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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진화생물학 받아들이는 성리학

인간은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

현대과학의 발전에는 서양의 기독교사상이 바탕에 깔려있다.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현대과학은 여러 문제점을 초래했다. 최근 새로운 대안으로 동양종교가 주목받고 있다. 동양종교와 현대과학은 과연 어떤 만남을 준비하고 있을까.

 

인간과 자연을 분리될 수 없는 가족관계라고 생각하는 성리학은 진화생물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현대과학이 오늘날과 같은 규모와 영향력을 갖게 된 배경에는 서양의 기독교사상이 깔려있다. 즉 기독교사상은 과학이 크게 발전할 수 있도록 그 터전을 마련해줬다.

자연을 존중하고 신성시하는 고대종교와 달리 유일신을 섬기는 기독교는 신의 영광을 위해 인간에게 그 대리자로서 자연을 통치할 권한을 부여했다. 이 점은 고대사회에서 혁명적 발상이었다. 자연을 두려워해 신으로까지 숭배했던 고대인에게 자연을 객관화해 실험하고 연구할 수 있게 해준 사상적 기초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결국 과학은 기독교 문화 안에서 급성장할 수 있었고, 인류의 복지향상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왜 동양종교인가

하지만 서양의 기독교사상은 인간중심주의라는 역기능과, 인간과 자연이라는 이원론의 대결구도를 초래했다. 결국 자연은 과학기술에 의해 무자비하게 파괴됐고, 지구촌 생태계의 총체적 파멸이라는 위기상황에 봉착했다. 따라서 많은 학자는 가공할 위력을 지닌 현대과학을 제어할 수 있는 사상으로, 기독교 이외의 다른 종교를 찾고 있다. 최근에는 자연친화적이고 통합적인 동양종교가 과학이 초래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 뿐이며 이 둘은 하나의 생명체라고 간주하는 우리나라의 성리학과, 모든 만물은 서로의 인연과 상호작용을 통해 존재한다는 불교가 바로 그 새로운 대안이다.

서양사상의 특징이 뉴튼의 물리학과 데카르트의 철학에서 잘 나타나고 있는 기계론적·분석적 패러다임이라면, 동양사상의 특징은 유기적 전체주의라 할 수 있다. 유기적 전체주의란 우리 몸을 이루는 요소가 각자의 기능을 수행해 ‘나’라는 전체를 만들 듯, 개별적이고 이질적인 자연의 구성요소가 특정한 관계로 맺어져 ‘자연’이라는 전체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특히 성리학은 만물일체의 유기적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한 성리학은 전체에 대한 적절하고 조화로운 어울림을 우선적으로 추구한다. 이런 특징은 컴퓨터, 카오스이론, 자기구성(self-organization), 인터넷, 네트워크 등의 현대과학이 제시하는 개념과 유사하다. 이 유사성으로 인해 성리학은 과학과의 대화에 매우 적합하다.

현대과학과 동양종교 간의 유사성은 카프라와 봄 등의 학자들에 의해 주장돼 왔다. 특히 해외에 있는 최고의 퇴계학자인 미국 워싱턴대의 마이클 칼톤 교수는 한국 성리학이 종교와 과학의 대화에서 서양의 신학보다는 더욱 바람직하고 적합한 모형을 제시한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제기했다.

성리학은 우주와 생물을 포함한 모든 만물이 한 근원으로부터 발생됐으며, 모두가 가족관계를 가져 서로 밀접히 연관돼 있다고 본다. 특히 존재의 연속성을 신봉하는 성리학은 기독교 신학과 달리 진화생물학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이 없다. 인간과 동물은 동일하며, 따라서 지구라는 전체 시스템을 파악하는데 인간은 동물과 하등 다를 바 없다. 다만 인간은 이성이라는 뛰어난 능력을 가졌으므로 전체 시스템에 대한 책임의식이 조금 더 많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런 점은 인간이 합리적 통제와 예측을 통해 주어진 상황을 자율적으로 조정해도 된다는 서양의 근대적 사고와 분명히 구분되는 점이다.

성리학에 따르면 인간이란 존재는 이 세상에 ‘경기자’(player)로 온 것이지, 결코 ‘관리자’(manager)로 온 것이 아니다. 지구라는 전체 시스템을 이루는 각 구성요소는 제각기 자기구성적 역동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어떻게 이런 질서에 조화롭게 적응하느냐 하는 점이 인간에게 던져진 화두다.

경기자와 관리자의 구분은 인간이 과학기술을 사용하는데 매우 중요한 윤리적 함의를 갖는다. 예컨대 필요한 목적을 위해 유전자를 기계적으로 조작하는 유전공학은 서양적 사고로는 가능하나 성리학적 사고로는 잘못된 것이다.

자연과학은 문자 그대로 ‘자연’(自然)의 과학, 즉 인위적 조작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연구하는 학문이어야 한다. 주어진 유기체를 결정하는 것은 유전자라기보다는 자기구성적으로 이뤄지는 선택적 진화의 역동적 과정이라고 보는 관점이 더 적합하다. 더욱이 인위적 조작은 항상 인간욕망이라는 사슬에 엉킬 수밖에 없고, 이 욕망은 욕심이라는 자기중심적 오류에 빠지기 쉽다. 자기중심적 오류를 성리학에서는 악의 근원이라고 본다.

자연과 인간을 하나의 일체로 보는 성리학의 개념은 한국에서 독특하게 발전된 ‘마음’(心)이란 개념에 잘 나타난다. 한국 성리학에서 보는 진정한 마음은 본성(육체)과 감정(정신)이 통일을 이룬 상태다. 성리학에 따르면 인간은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天·地·人)의 삼재가 통일을 이룬 존재다. 즉 인간은 하늘의 품성을 부여받은 천일합일적 존재인데, 이 중에서 인간은 천·지·인 전체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갖는다. 여기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바로 본성과 감정을 통일한 ‘마음’이다. 이를 위해 인간은 진정한 ‘마음’의 상태를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다.
 

진화 생물학 받아들이는 성리학



정복자 아닌 참여자 자세 필요해

이처럼 성리학은 현대과학이 초래한 여러 문제점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성리학은 분석적 환원주의를 기초로 한 현대과학의 한계를 유기적 전체론으로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또한 자연을 인간의 연구와 정복 대상으로 삼았던 서양사상과는 달리 성리학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중요시한다. 또한 인간은 자연의 정복자가 아닌 참여자이며, 자연에 대한 인간행위의 도덕성이 중요하다. 그리고 과학이 그 본연의 자세, 곧 ‘인위’의 과학이 아니라 ‘자연’의 과학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한다. 이것은 지구촌 생태계가 파멸의 위기에 봉착한 오늘날, 자연과학이 갖춰야 할 윤리적 책임에 관한 분명한 지표를 제시한다.

성리학이 현대과학에 의해 재해석될 때, 성리학의 발전은 물론이며 현대과학의 발전에도 매우 유익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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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김흡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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