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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 Fun] 소년탐정 김전일의 ‘이진칸촌 살인사건’ (下)

소녀탐정 ㅊ씨의 S(cience)-File ❸



지난 화에서 제가 ‘와카바는 사건의 트릭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기초적인 법의학 대중서만 봐도 알 수 있는 미라의 비밀을 와카바가 몰랐을 리 없다는 이유에서였는데요. 이번 화에서는 와카바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하겠습니다.

사건이 종결되고 김전일은 경찰에게서 새로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저항흔(방어흔)에 관한 것이었지요. 목이 졸려 죽은 와카바의 몸에서 어떤 저항흔도 나오지 않은 것입니다. 김전일은 ‘와카바는 오다기리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걸 미리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사랑하는 사람의 안위를 위해 어떤 저항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살인범이 밝혀지기 전 오다기리가 몰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고요.

면식범일 경우 저항흔 없을 수 있다

김전일의 추리가 맞다면 와카바가 마을의 비밀은 물론 오다기리의 정체까지도 알고 있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데 과연 사람의 의지로 저항흔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요.

유성호 서울대 의대 교수는 “저항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저항하지 못한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지적합니다. 유 교수는 “나를 공격할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범인일 경우, 방어할 시기를 놓쳐 저항흔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다”며 한 예를 들었습니다. 한 연인이 큰 싸움을 한 직후 여성이 사망한 채 발견됐는데, 몸에 저항흔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범인은 남자의 어머니였지요. 부검을 맡았던 유 교수는 피해자가 나이든 여성에 대해 경계심을 갖지 않아 방어할 때를 놓친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면식범일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저항흔이 없다는 게 와카바가 오다기리의 정체를 미리 알고 있었고,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것을 짐작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죽일 리가 없다는 생각에 경계를 풀었고, 그 때문에 저항할 시기를 놓쳤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급작스러운 공격이 저항흔 형성 막아

하지만 와카바에게 저항흔이 남지 않았다고 해서 오다기리의 범행이 증명되는 건 아닙니다. 면식범이 아닌 경우에도 저항흔을 남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죠(김전일도 와카바의 죽음에 다른 사람을 용의자로 생각하기도 하고, 공범의 가능성도 제시했습니다). 유 교수는 저항흔 여부를 가장 크게 결정하는 건 ‘범행이 얼마나 급작스럽게 이뤄졌는지’라고 말했습니다. 실제 1997년 발생한 이태원살인사건의 피해자 고(故) 조중필씨의 주검에서도 저항흔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용의자로 지목됐던 미군 에드워드 리와 아더 존 패터슨과는 처음 본 사이였지요. 당시 검찰은 한번에 피해자를 제압할 수 있어 보이는 건장한 체격의 에드워드 리를 범인으로 지목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가해자의 몸집이 왜소하더라도 갑작스럽게 공격하면 건장한 청년도 방어를 못할 수 있다고 밝혔죠.

다시 와카바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저항흔으로만 판단하자면 오다기리가 아니더라도 그날 마을에 있던 누구든 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 오다기리가 범행을 자백하기 전까지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다름아닌 결혼식 들러리를 섰던 옆집 여자, 카부토 키리코였습니다.

종합해보면 와카바의 시체에 어떤 저항흔도 남지 않았다는 것은 오다기리가 범인이라는 것도, 와카바가 오다기리의 정체를 미리 알았다는 것도 증명하지 못합니다. 즉, ‘와카바가 마을의 비밀을 모두 다 알고 있지 않았을까’하는 소녀탐정의 추리 역시 증명되지 못했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말처럼 와카바가 입을 열지 않는 한 와카바의 비밀은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겠죠?

2016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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