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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ssue]독성물질로 프린트 하시겠습니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라스틱 그릇을 떠올려보자. 만약 이 그릇을 불이 켜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으면 어떨까. 플라스틱은 금세 녹아 내리며 고약한 냄새와 함께 연기를 내뿜을 것이고, 건강에 매우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비슷한 일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3D 프린터 때문이다. 3D 프린팅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는데, 가정이나 학교에서 데스크톱 3D 프린터로 많이 쓰이는 재료압출 방식(Material Extrusion, ME)이 이렇게 플라스틱을 녹여 굳히는 방식을 쓴다. 흔히 FDM(Fused Deposition Modeling)이라고 알려진 프린터다. 이 때 노즐의 온도는 200℃가 넘는다.


교육용 기기에서 초미세먼지 나와

미국 일리노이공대 도시건축환경공학과 브렌트 슈테펜 교수팀은 데스크톱 FDM 프린터가 얼마나 많은 초미세먼지를 방출하는지 실험했다(doi:10.1016/j.atmosenv.2013. 06.050). 초미세먼지(PM0.1)는 지름이 100nm(나노미터. 1nm는 10억분의 1m) 이하인 먼지로, 기도와 폐뿐만 아니라 폐포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뇌졸중, 천식, 동맥 경화 등을 일으킨다. 연구팀은 부피가 45m3(학교 교실의 약 4분의 1)인 일반 사무실에 FDM 프린터를 작동시키면서 1분 간격으로 대기 중 입자 개수를 측정했다. 그 결과, 분당 최고 1900억 개의 초미세먼지가 검출됐다. 이는 가정에서 가스레인지로 요리를 하거나 향초를 태울 때, 레이저 프린터를 작동시킬 때 또는 담배 한 개비를 태울 때 나오는 초미세먼지의 농도와 비슷한 수치다. 연구팀은 “데스크톱 3D 프린터 대부분이 환기 장치 없이 독립적으로 판매되고 있어서 이에 대한 경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요리를 할 때와 비슷한 정도라고 하면 크게 위험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윤충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입자의 크기뿐만 아니라 성분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FDM 프린터에서 나오는 먼지와 가스의 성분을 분석했다(doi:10.1021/acs.est.5b02805). 연구 결과 벤젠, 톨루엔, 포름알데히드, 프탈레이트 등 발암물질과 내분비교란물질(환경호르몬)이 검출됐다. 윤 교수는 “플라스틱 자체는 안전하지만, 200℃가 넘는 열로 녹이면 몸에 유해한 ‘열분해 산물’이 나온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FDM 프린팅용 필라멘트로 흔히 사용되는 ABS 수지는 아크릴로나이트릴(A), 부타디엔(B), 스타이렌(S) 등 세 가지 성분이 결합된 고분자 물질인데, 고온에 분해되면서 따로 방출될 수 있다. 이 물질 각각은 인체에 해롭다. “특히 면역계가 완성되지 않은 어린 아이들은 이런 물질에 어른보다 훨씬 더 취약해요. 초·중학교의 방과후 교실에서 FDM 프린터의 유해한 면을 전혀 모른 채로 아무런 규제 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건 우려할 만한 상황이죠.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알 권리가 전혀 충족되지 않고 있습니다.”
 
 
일부 제조 업체에서는 옥수수를 원료로 한 PLA(PolyLactic Acid, 폴리젖산) 수지를 사용해 인체에 무해하다고 광고한다. 실제로 앞에 언급한 두 연구에서 PLA 수지를 사용한 프린터가 ABS 수지를 사용한 프린터보다 초미세먼지를 10분의 1 수준으로 적게 방출했다. 이에 대해 윤 교수는 “노즐 온도가 높을수록 유해물질이 많이 나오는데, PLA 수지의 적정 용융 온도는 ABS 수지에 비해 30~40℃ 가량 낮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ABS보다 PLA 수지가 더 많이 쓰인다. ABS 수지는 후가공이 용이해 전문 출력소에서 많이 쓰는 데 비해, PLA 수지는 최종 출력물의 품질은 낮지만 출력이 쉬워 교육용으로 많이 쓴다. 그러나 PLA 수지라고 해도 완전히 안심하기엔 이르다. 3D 프린팅용 소재를 연구하고 있는 성유철 대림화학 3D 프린팅 사업 총괄부장은 “친환경 인증을 받은 PLA 수지가 있지만, 3D 프린팅용 필라멘트로 모양을 바꾸는 과정에서 몸에 유해한 가소재와 안료가 들어간다”며 “특히 중국산 재생 PLA 필라멘트에는 어떤 물질이 들었는지 알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산업용 기기엔 접착제와 중금속

일반 가정과는 약간 거리가 있지만, 산업용 프린터도 문제다. 후가공에서 쓰는 접착제 때문이다. 분말로 된 재료에 프린터 헤드가 접착제를 짜 넣는 접착제 분사 방식(Material Jetting, MJ)을 보자. 3DP(3 Dimensional Printing) 프린터가 대표적이다. 출력물의 본체가 되는 흰 분말은 석고와 유사한 재료로, 칼슘이 주재료다(CaSO4ㆍ H2O, 황산칼슘 반수화물). 여기에 수계(H2O) 접착제를 분사하는데, 물이 닿으면 분말의 결정 구조가 성게 모양으로 바뀌면서 서로 결합된다. 문제는 이 다음부터다. “너무 약합니다. 툭 치면 부스러지고 심지어 표면을 만지면 분필 가루처럼 묻어 나와요. 일반 순간접착제로 후가공을 해야만 합니다. 제조업체에서도 그렇게 권유하고요.”(이해신 KAIST 화학과 교수) 순간접착제의 주성분인 시아노아크릴레이트 단량체는 인체에 유독하다. 특히 아이들은 절대 입에 넣으면 안 된다.


문제는 국내에서 이미 일부 피규어와 장난감, 교구 등이 3DP 프린터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시각장애아동용 교구를 만들고 있는 문명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계산과학연구센터장은 “재료의 유해성이나 프린팅 속도 등을 고려했을 때 상용 프린터 가운데에서는 아직 다른 대안이 없다”며 “인체에 해가 없는 수계 물질로 표면을 별도 코팅하는 게 현재로서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광중합 방식(Photo Polymerization, PP)은 더 위험하다. 광경화성 액체 수지에 레이저나 가시광선 빛을 쪼여 중합반응을 일으켜 선택적으로 고형화시키는 SLA(Stereolithography)와 DLP(Direct Light Processing)가 대표적이다. 광중합 방식 재료의 유해성에 대해 물을 때마다 모든 취재원이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들었다. 윤충식 교수는 “반도체 칩을 만들 때 광경화성 물질을 굳혀 회로 패턴을 만드는 ‘포토 공정’이 있다”며 “유해한 화학 물질을 제일 많이 쓰는 공정인데, SLA가 이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미국 로버트 모리스대 환경과학과 다니엘 쇼트 교수팀이 3D 프린팅용 소재의 MSDS(물질안전보건자료)를 검토한 결과를 보자(doi:10.1108/RPJ-11-2012-0111). 다양한 재료 가운데 특히 일부 SLA 프린터에 쓰이는 광경화성 액체 수지에는 안티몬이 포함돼 있었다. 안티몬(원소 기호 Sb, 원자번호 51)은 유해 중금속으로, 중독 증상이 비소 중독과 비슷하고 적은 양으로도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 광경화성 액체 수지 안에 든 ‘광개시제’에 안티몬이 포함돼 있다. 광개시제란 광경화성 액체 수지의 고분자 끝에 달려 있는 물질로, 레이저 빛이 광개시제를 자극해야 경화 반응이 시작된다. 이해신 교수는 “안티몬 외에도 광개시제에 함유된 물질은 대부분 발암물질”이라며 “독성 수준이 폐타이어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다니엘 쇼트 교수는 논문에서 “액체 수지 안의 안티몬은 호흡 가능한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노출될 위험이 오히려 적다”며 “경화된 제품을 후가공하는 과정에서 안티몬이 함유된 먼지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SLA 프린터로 만든 최종 제품은 과연 얼마나 유독할까. 학술지 ‘환경과학과 기술’ 2015년 11월 4일자에는 다양한 방식의 3D 프린터로 제작한 물건을 제브라피시(Danio rerio)의 배아에 노출시켜 독성을 시험한 연구 결과가 실렸다(doi:10.1021/acs.estlett.5b00249). 3D 프린터로 만든 물건에 노출된 배아가 대조군에 비해 돌연변이 비율이 높았다. 특히 SLA 방식으로 만든 물건에 노출된 배아는 심장부종 돌연변이가 발생할 확률이 FDM 방식에 비해 5배, 대조군에 비해 20배 높았다. 비슷한 실험을 해 본 이 교수는 “동물 세포가 남김 없이 다 죽었다”며 “최소한 의료기기용 국제표준인증(ISO) 기준은 통과할 수 없는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같은 광중합 방식인 DLP 프린터를 개발·생산하고 있는 한 국내 업체 관계자는 “광개시제는 우레탄이나 에폭시를 다루는 기존 산업에서 매우 흔하게 사용돼 온 물질로, 당연히 먹어선 안되고 장기적으로 노출됐을 때 피부 등에 유해할 수 있다”며 “경고 문구를 비롯해 물질 정보가 정확히 기록된 MSDS를 구매자에게 제공해 안전에 유의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해외의 유명 화학 회사들과 인체 친화적인 소재를 개발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광중합 방식 프린터는 아직까지는 자동차 기업에서 시제품을 만드는 등 산업용으로만 쓰이고 있다. 이해신 교수는 “광경화성 물질은 산업용으로만 쓰여 왔는데, 3D 프린터 가격이 떨어지면 일반 소비자에게도 퍼질 가능성이 있다”며 “개인 보호복과 마스크를 입는 근로자와 달리 일반 소비자는 더 큰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그 전에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폐기물 처리 규정 아직 없어
앞으로는 환경독성도 큰 문제가 될 전망이다. 3D 프린터로 만들어진 물건은 현재 재활용 방법이나 규정이 없다. 산업폐기물에 속한다는 뜻이다. 이런 물건들이 일반 폐기물로 쓰레기 봉투에 담겨 매립돼 비를 맞으면, 독성 물질이 흘러나와 토양과 지하수를 오염시킬 수 있다. 인체 독성이 적은 PLA 수지도 친환경 재료라고는 보기 어렵다. 고분자가 자연에서 쉽게 분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몸 속에서 녹는 의료용 생분해성 PLA 수지도 있지만, 의료용이 아닌 분야에서 이런 고가의 재료를 쓸 확률은 높지 않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알려진 3D 프린팅의 독성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해신 교수는 “독성이 있다는 것만 알지, 얼마나 심각한지는 아직 누구도 모른다”며 “독성학에서는 물질의 농도와 노출시간이 중요한데, 아직 작업 표준이 정해져 있지 않아 측정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다니엘 쇼트 교수는 e메일 인터뷰에서 “프린팅 과정에서 원재료가 더 유독한 물질로 변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 밝혀진 바가 많지 않고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3D 프린터는 전기용품 안전 인증이나 전자파 인증 등 일반 전자기기 인증(KC)만 받으면 판매가 가능하다. 3D 프린터에 특정한 표준이 아직 없다는 뜻이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대안 노력도 계속돼
다행히 조금씩 대안이 마련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에서도 표준화와 규제 관련 논의가 시작됐다. 이강 산업통상자원부 전자전기과 사무관은 “일부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다”며 “미래창조과학부와 함께 만든 ‘3D 프린팅 전략기술 로드맵’에 따라 재료와 장비, 그리고 최종 제품의 품질과 안정성, 환경 유해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체계를 2015년부터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윤기권 산업기술평가관리원 PD는 “일반 소비자가 많이 쓰는 프린터에 대한 품질 평가 기준은 7월 중에 산업용보다 먼저 완료할 예정”이라며 “인체 안정성과 환경 유해성을 포함해 의무조항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제화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인체와 환경에 친화적인 소재를 개발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대림화학은 스마트워치용 손목 줄 소재를 이용해 유연하면서도 인체에 해가 없는 3D 프린팅용 수지를 개발했다(오른쪽 위 사진). 스마트워치 소재는 이미 인체 적합성 인증을 받았다. 성유철 대림화학 부장은 “기존의 인체 친화적 재료를 3D 프린터에서 녹여 짜낼 수 있도록 재료의 고분자 체인을 조절해 접착력과 반응 시간 등을 바꿨다”고 말했다.

국내의 한 3D 프린터 제조 업체는 윤충식 교수의 자문을 받아 해로운 물질이 외부로 방출되지 않는 밀폐형 FDM 프린터를 개발했다. 윤 교수는 “궁극적으로는 입자상 물질을 거를 수 있는 환기시설이나 필터, 가스 물질을 거를 수 있는 흡착제 등을 3D 프린터 내부에 갖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신 교수는 접착제 분사 방식인 3DP 프린터에 쓸 무독성 접착제를 개발 중이다. 미역에 든 다당류 성분을 이용한다. 공업용 접착제로 후가공을 하지 않고도 단단한 물체를 완성할 수 있다. 이 교수는 “다당류 중에 칼슘을 좋아하는 성분이 분말에 엉겨 붙는 원리”라며 “아직 노즐이 막히는 문제가 있지만, 적정한 접착제의 농도와 노즐 지름을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 미역에서 추출한 물질이라 먹어도 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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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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