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사물은 원자로 이뤄져있으며, 이런 원자는 쿼크라 불리는 표준모형의 입자로 구성됩니다. 표준모형은 쿼크 같은 입자들의 존재와 그들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이는 표준모형이 중력을 제외한 우리 앞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의 근원을 설명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지구 밖의 우주에 주목하자 의외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표준모형은 우리 우주를 이루는 물질 중 약 5%만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 물질 중 약 27%는 표준모형 밖의 암흑물질로 구성됩니다. 광자와 상호작용하지 않아서 인간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없기 때문에 암흑물질이라는 이름이 붙었죠. 이 물질이 무엇이고 직간접적인 관측이 어떻게 가능한지, 또한 암흑물질이 표준모형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상 현상들의 원인은 아닐지 등 많은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암흑물질의 전통적인 후보, 윔프
암흑물질을 설명하는 가장 성공적인 이론은 1977년에 이휘소와 스티븐 와인버그가 처음 제시한 ‘윔프(WIMP・Weakly Interacting Massive Particle)’를 암흑물질로 여기는 윔프 패러다임입니다. 윔프는 질량이 존재하고 반응성이 약한 입자입니다. 윔프 패러다임에 따르면 초기 우주에는 많은 양의 윔프가 있었습니다. 또한 윔프는 두 개가 모여 두 개 이상의 표준모형상의 물질로 붕괴할 수 있습니다. 좁디좁은 초기 우주에서는 대량의 윔프끼리 자주 만날 수 있었을 테고, 그 결과 이들의 붕괴도 활발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우주는 가속팽창 중이어서, 윔프들 사이의 평균 거리가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히 멀어집니다. 결과적으로 수많은 윔프가 붕괴하지 못한 채 남겨졌다는 게 윔프 패러다임의 추론입니다. 윔프 패러다임은 현재 우주에 존재하는 암흑물질의 양을 훌륭하게 설명합니다. 또한 윔프의 성질이 ‘일정 수준의 질량을 가지고 약한 반응성을 띤다’고만 정해놓은 까닭에, ‘윔프가 만약 A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면, B라는 실험을 통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식의 가설을 다양하게 세우며 오랫동안 연구가 이뤄졌습니다.
기존 패러다임의 허점을 넘어서
그러나 시간이 흘러 윔프 패러다임도 한계가 드러났습니다. 실제 은하 중심부에 존재하는 암흑물질의 양이 윔프 패러다임을 적용한 시뮬레이션 결과보다 수십 배나 적은 ‘핵-돌기 문제’가 대표적입니다. 또 눈으로 볼 수 있는 위성 은하의 개수가 시뮬레이션으로 예상한 결과보다 너무 적은 ‘틀릴 리 없을 만큼 큰 은하’ 문제도 있습니다. 이처럼 윔프를 도입한 우주 구조 시뮬레이션과 실제 관측한 우주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는 문제들을 아울러서 우주의 소규모 구조 문제라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윔프를 넘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들을 연구 중입니다. 극도로 약한 반응성을 가지며 질량이 있는 입자인 ‘핌프(FIMP・Feebly Interacting Massive Particle)’를 제안하는가 하면, 제가 속한 연구실에서는 자가공명하는 암흑물질인 ‘SRDM(Self-Resonant Dark Matter)’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논문은 강한 반응성을 가지며 질량이 있는 입자, ‘심프(SIMP・Strongly Interacting Massive Particle)’ 패러다임을 처음 제시했습니다. 여기서 강한 상호작용은 우주를 이루는 기본힘인 ‘강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암흑물질 간에 일어나는 새로운 상호작용이 강하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심프 입자들이 충돌하기 위한 핵심 조건
심프 패러다임의 기본은 윔프와 동일합니다. 우주 초기에 많은 양의 심프가 있고, 서로 반응함으로써 그 양이 줄어듭니다. 하지만 두 개의 윔프가 쌍소멸하는 과정을 거쳐 그 수가 줄어드는 윔프 메커니즘과 달리, 심프 메커니즘은 세 개의 심프가 모여서 두 개의 심프만 살아남는 과정을 거쳐 그 양이 줄어든다고 가정합니다.
예를 들어 좁은 공간에 100개의 심프가 있었다면, 심프 세 개가 모여 이 입자들끼리 충돌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최종적으로 두 개의 입자만 남습니다. 물론 게임 ‘PUBG: 배틀그라운드’와는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충돌할 공간이 팽창하므로, 실제 우주에는 수많은 심프가 남습니다. 심프 메커니즘의 다른 중요한 특징은 그 양이 줄어드는 과정에서 아무 부산물도 남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붕괴 과정에서 표준모형 입자를 남기는 윔프와 대비됩니다.
새로운 암흑물질 가설을 제시하려면 이 입자가 가져야 하는 성질을 찾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대략적인 질량과 반응성 등입니다. 심프의 성질 중 하나는 높은 반응성입니다. 무작위로 돌아다니는 입자들이 세 개씩이나 가까이 모이는 일은 상당히 희귀합니다. 마치 넓디넓은 놀이공원에서 돌아다니다가 미리 연락하지 않은 친구를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동시에 만나는 사건처럼요. 심프는 이 희귀한 사건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반응성이 윔프보다 훨씬 큽니다. ‘강한 반응성을 가진다(Strongly Interacting)’는 이름이 붙은 이유입니다.
심프의 높은 반응성은 심프들 간 충돌 빈도가 윔프보다 훨씬 높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높은 충돌 빈도가 우주의 소규모 구조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입니다. 핵-돌기 문제를 예로 들면, 심프 패러다임은 심프끼리의 빈번한 충돌이 서로를 강하게 밀치는 효과를 내므로 은하 중심부에 많은 양의 암흑물질이 존재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이런 심프도 완벽하진 않았습니다. 심프의 수가 줄어드는 과정에서 사라진 입자 한 개의 행방을 생각해보죠. 이 사라진 입자는 남은 두 입자의 운동에너지로 환원됩니다. 심프들이 이렇게 얻은 에너지는 매우 큽니다. 수많은 심프가 은하로부터 빠져나가기 때문에 이대로라면 소규모 구조 문제, 더 나아가 은하 내 암흑물질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게 됩니다.
우주의 소규모 구조 문제 풀릴까
이번 논문은 심프의 이런 문제까지 해결했습니다. 심프가 자신의 에너지를 표준모형 위의 입자에 나눠주는 연결고리가 있어서 표준모형과 지속적인 열평형 상태를 유지하면, 남은 심프 입자들이 얻는 운동에너지가 매우 커지는 문제가 해결된다는 겁니다. 심프가 표준모형 입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이 지적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상호작용의 존재는 표준모형 입자가 심프로부터 에너지를 받은 흔적을, 과학자들이 실험에서 관찰할 수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흔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심프 패러다임은 현재까지의 실험 결과가 반증하지 않을 정도의 약한 연결고리로도 암흑물질에 관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심프의 두 번째 성질인 질량을 이용해서 말이죠. 현재 우주에 남은 암흑물질의 양을 설명하기 위해, 심프의 질량은 0.1GeV 정도일 것으로 여겨집니다. 윔프 질량의 1만 분의 1에서 1000분의 1 수준이죠. 가벼운 입자일수록 입자가속기 실험으로 흔적을 찾기 쉽습니다. 심프는 윔프보다 빨리 검증할 수 있을 겁니다.
구체적인 심프 모델을 구현하고 심프와 표준모형의 연결고리를 밝히기 위한 연구는 현재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제가 속한 연구실에서도 구체적인 Z3 모형으로 심프 메커니즘을 구현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등 중요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Z3 모형은 2개의 암흑물질 입자가 1개의 암흑물질 입자 및 다른 입자로 붕괴해, 결과적으로 암흑물질의 수가 줄어드는 반붕괴 과정을 보여주는 가장 간단한 이론입니다.
Q. 암흑물질 이론을 다루는 논문은 어디에 실리나요?
Physical Review Letters, Journal of High Energy Physics, Physics of the Dark Universe, Journal of Cosmology and Astroparticle Physics, Physical Review D 등이 있습니다. 특히 Physical Review Letters는 윔프를 처음 제시한 이휘소와 스티븐 와인버그의 1977년 논문이 실린 저널입니다.
Q. 필요한 논문을 찾는 팁이 있다면?
저자 이름, 논문 키워드를 구글이나 디지털 라이브러리(inspirehep.net 등)에서 검색해봅니다. 최신 연구 동향을 알고 싶다면 물리학, 천문학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인 아카이브(arXiv)에서 관련 키워드(hep-ph, gr-qc 등)를 검색하는 방법도 추천합니다.
Q. 암흑물질 분야의 연구 논문을 읽는 데 필요한 지식은 무엇인가요?
암흑물질과 같은 새로운 입자를 찾으려면 우선 이미 알려진 입자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표준모형과 표준모형을 기술하는 언어라 할 수 있는 양자장론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암흑물질의 존재를 직접 설명하는 천체물리학 이론과 우주의 팽창 과정에서 암흑물질이 한 역할을 이해하기 위한 빅뱅 우주론도 알 필요가 있습니다.
Q. 암흑물질 연구의 트렌드는 무엇인가요?
오랫동안 암흑물질 연구를 주도해온 윔프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새로운 암흑물질 후보와 그 후보 물질들의 생성 과정에 대한 연구가 최근의 트렌드라고 생각합니다.
Q. 암흑물질 연구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무엇인가를 모른다는 사실을 다르게 표현하면, 그 무지 속에 수많은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암흑물질의 가능성들을 탐구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역사
속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연구의 큰 매력입니다.
§ 김성식
중앙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2020년에 같은 대학 물리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입자 관점에 기반한 암흑물질 이론들과 각 이론들이 암시하는 바를 연구 중이다. sskim.worki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