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세먼지가 생기는 과정을 밝히기 위한 대규모 연구가 한반도의 하늘·바다·육지에서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연구진이 참여해 5월 2일부터 6주간 진행하는 ‘한미 협력 대기 질 연구(KORUS-AQ)’다. 하늘과 바다에서 연구가 진행되는 현장을 두 기자가 직접 찾아가 취재했다.

“멀미약 챙겨 드셨나요. 항공기가 지표면 가까이 낮게 나는 데다 빙글빙글 돌면서 오르내리는 코스도 있어서 심하게 흔들릴 거예요.”
5월 7일 오전 5시 대한민국 공군작전사령부인 경기 평택의 오산공군기지에서 만난 민경은 GIST 환경공학부 교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이날 기자는 ‘한미 협력 대기 질 연구(KORUS-AQ)’를 위해 한국에 들어온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연구용 항공기 ‘DC-8’을 타기 위해 와 있었다.
KORUS-AQ는 NASA가 다른 국가 연구진과는 처음으로 협력해 진행하는 대기 질 연구 프로젝트다. 5월 2일부터 6주간 DC-8을 비롯한 항공기 3대와 위성, 선박, 지상 관측소를 총동원해 한반도 전역에서 조사를 한다. 이 기간은 장마가 오기 전까지 봄철 기온이 계속해서 높아지는 때로, 대기 중 물질의 광화학 반응이 가장 활발한 시기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지만 경기도 송탄에 위치한 오산공군기지에선 비행 준비가 한창이었다. 과학자들은 전국 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나쁨’이라는 소식을 듣고 “오늘 제대로 오염물질을 관측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오전 6시 반, 비행에 대한 브리핑과 안전교육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리고 오전 8시경, 드디어 DC-8이 이륙했다.

곡예비행, 멀미에 점심도 못 먹어
DC-8의 비행은 일반 여객기와 완전히 달랐다. 수시로 파도를 타듯 위로 올라갔다 아래로 내려가기를 반복했고, 기운 채로 나선형으로 뱅뱅 돌면서 올라가거나 내려가기도 했다.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 200여 가지와 에어로졸, 오존, 황사,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물질들이 수직으로 어떻게 분포돼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다. 1960년대 생산돼 1980년대까지 여객기로 사용됐던 비행기를 연구용으로 전면 개조한 이 항공기는 시속 300~500km로 하늘을 날면서 창문에 설치된 튜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기를 빨아들였다. 이렇게 수집된 공기는 항공기 내부에 실린 각종 관측 장비로 초당 최대 10회까지 성분이 분석된다.
잠시 후 비행기가 다시 아래를 향해 기울더니 눈앞에 잠실 롯데월드타워가 보였다. 평택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금세 서울 남쪽까지 온 것이다. 발 아래로 아파트와 빌딩이 가득했다. DC-8은 지표면과 해수면 위 각각 300m, 150m까지 저공비행했다. 경기 성남의 서울공항에서는 착륙하듯 활주로 위 30m까지 접근했다가 다시 방향을 틀어 올라갔다. 박정후 국립환경과학원 대기질통합예보센터 환경연구관은 “사람들이 숨을 쉬는 지표면의 공기와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야 정확한 오염원과 대기오염 물질의 흐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비행기는 지상관측소가 있는 서울 올림픽공원과 경기 여주 태화산 대기관측소 상공을 거치더니, 이번에는 방향을 틀어부산으로 향했다. 부산 앞바다에서는 먼바다를 반시계방향으로 빙 돌아 포항을 거쳐 다시 서울과 오산공군기지로 돌아왔다. 이 항로를 4번 반복하며 꼬박 8시간을 비행했다.
이번 공동 조사의 총괄책임자인 NASA 랭글리연구센터의 제임스 크로퍼드 수석연구원은 “오늘 항로는 서울에서 배출된 오염물질이 북서풍을 따라 남한 전역으로 흩어지면서 어떤 경로로 이동하는지, 또 태양빛의 양, 온도, 반응 물질에 따라 광화학적으로 성분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아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덜컹덜컹 흔들리는 기내에서 사람들이 챙겨 온 도시락을 꺼냈다. 태어나 처음 이런 비행을 해보는 기자는 구토 증상에 도저히 가방에서 음식을 꺼낼 수 없었다.

서울, 부산, 포항… 오염물질 찾아 전국 누벼
연구진은 비행기 안에서 관측 장비의 모니터를 체크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기자와 파일럿, 과학자를 포함한 탑승객 43명은 비행 중 헤드폰을 착용하고 있었다. 연구진은 실시간으로 기록되는 데이터를 보고 헤드폰과 채팅방을 통해 의견을 나눴다. 파일럿에게 이 정보를 전달해 고도를 조절하기도 했다.
채팅방에는 지상 관측소 등 다른 곳에 있는 연구진들도 접속해 있었다. 항공, 위성, 지상 관측소에서 각각 얻은 동시간대 데이터를 서로 비교하기도 했다.
KORUS-AQ의 미국 측 운영위원인 김세웅 UC어바인 교수는 “미세먼지는 대부분 대기 중에 있는 여러 성분의 광화학 반응을 통해 생성된다”며 “도시와 자연의 경계가 뚜렷하면서도 두 영역이 한 데 밀집해 있는 한반도는, 도시에서 배출된 질소산화물 등 대기오염 물질이 자연에서 배출된 화학 성분과 반응해 어떻게 초미세먼지나 오존을 만들어 내는지 밝힐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말했다.
부산과 포항 앞바다를 날던 중이었다. “대기오염원이 전혀 없는 해상에서 갑자기 이산화탄소와 일산화탄소 수치가 매우 높게 나타난 게 흥미롭다. 방금 지난 지점은 다음 비행 때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는 크로퍼드 연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기자의 옆자리에서 메탄을 측정하고 있던 NASA 랭글리 연구센터 글렌 디스킨 연구원이 “메탄의 농도는 높지 않은 것으로 보아 확실히 도시에서 배출된 것 같다”고 의견을 나눴다.
디스킨 연구원은 헤드폰을 떼고 “농가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된 경우에는 메탄 수치도 높게 나타난다”고 귀띔해 줬다. 소음 때문에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만 대화가 가능했다. 그는 “모니터를 보면서 이런 특이 사항이 발견될 때마다 그래프 옆 타임라인에 메모를 해둔다”며 “나중에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할 때 참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며 타임라인을 보여줬다. ‘KORUS-AQ 네 번째 비행 오전 10:04:23 – 서울 상공의 가장 낮은 고도에서 이산화탄소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대기 성분의 복잡한 분포 구조가 포착됐다.’
기내에 빼곡 찬 관측 장비
좌석 대신 기내에 빼곡하게 들어선 관측 장비 대부분은 공기 중에 있는 입자의 질량, 흡광(吸光)량 등을 측정해 성분을 알아내는 기기다. 26개 장비가 각각 측정물질과 측정원리가 달라 상호 보완할 수 있다. 이번에 실린 한국 장비 6개 중 하나인 GIST의 ‘K-ACES’는 세계에 단 두 대밖에 없는 장비로, DC-8에는 이번에 처음 실렸다.
글리옥살과 VOCs, 질소산화물 등을 동시에 측정하는 이 장비는 두 대 모두 민경은 교수가 직접 설계하고 제작했다. 민 교수는 “글리옥살은 끈적끈적한 성질 때문에 다른 물질의 표면에 잘 달라붙어 초미세먼지를 만드는 원인이 된다”며 “글리옥살이 산화되면 산으로 변하는데 유기산을 측정하는 다른 연구진의 데이터와 비교 분석하면 오염물질의 화학적인 변화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고 말했다.
K-ACES는 외부에서 빨아들인 공기를 상자 모양의 용기(셀)에 담고 이 빛을 통과시킨 뒤 파장별로 얼마나 많은 빛이 흡수되는지 측정해 성분과 농도를 알아내는 기기다. 셀의 길이는 50cm에 불과하지만 양 끝에 거울을 설치해 실제로는 빛이 수십 차례 반사되면서 기체를 10km 이상 통과하는 효과를 낸다.
비행기 맨 뒤쪽에는 비행기를 관통하는 커다란 라이더 망원경이 있었다. NASA 랭글리연구센터 조나단 헤어 연구원은 “펄스 레이저광을 위, 아래로 발사하고 대기 중 입자에 의해 산란돼 들어오는 빛을 분석해 오존과 에어로졸 등 입자들의 수직 분포를 기록하는 장비”라며 “다른 장비들이 비행기의 고도에서 대기 성분을 관측할 때 그 위와 아래에는 어떤 입자가 분포돼 있는지 알아내고, 만약 미세먼지 덩어리가 발견되면 이를 알려 비행기의 고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크로퍼드 연구원은 “대기오염을 효율적으로 줄이려면 현상을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며 “과학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조사와 연구가 선행돼야만 정책을 결정할 때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발사 예정인 정지궤도 대기해양관측위성 ‘천리안 2B호’에 실리는 환경 탑재체 ‘젬스(GEMS)’의 데이터 처리 알고리즘을 개선하는 데도 활용된다. 김세웅 교수는 “미국과 유럽도 비슷한 시기에 각각 정지궤도 환경위성 ‘템포(TEMPO)’와 ‘센티넬(Sentinel)-4’를 쏘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한미 공동 연구진은 협력 관계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분석 결과를 얻기까지는 1~3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경은 교수는 “미국의 경우 항공기를 이용해 수년 동안 같은 지역의 대기 질을 조사하기도 한다”며 “우리나라도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연구용 항공기를 확충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꾸준히 연구를 이어나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KORUS-AQ는 바다에서도 동시에 진행된다. 국립기상과학원의 기상1호와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온누리호가 5월 2일부터 6주간 서해 관측에 참여한다. 기상1호는 서해바다를 남북으로 오가고, 온누리호는 동해·서해·남해를 항해한다. 차주완 국립기상과학원 황사연구과 연구관은 “기상1호의 경우 가급적 DC-8의 서해 비행경로와 비슷하도록 맞췄다”고 했다. 5월 13일, 목포항에 잠시 정박한 기상1호를 방문했다.
서해 먼바다를 오가는 기상1호
“바다에서 대기질을 관측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풍랑주의보가 발령되면 아예 배를 띄울 수가 없잖아요. 비가 오거나 개가 껴도 바다 한가운데 닻 내리고 가만히 기다려요.”
류동균 기상1호 선장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한번 바다로 나가면 열흘에서 2주가량 항해하는데, 날씨가 좋은 날만 관측할 수 있다. 운항 기간의 대략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관측가 기간에는 평균 12.5노트(약 시속 23km) 속도로 하루 120마일(약 193km)씩 운행한다. 대기 질 측정이라는 특별한 목적으로 운항하다보니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다. 류 선장은 “서해 먼 바다로 나가면 중국 배가 많다”며 “수 km 이내로 접근하면 중국 배에서 나오는 매연이 관측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상1호의 대기 질 관측에는 국립기상과학원, 고려대, GIST연구팀이 참여하고 있다. 입자의 크기별로 수농도(부피당 입자수)를 측정하는 공기역학 입자계수기, 오존·일산화탄소·질소산화물 측정기 등 아홉 가지 장비가 갑판 위 컨테이너에 설치돼있다. 미세먼지뿐만 아니라 기체상인 대기오염물질의 농도가 시간과 장소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할 수 있다.
차 연구관은 기상1호를 통해 두 가지 중요한 소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나는 중국에서 편서풍을 타고 넘어오는 황사나 미세먼지의 양을 파악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대기 질이 나빠질 때마다 오염물질의 출처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다. 중국에서 넘어오는 물질과 한반도에서 자체적으로 발생하는 물질을 구분하기 어려워서였다. 차 연구관은 “그동안 한반도 주변 해상에서 황사나 미세먼지의 양을 관측한 적이 거의 없었다”며 “중국에서 넘어오는 양을 파악하는 데 서해상 연구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오염물질이 바다를 건너면서 어떻게 변하는지도 관심사다. 차 연구관은 “중국에서 생긴 대기오염물질이 수증기가 풍부한 서해 상공을 지나면서 염화나트륨 같은 해염입자와 반응해 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주태규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연구원(석사과정)은 “오존이나 질산과 산화아세틸(PAN) 등 광화학 생성물은 보통 도시에서 농도가 높은데, 특이하게 서해에서도 높게 관측된다”면서 “보통 해양지역과 달리 서해에서 대기화학반응이 매우 활발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대기오염물질이 바다를 건너오면서 변하는 실제 과정은 이론에 비해 훨씬 복잡하다. 이번 연구를 통해 새롭게 밝혀내야 할 사실도 그만큼 많다. 이미혜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DC-8과 기상 1호가 서로 다른 고도에서 대기질을 측정하면 서해상 오염물질의 농도를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차 없애려면 섬세함 필요
기자가 기상1호를 찾았을 땐 이세표 국립기상과학원 연구원과 주태규 연구원 등이 열흘 동안 관측한 자료를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장기간 머무른지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세표 연구원은 “관측 장비가 고장 났을 때 고칠 수 없는 것이 바다에서 연구할 때의 어려움”이라고 말했다.
주 연구원은 “관측에 오차가 생기지 않게 장비를 섬세하게 조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기상1호 자체에서 나오는 매연도 오차를 일으키는 원인이다. 매연이 나오는 연통은 배의 뒷부분에 있는데, 배가 움직일 때는 매연이 바람에 씻겨 관측에 지장이 없다. 그래서 관측은 꼭 배가 움직일 때만 한다.
“가장 문제는 배가 막 움직이기 시작할 때예요. 매연이 아직 주변에 남아있는데 관측 장비가 가동되기 시작하거든요. 이때 잊지 말고 장비 입구를 꼭 막고 있어야 해요.”(주태규 연구원)
차주완 연구관은 “바다와 육지, 하늘에서 각자 정밀한 자료를 모은 다음, 자료를 공유하면서 동시에 종합적인 해석을 위한 워크숍을 진행해 1년 뒤쯤 연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기상1호를 찾았을 땐 이세표 국립기상과학원 연구원과 주태규 연구원 등이 열흘 동안 관측한 자료를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장기간 머무른지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세표 연구원은 “관측 장비가 고장 났을 때 고칠 수 없는 것이 바다에서 연구할 때의 어려움”이라고 말했다.
주 연구원은 “관측에 오차가 생기지 않게 장비를 섬세하게 조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기상1호 자체에서 나오는 매연도 오차를 일으키는 원인이다. 매연이 나오는 연통은 배의 뒷부분에 있는데, 배가 움직일 때는 매연이 바람에 씻겨 관측에 지장이 없다. 그래서 관측은 꼭 배가 움직일 때만 한다.
“가장 문제는 배가 막 움직이기 시작할 때예요. 매연이 아직 주변에 남아있는데 관측 장비가 가동되기 시작하거든요. 이때 잊지 말고 장비 입구를 꼭 막고 있어야 해요.”(주태규 연구원)
차주완 연구관은 “바다와 육지, 하늘에서 각자 정밀한 자료를 모은 다음, 자료를 공유하면서 동시에 종합적인 해석을 위한 워크숍을 진행해 1년 뒤쯤 연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