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에 파란색 우주선 보이죠? 그 우주선이 날 수 있도록 집중해주세요.” 2016년 9월 6일 배진우 마인드앤헬스의원 원장은 기자의 정수리에 전극을 붙인 뒤, 다짜고짜 우주선 게임을 시켰다. 전극은 특수한 기계 장치를 통해 모니터와 연결돼 있었다. 하지만 흔한 조이스틱도 없이 과연 생각만으로 우주선을 움직일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화면을 쳐다봤다. 그 순간 진짜로 우주선이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화면 속의 우주선은 분홍색, 파란색, 초록색 총 세 대였다. 게임 초반에는 세 대의 우주선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그런데 파란색 우주선에 ‘집중’을 하자 파란색 우주선이 다른 우주선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꽁무니에서 터보엔진 불길을 뿜으며 속도를 내는 모습을 보니 짜릿하면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이 상태가 오래가진 않았다. 중간에 추가 점수를 낼 수 있는 보석 아이템이 나오면서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결국 보석을 놓치고 말았다.
뇌파로 집중력을 잰다?
“보석은 놓쳤지만 집중력이 심각하게 낮은 편은 아니네요.” 정신과 전문의인 배 원장은 세 대의 우주선이 각각 머리 속에서 나오는 뇌파를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분홍색, 파란색, 초록색 우주선은 각각 기자의 머릿속에서 나온 세타파, 낮은 베타파, 높은 베타파였던 것이다. 뇌파는 신경세포들의 전기적인 활동으로, 뇌파 검사(뇌전도, EEG) 장치를 두피에 붙여서 읽어낸다. 게임에선 뇌파가 많이 나올수록 우주선의 속도가 빨라졌다.
세 가지 뇌파는 각각 특성이 달랐다. 파란색 우주선이 나타내는 낮은 베타파(15~18Hz)는 작업을 하면서 각성이 됐을 때 나오는, 즉 집중이 잘 되면서 머리가 맑을 때 나오는 뇌파였다. 반면 분홍색 우주선이 나타내는 세타파(4~7Hz)는 정신이 멍하거나 잠이 올 때 나오는 뇌파였다. 초록색 우주선이 보여준 높은 베타파(22~36Hz)는 작업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 불안한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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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파를 측정한다고 집중력을 높일 수 있을까. ‘내가 세타파가 많으니 이것을 줄이고 싶다’고 생각한들 실제 뇌파를 조절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은정 한국뇌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뇌파를 측정한 결과를 토대로 개선이 필요한 뇌 영역을 집중적으로 훈련하면 스트레스를 완화시키거나 인지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비결은 시각적인 피드백이었다. 이 연구원은 “피시험자는 집중을 잘 할 경우 우주선이 앞으로 잘 나가고, 잘 못할 경우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게임을 20회 정도 반복하면 집중이 잘 될 때 어떤 느낌인지 스스로 내적 상태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피시험자가 집중이 잘 될 때의 내적 상태를 기억하면, 다음에는 스스로 그런 상태가 되도록 뇌파를 조종할 수 있다. 더 반복하면 해당 부위의 뇌가 긍정적인 뇌파(낮은 베타파)를 잘 유지하도록 변화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그는 이것을 “뇌의 가소성을 활용한 ‘뉴로피드백’ 훈련”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때 드는 무게를 조금씩 늘려서 근육을 키우듯이, 우주선 게임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어서 뇌 강화학습을 통해 뇌가 긍정적인 뇌파 패턴을 유지하도록 만든다”고 덧붙였다. 게임 중간에 보석이 갑자기 튀어나오게 하는 것도 주의력을 강화하는 훈련 중 하나였다.
뇌파의 파형으로 알 수 있는 ‘불안함’
기자는 이날 평소 느끼는 불안함도 측정했다. 가뜩이나 취재가 원하는 만큼 잘 되지 않아서 머리가 아프던 참인데 수치가 안 좋게 나오면 어쩌나 내심 불안했다. 머리에 전극을 붙이고(직전에 주의력 측정을 할 때 전극을 붙인 위치와 달랐다. 좀 더 정수리쪽이었다), 이번에는 눈을 감고 소리를 들었다. ‘졸졸졸’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옆에서 실험을 도와주는 테라피스트는 잡생각을 비우고 마음을 잘 안정시키면 시냇물 소리가 파도소리로 변한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테스트가 진행되는 6분 동안 온갖 잡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기사는 언제 쓰지’, ‘언제 회사로 복귀하지’, ‘저녁은 뭐 먹지’, ‘대구엔 막창이 유명하다던데’, ‘시냇물 소리는 왜 파도소리로 바뀌지 않는 거지’…, 사람 심리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법이다.
그러나 배 원장은 기자의 결과표를 보면서 불안함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높진 않다고 분석했다(그런데 왜 기사가 안 써지는 건지, 정말 미스터리다). 불안함은 세타파(2~8Hz), 알파파(8~11Hz), 베타파(15~30Hz) 세 가지 뇌파의 파형으로 분석했다. 이때 뇌파의 양은 중요하지 않았다. 배 원장은 “불안이 큰 사람은 생각이 너무 많은 과각성 상태라 뇌파 간의 격차가 크다”며 “세 가지 뇌파가 고루 나와 파형 그래프가 꼬여 있으면 불안함이 적고 편안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뇌파가 꼬일 때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시냇물 소리가 파도 소리로 변하는데, 이때의 내적 상태를 잘 기억해놓는 것이 뉴로피드백 훈련의 요지였다.
플라시보 효과는 아닐까
뉴로피드백 훈련은 수면장애나 불안,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앓고 있는 아동 환자에게 실제로 적용된다. 특히 ADHD 아동의 경우 고위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 부위에서 세타파가 표준치보다 광범위하게 활성화된 양상이 나타난다. 이는 전두엽 기능이 저하됐다는 신호다. 병원에서는 세타파를 낮추고 베타파와 SMR파(진동수가 알파파와 베타파 사이인 뇌파로, 지속적인 각성상태에서 나온다)를 늘리도록 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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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타파가 감소한 것만으로 인지능력이 좋아졌다고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영국 의학연구위원회(MRC) 인지및뇌과학부 덩컨 애슬 박사팀은 8~11세 아이들 33명을 대상으로 뇌 훈련이 기억력을 향상시키는지 실험했다. 연구팀은 아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은 계속 쉬운 게임을 시키고, 다른 한 그룹은 난이도가 점점 높아지는 게임을 시켰다. 그 결과 어려워지는 게임을 한 아이들은 기억력이 향상됐고 자기뇌파검사(뇌자도, MEG)에서도 뇌파에 변화가 나타났다.
하지만 애슬 박사는 “뇌 훈련이 뇌파를 변화시켰을 수 있지만 특정 인지 과제에 대한 뇌기능을 향상시키는지는 알 수 없다”며 “뇌 훈련이 효과가 있다는 증거가 미약하고, 뇌 기능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현재로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고 적었다. 연구결과는 ‘사이언스데일리’ 2016년 8월 23일자에 보도됐다. 정 교수도 “뉴로피드백 훈련이 약물치료보다 효과가 더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다”면서 “약물에 부작용을 보이거나, 약물 치료로 효과를 보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마음챙김 명상도 효과가 있을까
기자는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오전 7~8시 매일 한 시간씩 명상도 시작했다(일주일 넘게 했는데 아직도 기사가 잘 안 써지는 건, 명상 중에 자꾸 잠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명상을 시작한 건 ‘마음챙김 명상’이란 용어에 흥미를 느껴서다. 마음챙김 명상은 1979년 미국 매사추세츠 의대에서 처음 도입된, 명상을 통한 스트레스 완화 기법이다. 최근 구글이나 애플, 페이스북 같은 기업에서 직원들의 집중력과 업무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교육한다고 알려지면서 다시 한 번 화제가 됐다.
마음챙김 명상은 주의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고 다시 집중하는 훈련을 반복한다. 심호흡을 하면서 가볍게 몸을 움직여 말단의 감각들에 집중한다. 주의를 집중하는 훈련을 통해 뇌를 변화시킨다는 기본 방식은 뉴로피드백 훈련과 동일하다. 하지만 뉴로피드백 훈련이 뇌를 조건화시켜 불필요한 뇌파를 줄이고 긍정적으로 뇌 기능을 향상시키는 데 비해, 마음챙김 명상은 내가 나의 감각과 느낌을 알아가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
마음챙김 명상은 20년 전부터 집중력, 자아조절능력, 자의식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최근 그 증거가 뇌 영역에서 신경과 분자 수준에서 밝혀지기 시작했다. 한 예로 2015년 3월 ‘뉴로사이언스’에는 ‘마음챙김 명상의 신경과학’이라는 제목으로 180개 관련 논문을 리뷰한 13페이지 논문이 실렸다(DOI: 10.1038/nrn3916). 논문에서는 명상이 뇌에 구조적인 차이를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임상 환자들을 대상으로 마음챙김 명상을 시켰을 때, 양측 해마와 왼쪽 측두엽, 소뇌 부위에서 회색질 조직의 밀도가 증가했다. 회색질은 감각, 충동, 흥분이 대뇌피질로 전달될 때 중계 역할을 하는 물질로 파킨슨병과 같은 신경정신장애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DOI: 10.1016/j.clineuro.2013.10.002).
마음챙김 명상이 스트레스를 직접적으로 조절하는 기작도 확인됐다. 명상을 하는 중에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피질 축(HPA축) 활동이 증가하면서 부교감 신경계가 활성화 돼,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알려진 코르티솔 분비가 억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DOI: 10.1207/s15324796abm3203_9). 결과적으로 심박수, 호흡수, 산소 대사가 감소하고 소변 검사에서 아드레날린의 부산물인 ‘바닐만델산’ 농도가 줄면서 전체적으로 신체 이완이 이뤄진다.
마음챙김 명상이 통증을 경감시키는 구체적인 기작에 대한 힌트도 최근 밝혀졌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은 마음챙김 명상이 진통효과를 내는 방법은, 일반적인 통증 조절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법과 별개였다는 점이다. 우리 몸은 강한 통증이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고통을 완화시키는 오피오이드 물질을 생성한다. 베타엔돌핀, 엔케팔린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뇌에서 진통작용을 하고 쾌감을 이끌어낸다고 해서 뇌 속 마약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마음챙김 명상의 진통효과는 이런 오피오이드 물질과 관련이 없었다. 오피오이드 물질의 작용을 감소시키는 약제인 날록손을 정맥에 투여했을 때도 명상은 통증 경감효과를 보였다(DOI: 10.1523/JNEUROSCI.4328-15.2016).
이 연구원은 “진통제는 기존의 통증 조절 시스템에 작용해 통증을 아예 느끼지 못하게 하는 반면, 마음챙김 명상은 부교감 신경계를 활성화시켜 통증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며 “류마티스 관절염, 섬유근육통, 암, 건선과 같은 만성적인 통증을 감소시키는 데 유용하다”고 말했다.
마음챙김 명상이 삶을 획기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말하기엔, 명상 연구에 아직 한계가 존재한다. 우선 방법론이 미흡하다. 보통 한 사람이 마음챙김 명상을 하기 전 상태와 하고 난 후를 비교하는 종단연구를 하는데 표본 수가 수십 명 수준으로 적고, 비교 방법도 연구마다 제각각이다. 연구 결과가 사후 끼워 맞추기 해석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명상을 하는 수준, 반복하는 횟수도 개인차가 커서 통제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두뇌의 놀라운 능력을 긍정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신경과학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마음과 몸의 건강을 되찾는 그날까지 기자 역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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