형 잡힌 식사와는 거리가 멀다. 고기 반찬을 마다한다고 고추장을 비벼 먹거나 김만으로 한 그릇을 먹고 마는 것도 마찬가지다. 빵이나 케이크로 배를 채우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인터넷에 ‘채식’이라고만 쳐도 방법은 다 나와 있다. 잡곡밥 먹고, 콩이나 두부, 버섯 등을 잘 챙겨 먹고, 여력이 되면 이런 식사로 구성된 도시락을 싸서 다니면 된다. 물론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정성이 필요하다고 한 것이다. 혹시 이 때문에 “채식은 역시 지속가능하지 않고 부자연스러운 식생활이다”라고 생각한다면 다시 생각해보자. 방금 한 조언 가운데 육식인에게도 똑같이 해당되지 않는 조언은 없으니까. ‘건강한 육식인’이 되는 방법과 ‘건강한 채식인’이 되는 방법은 비슷하다.
‘하기만 하면 무조건 건강해지는’ 생활양식은 없다. 채식은 건강하게 하면 건강해질 수 있지만, 쓰레기 음식을 먹으며 대충 하면 건강을 잃게도 할 수 있는 양식이다. 사실 기자를 포함해 많은 채식인, 준채식인이 건강보다는 다른 이유로 채식을 한다. 동물 보호나 환경 등 윤리적인 이유나 신념이다. 거창하게 말해 주변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이렇게 거창한 데 정신이 팔려 있다 보면, 솔직히 채식이 건강한 습관인지 아닌지에는 신경을 거의 쓰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채식은 건강하다”는 무책임한 말 때문에, 실제로는 쓰레기 채식을 하면서 건강을 과신하고 있다면 그거야말로 큰 문제다. 그러니 채식을 하는 사람도, 채식을 한 번쯤 꿈꾸는 사람도 꼭 낯설게 따져보자. “채식, 정말 몸에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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