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News & Issue] ‘다중신호 천문학’ 시대 열린다

빛으로 보고 중력파로 재고


수천 년간 인류는 가시광선이라는 작은 창으로 우주를 탐구해왔다. 창문을 조금씩 넓히기 시작한 건 20세기 들어서다. 전파를 천문학에 이용하면서 우주배경복사를 보게 됐고, 적외선으로 온도가 낮은 별, 자외선으로 온도가 높은 별을 보게 됐다. X선과 감마선은 매우 높은 에너지를 가진 천체를 보여 줬다. 맨눈으로는 볼 수 없었던 우주의 다양한 아름다움이 전자기파의 모든 스펙트럼을 관찰하면서 드러났다.

1980년대에는 새로운 창이 하나 더 생겼다. 태양과 초신성에서 오는 중성미자를 지구에서 관측할 수 있게 됐다. 중성미자는 전자기파와 크게 다른 점이 있었다. 전자기파가 천체의 껍질만을 보여준다면, 중성미자는 속살을 드러낸다는 점이었다. 전자기파와 달리 중성미자는 다른 물질과 거의 상호작용을 하지 않아 천체 내부의 정보를 그대로 가지고 나온다. 천문학자들은 과거의 창을 ‘전자기파 천문학’으로, 새로운 창을 ‘중성미자 천문학’으로 갈랐다.

올해 2월, 세 번째 창이 생겼다. 이번엔 중력파다. 무거운 천체의 질량분포에 변화가 생길 때 나오는 파장을 볼 수 있게 됐다. 새 창에는 ‘중력파 천문학’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젠 창이 여럿이라 한꺼번에 여러 창으로 우주를 볼 수 있게 됐다. 이 낭만적인 상황을 뭐라 칭할까 고민하던 천문학자들은 ‘다중신호 천문학(Multi-messenger Astronomy)’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세 신호는 발생하는 원리 자체가 다르다. 전자기파는 전자기력, 중성미자는 약력, 중력파는 중력과 관계가 있다. 김정리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연구원은 “측정하는 방법과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다르다”면서 “시각, 청각, 촉각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종합하면 자연을 좀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듯이, 세 신호를 조합하면 천문학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중신호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살펴봤다.



1. 감마선 폭발의 비밀 밝혀낼까

감마선 폭발은 우주에서 가장 강한 전자기파가 나오는 사건이다. 0.001초에서 30초 사이의 짧은 시간 동안 마치 폭탄이 터지듯 감마선이 분출된다. 그 뒤로 감마선보다 파장이 긴 전자기파가 이어진다.

감마선 폭발을 일으킬 것으로 보이는 후보는 두 가지다. 첫째는 핵붕괴형 초신성 폭발로, 빠르게 자전하는 무거운 별이 자체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짜부라지면서 중심부에 중성자별(또는 블랙홀)을 만드는 경우다. 둘째는 중성자별 쌍성 또는 중성자별과 블랙홀이 서로의 주위를 돌다 합쳐지는 경우다. 두 경우 모두 회전축 방향의 좁은 영역에서 물질로 이뤄진 ‘상대론적 제트’를 내뿜을 수 있다. 밥솥의 좁은 구멍으로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올 때 ‘쉭-’ 소리가 나는 것처럼, 상대론적 제트가 나올 때도 충격파가 생긴다. 이 충격파가 감마선 같은 전자기파다.

상대론적 제트 블랙홀 같은 밀집천체의 회전축 방향으로 물질이 빛의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방출되는 현상.

지금까지 감마선 폭발에서 관측할 수 있었던 건 전자기파뿐이지만, 천문학자들은 중력파와 중성미자도 함께 관측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핵붕괴형 초신성 폭발이든 중성자별 쌍성 병합이든, 거대한 질량체에 변화가 생기는 현상이므로 중력파가 생긴다. 쌍성의 경우 부딪치기 전 회전하면서부터 중력파가 나온다. 중력파는 물질과 상호작용하지 않아 가장 빨리 전파된다.

중성미자는 중력파보다 조금 늦게 나오기 시작한다. 항성 내부에서 중력붕괴가 일어날 때 양성자와 전자가 합쳐져 중성자와 중성미자가 만들어진다. 이창환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는 “중성미자가 초신성 폭발의 주요한 원인인데, 폭발 에너지의 99%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중력파만큼은 아니지만 중성미자도 물질과 거의 상호작용하지 않아 빠르게 사방으로 퍼진다. 전자기파는 그 뒤 상대론적 제트가 생기면서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감마선(수 초간), X선(수 시간), 가시광선(수 일간) 순이다. 분출물질이 성간물질과 상호작용하며 나오는 전파는 몇 달간 계속 관측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말한 감마선 폭발의 속사정은 전부 ‘이론’이다. 이창환 교수는 “감마선 폭발이 어떻게 생기는지 우리는 아직 잘 모른다”고 말했다. 중력파와 중성미자를 실제 관찰해야 한다. 중력파는 감마선 폭발체의 질량분포변화와 궤도변화를, 중성미자는 별의 내부구조와 핵반응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전자기파는 감마선 폭발이 어떤 환경에서 일어나는지 알려준다. 이를 통해 폭발체가 속한 은하의 형태와 온도, 밀도, 색깔, 금속함량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세 가지 신호를 종합하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빛을 내는 사건, 감마선 폭발에 대해 알 수 있다. 그런데 감마선 폭발은 그 자체로도 천문학계의 관심사지만 다중신호 천문학에서 특히 중요한 가치가 있다. 중력파와 전자기파를 동시에 관측해 우주가속팽창을 검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우주가속팽창 검증할 수 있을까

인류가 우주 전체의 크기와 팽창속도를 잴수 있게 된 건 최근이다. 1998년 과학자들은 초신성 Ιa형을 이용해 우주가속팽창을 발견했다(44쪽 박스 참조). 가속팽창의 동력원은 암흑에너지라는 가설도 이때 생겼다.

2011년 노벨상을 받긴 했지만, 천문학계에선 우주가속팽창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형목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Ιa형 초신성을 이용한 우주가속팽창 계산이 경험적으로는 맞지만 아직 확실한 이론으로 뒷받침되지 않았다”며 “기존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 방법이 바로 중력파 관측이다. 감마선 폭발이 있을 때 중력파로 방향과 거리를 확인할 수 있다. 중력파 관측소 여러 군데를 동시에 가동하면 신호가 각기 다른 시각에 감지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동심원 모양으로 물결이 퍼져나갈 때 가까이 있는 배부터 흔들리는 것과 같다. 이 시간차를 통해 파원의 방향을 계산한다. 지금은 중력파 관측소가 두 군데밖에 없어서 계산이 정확하지 않지만, 앞으로 유럽과 일본, 인도에 관측소가 추가로 건설되면 정확한 방향계산이 가능해진다.

이어서 파원까지 거리도 계산할 수 있다. GIB, 동아사이언스 중력파의 모양을 보면 파원의 질량을 알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얼마나 강한 중력파가 나왔을지 예측할 수 있다. 중력파는 거리가 멀수록 작아지므로, 예상 진폭과 지구에서 측정한 진폭을 비교하면 파원까지 떨어진 거리를 계산할 수 있다. 이형목 교수는 “현재 라이고의 감도로는 가까운 곳에서 발생한 중력파만 검출할 수 있다”면서 “우주론에 활용하려면 아인슈타인 망원경 같은 차세대 고감도 검출기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력파로 지구에서 감마선 폭발체까지 떨어진 거리를 정확히 파악하고 나면, 이제 전자기파가 활약할 시간이다. 감마선 폭발체가 속한 은하를 알아낸 다음 빨강치우침(적색편이)을 측정해 지구로부터 멀어지는 속도를 확인한다. 은하에서 오는 빛이 빨간색으로 치우칠수록 빨리 멀어지고 있다는걸 뜻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해 여러 은하의 이동속도를 구하면 ‘거리 vs 은하이동속도’ 그래프가 나온다. 여기서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은하일수록 더 빨리 멀어진다는 결과가 나오면 우주가속팽창을 뒷받침하는 확실한 증거가 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의 우주론을 뒤흔드는 일대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3. 폭발의 초기신호 잡을 수 있을까

여태껏 초신성 폭발이나 감마선 폭발을 관측할 때 전자기파는 늘 ‘뒷북’을 쳤다. 그럴수밖에 없는 게, 전자기파 망원경은 천구에서 매우 좁은 영역밖에 관측하지 못한다. 시야가 넓어질수록 분해능이 떨어지는 태생적인 한계 때문이다. 저분해능 망원경으로 빛을 감지하고 고분해능 망원경을 목표 천체에 들이댈 때쯤이면 이미 사건은 끝물인 경우가 많다. 감마선 폭발을 관측하기 위해 우주에 쏘아올린 미국항공우주국(NASA)스위프트 위성의 경우, 정확한 위치를 찾는데 수 초가 걸린다. 고개를 빨리 돌린다는 의미에서 ‘swift(빠른)’라는 이름도 붙였지만, 망원경을 돌리는 동안 감마선이 상당부분 지나가버리기 일쑤다.
 
 
초신성 폭발이나 감마선 폭발의 경우 빛이 밝아졌다가 서서히 어두워진다. 이때 빛이 밝아지는 초기과정을 관측하는 게 중요하다. 김정리 박사는 “폭발 초기의 빛에 폭발체에 대한 정보가 많이 들어있다”면서도 “폭발 자체를 관측으로 발견하기란 매우 어렵고, 대부분 폭발 몇 초 뒤에 방출된 빛(감마선과 X선)부터 관측한다”고 말했다. 중력파나 중성미자 관측소와 협업하면, 전자기파 망원경이 폭발 초기의 빛을 볼 수 있다. 천구의 극히 일부를 관측하는 전자기파 망원경과 달리, 중력파와 중성미자 관측소는 천구 전체를 동시에 관측한다. 사방에 눈이 달려있어 고개를 돌릴 필요가 없는 셈이다. 게다가 전자기파보다 순서상 먼저 신호가 잡힌다. 중력파나 중성미자는 일기예보를 하듯 전자기파를 예보할 수 있다.

미국의 중 력파관측소 라이고(LIGO)는 전세계 70여 개 천문그룹과 양해각서(MOU)를 맺고 있다. 라이고에서 중력파로 의심되는 신호가 발견되면 그 즉시 천문학자들에게 연락이 간다. 이형목 교수는 “1초 이내의 정보를 2분 안에 잽싸게 분석해 대략적인 질량과 거리 정보를 이메일로 보내는 것이 라이고 팀의 목표”라고 했다.

실제 작년 9월 14일 중력파가 처음 검출됐을 때도 지상 망원경과 위성 망원경을 가동 중이던 63개 천문그룹에게 파원의 위치정보와 함께 중력파 검출사실을 알렸다. 이 중 25개 천문그룹이 최대 세 달까지 후속관측을 했다. 여기에는 전파, 가시광선, 근적외선, X선, 감마선 등 빛의 모든 스펙트럼 영역이 포함됐다.

당시 후속관측에선 빛이 관측되지 않았다. 물질이나 전자기파가 나오지 않는 블랙홀 쌍성 병합이었기 때문이다. 김정리 박사는 “그래도 중력파-전자기파 연계관측은 확실히 연습이 됐다”면서 “이제 중성자별 쌍성 병합이 일어나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중성미자 관측소는 중력파 관측소에 비해 협업이 제한적이다. 관측범위가 짧기 때문이다. 초신성 폭발의 경우 250만 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은하까지밖에 관측이 안된다. 이 범위에서 초신성이 터질 확률은 수십 년에 하나 정도다. 1987년 대마젤란은 하에서 초신성 폭발을 관측한 게 현재로선유일하다. 중력파 관측소는 상대적으로 관측범위가 길다. 중성자별 쌍성 병합은 중력파 신호가 강해, 6억4200만 광년 거리에서 도 관측할 수 있다. 1년에 40개도 관측 가능하다.

2020년대가 되면 중력파 관측소들이 속속 문을 열고, 기존 관측소들의 감도도 높아진다. 이형목 교수는 쏟아지는 신호로 천문학자들이 고민하는 행복한 상황을 상상했다. “중력파 관측신호가 너무 잦으면 전자기파 관측학자들이 피곤해 할 수도 있죠. ‘중력파 나오는 것만 계속 보라는 거냐’는 불평이 나올 수도 있고요. 미래의 일이지만, 이제 중력파 연구자와 천문학자들 사이에 합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2016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변지민 기자

🎓️ 진로 추천

  • 천문학
  • 물리학
  • 컴퓨터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