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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소리를 찾아서

오로라 합창에서 블랙홀의 중저음까지

천문학과 1학년이던 1980년 5월 어느 날 필자는 학교 천문대에서‘첫경험’을 했다. 망원경으로 처음 봤던 토성의 모습. 어찌나 아름답던지 접안렌즈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검은 하늘에서 찬란한 색채를 내뿜는 토성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신비로운 고리를 감고 있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빛은 그때까지 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그때 그 경험이 30년 가까이 천문학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만든 힘인지도 모르겠다.

2002년 9월 마에스트로 첼리스트 안너 빌스마의 첫 번째 내한 공연이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다. 연미복을 입은 단아한 백발의 빌스마가 무대에 등장하자 공연장은 이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그러기를 잠시. 바흐 무반주 첼로곡 1번의 첫 음이 공간을 가르며 울려 퍼지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끼치는 전율을 느꼈다. 어떻게 음 하나가 그렇게 큰 감동을 줄 수 있는지. 문득 지난 시절 작은 망원경으로 토성을 처음 봤을 때의 진한 감동이 밀려왔다.

우주의 소리를 찾아서


25년 ‘우주 소리’ 현악으로 다시 태어나

대학시절 처음 봤던 망원경속토성의 모습과 몇년전감상한 빌스마의 중후한 첼로 소리는 필자에게 인생 최대의 감동으로 남아있다.

두 기억 모두 파동(빛과 소리)이 마음을 울렸다는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첼로 소리를 듣고 토성의 모습을 떠올리는 일은 천문학자에게만 일어나는 일일까.

사실 우주의 아름다움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일은 케플러, 갈릴레이 같은 천문학자들이 일찍이 시도했다. 화음과 리듬, 멜로디를 만드는 일은 수학적인 조화와 관계가 깊기 때문에 누구보다 수학에 조예가 깊은 천문학자들이 우주를 주제로 곡을 썼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음악가가 우주의 아름다움에 영감을 얻어 곡을 쓰기도 했다.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영국의 작곡가 구스타프 홀스트는 1916년 관현악곡‘행성’이라는 작품을 남겼다. 금관악기를 중심으로 타악기와 하프, 오르간 그리고 여성합창 연주로 지구를 제외한 태양계의 7개 행성을 특색 있게 그렸다.

현대음악을 전문으로 연주하는 크로노스 현악사중주단이 최근 내한해‘선 링즈’(Sun Rings)라는 작품을 공연했다. 이 음악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2002년 보이저 우주탐사선 발사 25주년을 기념해 만든 곡이다. 그동안 NASA가 우주를 탐사하며 모은 소리를 이용해 현대음악의 거장 테리 라일리가 곡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우주와 관계된 모든 음악이 우주로부터 얻은 영감을 악기로 표현한데 반해 선 링즈는 실제‘우주의 소리’로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런데 잠깐, 우주의 소리를 이용해 곡을 만들었다니? 진공 상태에 가까운 우주공간에서 어떻게 소리가 났다는 말인가?

환상적인 우주영상을 배경으로 ‘선링즈’를 연주하고 있는 크로노스 현악사중주단.


플라스마가 전하는 ‘번개 소리’

번개는 자연에 존재하는 플라스마의 대표적인 예다. 번개가 치면 플라스마파가 진동해 낮은 진동수의 전파가 발생하는데 이를 소리로 바꾸면‘탁탁’ 소리가 난다.


빛이나 라디오 전파 같은 전자기파는매질이 없어도 전파되지만 소리는 탄성파이기 때문에 매질 없이는 만들어지지도 않고 전달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우주의 소리를 전달하는 매질은 도대체 뭘까.

우주의 소리를 전달하는 배달부는 플라스마다. 고체에 에너지를 가하면 액체가 되고 액체는 다시 기체가 된다. 기체에 충분한 에너지를 가하면 전자가 원자핵에서 떨어져 나와 양이온을 만든다. 이처럼 전자와 양이온이 나뉘어 있는 물질의 상태를 플라스마라고 한다.

지구에는 플라스마 상태로 존재하는 물질이 극히 적지만 우주 전체에 존재하는 물질 중 99.9% 이상이 플라스마다. 행성을 둘러싼 또는 행성 사이의 공간은 완벽한진공상태가 아니라 플라스마로 가득 차 있다.

플라스마는 전하를 띠고 있는 양이온과 전자로 이뤄졌기 때문에 진동을 하면 일정한 진동수를 갖는 전자기파가 발생한다. 따라서 적당한 안테나와 라디오 같은 수신기가 있으면 플라스마가 만든 전파를 음파로 바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번개의 번쩍이는 줄기는 자연에 존재하는 대표적인 플라스마다. 구름과 지표면사이에 전압차가 커지면 전자가 순간적으로 이동하면서 공기를 이루는 분자들을 이온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플라스마에 진동이 발생하면 수백~1만Hz의낮은진동수를갖는전파가 발생한다. 이 신호를 받아 음파로 바꾸면‘번개소리’를들을수있다(번개가칠때 막대한 에너지가 공기를 순간적으로 팽창시켜 만드는‘천둥소리’와는 다르다).

이 전파는 파장이 매우 길어 지표면과 지구 대기의 이온층 사이에 반사되며 멀리까지 전달된다. 그래서 지구 반대편의 번개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지구 전체에 초 당 100번 이상 번개가치기 때문에 마치 마른 장작이 불에 탈 때처럼‘탁탁’소리가 난다.

번개소리는 때때로 이온층을 뚫고 지구 자기장의 방향에 따라 1만km 이상 멀어졌다가 다시 지상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파장에 따라 전달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높은 진동수의 전파가 낮은 진동수의 전파보다 먼저 도달한다. 이때 나는 소리는 영락없는 휘파람 소리다.

플라스마가 만드는 소리는 오로라에 의해 발생하기도 한다. 오로라는 태양이 끊임없이 방출하는 플라스마(태양풍)가 극지방의 대기와 작용해 신비로운 모양의 빛을 만드는 현상이다. 이때 발생하는 매우 낮은 진동수의 전파를 소리로 바꾸면 새가지 저귀는 듯한 소리가 난다. 이런 현상을‘오로랄코러스’(Auroral Chorus)라고한다.

01오로라의 플라스마파가 만드는 소리를‘오로랄 코러스’라고 한다. 새가 지저귀는 듯 ‘짹짹’소리가 난다. 02태양의 표면에서는 매우 뜨거운 플라스마 상태의 대기가 끊임없이 대류를 일으킨다. 여기서 발생하는 플라스마파를 소리로 바꿔 수초의 길이로 압축하면‘웅~’소리가 난다.



‘빅뱅’(Big Bang)이 아니라 ‘빅흠’(Big Hum)?

우주의 초기 모습을 그린 상상도. 빅뱅(Big Bang)이 일어났을 때‘뻥~’(Bang) 소리가 아니라‘흠~’(Hum) 소리가 났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제 지구밖우주의 소리에 귀기울여보자.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국(ESA)이 공동 개발해 1997년 10월 발사한 토성 탐사선 카시니호는 2002년 4월 토성 극지방에서 발생한 오로랄 코러스를 검출해 지구로 전송했다. 과학자들은 이 자료를 분석해 다른 행성이나 위성에도 지구처럼 번개가 치고 오로라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카시니호는 2004년 7월 토성의 고리를 지나치면서 미세한 먼지와 플라스마 입자들이 둥근 안테나와 부딪힐때나는 소리를 보내오기도 했다. 달리는 자동차 앞 유리에 모래가 부딪힐 때 들을수있는‘타닥타닥’하는 소리가 토성 여행을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번엔 블랙홀의‘노래소리’를 들어 보자. 1999년 7월 콜럼비아 우주왕복선에 실려 우주로 나간 찬드라 X-선 우주망원경은 지구에서 250만 광년 떨어진 페르세우스 성단 중심부에 있는 거대한 블랙홀에서 발생한 음파를 포착했다. 이 블랙홀은 매우 낮은‘베이스’음으로 노래하는데, 가온다(도) 음보다 57옥타브 낮은 내림나(시플랫)에 해당하는 음을 낸다. 지금까지 찾은 우주에서 가장 낮은 소리다.

시간을 뛰어넘어 우주가 태어날때났던 소리도 포착됐다. 천문학자들은 우리 우주가 약 137억년 전 폭발한 뒤 급속도로 팽창하면서 만들어졌다는‘빅뱅’(Big Bang) 이론에 대부분 동의한다. 그럼 정말‘뻥~’(Bang) 하는 소리가 났을까.

미국워싱턴대존크래머박사가2003년‘뉴사이언티스트’에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우주가 탄생할 때‘흠~’(Hum) 소리가났다. 그는 우주 전체의 온도 분포를 물질의 밀도 차이로 바꾸고, 빅뱅이 일어난 뒤 우주가 팽창한 비율을 고려해 시간에 따른 우주의 밀도 변화를 추적했다. 음파는 매질의 밀도가 변하면서 발생한다는 점에 착안해‘태초의 소리’를 찾은 것이다.

미국 버지니아대 마크 휘틀 교수도 비슷한 방법으로 우주의 처음 1백 만년을 5초로 압축해 소리를 만들었다. 이 소리는 마치머리 위를 낮게 날아가는 제트 비행기 소리와 비슷하다.

인간의 언어는 우주의 질서를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다양한 표현수단을 동원한다. 그 중 수학을 가장 많이 사용하지만, 수학에 익숙치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위해 쉬운 말과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우주의 질서를 수학이나 복잡한 물리법칙으로만 설명해야한다는 법은 없다. 어쩌면 각기 가진 재능에 따라 그림 또는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이더쉬운 표현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주의 속삭임’에 귀기울여 보자.그 속에 우주의 비밀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토성 탐사선 카시니호는 토성 고리의 미세한 먼지가 안테나에 부딪쳐 나는 소리를 지구로 전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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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김호일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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