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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무관심이 만든 자녀 학대. 어떻게 끊어낼 것인가





자녀살해의 배경에는 대물림되는 학대의 경험이 있다. 이 대물림을 끊어낼 치료법에는 어떤 게 있을까. 일반적인 정신과 치료는 시간을 들여 환자와 의료진 사이에 관계를 형성한 뒤에 한다. 하지만 아동학대의 경우는 다르다. 보호기관에서 아이를 무한정 맡고 있을 수 없다 보니 치료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혜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박사는 “(학대 피해 아동은)적용할 수 있는 치료법이 한정적”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학대로 오게 되는 아이들은 빠르면서도 효율적인 치료 방법이 필요하다.

“이유 없이 한대 맞으면 ‘이 사람 왜이래?’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계속해서 맞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내 존재 혹은 내가 하는 행동이 폭력의 원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이 과정에서 ‘인지적 왜곡(cognitive distortion)’이 발생합니다. 이 왜곡을 바로잡는 치료가 최우선이죠.”

하 박사가 말했다. 인지적 왜곡이란 잘못된 기억으로 인해 왜곡된 신념을 기반으로 현실을 이해하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예를 들어 어릴 적 신체적 학대와 함께 ‘넌 주워온 아이야’라는 학대성 발언을 지속적으로 들은 아이가 있다고 해보자. 이 아이는 자칫 ‘주워온 아이(나와 닮지 않은 아이)는 폭력을 가해도 된다’는 인지적 왜곡을 겪을 수 있다.

이런 인지적 왜곡은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 폭력은 자신을 학대했던 부모를 향하기도 하고, 아무런 죄가 없는 자신의 아이를 향하기도 한다. 의학 서적 ‘트라우마를 가진 아이와 성인의 치료법’에서도 “트라우마에 가장 약한 유형은 이른 나이에 집 안에서 신체적으로 학대를 받거나 감정적인(정신적인) 학대를 받은 아이들”이라고 밝히고 있다.
 

1. 치료의 시작은 ‘왜곡된 사고방식’을 해소하는 것

학대의 트라우마로 발생하는 인지적 왜곡은 매우 위험하다. 때문에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는 게 매우 중요하다. 대화가 가능한 5세 이상의 아이들에게는 트라우마에 초점이 맞춰진 인지행동치료(Trauma-Focused CBT, TFCBT)를 한다. TFCBT는 환자의 사고와 감정, 행동을 변화시키는 정신치료로, 트라우마로 인한 인지적 왜곡을 잡아주고 불안증 등을 감소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미국 피츠버그 주의 엘러게이니 종합병원(AGH)의 유디트 코헨 박사팀은 학대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진 8~14살의 229명 대상으로 TFCBT의 효과를 증명해 2006년 논문으로 발표했다(doi: 10.1097/00004583-200404000-00005). 대상이 된 아이들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증상이 명확했고, 90% 이상은 성적인 학대와 신체학대를 함께 받았다.

연구팀은 절반 가량의 아이들에게는 기존에 많이 쓰이던 아동중심치료(CCT•Child-Centered Therapy)를, 나머지 아이들에게는 TFCBT를 사용했다. 그 결과, TFCBT가 우울증, 행동장애, 수치심 등을 줄이는 데 더 큰 효과를 보였다. 하 박사는 “TFCBT의 효과를 증명하는 연구가 많아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5세 이상의 학대 아동에 대해서는 TFCBT를 주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보여주기 식 정책은 아이들을 더 아프게 할 뿐, 꾸준한 예산이 필요하다”
_ 최윤용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대리


아동학대 예방분야는 예산이 정말 많이 모자라다. 현재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은 보건복지부의 예산으로 운용되고 있다. 2015년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배당된 예산은 15억2800만 원, 올해 예산은 이보다 적은 13억8300만 원이다. 기관 운영은 물론 인력 예산까지 포함된 금액이다. 인력이 모자란 건 당연지사다. 현재 이 예산으로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관리하는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은 전국에 55개, 쉼터는 58개다. 우리나라 시군구가 230여 개인데, 아동보호시설을 다 합쳐도 120개가 안 된다. 보호시설이 없는 지자체가 많다는 의미다.

이런 이유로 초동 대처가 어렵다. 한시가 급한 상황인데 2~3시간씩 걸려 현장에 도착하는 지역도 있다. 그렇다 보니 우리나라 전국 평균 피해 아동 발견율은 1.1%로 미국 9.1%, 호주 17.6%에 비해 매우 낮다. 전문 인력이 부족해 한 상담원이 1인당 평균 57.7건의 사례를 담당하고 있다. 미국의 아이오와 주 사례관리에 관한 논문에 따르면 집중서비스 제공의 경우 1인당 15사례, 최소한의 서비스 제공은 50사례가 적당하다(doi:10.1093/sw/47.2.132).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인력이 심각할 정도로 모자라다. 그 결과 아이들에 대한 사후관리도 쉽지 않다. 아동학대를 막고 적절한 조치를 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관심과 복지예산 증대가 선행돼야 한다.

“아동학대 신고 누적 시스템 마련돼야”
_ 정성국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검시조사관


일반적인 아동학대 신고 절차를 보면 먼저 가정폭력의 목격자가 112에 신고를 하고 근방 지구대가 출동한다. 경찰이 피해 아이를 확인하고 부모를 추궁하면 대부분 “훈육 중이었고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고 말한다. 부모가 이렇게 말하고 아이에게 큰 외상이 보이지 않으면 경찰은 그냥 철수할 수밖에 없다. 이게 한 번으로 그치면 정말 훈육일 수도 있는데, 여러 차례 신고 전화가 들어오는 집은 아동학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집은 좀 더 심도 깊은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 문제는 아동학대 신고 전화를 누적해서 셀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는 점이다. 특정 횟수 이상 같은 신고가 들어오면 이에 대한 경고를 할 수 있는 ‘누적 데이터 알람 시스템’ 구축이 꼭 필요하다. 신고가 일회성으로 끝나면 막을 수 있는 학대도 막을 수 없게 된다.

“작은 말 한 마디도 아이에겐 학대가 될 수 있다. 인식의 변화가 중요하다”
_ 하지혜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박사


일반적으로 부모들이 학대라고 생각하지 않는 학대도 많다. 예를 들어 ‘싹수가 노랗다’, ‘네까짓 게 뭔데’, ‘이것밖에 못해?’ 등과 같이 험한 욕설이 포함돼 있거나 아이를 무시하는 듯한 말도 학대에 포함된다. 보통은 신체적인 외상이 있어야만 학대라고 생각하는데 말로 인한 모욕도 아이의 발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부모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학대에 좀 더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또 학대로 의심되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남의 집안 일’이라는 생각으로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개선돼야 한다. 112에 직접적으로 전화를 하지 않더라도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착한 신고’ 앱을 통해 신고할 수도 있다.

2. 놀란 뇌를 진정시켜라

뇌의 비정상적인 활동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치료도 있다. 보통 무언가에 놀라면 뇌의 편도체가 반응하는데, 이성적으로 놀랄만한 일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전전두엽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다. 그런데 놀라는 일이 계속 일어나면(학대가 지속되면) 전전두엽의 피드백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아 만성적인 ‘놀람’ 상태가 된다. 이를 ‘과각성 상태’라고 말한다. 하 박사는 “과각성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계속 전시상황에 노출된 것과 마찬가지”라며 “지속적으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이 분비된다”라고 말했다. 코티솔이 과다하게 분비되면 우리 몸은 강한 스트레스 상황이라고 받아들인다. 때문에 발달이나 성장보다는 현재 몸 상태를 유지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한창 자라야 할 아이에게는 치명적이다. 몸의 성장은 물론 뇌의 성장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황준원 강원대 의대 교수는 논문에서 학대 아동의 25%가 발달장애를 앓고 있다고 밝혔다(1파트 참조).

뇌를 진정시키는 방법으로는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요법(EMDR)’이 있다. 왼쪽과 오른쪽으로 일정하게 움직이는 빛을 따라 눈을 좌우로 움직인다. 하 박사는 “EMDR은 다른 치료법에 비해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치료법이라 학대 아동에게 많이 쓰인다”며 “아직 메커니즘은 밝혀지지 않았는데, 밝혀지면 좀 더 효율적인 치료법이 개발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불안감이 너무 높아 제대로 된 수면과 섭식이 어렵고 자살 욕구가 큰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약물로 치료한다. 하 박사는 “약물은 근본적인 문제를 치료하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을 끌면 위험할 것 같은 아이들에게만 처방한다”고 말했다. 하 박사에 따르면 연구 대상이었던 61명의 아이 중 27.9%에 해당하는 아이가 자살욕구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들 중 실제 자살한 경우가 5명, 미수에 그친 아이도 3명이나 있었다(대한신경정신의학회지 2015년 8월21일자). 하 박사는 “상태가 심각한 아이는 자살 시도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3. 학대 피해 아동 위한 전문 의료진이 필요하다

피해 아동을 적절한 시기에 치료하고 또 다른 폭력을 막기 위해서는 병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강은영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015년에 발간한 보고서에서 “아동학대 조기발견과 초기대응을 위해서는 병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학대 피해아동은 매우 위중한 상태로 병원에 도착하거나, 보호자의 거짓말 혹은 치료거부로 병원 이송이 지연돼 초기 치료 대응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아 아동의 사망을 막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최윤용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홍보팀 대리는 “부모의 동의를 얻을 수 없는 학대 피해 아동의 상황을 병원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즉각적인 조치를 위해 병원에 학대피해아동보호팀을 둬야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병원의 입장을 듣고자 학대피해아동보호팀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의 몇몇 병원과 대한의사협회에 통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학대피해아동보호팀의 존재를 모르는 병원이 대다수였다. 한 병원의 관계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화제가 됐을 때 잠깐 운영되다가 흐지부지 되는 팀이 한두 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 대리는 “학대피해아동보호팀을 운영하는 병원에 대해 지원을 확대하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며 “지난해 보건복지부에 의견을 전달한 상태”라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아직 실질적인 정책이 마련되고 있지는 않다. 박영호 보건복지부 아동권리과 주무관은 “현재 병원의 학대피해아동보호팀이 활성화되고 있지 않다는 상황은 인지하고 있다”며 “해결책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지만 대책을 준비하고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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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그들은 왜 아이를 죽였나
Part 2 무관심이 만든 자녀 학대. 어떻게 끊어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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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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