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어의 전성기는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였다. 트라이아스기가 끝나자 모든 것이 180˚ 바뀌어버렸다.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대부분의 악어는 절멸해 버렸고, 이들의 빈자리를 공룡이 재빠르게 차지해버렸다. 겨우 살아남은 일부 악어는 공룡의 그림자 밑에서 지내야 했다. 놀랍게도 이들은 기상천외하게 적응했다.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대부분의 악어는 절멸해 버렸고, 이들의 빈자리를 공룡이 재빠르게 차지해버렸다. 겨우 살아남은 일부 악어는 공룡의 그림자 밑에서 지내야 했다. 놀랍게도 이들은 기상천외하게 적응했다.
약 2억 년 전, 초대륙 판게아(Pangaea)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땅덩어리가 갈라지면서 그 사이로 새로운 바닷길이 열렸다. 다양한 기후대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이런 기후변화는 과거보다 다양한 환경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새로운 바닷길만 지구의 환경을 바꾼 것은 아니다. 대륙들이 서로 멀어지면서 판과 판 사이가 벌어져 엄청난 규모의 화산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화산 폭발은 많은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으로 방출시켰고 지구온난화를 일으켰다.
이런 환경변화는 당시 생물들에게 큰영향을 줬다. 해양생물의 34%가 갑자기 따뜻해진 지구에 적응하지 못해 멸종했으며, 해양생물의 멸종은 육상생태계의 먹이사슬 붕괴로 이어졌다. 이때 육상에서 큰 타격을 입은 것이 트라이아스기 생태계의 정점에 있었던 악어였다. 거의 대부분의 원시악어가 멸종했고, 오늘날의 악어를 포함하는 악어형류(Crocodylomorpha)만이 살아남아 명맥을 이어갔다.
대멸종 사건으로부터 살아남은 악어들은 더 이상 생태계의 정점에 앉아있을가 없었다. 그 사이에 공룡이 이들의 자리를 빼앗아 버렸기 때문이다. 악어는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서야만 했다. 공룡이 차지하지 못한 새로운 생태적 지위를.

바다로 되돌아가다
탈라토수쿠스류는 척추동물의 고향인 바다로 돌아갔다. 쥐라기는 악어가 바다로 진출하기에 최적의 시기였다. 트라이아스기가 끝나면서 판게아가 위 아래로 갈라지자 북반구에는 로라시아 대륙, 남반구에는 곤드와나 대륙이 새로 만들어졌다. 이 새로운 대륙 사이로 트라이아스기 때 판게아의 동쪽에 있던 원시 바다 테티스해가 서쪽까지 크게 확장됐다. 이때 넓어진 바다는 수면이 얕고 따뜻했는데, 그 속에는 악어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해양생물이 가득했다. 그래서 탈라토수쿠스류의 조상은 해양생물 뷔페를 맛보기
위해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테티스해의 해양생물 뷔페를 즐기기 위해서는 물속에서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유선형의 몸이 필요했다. 하지만 바다로 처음 진출한 탈라토수쿠스류의 조상에겐 문제가 있었다. 몸을 뒤덮는 골편이었다. 악어의 골편은 몸을 외부로부터 보호할 목적으로 진화된 것인데, 너무 울퉁불퉁해서 물살을 가르며 빠르게 헤엄치는 데 걸림돌이 됐다. 그래서 탈라토수쿠스류는 완벽한 바다 속 생활을 위해 선조가 물려준 방어용 골편을 과감하게 모두 퇴화시켰다. 몸은 물고기와 유사한 유선형이 됐다.
또 네 개의 다리로 몸을 들어 올릴 일이 없어지자 이것을 지느러미로 바꿨다. 네 개의 지느러미는 헤엄을 치며 몸의 방향을 바꿀 때 유용했다. 꼬리는 좌우로 흔들며 수영하기 편하게끔 끝을 물고기처럼 초승달 모양으로 변화시켰다.
중력으로부터 몸이 자유로워지자 몸집이 커진 탈라토수쿠스류도 있었다. 영국의 후기 쥐라기 킴머리지클레이층에서 발견된 플레시오수쿠스는 몸길이가 거의 7m나 되는 거구다. 과학자들은 플레시오수쿠스가 오늘날의 범고래처럼 바다를 호령하며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마도 같은 바다를 공유했던 수장룡이나 어룡, 거북, 물고기, 암모나이트 등을 잡아먹었을 것이다.
해양 생물들만이 이 무시무시한 바다악어들을 조심해야 했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초, 탈라토수쿠스류인 메트리오린쿠스의 뱃속에서 익룡 람포린쿠스의 골격 잔해가 발견됐다. 제 아무리 하늘을 날아다니는 익룡이라도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탈라토수쿠스류로부터 무사하지 못했던 것 같다.

공룡의 그늘 밑에서
바다로 되돌아가 해양생물들에게 공포를 안겨다준 탈라토수쿠스류와 달리 이들의 친척인 노토수쿠스류는 육상에 남아 공룡과 함께 지냈다. 바다 속의 친척들이 몸집을 부풀리는 동안 이들은 푸들만 한 작은 몸집을 유지했다. 덩치 큰 공룡들과의 먹이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다.
노토수쿠스류는 공룡의 그늘 밑에서 많이 번성했다. 특히 백악기의 아라리페수쿠스는 가장 성공한 종류로, 마다가스카르, 니제르, 브라질, 그리고 아르헨티나까지 넓은 지역에 걸쳐서 화석이 발견된다. 작은 아라리페수쿠스는 공룡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곤충 등의 생물을 잡아먹으며 배를 채웠을 것이다. 노토수쿠스류가 번성할 수 있던 또 다른 이유는 다양한 모양의 이빨이다. 공룡 등 다른 파충류는 주로 한 가지 종류의 이빨을 가졌는데, 노토수쿠스류는 오히려 포유류와 유사한 다양한 이빨을 가지고 있었다. 이빨의 종류가 다양하면 여러 종류의 먹거리에 도전할 수 있어 유리하다.
노토수쿠스류 중 가장 특이한 이빨을 가진 종류는 탄자니아의 전기 백악기 가루라층에서 발견된 파카수쿠스다. 파카수쿠스는 고양이의 것과 유사한 뾰족한 송곳니와, 튼튼한 물체를 으깨는 데 적합한 강한 어금니를 가졌다. 오늘날의 고양이처럼 송곳니를 이용해 몸집이 작은 척추동물을 붙잡고, 주둥이 뒤쪽에 나있는 강한 어금니로 껍질이 단단한 곤충이나 열매를 깨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몇몇 과학자들은 파카수쿠스가 오늘날의 작은 식육류(개와 고양이)처럼 살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리출석을 하게 된 악어
노토수쿠스류가 공룡의 그늘 밑에서 성공적으로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기회주의적인 성향도 한몫했다. 노토수쿠스류는 다른 동물이 사라진 틈을 타 그 역할을 대신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마다가스카르의 후기 백악기 마에바라노층에서 발견된 시모수쿠스다.
아프리카 남동쪽에 위치한 마다가스카르 섬은 백악기 때도 지금처럼 고립된 곳이었다. 당시에는 모든 대륙에서 초식공룡인 갑옷공룡이 존재했는데, 이들은 키가 작은 식물을 뜯어 먹었다. 하지만 마다가스카르는 갑옷공룡이 이주하기도 전에 이미 아프리카로부터 분리되는 바람에 갑옷공룡이 진출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다가스카르가 고립되기 전, 미리 이주해 와있었던 노토수쿠스류 중 일부가 갑옷공룡처럼 낮은 식물들을 뜯어 먹기 시작한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이들의 외모도 갑옷공룡과 유사하게 변해갔다는 점이다. 배는 볼록해졌고 무거워진 몸을 효과적으로 들기 위해 다리가 튼튼해졌으며, 평평한 바닥에서 자라는 식물을 훑어먹기 편하도록 주둥이 끝이 납작해졌다. 더 나아가, 이들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뾰족한 이빨을 식물을 뜯는 데 적합한 나뭇잎 모양의 이빨로 바꿔버렸다. 갑옷공룡처럼 변해버린 이 노토수쿠스류가 바로 시모수쿠스다. 시모수쿠스는 노토수쿠스류와 갑옷공룡 사이의 수렴진화를 보여준다.

납작 주둥이의 등장!
바다 속에서 탈라토수쿠스류가 헤엄을 치고 육상에서 노토수쿠스류가 뛰어다닐 때, 물과 땅을 오가는 양서생활을 하는 악어도 등장했다. 신악어류다. 신악어류는 머리가 튼튼하고 납작한 악어로, 이들의 머리가 납작한 이유는 사냥방법 때문이다. 이 악어들은 물속에 매복하고 있다가 근처에 접근하는 동물을 습격한다. 물가 근처로 동물이 접근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수면 위로 내밀어야 한다. 이때 머리가 위로 볼록하다면 사냥감으로부터 금방 들통이 날 것이다. 그래서 신악어류는 들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머리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매복을 이용한 사냥방법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인내심만 가진다면 언젠가는 사냥감이 물을 마시러 매복 장소로 접근할 것이기 때문이다. 에너지를 소모해가며 사냥감을 뒤쫓아 갈 필요가 없다. 신악어류에 속하는 오늘날의 악어도 쥐라기 때 이어받은 납작 머리를 이용해 지금도 매복해서 사냥하는 방법을 유용하게 쓰고 있다.
이처럼 악어는 트라이아스기 말 대멸종 사건에서 큰 타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살아갈 길을 찾았다. 비록 전성기인 트라이아스기의 화려함은 사라졌지만, 악어는 다른 동물들이 미처 차지하지 못한 여러 생태적 지위(niche) 속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그리고 이를 통해 공룡의 그늘 밑에서 조용한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굵고 짧게 가는 전략은 버렸지만, 대신 가늘고 오래 가는 전략을 선택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