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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밀레니엄 프런티어와의 만남 : 3. 보험계리사 김송옥


김송옥 팀장은 주로 데스크작업을 하며 하루종일 숫자와 씨름한다. 숫자를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하니 '씨름'이란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 것일까.

7시30분 기상. 8시 30분 여의도의 금융감독원 18층으로 출근한다. 팀미팅이 없는 날은 곧바로 데스크워크로 들어간다. A 보험사의 책임 준비금과 배당률이 적당한지와 재무구조를 함께 체크하다보니 어느덧 점심시간, 12시. 외부 약속이 없어 동료들과 구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 하던 일을 계속하다가 4시 갑자기 소집된 팀장회의에 참석한다. 회의가 길어져 저녁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시간은 7시 30분.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지만 내일 오전에 있는 보고를 위해선 아직 할 일이 많다. 어느 정도 일이 마무리 된 시각은 10시 30분. 집이 가까운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아파트 문을 열고 현관의 시계를 봤을 때가 11시. 주말에는 운동을 꼭 해야지 다짐하며 꿈속으로 달려간다.

이상은 금융감독원에 외부 전문인력 영입 과정으로 들어온 보험계리사 김송옥팀장(40)의 하루다. 보험계리사? 보험상품을 파는 보험설계사란 말은 많이 들었는데 보험계리사는 뭐하는 사람일까? 그는 요즘 각 보험사가 계약자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보험금인 책임 준비금, 배당률, 사업비 등이 적당한지 판단하는 일을 하고 있다. 또 곧 시행될 보험료 자율화 시대를 맞아 소비자가 피해를 보지 않고, 회사도 재무건전성을 유지하면서 영업을 할 수 있는 제도적 근간을 마련하는데 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보면 하루 종일 숫자와 씨름하는 게 다반사다. 다른 일보다 더 피곤할 것 같다는 말에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문자보다 숫자를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웃는다. “숫자는 명확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 이것이 생활화돼서일까. 아파트 관리비를 항목항목 따져보면서 지난달과 비교해 많이 나온 것은 반드시 확인하게 된다. 또 연체이자를 보면 ‘어떻게 이 값이 나왔을까’를 생각한다. 정말 ‘직업은 못 말린다’는 말이 실감난다.

2백명밖에 없는 인기직업

국내에서 약 2백여 명의 계리사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아직 보험계리사라는 직업은 낯설다. 하지만 작년과 같은 취업난 속에서도 40명의 보험계리사들은 100% 보험사에 취업됐다. 특히 IMF 이후 사회적으로 M&A가 가속화되면서 보험계리사들의 위치가 더욱 부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인기직업’이라고 귀뜀한다.

대부분의 보험계리사들은 보험사에서 보험상품을 개발하는 일을 맡고 있다. 예를 들어 암보험상품을 만든다고 하자. 현재 1백명의 가입자 중 1년 후 12명이 사망한다고 하자. 이때 개인에게 돌아가는 보험금은 1백만원이다. 그러면 보험금 합계는 1천2백만원이므로 보험가입자들에게 1년에 1백20만원, 즉 한 달의 개인이 부담해야할 보험료가 10만원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여기에 당시의 금리와 금리 변동률, 그리고 영업비용과 회사이익 등을 고려해 프로그램을 짜보면서 하나의 보험상품을 탄생시킨다.

이처럼 보험계리사들은 회사의 이익을 위해 사기업에서 활동할 수도 있지만 보험계약자인 소비자가 손실을 보지 않도록 보험상품을 심사하고 보험사의 재무 건전성을 파악하는 금융감독원 같은 공적인 기관에서도 일할 수 있다.

여성에게 유리해

그는 앞으로 보험계리사는 보험사 뿐만 아니라 제2금융권, 일반 기업, 컨설팅 회사 등에서도 투자수익을 올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계리사들은 기본적으로 회사의 자산과 부채를 평가해 수익성과 안정성을 고려한 투자를 할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또 시장이 개방되고 국내에서나 국제적으로 기업 인수 합병이 빈번해지는 21세기에 각 기업의 경영상태를 제대로 평가할 사람은 계리사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업의 재무 구조를 평가한다는 것은 매우 신중한 일이다. 일의 결과로 한 기업의 운명이 바뀌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보험계리사라는 직업이 여성에게 유리하다고 지적한다. 섬세하게 변수들을 고려하고 힘든 결정의 순간에 가장 냉철해질 수 있는 여성 특유의 판단력이 부각된다는 얘기다. 매번 어려운 결정을 해야하는 직업이지만 일에 관한 한 책임과 권한이 균형적으로 주어져 객관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다며 자랑한다.

수학과 궁합 맞아야

보험계리사와 뗄래야 뗄 수 없는 학문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수학. 보험계리사들은 평생 수학을 하며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수학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당연히 하기 어려운 일이 이 직업이다. 이화여대 수학과를 졸업한 것도 그가 고등학교때 제일 좋아하던 과목이 수학이었기 때문. 중고등학교 때나 대학 때 안 풀리는 문제가 있으면 끼니도 거르며 매달렸는데, 심지어 꿈속에서까지 문제를 풀었다고 하니 수학에 대한 열정이 짐작간다. 하지만 수학과를 나와야만 보험계리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대개의 경우 보험사에 근무하던 사람이 보험계리사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의 전공을 보면 수학과 외에도 경영학과, 경제학과 같은 인문과학 전공자들도 상당수다.

그는 미국의 보험사에서 일하다가 보험계리사 어소시에이트자격을 얻고, 미국 컨설팅 회사, 미국 캘리포니아 보험청에서 보험상품 심사에 관한 업무를 했다. 국내에 들어 온 것은 90년.그 후 보험개발원, 삼성화재에서 보험상품 개발에 관한 일을 하다 금융감독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국에 있는 모든 식구들과 떨어져 생활하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고 하자 미국에서도 일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지낸 적이 많아 큰 문제는 없단다.

이력에서 보듯이 그는 매우 적극적으로 삶에 변화를 주고 있는 커리어 우먼의 전형이었다. “부모님으로부터 공부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지금 이렇게 독립적으로 지낼 수 있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모든 일을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해준 부모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힘들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조깅이나 수영으로 정신을 맑게 하는 것도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귀띔한다.

보험계리사가 되려면?

미국은 보험계리사 시험이 10단계에 걸쳐 이뤄진다. 대체로 자신이 어떤 일을 할까 정하고 시험을 본다. 대부분 보험사에서 일하면서 시험을 보기 때문에 1년에 1단계씩 본다. 5단계까지 통과하면 보험수리쪽에 많이 관여하는 어소시에이트가 되고, 10단계를 모두 통과하면 펠로우라고 칭한다. 펠로우는 경제, 법규, 경영 전반에 걸쳐 기업에 자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1차와 2차에 걸쳐 시험을 보고 합격하면 2년 실무수습 기간을 거치는데 이 과정을 마치면, 정계리인이라고 부른다. 1차 시험과목은 경제, 경영 중 하나, 영어, 수학, 보험업법과 계약법이며, 2차는 회계, 보험수리, 보험 이론과 실무다.

1999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장경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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