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자 밥이나 술을 먹는 사람들, 이른바 ‘혼밥혼술족(族)’이 꾸준히 늘고 있다. 이런 세태에 대해 개인 간 유대관계가 끊어졌다는 우려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라고 보는 시각이 맞선다. 정작 걱정할 건, 그들의 건강이다.
‘혼밥’과 ‘혼술’의 인기가 여전하다. 다양한 1인 메뉴가 출시됐고 식당엔 혼자 앉는 자리가 늘었다. 지난해 한 통신사가 대학생과 직장인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96.4%가 혼밥 경험이 있고 44.6%는 일주일에 무려 15회 이상 혼밥을 한다고 답했다.
상대적으로 젊고 유연한 대학생 조직에서도 함께 식사하는 데는 스트레스가 따른다. 일본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친구끼리 식사를 할 때도 예의 바른 행동을 하려고 노력한다(일본 가와사키 학술지 ‘의료복지’ 2007, 13(1), 21-29). 응답자의 90% 이상이 ‘다른 사람의 식사가 끝나기 전에 일어나지 못한다’고 답했고, 절반은 ‘모두 모일 때까지 식사 시작을 못한다’고 했다. ‘무슨 이야기든 하려고 한다’(30%), ‘다른 사람과 비슷하게 행동하려고 한다’(20%), ‘어디 앉을지를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18%), ‘같은 메뉴를 먹는다’(3%) 등의 응답이 뒤를 이었다.

이런 스트레스를 피하려고 혼자 밥을 먹으려 해도 쉽진 않다. 소설가 하재영이 쓴 ‘같이 밥 먹을래요?’라는 단편 소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끼리끼리가 진가를 발휘하는 시간은 단연 점심시간이었다. 여고생들은 그룹을 지어 밥을 먹었다. 그 세계에서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인간성의 척도를 의미한다. 어쩌면 공생의 철학적 수단이나, 사회학에서 말하는 사회적 인간이나, 그보다 더 거창한 무언가를 대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바꿔 말하면, 혼자 밥을 먹는다는 행위는 공공연하게 외톨이임을 전시하는 것이다.”
혼자 밥을 먹으면 ‘사회적 부적응자’ 혹은 ‘권력의 서열에서 밀려난 자’ 정도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인간관계 자체도 도움을 주지만, 다른 사람에게 ‘내가 인맥이 좋다’고 과시하는 행동이 더 큰 권력을 준다”고 이야기했다. 이와 반대로 혼자 밥을 먹는 건 아주 큰 사회적 불안감을 유발한다. 따라서 두 가지 입장에서 갈등하게 된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자신이 집단에 공고히 소속돼 있음을 과시하되 그 대가로 사회적 스트레스를 감당할 것인가, 혹은 혼밥을 통해 사회적 위신이 추락할 가능성을 감수하면서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것인가. 이 두 가지를 모두 피하기 위해 일부 사람들은 화장실에서 몰래 도시락을 먹는 대안적 전략을 취한다. 물론 화장실 식사가 들통나면 평판이 엄청나게 하락하기 때문에 이것도 쉽진 않다. 화장실에서 김밥을 먹을 때 단무지를 빼고 먹으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단무지 씹는 소리가 나면 화장실 식사를 들키기 때문이다.

혼밥혼술족=낭만족?
그러나 최근엔 상황이 조금 변했다. 다소 비아냥거리는 뜻으로 출발했던 혼밥, 혼술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광고 기업인 ‘이노션 월드와이드’가 1년 동안 소셜 데이터를 분석해 작년 말 발표한 ‘2015년 직장인 나홀로 소비 트렌드 분석 보고서’를 보면, ‘직장인’, ‘혼자’, ‘한잔’이라는 3가지 키워드를 포함한 연관어는 ‘맛있다’, ‘저녁’, ‘좋아하다’, ‘맥주’, ‘퇴근’, ‘힘들다’, ‘즐겁다’, ‘분위기’, ‘근처’, ‘힐링’, ‘행복’, ‘편하다’, ‘간단하다’ 순으로 자주 언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혼자 먹는 술을 낭만으로 여기는 등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정찬승 마음드림의원 정신과 전문의는 “자기 독립성을 충분히 가진 성숙한 사람은 혼자 밥을 먹든 같이 밥을 먹든 별로 불편해 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음식점이나 술집에서 자신감을 갖고 혼자 당당하게 밥을 먹는 사람은 사회적 평판이 하락하기는커녕 오히려 ‘보통 사람은 불편해 하는 상황에도 능숙하게 대처하는 멋진 사람’으로 평가될 수 있다. 괴짜로만 여겨졌던 혼밥혼술족이 점점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혼밥혼술족의 절대적인 수가 늘어난 덕이 크다. 일본의 범죄심리학자 무기시마 후미오는 사회적 일탈자에 대해 ‘퍼센트의 벽’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범죄학논집, 1979, 32(6), 57-76). 어떤 드문 행동을 보이는 사람이 전체 구성원의 1% 미만일 때 그 사람은 전적으로 ‘별종의 인간’으로 취급된다. 3%까지도 ‘일부에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동조할 수 있지만, 일단은 괴짜다’라는 쪽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8%까지 늘면 ‘부정할 수 없지만, 나라면 혹은 우리 가족이라면 좀 그렇다’라는 정도로 바뀌고 15%가 넘어가면 ‘그 나이대의 경우라면 당연한 일이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식으로 인식이 변한다.

진정한 낭만의 문화로 남으려면 “건강 챙기세요~”
괴짜 취급은 면했지만 건강엔 적신호가 켜졌다. 이영미 가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팀이 서울, 경인 지역 대학생 89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70.4%는 혼자 밥을 먹을 때 15분 안에 식사를 마친다고 응답했다. ‘5분 이내에 식사를 끝낸다’는 응답도 8.7%나 됐다. 반면 친구와 함께 밥을 먹을 때 식사시간은 대부분 ‘15~30분 이내’(45.4%), ‘30분~1시간’(30.3%)으로 훨씬 길었다. 기존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점심식사를 16분 이상 들여 먹는 대학생이 체질량지수와 체지방이 적은 경향을 보였다. 식사를 느리게 하는 편이 건강에 더 좋다는 의미다.
같은 조사에서 대학생들은 혼자 밥을 먹을 때 단점으로 ‘식사를 대충하게 된다’(36.1%), ‘인스턴트 식품을 주로 먹는다’(19.1%), ‘빨리 먹게 된다’(13.3%), ‘많은 양을 먹게 된다’(12.8%) 등을 꼽았다. 혼자 식사를 하는 사람은 여럿이 식사를 하는 사람에 비해 영양섭취가 불균형해질 수 있다.
특히 비만도가 높은 사람은 혼자 식사할 때 더 많이 먹고, 음식이 남으면 배가 불러도 더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이영미, ‘비만도에 따른 대학생의 혼자 식사 및 함께하는 식사 시의 식행동 비교’ 대한지역사회영양학회지 2012). 타인과 함께 식사할 때는 섭취량을 조절하지만 혼자 식사를 할 때는 자신이 먹고 싶은 양만큼 먹음으로써 체중조절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특히 혼술은 더 위험할 수 있다. 임선영 가천의대길병원 신경정신과 교수가 2005년 발표한 ‘여성 알코올중독자의 중독과정에 대한 사례연구’에 따르면, 여성 환자 대부분이 가족 모르게 혼자 술을 마시는 이른바 ‘단독 은밀 음주’ 형태로 알코올중독이 시작됐다. 이런 습관은 중독 중기단계까지 계속되다가 말기에 이르러서 주변의 가족들에게 발견됐다. 혼밥혼술 문화는 한국이나 일본같이 유교주의와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사회에서 더 문제시되고 있다. 개인 간 유대가 끊어진 증거라는 주장 때문이다. 그러나 식사를 누구와 함께할 건지, 심지어 혼자 할 건지 결정하는 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다. 이런 문화 자체를 금지하거나 강제할 수는 없다. 진짜 문제는,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이다. 혼밥 혼술이 진정한 낭만의 문화로 남으려면 넘어야 할 산이 있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