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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코

햅쌀과 묵은쌀 냄새로 구분한다

향수냄새를 전문가 못지 않게 구별해내고 고기의 신선도를 정확히 체크하는 전자코. 과연 인간의 후각기능을 능가하는 로봇코의 실현은 가능할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오감, 즉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은 다른 동물과 견주어 그리 뛰어난 것이 없다. 밤이 되면 올빼미만큼 앞을 구별해 낼 수도 없고, 박쥐처럼 초음파를 감지할 수도 없다. 거기다 개처럼 냄새에 민감하지도 못하다. 그럼에도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우리가 오감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드는 재주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부족함을 보완해주는 기계를 넘어, 드디어는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기계들까지 만들 수 있게 됐다.

망원경이나 현미경은 너무 멀리 있거나, 너무 작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했고, 내시경 같은 물건은 우리가 직접 눈을 들이대고 볼 수 없는 우리 몸안을 대신 봐주기도 한다. 이렇게 여러 가지 센서들은 우리의 감각을 대신해 준다.

사람의 코를 대신할수있는 후각센서에 대한 연구도 멀티미디어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볼 때 그 상황에 맞는 향기가 나온다면 정말 실감나는 영상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또공항에서 마약이나 위험물을 찾아내기 위해 킁킁거리며 다니는 훈련개들이 더 이상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개코보다 더 냄새를 잘 맡는 ‘전자코’가 개발되면 말이다.
 

현재 상업적으로 시판되고 있는 '아로마스캔' 사의 전자코.


사람의 후각시스템 본따

어떤 사람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며, 손으로 만지지도 못하고, 혀로 맛을 볼 수도 없는, 오로지 코로 어떤 냄새를 느낄 수 있는 상황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사람이 어떤 특정한 냄새를 맡으면, 그는 그것을 뇌에 기억했다가 다음에 그 냄새를 맡게 되면 그것이 무슨 냄새인지를 알아 맞출 것이다. 즉 사람은 코로 냄새를 맞고 뇌로 인식을 하는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전자코도 만들어졌다. 전자코란 사람 코의 후각 세포에 해당하는 ‘가스센서’와 사람 뇌의 정보처리 메커니즘과 유사한 ‘패턴인식 신호처리기술’을 이용해 냄새를 감별해내는 전자장치를 말한다.

전자코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학습을 통해 냄새를 인식한다. 즉 냄새에 대한 일정한 정보를 연속해서 학습시켜 주면 이를 토대로 냄새를 감별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향수냄새에 관한 데이터를 저장한 뒤 전자코에 향수를 흘려주면, 전자코는 ‘이 냄새는 향수’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저장된 데이터가 없는 냄새나 매우 복합적인 냄새를 전자코에 주입시키면, 전자코는 그것이 어떤 냄새인지 알지 못한다.

아직 사람의 후각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전자코는 사람이 맡을 수 없는 가스(무취가스나 유독가스)를 맡을 수 있고, 사람이 구별해 내기 어려운 냄새들도 감별해 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일산화탄소처럼 사람에게는 유독한 가스를 감지한다거나, 묵은 쌀과 햅쌀의 냄새를 맡아 구별해 낼 수도 있다.

학습도 가능하다

전자코에서 가장 핵심은 역시 가스센서다. 가스센서란 특정가스에 의해 센서 감지물질의 표면 혹은 내부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화학적 변화를 전기적 신호로 바꾸어주는 소자를 말한다. 이 전기적 신호가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파악함으로써 대상이 되는 물질의 존재(냄새)를 파악하게 된다.

가스센서는 이용방법, 가스 측정방법, 소자의 형태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런 가스센서가 제 기능을 다하려면 극소량의 가스나 냄새에 대해서도 충분한 신호를 얻을 수 있도록 감도가 높아야 하고, 감지하려는 가스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또 빨리 반응할 수 있도록 응답속도가 우수하면서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정밀도, 경제성, 유지성 등도 만족시켜야 한다.

일반적으로 전자코에서는 한가지 가스센서로 여러가지 냄새를 감지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여러 가지 종류의 가스센서를 함께 사용해 각 센서의 출력패턴을 인식하는 형태로 가스나 냄새를 식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가스센서에 의해 감지된 가스를 구별하고 분류하는 것이 바로 ‘패턴인식’이다. 컴퓨터에서 문자가 입력으로 들어와 구별하는 것을 문자인식, 음성이 입력으로 들어와 구별하는 것을 음성인식이라고 하는 것처럼, 패턴인식이란 입력으로 들어온 냄새들에 대한 센서 신호를 몇개의 패턴으로 분류한 후 학습(기억)에 의해 여러 가지 냄새를 구별한다.

로봇코를 목표로

전자코는 이미 많은 분야에서 실용화 단계에 있다. 전자코에게 햅쌀과 묵은 쌀의 냄새를 기억시켜 놓으면, 어떤 것이 오래된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인지를 구별해 낼 줄 안다. 같은 방식으로 고기, 생선, 야채, 과일 등의 신선도 혹은 부패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또 아직은 사람의 감각에 의존하는 정도가 큰 향수나 술, 담배 등의 종류, 숙성도, 생산지 파악, 발효공정관리 등에도 이용가능하다. 아무래도 사람이 냄새를 맡다 보면 피로가 빨리와 정확한 감별이 어렵기 때문이다. LG 전자기술원 연구팀에서 만든 전자코도 향수, 파, 당근 등의 냄새를 학습시켰더니 각각을 정확히 구별해 냈다.

단일 가스센서를 이용한 가스 측정기는 이미 상업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각종 유독가스나 대기오염 측정, 배기가스 분석에 응용되고 있으나, 이런 장치들은 특정한 가스의 농도만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전자코라고 부르지 않는다. 전자코는 사람의 코처럼 여러 가지 상황에서 모두 작용하고, 심지어는 사람이 맡을 수 없는 냄새까지 감지할 수 있도록 연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영국의 ‘아로마 애널라이저’와 프랑스의 ‘인텔리전트 노즈’라는 이름의 전자코가 상업적으로 판매되고 있는데, 가격은 약 4 천만원대다. 하지만 이런 기기들 역시 우리가 꿈꾸고 있는 완전한 전자코와는 거리가 있다.

전자코가 일상화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가스 반응 메커니즘은 아직 확실히 규명되지 못한 것이 많고 특히 냄새 자체가 복합적인 가스 성분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특정가스에 선택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가스센서를 만드는 것이 힘들다. 결국 전자코의 성능은 가스센서의 성능과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많은 연구 인력이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분야도 바로 이 분야다. 또 현재 만들어진 전자코는 ‘코’라 부르기에는 너무 부피가 크고 가격도 너무 비싸다.

하지만 전자코가 제대로 제 기능을 발휘하고, 인간의 오감을 대행하는 여러 센서들이 완벽하게 응용된다면, 사람같은 로봇들이 사람을 대시냏 위험하거나 어려운 일을 대신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같은 시간에 우리는 거실에 앉아 향기로운 꽃내음과 함께 아름다운 음악소리 안에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코는 우리가 꿈꾸고 있는 멀티미디어 사회를 여는 또 하나의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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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규정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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