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과학기술계에는‘나노’(nano) 열풍, 아니 태풍이 불고 있다. 나노물리 나노화학 나노소자 나노기계 등. 과학기술을 하는 연구자면 누구나 한번쯤 관여하고 싶은 분야다. 그렇다면 과연 나노는 무엇인가.
나노란10억분의1을뜻하는용어다. 1나노미터(nm)라면 10억분의 1m가 되는 것이다. 이 크기는 머리카락 굵기보다 약 10만배나 작은 정도다. 비유하자면 사람에서 1nm 크기의 물체를 찾는 일은 태양에서 사람을 찾는 일과 비슷하다.
이렇게 엄청나게 작은 크기를 찾는 일은 둘째 치더라도 이 정도를 움직이는 일은 어떨까. 나노 길이 정도를 움직이는 기관을 만들겠다고 도전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바로 KAIST 기계공학과의 조영호 교수가 이끄는‘마이크로머신 및 마이크로시스템 연구실’에서 야심차게 내건 연구목표다. 이 연구실은 2000년 10월부터 과학기술부의 창의적연구진흥사업 신규 연구단으로 선정돼‘디지털 나노구동 연구단’을 설립했다.
인공위성 10㎝ 정도로 제어 가능
최근 선진국에서는 제품을 매우 가볍고 얇으며 작게 만들면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품의 크기를 아주 작게 하면서 성능을 뛰어나게 한다면, 가격 경쟁력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에너지와 자원을 경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21세기에는 정보통신, 컴퓨터, 생명공학 등에서 빛, 열, 유체, 화학적∙생물학적 미세 입자 또는 에너지로 표시된 정보를 나노 규모에서 가공하고
제어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매우 정밀한 나노구동기관을 개발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항공우주국(NASA)에서는 인공위성을 10cm 규모 이내로 자세를 제어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지상에서 인공위성을 제어하는 장치의움직임이 ${10}^{-7}$m 정도의 정확도가 얻어져야 한다. 바로 수십nm 규모가 증가 되는 것이다. 또다른 예로 먼 거리 사이에서 빛을 중계하는 광중계기나, 망막을 스크린으로 사용하는 디스플레이의 경우에도 구동장치의 움직임에 마찬가지로 nm 규모의 정확도가 필요하다.
지금까지‘마이크로 전기기계 시스템’(MEMS)기술을 이용해 구동기관을 극히 작게 하려는 노력은 주로 기존의 대형 구동기관을 단순하게 축소 모방하는 방향이었다. 하지만 현재 MEMS 기술을 이용한 이런 시도는 크기가 작아짐에 따라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극미세계에서 일어나는 물리현상에 대한 과학지식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극미세 구동신호의 잡음영향, 마이크로머시닝 가공공정의 오차, 그리고 미소소재의 물성에 대한 원천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에 과학기술적 난관에 봉착해 있다.
극미세계의 원천기술
그래서 디지털 나노구동 연구단에서는 나노구동의 아이디어를 생물체에서 얻으려 한다. 이동이 가능한 생물체는 생체근육을 이용해 효율적으로 생체를 움직인다. 이때 생체근육에서는 액틴과 미오신이라는 근 섬유 사이에 발생하는 움직임(실제로 nm 규모의 움직임, 즉 나노구동)이 기본단위가 되고 이를 변조해 빠르고 정교한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 다시 말해 아주 미세한 움직임에서부터 전체 근육이나 골격의 거대한 움직임이 가능한 것이다.
연구단에서는 이런 근육에 나타나는 나노구동의 구조와 원리를 확대 모사하려는 것이다. 이런 모사로부터μm(1μm = ${10}^{-6}$m) 크기의 극미세 구동기관이 나노규모로 움직일 수 있는 작동 원리를 발굴하고, 이를 구현할 수 있는 미시공학적 도구와 방법을 개발하는데 도전하려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극미세계에서 물리현상과 미소소재의 특성을 실험적으로 분석∙규명해 관련 과학적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나아가 생체의 나노구동과 구동변조에 대한 원리를 공학적으로 변형시켜 모사해야 한다. 그러면 μm 크기의 부품을 이용해 nm급의 움직임을 구현할 수 있다. 즉 새로운 나노구동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또한 현재 과학과 공학 사이의 미개척 기술영역에서 미시공학이라는 새로운 연구분야를 개척하고, 극미세계에서 광대한 원천기술을 확보해 미래산업에 필요한 실용적이고 검증된 과학기술을 제공할 수 있다.
현재 연구단에는 조영호 교수를 중심으로 6명의 박사과정과 4명의 석사과정 연구원이 이런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