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이란 단어를 떠올리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기분이 좋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뭔지 모를 불안에 휩싸이는 사람이 많다. 시험볼 때 떨지 않고 실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시험볼 때 전혀 떨리지 않으면 시험을 잘 볼 수 없다는 게 정설이다.
그렇다면 시험 볼 때 불안한 것이 정상이란 말인가. 실제로 불안은 인간이 자신을 방어하는데 필요한 정상적인 감정이다. 단지 방어 정도가 지나칠 때 병적인 불안으로 간주된다.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면서 얻게되는 이별불안을 시작으로 인간은 미지의 사건들에 대해 수많은 불안감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눈에 보이는 현상에 대해 느끼는 공포와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같은 상황속에서 느끼는 불안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 정상적인 불안과 병적인 불안으로 나누는 준거이다.
서울대 심리학과 권석만 교수에 따르면 병적인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의 경우 △불안 요소를 예민하게 파악하고, △특정한 불안 요소를 확대해 평가하며 △불안하게 생각한 일이 본인에게 미칠 위험의 결과를 과장되게 평가하고 △발생한 상황을 극복하는 자신의 대처 능력을 과소 평가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특징이라는 것이다.
정서적 갈등
입시생들이 시험에 대해 느끼는 불안 장애를 심리학자들은 시험불안이라고 표현한다. 일반인들에게는 일명 고3병으로 알려려 있는 이 증후군은 우리나라 문화권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개념이다.
고3병은 한마디로 수험생이 겪게 되는 불안이나 우울감, 자포자기 상태 등을 통틀어 일컫는 것으로 입시 스트레스와 관련해 청소년기에 발생하는 장애를 이야기한다. 청소년기는 아동기에서 성인기로 성장하는 과도기로 신체적, 정신적 및 심리적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정서적 갈등을 겪는 것은 당연하다. 단지 갈등으로 드러나는 현상이 다양하고 개인이 통제할 수 없을 때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고3병은 무엇일까. 고3병을 호소하는 많은 학생들의 수만큼 그 양상도 다양해서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주요 원인은 생활상의 스트레스와 성격적인 면이 복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청소년 신경증 환자의 52%는 학업문제가 주요한 생활 스트레스라고 밝혀졌다. 그 외 많은 연구들이 입시 스트레스가 청소년들의 자아정체감에 영향을 주고 정신병리학적인 주요 요인임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느끼는 입시스트레스는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 부모의 지나친 교육열, 대입 여부가 미래를 좌우한다는 사회적 요인이 더 크게 좌우한다.
고3병을 겪는 많은 학생들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자존심이 낮다는 것이다. 많은 학생들의 경우 무의식 중에 자신이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학생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상으로 명문대에 가기를 집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학생들에게 명문대 꼬리표는 자신의 낮은 자존심이 보상되는 유일한 방법이며, 타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명문대에 가기 위한 자신의 노력이 허사가 될 암시를 받거나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외부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능력이 약해지고 정신병리적인 질환으로까지 진행된다.
이런 상황은 공부를 못하는 학생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학업성취도가 높은 학생들에게서도 나타난다.
눈이 안보이고 손발이 마비
고3병은 우울양상, 조증양상, 불안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우울양상은 잠을 이루기 힘들다든지, 수면 중간에 자꾸 깬다든가, 선잠을 잔다든가하는 불면증과 식욕부진, 집중력 저하, 의욕 저하, 우울감이 나타난다.
또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다고 느껴 대인 관계를 회피하며, 무력감이 동반되고, 심하면 자살하고 싶은 충동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우울증의 증상은 가출, 무단결석과 같은 반항감, 알코올이나 본드의 남용, 성문란 등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소수의 우울증 환자들은 우울양상 이후에 기분이 지나치게 고양되고, 과대 사고를 하며, 집중력이 저하되는 등 극단적인 양극 장애 상태로 전이되는 조증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불안 양상으로는 크게 공황장애, 공포장애, 강박장애, 범불안 장애가 있다.
또 일부 환자들에게서는 심리적 갈등이 신체적 통증이나 운동 장애의 형태로 나타나는 신체화 장애도 나타날 수 있다. 즉 갑자기 한쪽 눈이 안 보인다든가, 손발이 마비된다든가 하는 현상은 입시를 회피할 수 있는 방어적 행동으로 무의식의 과정을 통해 일어난다. 실제 통증과 신체 장애가 일어나므로 꾀병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모의고사 중 배앓이는 이렇게 치료한다
명문대를 목표로 하는 김군(고3)은 모의고사를 치르던 도중 갑자기 배앓이를 해 진땀을 흘렸다. 이유없이 시작된 배앓이는 시험이 끝나면서 멀쩡해져서 김군의 불안은 더욱 커졌다.
수능시험도 이런 식으로 망칠 것 같은 예감 때문에 도무지 책에 집중할 수 없었다. 수학을 공부하고 있으면 영어가 부족한 것 같고, 영어를 공부하려고 하면 과학이 어려운 것 같아 10분 간격으로 책을 바꾸게 됐다고 한다. 또 성적이 비슷한 친구들이 자신을 따돌리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어 학교 가는 것도 싫어졌다.
김군의 증상은 고3병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배나 머리가 아픈 신체화 장애를 호소하는 불안을 시발점으로 집중력이 떨어지고 대인관계를 회피하게되는 우울증으로까지 발전하게 된 경우다.
김군의 증상을 어떻게 파악하고 치료할 수 있을까.
김군의 상황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시험이 김군에게는 불안으로 다가와 부신 수질에서 아드레날린과 노아드레날린이 분비돼 자율신경계의 교감신경계가 흥분하게 된다. 교감신경계가 흥분하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이 어렵고, 근육으로 가는 혈류의 양은 증가하면서 피부로 가는 혈액의 양은 줄어들어 창백해 보인다.
같은 맥락으로 소화기로 가는 혈액의 양이 줄어들면서 소화기능이 급격히 떨어져 배가 아픈 것 같은 증상이 생긴다. 물론 시험 후에는 소화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와 아프지 않게 된다. 이런 불안 양상은 김군이 예상한 대로 한 번 특성화되서 나타나면 그 양상이 반복될 소지가 높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시험 불안을 없앨 수 있을까. 시험불안에 대한 치료 방법으로는 크게 인지치료, 행동치료, 약물치료의 방법이 있다. 인지치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불안 요소로 인해 발생하는 정서적 변화에 대한 해석 이다.
이 경우 김군에게는 무엇이 불안 요소로 작용했는가 원인을 파악해 보는 것이다. 또 목표 대학을 조금 낮춘다거나,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공부가 최선임을 깨닫고 이것을 자신이 인정하게끔 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지치료와 아울러 행동 치료가 필요하다. '백문이 불여일견'처럼 스스로 인식한 자신의 불안요소를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려는 행동이 필요하다. 즉 김군이 대학 목표를 낮추고, 자신과 친구들이 모두 동병상련의 입장에서 노력하므로 서서히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도 실제 시험에 이르면 또다른 불안에 휩싸여 머리가 아프고, 배가 아픈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럴 때를 대비해 근육 이완법과 호흡 조절법을 가르쳐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즉 시험 전에 호흡을 크게하고 앉은 자리에서 가볍게 손체조를 하면서 긴장을 푸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
서울 백병원 최영희교수(신경정신과)는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겪는 시험 불안의 현상은 이와 같은 인지 치료와 행동 치료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증세가 개인이 감당하기에 어렵다고 판단되면 전문가와 상담하거나 불안 대처 훈련 프로그램을 이용할 것을 권한다고 했다.
인지 치료와 행동 치료 외에 약물 치료가 필요한 경우는 개인의 특성을 잘 살펴야 한다. 김군의 경우 정말 단순한 시험 불안인지, 아니면 성격장애 또는 특이한 장애가 있는지를 판단해 약물을 투여한다. 대체로 항불안제와 이완제로 쓰이는 벤죠다이아제핀계 약물을 쓴다.
고3이란 기간은 성인식과 같다고 말한다. 너나 할 것 없이 일정한 인원을 뽑는 좋은 대학에 가려고 하기 때문에 경쟁이 생기고 이러한 경쟁은 개인에게 불안 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불안의 터널을 지나온 건강한 자만이 행복한 미래를 향유할 수 있다는 사실과 불안의 터널을 기쁘게 지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부모님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에서부터 가능하다는 것을.
▶ 불안장애의 종류
■공황장애
한시간 이내의 짧은 시간 동안 금방 숨이 막혀 버릴 것 같은 강렬한 불안과 공포로서 호흡곤란, 발한, 심박동수가 빨라지는 것 같은 신체 증상이 동반된다. 흔히 공포장애를 수반한다. 예를 들어 건강한 20대의 남자가 심장병으로 곧 죽는다고 응급실에 찾아가는 건강염려증이 있다.
■공포장애
일반적으로 어떤 대상이나 처지에 대한 공포를 말한다. 불안을 느끼는 상황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회피행동을 유발한다.
고소공포증: 높은 건물이나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 떠있는 것을 불안해 한다.
광장공포증: 집을 떠나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어 슈퍼나 백화점에 가는 것을 두려워 하고 회피하며, 극장이나 운동 경기장 같이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넓은 장소에 가는 것을 회피한다.
사회공포증: 초등학교 때 교실에서 국어 책을 읽다가 갑자기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 지면서 목소리가 떨려 망신을 당한 후로 사람들 앞에 나서면 으레 가슴이 뛰고 어질어질해서 대중 앞에 나서는 일을 회피한다.
■강박장애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특정한 생각이나 행동이 반복되는 상태이다. 예를 들어 자신을 괴롭힌 학생의 번호가 34번이면 모든 숫자를 34와 관련해서 끊임없이 연상해 낸다. 오염에 관한 강박사고를 하는 경우는 끊임없이 손을 씻고 조금이라도 더러운 것은 피하려고 한다. 또 모든 것을 양쪽 대칭으로 맞추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책꽂이의 책도 대칭으로 꽂혀 있어야 하고, 식탁의 위치, 사람의 위치, 수저의 위치 등이 모두 대칭이어야 한다고 느끼고 그렇게 만들려고 한다.
■범불안장애
미래에 대해 불길한 기대를 가지며 걱정이 통제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주증상으로는 떨리고, 안절부절 못하고, 두통이 나타나며, 숨이 가쁘고, 자주 놀라곤 한다.
▶시험불안 체크리스트
서울심리교육연구소장인 김문주 박사는 다음의 7개 항목 중에서 3개 문항 이상에 '그렇다'고 대답했다면 극복해야 할 시험불안이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1. 시험 때라든가 공부할 것이 많으면 머리가 아프거나 소화가 안된다.
2. 시험만 치면 평소 잘 알던 것마저 틀린다.
3. 공부를 시작하기에 앞서 준비하거나 쓸데없이 걱정하는 시간이 길다.
4. 시험 때만 되면 시험과 직접 관련 없는 책을 보거나 오히려 다른 공부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5. 시험 기간에는 잠을 더 많이 잔다.
6. 중요한 시험일수록 더 실수한다.
7. 공부하는 양에 비해 그 결과가 좋지 않다.
이 기준을 절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7개의 항목에 모두 그렇다고 대답한 학생이라도 그 정도가 미약하고 자신의 시험 불안을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갈 수 있다면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