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은 작년 여름 7월29일에 장마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7월 31일부터 8월 17일 까지 수백mm에서 최고 6백mm가 넘는 국지성 집중호우가 전국 각지를 옮겨다니면서 엄청난 재해를 남겼다. 이곳 저곳을 옮겨다니고 짧은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비를 뿌리고 사라져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불렸던 작년 여름의 비는 특히 경기북부 연천지역에 수많은 이재민과 침수피해를 남겼다.
그런데 올해 7월 20일 사실상 ‘장마 끝’을 선언한 기상청의 발표를 기다렸다는 듯이 또다시 7월 하순부터 제주도와 남부지방에 1백여mm 정도의 집중호우가 보고되더니 급기야 7월 31일부터 8월3일까지 사나흘 사이에 5백-6백mm가 넘는 집중호우가 경기북부지역을 강타했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동두천 지역에서는 이 기간 동안 무려 8백mm가 넘는 호우가 내렸다.
닮은꼴 집중호우
장마가 끝났다고 발표한 직후라는 점, 좁은 지역에 하루 이틀 사이 집중된 국지성 호우라는 점, 특히 경기 북부지역이 똑같이 집중호우를 당했다는 점 등 몇가지 점에서 작년과 올해의 집중호우는 너무나 흡사하다. 연세대 대기과학과 이태용 교수에 따르면, 다만 작년에는 비구름이 중국 쪽에서 계속 유입되면서 집중호우가 이루어졌다면, 올해는 북태평양의 따뜻한 기단과 시베리아의 찬 기단이 우리나라 상공에서 만나 불안정한 대류성 구름이 강수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기상청의 분석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2년 내리 경기북부지역에서 홍수피해가 컸던 것은 경기북부지역이 임진강에 연해있는 저지대로 홍수에 취약한 지리적인 조건이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이렇게 비슷한 일이 연속되자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의 여름철 강우특성이 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기상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미 수년 전부터 조심스럽게 한반도 기후특성의 변화에 대한 논의들이 나오고 있었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90년대 들어 우리나라의 여름철 강우특성이 현저히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먼저 연간 총강수량 중 장마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1961-90년 사이 31.7%에서 1991-98년에는 26.7%로 떨어졌다.
특히 90년대 이후에는 장마 종료 후 8월말까지 내린 강수량이 장마기간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예년의 경우 장마기간 평균강수량이 4백33.8mm로 장마 종료 후 8월말까지 평균강수량 3백3.2mm보다 많았다. 그러나 1991-98년의 장마기간 평균 강수량은 3백79.7mm로 장마 후 8월말까지 평균강수량 4백38mm보다 훨씬 적게 나타났다.
장마의 개념 혼란
기상청에서는 작년부터 이러한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장마의 끝’을 알리면서도 장마 후에 나타날 국지성 집중호우에 대비해줄 것을 당부해왔다. 그러나 3주 이상 계속되면서 지루하게 비를 뿌리는 장마와 그 이후의 불볕더위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여름 날씨에 익숙해 있던 일반인들은 장마가 끝났다고 발표한 후에 내리는 집중호우에 적잖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이는 기상청에서 말하는 장마의 정의와 일반인이 받아들이는 느낌의 차이 때문이다. 기상청 박정규 예보과장에 따르면, 기상청이 말하는 장마는 전선의 유무로 판단한다. 북태평양고기압과 오오츠크해 기단이 만나서 전선을 형성하는 것을 장마의 시작으로, 이 전선이 소멸하는 때를 장마의 끝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기후는 이 전선과 강우가 거의 일치해서 일반인은 ‘장마는 곧 지루한 비’라는 공식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뚜렷해지고 있는 한반도 지역의 강우 특성변화로 말미암아 장마 기간 중 강우량은 줄어들면서 장마가 끝난 후에 더 많은 비가 내리는 일이 많아져 이러한 공식에 적잖은 혼란을 야기한 것이다.
북태평양 고기압 힘 못써
장마전선은 6월 말부터 3주 이상을 우리나라 상공에 정체하며 지루한 비를 뿌린다. 그 후 7월 말부터 세력을 확장한 북태평양 고기압이 오오츠크해 기단을 북쪽으로 밀어내면 우리나라가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권에 들어 불볕더위가 나타난다. 이상이 지금까지 익숙한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여름 날씨다. 그러나 예년과 달리, 최근에는 8월이 돼도 북태평양 고기압이 세력을 확장하지 못하고 한반도의 허리에 가장자리부분을 걸치고 있는 일이 많아졌다. 이 때문에 이 고기압의 가장자리 부분을 따라 불안정한 대기층이 형성됐고 이것이 우리나라에 집중호우를 뿌렸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미 몇몇 전문가들은 장마를 전선의 유무로만 정의하는 기상청의 태도를 나무라며, 고온다습한 강우가 계속되고 있다면 여전히 장마로 봐야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기상청에서도 이런 점 때문에 “장마의 정의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한반도의 기후특성이 변하고 있는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아직 일치되지 않고 있다. 연세대 이태영 교수는 “만일 장마전선 소멸 후에 나타나는 집중강우가 정말로 한반도 기후특성이 변하고 있다는 증거라면, 작년과 올해의 집중호우는 본격적으로 변화된 상태가 아니라 전이기간일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 강우특성의 변화를 극히 최근의 통계만으로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장기적인 기후변화연구에 힘을 쏟을 여건이 잘 마련돼 있지 않아 확증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연평균기온 상승, 강수량 증가
그러나 한중대기과학연구소의 정용승 교수(한국교원대)는 한반도의 기후특성이 이미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주장했다. 정교수는 특히 겨울철을 제외하고는 충청도 이남지역은 이미 아열대화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대도시를 포함한 전국 9개 지점의 연평균 기온이 지난 1974년 이후 1997년까지 약 0.96℃나 상승했다. 1974년의 연평균 기온은 12.52℃였으나 1997년에는 13.48℃를 기록했다. 또한 기온 상승의 속도는 1982년 이후 더욱 빨라지고 있다.
정교수는 1970년대까지 겨울이면 영하 18℃까지 내려가는 강추위가 심심찮게 나타났지만, 근래에는 영하 12℃까지 내려가는 날씨도 쉽게 겪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한 한강이 어는 날이 현저히 줄고 눈이 없는 겨울이 계속되는 점 등은 일반인들도 쉽게 감지할 수 있는 기후변화의 뚜렷한 증거라고 덧붙였다.
한편 정 교수는 1906년 이후 강수량의 변화를 분석하고 1997년까지 92년간 우리나라의 연평균 강수량이 1백82mm정도 많아진 강우특성의 변화도 보고했다. 특히 1980년까지만 해도 장마전선을 따라 꾸준히 비가 오는 전형적인 여름 강우의 특성이 1990년대 들어 국지성호우의 양상을 많이 띠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의 국지성 집중호우가 한반도 기후특성의 변화를 보여주는 좋은 증거라는 것이다.
일시적인 변화일 수도
기상청 박정규 예보과장도 일단 한반도의 전체적인 기후특성이 변하고 있다는 점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에 따르면 근래의 집중호우는 우선 양적으로 과거의 기록에서 보기 힘든 많은 양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봄철에도 1백mm가 넘는 큰비가 온 적도 있었다. 또한 겨울철에도 춥지 않은 겨울이 16년째 계속되고 있는데, 이것을 단지 이상기상이라고 하면서 계속해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일축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결국 한반도에만 국한해서 볼 때도 기후특성이 달라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변화의 원인이 무엇이고, 이 변화가 일시적인 것인지, 장기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 내리기 힘들다고 말했다.
박정규 예보과장은 넓게 볼 때 90년대 들어 빈번해지는 엘니뇨와 전 지구적인 기후환경 변화가 우리나라의 기후특성변화와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장기적인 기후변동을 나타내는 것인지, 10-20년 사이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현상인지에 대해서는 확정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서울대 대기과학과 강인식 교수는 “한반도의 기후 특성, 특히 여름철 강우 특성이 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이 완전한 기후특성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인지는 아직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아무튼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볼 때 한반도의 기후특성이 변하고 있다는 의견이 점차 힘을 얻어가고 있는 추세다.
원인 밝히는 연구 서둘러야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는 7월 하순부터 일찍이 태풍이 발생하고 태풍의 발생지점도 예년의 북위 10-15도의 열대 해역이 아닌 북위 20도 근방의 해역에서 발달하는 새로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또한 북태평양 기단이 세력을 확장하지 못하고 불안정하게 확장과 수축을 반복하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이제 한반도 기후특성의 변화가 진행 중이거나, 이미 이루어진 것이거나, 장기적인 것이거나, 단기적인 것이거나 그것을 확증하고 원인을 밝히고 대책을 세우는 것은 미룰 수 없을 것 같다. 한반도의 기후가 변하고 있다면 이는 강우 특성이나 기온변화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연환경과 우리의 생활까지 변화시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