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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Tech] UC버클리에서 뜨거운 여름을



미국 서부의 끝자락이자, 태평양을 마주한 인구 83만 명의 항구도시 샌프란시스코. 이곳은 영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촬영지이기도 한 골든게이트브리지(금문교)를 찾는 관광객들로 늘 북적이는 도시다. 여기서 지하철을 30분만 타고 동쪽으로 이동하면, 분위기가 사뭇 다른 작은 마을이 나온다.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탄 학생을 많이 볼 수 있고, 골목마다 서점을 만날 수 있는 교육도시 버클리다.

버클리 시내 한 가운데엔 부지가 서울대 관악캠퍼스(0.72km2)에 조금 못 미치는 거대한 학교가 있다.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캠퍼스, 줄여서 UC버클리다. 노벨상 수상자만 70명. 150년 역사의 세계적인 명문대학이다. GIST대학의 2학년 학생들은 매년 이곳 UC버클리에서 여름을 보낸다. 대학에서 제공하는 글로벌프로그램의 일환이다(148쪽 Plus 참조). 학생들은 미국까지 오는 항공료만 낸다. 여름학기 등록금과 기숙사비, 식비는 모두 학교에서 지원한다. 영어점수가 토익 785점 또는 토플 IBT 80점만 넘으면 올 수 있다. 올해도 6월 22일부터 8월 14일까지 2학년 학생 99명이 UC버클리에서 2과목씩 수업을 들었다. GIST대학 2014년도 입학생이 152명이란 점을 생각하면, 한 학년의 3분의 2가 이곳에 와 있는 셈이다.



구글에 취직하는 비결?

“코딩을 이렇게 못하는 애들 사이에서 어떻게 스티브 워즈니악(애플 설립자) 같은 사람이 나오는지 궁금했어요.” UC버클리에서 여름학기 컴퓨터과학 수업을 듣는 김진우 씨를 만났다. 초등학교 때부터 컴퓨터를 만지고 자란 그에겐 의문이 있었다. UC버클리는 컴퓨터과학과가 유명하다. 많은 졸업생들이 근처 실리콘밸리에 있는 IT기업으로 진출한다.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학생들의 프로그래밍 실력이 형편없었다. 이유가 뭘까. 진우 학생은 4주간 수업을 듣곤 답을 찾았다.

“미국의 고등학교는 우리보다 예체능을 강조하는 분위기예요. 프로그래밍은 대학에 와서야 시작하죠. 코딩을 못할 수밖에 없어요. 중요한 건 대학교육과정이에요. UC버클리는 커리큘럼이 굉장히 잘 짜여있어요. 보통 다른 대학은 전공과정에서 기본을 충실히 배우든지, 실용에 치중하든지 둘 중 하나거든요. 근데 여긴 기본기를 엄청나게 가르치고 거기에 실용과 관련한 내용까지 추가로 공부하게 만들어요. 솔직히 이 정도로 공부했는데 구글에 취직을 못하면 그게 이상하겠다 싶더라고요.”

진우 씨를 만났을 때 그는 중국계, 아프리카계 미국인 친구들과 함께 기숙사에서 4시간째 조모임을 하는 중이었다.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묻어나왔다. 학교 숙제로 거의 매일 모여 버전을 관리하는 ‘깃(GIT)’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했다. “한국에선 조별과제를 하다보면 잠수 타는 애들이 있잖아요. 나중에 이름만 넣어달라고 하고. 여기선 그렇게 못해요. 동료평가가 정말 엄격하거든요.”

진우 씨는 수업을 혼자 신청했다. 한국 학생이 없다. 조를 짜야 되는데 용기가 필요했다. “처음엔 좀 힘들었어요. 무작정 옆자리에 앉아서 ‘안녕, 너 이름이 뭐니, 나 한국에서 왔다’고 말을 거는 거죠.” 지금은 조원들과 친해져서 함께 피자를 먹으러 다닌다. “1000~2000줄짜리 코딩은 사실 저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근데 나중에 사회에 나가면 100만 줄짜리 코딩을 짤 때가 올 거란 말이죠. 내 생각을 남에게 설명하는 능력이 중요해요. 지금 미리 연습을 해 놓으면 나중에 세계적인 기업에 가서도 도움이 되겠죠.”
 

식물원에서 5분간 명상하기 숙제

‘캘리포니아 대가뭄의 흔적을 교내에서 찾아라.’ 부수희 씨는 UC버클리에 와서 받은 숙제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건축 과목인데 왜 이런 숙제가 나왔을까 아리송했다. 그 전엔 ‘하루 동안 자기가 버린 쓰레기 리스트를 만들고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 고민하기’라는 숙제가 나왔다. ‘식물원에 가서 좋아하는 나무를 골라 그림 그리고, 앞에서 5분간 명상하기’도 있었다. 분명 이 수업은 건축학과 학생들이 듣는 수업이었다. 버클리의 여름은 사우나를 연상케 하는 한국과는 달리 건조했다. 햇살이 내리꽂히는 아스팔트에선 아지랑이가 피어올랐지만, 바로 옆의 그늘만 들어가도 쌀쌀해 옷깃을 여며야 했다. 뉴스에선 연일 산불 소식을 알렸다. 학교 안에서 가뭄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하루 종일 돌아다닌 끝에 ‘노랗게 뜬 나뭇잎’과 ‘바닥을 드러낸 시냇물’을 찾았다. 애정을 가지고 지금 사는 곳을 이해하는 게 건축이라는, 영화 ‘건축학개론’의 대사가 떠올랐다.



수희 씨는 활동적인 건축 수업을 늘 들어보고 싶었는데, UC버클리에 와서 소원을 풀었다. ‘소수정예’를 양성하는 GIST대학엔 건축학과가 없다. 물리, 화학, 생물, 전기전산, 환경과학, 기계공학, 재료공학의 7개 트랙만 있다. 미국에서의 여름학기 수업은 학생들의 지적갈증을 해소하는 중요한 통로다. 보통 두 과목 중 하나는 양자역학, 유기화학, 생리학, 이산수학 같은 정통 이공계 과목을, 다른 하나는 듣고 싶은 수업을 듣는다. GIST대학 학생들이 좋아하는 수업은 뭘까. 의외로 사회학과 전공수업인 ‘사회 불평등’ 과목이다. 22명이나 몰렸다. 경제 양극화의 배경과 인종이나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 등을 배운다. 이공계생이 왜 사회학과 수업을 듣느냐는 질문에 채승(전기전산 3) 씨의 눈이 똥그래진다. “전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운동이 일어났던 학교에서 사회 불평등을 어떤 식으로 인식하고 가르치는지 궁금했어요.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자세를 배우자는 게 우리 학교의 모토인데, 어긋나지 않는다고 봐요.”
 

학생들은 수업 바깥에서 배우는 게 더 많았다. 학생들의 이야기엔 우리와 다른 ‘열린’ 사회에 대한 신기함과 낯설음이 묻어나왔다.

“학생들이 교수연구실을 방문해 질문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빼곡했어요. 바닥까지 앉아서요. 여기선 질문이 너무나 당연한 학생들의 권리예요. 한번은 제가 질문을 했는데, 시간이 없었던 교수가 ‘화상채팅’으로 대체하자고 한 적도 있다니까요.”

“학생들이 밥을 먹어요. 수업시간에. 교수는 아무 말도 안 해요. 우리가 보기엔 버릇없는 행동인데 용인되는 분위기에요. 대신 스마트폰 사용은 철저히 금지하더라고요.”

“연방대법원에서 동성결혼 합헌판결을 내렸을 때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 최대 퀴어축제가 열렸어요. 거기서 놀란 건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대기업들이 기업사명을 걸고 참석한 거였어요.”



구글, 애플 그리고 스탠퍼드

UC버클리에 머무는 동안 GIST대학 학생들이 공부만 한 것은 아니다. 기자가 미국에 있는 동안엔 마침 버스를 대절해서 구글과 애플을 방문하는 일정이 있었다. 대학보다 규모가 큰 구글과 애플 캠퍼스를 둘러보며 학생들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학생들을 인솔한 조경래 GIST 기초교육학부 교수는 “세상을 넓게 보라”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품이면,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UC버클리와 경쟁관계에 있는 스탠퍼드대에선 2013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토마스 수도프 교수를 만났다. 수도프 교수는 학생들의 질문에 30분가량 답하면서 “아시아 학생, 특히 남학생은 주변 연구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려고 노력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 “똑똑한 학생보단 (연구실 문을) 두드리는 학생이 기회를 얻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관심 있는 교수를 찾아다니란 말이다.

조혁진 씨는 과감히 루크 리 UC버클리 생명공학과 교수의 연구실을 두드렸다. 리 교수는 나노바이오융합 기술 분야의 세계 최고 석학이다. 혁진 씨는 UC버클리에 머물면서 여름학기 수업과 연구실 인턴을 병행했다. 한국계 미국인인 리 교수는 농담 삼아 “대학원생들을 화장실까지 따라다니면서 배워라”고 말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악착같이 배워서 많이 얻어가라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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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미국 버클리 = 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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