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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달에 완전히 가려지는 장엄한 우주의 드라마를 보면 누구나 태양의 매혹적인 아름다움에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고 한다. 나도 그러기를 기대하면서 호주 개기일식 탐사를 준비했다.

2012년 3월 천체관측자들의 모임인 야간비행(www.nightflight.or.kr)에서 탐사 원정대가 조직되었다. 개기일식과 더불어 남반구 천체를 관측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관측장비로 18인치, 15인치 반사망원경(Ultra Compact Telescope), 쌍안경 그리고 태양 촬영을 위한 장비를 준비했다.

자연과학 탐사에는 8:2 비율이 있다. 자료 수집, 사전 학습에 들이는 노력의 80%는 출발 전에 모두 마쳐야 한다. 실제 과정에서 나머지 20%를 채워내 탐사를 완성하는 것이다. 원정대는 관측 활동에 필요한 세밀한 계획을 세우고 7차례의 집중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현지에서 활용할 소책자를 만들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더 깊이 이해한다. 호기심과 탐구심 그리고 열정을 품에 안고 탐사를 떠날 수 있게 됐다.

11월 11일 호주 동부 해안의 브리즈번을 거쳐 서쪽 내륙으로 200km 정도 들어간 곳에 있는 레이번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남반구천문학회(Southern Astronomical Society)에서 운용하는 천문대가 있다. 첫 이틀간의 일정은 단순하면서도 우주적이었다. 해질 무렵 천체망원경을 설치하고 밤을 새워 별을 관찰했다. 새벽잠을 청하고 정오쯤 일어나서 점심을 먹고 관측 기록을 정리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다시 별을 만나러 갔다. 낮과 밤 하루종일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척 행복하다. 그 일이 별을 꿈꾸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내 존재의 근원이 되는 우주를 생각하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나와 우주는 가장 뜨겁게, 가장 진하게, 가장 깊게 만날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원망스런 구름

13일 새벽 개기일식과 만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었다. 새벽달을 관찰하기로 했다. 오늘 보는 그믐달은 남다르다. 동이 터오는 검푸른 새벽하늘에 가늘디가는 눈썹 그믐달이 걸려있다. 시선방향으로 보아 달이 태양에 한껏 가까워졌다는 의미다. 이 달은 이제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고 내일 아침 태양을 가리며 일식 현상을 만들 것이다.

다시 브리즈번 공항으로 가서 국내선을 타고 케언스로 이동했다. 본격적인 일식 탐사가 시작되었다. 이번 일식은 육지에서 볼 수 있는 지역이 한정돼 있어 호주 북동부 해안에 있는 케언스로 세계 각지의 일식 관측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원정대는 케언스에 도착해 숙소를 정하고 가까운 해변에 관측할 장소를 둘러봤다. 그 사이 소나기가 두어 차례 지나갔다. 예상했던 대로 내일 아침 날씨가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라는 예보를 확인했다. 확률이 높지는 않지만 일식을 볼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14일 새벽 3시 30분 알람 소리에 잠을 깼다. 창밖에는 아직 어둠이 가득하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문을 나섰다. 원정대는 해변 목 좋은 곳에 서둘러 촬영 장비를 설치했다. 하늘 동쪽이 조금씩 깨어나면서 여명이 찾아왔다. 4시를 넘기며 별이 사라지는 만큼 새벽 하늘은 차츰 밝아졌다. 동서남북 천천히 몸을 돌리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옅은 구름이 드리워진 하늘이 방향마다 조금씩 다른 색감을 보여준다. 5시를 넘기면서 하늘에는 금성과 목성만이 남아있다.

원정대가 자리한 해변의 동쪽 하늘에는 얕은 산이 놓여있다. 그 산 위로 밝음이 더해가면서 성큼성큼 올라오는 태양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해가 뜬다는 것은 사실 또 다른 별 하나가 동쪽 하늘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다만 그 별이 무척 가까워서 그 강한 빛으로 하늘을 밝게 물들이며 다른 별빛을 지워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낮은 홀연히 떠있는 태양 빛을 흠뻑 받는 시간이다. 그 별빛이 지구의 한 쪽 절반을 환하게 비춘다.

동쪽 산 위로 덩그러니 놓여 있는 구름이 드러났다. 그 밝기로 보아 태양은 이미 떠올랐으나 구름 속에 몸을 감추고 있었다. 함께한 원정대원들의 눈빛에 긴장감이 감돈다. 이제부터 구름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



길게 이어진 해변으로 일식을 보려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들었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개기일식을 기다리며 모두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지금 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파도와 사람들의 경계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용한 대화 소리와 함께 잔잔하게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들렸다. 새벽보다 바닷물이 해변 가까이 들어왔다. 밀물이다. 어쩌면 이 밀물은 달이 보내는 손길이다. 하늘의 달이 태양에 다가서고 있는 사이에 달의 영향을 받는 밀물은 조금씩 나에게 오고 있다. 하늘과 바닷가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만남이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달이 이끄는 파도는 모래알을 굴리며 잔잔하게 부서진다. 그 소리는 물결을 담은 선율이 돼 해안선을 따라 아스라이 흘러갔다.

다시 눈을 떴다. 파란 하늘의 절반이 구름으로 덮여 있다. 그 때 동쪽 구름에 작은 틈이 보이더니 밝은 빛줄기가 흘러나왔다. 첫 함성이 해변에 울려 퍼졌다. 태양과의 첫 만남이다. 하지만 함성은 곧 탄식으로 바뀌었다. 6시 10분, 빗방울이 톡톡 얼굴을 때렸다. 잠시 드러났던 태양은 다시 구름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람들의 얼굴에 초조함이, 간절함이 애타는 마음이 그려진다.

6시 15분, 하늘이 어두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어둠은 구름 너머의 태양이 달에 서서히 가려지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사방을 찬찬히 둘러본다. 하늘의 색감이 천천히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6시 21분, 구름의 틈으로 갑자기 ‘크래퍼스큘라’라고 부르는, 방사형으로 된 빛의 기둥이 드러났다. 웅장하다. 아름답다. 사라져 가는 태양 빛이 하늘을 배경으로 멋진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았다. 6시 23분, 두 번째 큰 함성이 울렸다. 드디어 구름을 뚫고 태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달에 가려진 태양이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다.



파도 소리는 점점 가까이 들렸다. 구름이 태양 앞을 흘러가면서 빛기둥의 모양과 색깔도 변했다. 태양은 구름과 숨바꼭질을 하면서 보였다 안 보였다를 반복했다. 극도의 감질맛이다. 태양과 달이 구름과 어울려 한바탕 춤사위를 펼쳤다. 이 광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표정도 시시각각 춤을 췄다.

그때 갑자기 먹구름 덩어리들이 태양을 덮쳤다. 저 먹구름 속에서 개기일식이 끝나버릴 것 같은 절망감이 밀려왔다. 태양은 구름 속에 완전히 몸을 숨겼다. 이 광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애타는 마음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쯤 구름 사이로 한 가닥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작은 틈이 보였다. 만약 먹구름이 너무 빠르지 않게 또 너무 느리지도 않게 흘러간다면 그 틈새로 태양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침이 마르고 목구멍이 타들어갔다.

6시 35분, 이제 개기일식의 순간까지는 3분이 남았다. 하늘이 더 어두워졌다. 기온이 내려가면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숨을 죽이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결정적 순간을 기다렸다.

6시 38분, 가장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구름의 틈 사이로 마침개기일식에 이른 태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말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이 용솟음쳤다. 실처럼 가늘게 태양의 코로나가 드러났다. 그리고 놀랍게도 동쪽 하늘 높이 금성이 빛났다. 새벽 여명의 검푸른 하늘 정도의 밝기이다. 하늘에 몇몇 밝은 별이 나타났다.

이제 개기일식의 대미를 장식할 다이아몬드 링을 기다렸다. 달에 가려졌던 태양이 다시 드러나면서 쏟아내는 첫 빛줄기를 보아야한다. 하지만 매정한 구름은 태양을 덮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다이아몬드 링을 볼 수는 없었다. 구름 속에서 개기 일식은 마무리됐고, 하늘은 다시 빛을 되찾아갔다.

몸과 마음을 추스르면서 개기일식이 전해준 깊은 감동을 차분히 그려보았다. 개기일식은 대자연이 함께 참여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 서사극이다. 때로는 은은하게 잔잔하게 때로는 역동적으로 변화무쌍하게 온 하늘의 웅장한 아름다움을 이끌어내고 장엄한 하모니를 이루어 낸다.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이루어지는 해와 달, 지구의 움직임이 이보다 정교할 수 있을까. 천체들이 펼쳐내는 섬세하고 우아한 춤이었다. 그 춤의 마당에 나와 자연이 함께 참여한 것이다.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별을 묻는다면

일식의 감동을 뒤로 한 채 레이번의 관측지로 돌아오는 날 저녁, 붉은 태양은 어김없이 서산으로 넘어갔다. 태양이 지고 동쪽 하늘에는 또 다른 태양, 다른 별이 솟아오른다. 금세 밤하늘은 별로 가득하다. 저 많은 별 가운데 태양과 비슷한 별이 있을 테고, 그 별은 지구와 닮은 행성을 거느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지금 이 순간 어떤 외계 생명체가 내가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동을 느끼면서 자신들의 일식을 관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의 밤하늘은 아마도 지구에서 가장 많은 별을 볼 수 있는 곳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별 하나하나가 새롭게 다가왔다.

우리 선조의 역사기록에서 일식 현상은 두려움 혹은 태양의 분노로 인식되곤 했다. 과학의 눈으로 새롭게 바라보는 일식은 태양의 감춰진 아름다움과 만나는 일이다. 그리고 태양과 자연이 만들어내는 조화를 체험하는 일이다.

이번 탐사를 통해 마침내 오래된 질문에 답을 구했다. 누군가 가장 아름다운 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 별은 바로 태양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리고 태양은 나와 우주를 연결하는 소중한 등대가 될 것이다. 가장 가까운 별 태양이 가장 먼 우주로 나를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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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태양의 분노
Intro . 지구를 지배하는 절대자, 태양
Part 1 . 2013년, 태양은 과연?
Part 2 . 새끼흑점의 서바이벌
Part 3. 태양의 눈부신 비밀
Part 4. 검은 태양이 유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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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지현 | 사진 김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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