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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데기 한 마리로 갈린 미스터리

유병언 사체수습에 법곤충학자가 따라갔다면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경찰에게 쫓기던 유병언 씨의 행적이 묘연해진 건 작년 5월 25일이었다. 5월 29일, 유 씨로 추정되는 인물이 CCTV에 찍혔다. 그리곤 두 달 가까이 소식이 끊겼다. 같은 해 7월 22일, 유 씨는 대중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백골이 된 채였다. 경찰은 한 달 전인 6월 12일 야산에서 발견한 시체가 유 씨인 줄 모르고 순천장례식장 영안실에 넣어놓았다고 밝혔다. 여론은 들끓었다. 법의학자들은 언제 죽은 시신인지 끝내 밝힐 수 없었다.  사망시각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놓쳤기 때문이다. 현장에 고스란히 놓여있던, 살아있는 단서를.


변사체가 발견되면 경찰은 가장 먼저 사망추정시각을 확인한다. ‘사망시각’은 죽은 원인이나 범인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이기 때문이다. 죽으면 근육이 수축해 몸이 딱딱해지고, 혈액순환이 멈추면서 몸에 얼룩이 생기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경우 몸이 변한 정도를 보고 사망시각을 추정한다. 체온이 떨어진 정도나 위 내용물의 소화 정도, 방광에 고인 소변 양을 보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죽은 지 12시간에서 하루만 지나도 몸이 부패하면서 흔적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길어야 72시간이다. 사흘이 지나면 사망시각을 추정하기가 어려워진다. 유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작년 6월 12일 첫 발견 당시 이미 백골화가 80%나 진행된 상태라, 기존의 방법으로는 언제 죽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당시 시체의 사망시각을 밝힐 수 있는 단서는 딱 하나뿐이었다.

파리였다. 사람이 죽으면 냄새를 맡고 기가 막히게 날아드는 파리들이 있다. 파리목의 검정파리과가 대표적이다. 유 씨의 시체에도 큰검정뺨금파리(Chrysomya pinguis)의 구더기가 가득했다. 살가죽이 일부 남아있던 배 부분에 몰려있었다. 파리가 시체에 낳은 알이 깨면 구더기가 된다. 구더기는 체액을 뱉어 시체를 녹인 뒤 다시 흡수해 양분을 얻는다. 구더기는 시체에서 1령, 2령, 3령으로 성장한 뒤 마지막으로 번데기를 거쳐 성충 파리가 돼 날아간다. 이 과정이 거의 한 달이 걸린다. 구더기가 성장한 정도를 보면 사망추정시각을 밝힐 수 있다. 시신 주변온도만 정확히 안다면 심지어 시간 단위로도 알 수 있다.


째깍째깍, 사망시계는 흐른다

신기하게도 주변 온도와 구더기 성장 속도는 거의 정비례한다. 파리는 외부에서 열에너지를 받아 성장하는 변온동물이기 때문이다. 온도가 너무 올라가면 오히려 성장을 멈추는 경우도 있지만, 임계점이 40~50℃라 웬만해선 넘지 않는다. 온도가 0℃에 가깝게 너무 내려갔을 때도 성장을 멈춘다. 성장할 수 있는 최저온도를 ‘기저온도’라고 하는데, 종마다 다르다. 실제 온도에서 기저온도를 뺀 뒤 여기에 시간을 곱하면 구더기가 성장에 사용한 열에너지가 나온다. 에너지 단위는 보통 1℃ 차이만큼의 열에 1시간을 곱한 ADH(Accumulated Degree Hours)를 쓴다.

여기서 퀴즈. 시체에서 발견한 구더기를 살펴봤더니 3000ADH만큼 성장한 상태였다. 주변온도는 33℃였고, 이 구더기가 속한 파리 종은 기저온도가 3℃였다. 시체의 사후경과시간은 얼마일까.

답은 100시간이다. 33℃에서 3℃를 뺀 다음, 이 값으로 3000ADH를 나누면 100시간이 나온다. 간단하지 않은가. 다만 실제로는 온도가 일정하지 않고 계속 변하기 때문에, 온도를 ‘적분’해야 정확한 값이 나온다. 그리고 온도만큼 큰 영향을 미치진 않지만 먹이와 습도, 광주기도 성장에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 이런 변수들을 조합하면 결과적으로 사후경과시간을 정확히 추정해낼 수 있다.

이 정도로 정확히 추정할 수 있는데 왜 유 씨의 사례에선 실패했을까. 작년 6월 12일 발견 당시 경찰이 사체를 수습하면서 중요한 증거를 놓쳤기 때문이다.


번데기였다. 구더기는 성장에 필요한 양분을 충분히 얻고 난 뒤 시체 바깥으로 나온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번데기로 변한다. 경찰이 시체 옆에 놓여있는 번데기도 같이 수집했더라면, 나중에라도 법곤충학자들이 사망시각을 계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번데기를 놓쳤다.


남은 증거는 시체에 달려 온 구더기뿐이었다. 시체에 가장 먼저 도착한 파리가 낳은 유충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7월 22일 이후 뒤늦게 현장에 가봤지만, 이미 번데기들은 성충으로 변해 훨훨 날아간 뒤였다. 어쩔 수 없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법곤충학자들은 영안실로 돌아와 시체와 같이 얼어있던 구더기를 꺼내 계산을 했다. 큰검정뺨금파리종의 성장속도 정보가 없어서 자매종인 검정뺨금파리(Chrysomya megacephala)의 정보를 중국에서 가져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의뢰를 받은 고려대 법의학교실은 계산에 들어갔다. 일대의 평균온도는 20.95℃였고, 검정뺨금파리의 기저온도는 12.3℃였다. 가장 많이 성장한 구더기를 기준으로, 들어간 열에너지는 1935.3ADH이었다. 계산 결과 사후경과시간은 197시간(8.2일)이 나왔다(계산은 일별로 나눠서 하기 때문에, 그냥 나눈 것과는 값이 조금 다를 수 있다). 6월 12일에 발견됐으니까 거슬러 올라가면 6월 4일이 된다. 6월 2일부터 4일까지는 비가 왔는데, 비가 오는 동안은 파리들이 돌아다니지 않으므로 6월 2일쯤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부정확한 정보다. 유 씨의 행적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날짜가 5월 25일이었는데, 무려 일주일이 넘는 긴 시간이 공중에 떠 버렸다. 그 사이 유 씨가 어디서 뭘 했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았다. 미국에선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야외에서 시체가 나오면 누구보다 먼저 법곤충학자가 조사에 들어간다. 살아 움직이는 예민한 증거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검사가 기소할 때 중요한 증거로 쓰인 사례도 상당하다.





구더기 키우는 실험실

우리나라에선 아직 곤충 증거가 법정에서 쓰인 적이 없다. 법곤충학 연구자도 드물고, 역사도 짧다. 이제 겨우 시체에 깃든 파리 유충의 종을 구분할 수 있는 수준이다(Inside 참조). 성장속도 정보가 필요한데, 똑같은 파리라도 다른 나라에서 연구한 자료는 우리나라에서 쓰기 힘들다. 기후대가 다르면 성장속도도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땅에서 키운 파리가 있어야 한다. 고려대 법의학교실에서 이 일을 하고 있다. 온도를 유지시킨 인큐베이터에 유충을 넣고 키우면서 일정한 주기로 크기를 관찰한다.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지난 4월 28일 고려대를 찾았다.

연구실에 들어서기 전부터 독특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옛날 푸세식 화장실에서 맡아본 비릿하고 시큼한 암모니아 냄새였다. 독하진 않고 은은한, 그러나 그리 편안하진 않은 냄새였다. “파리 소화액과 배설물 냄새가 뒤섞여서 나는 냄새입니다.” 법곤충학자 신상언 박사가 이야기했다. 신 박사를 따라 연구실의 격리구역으로 들어가자 온통 파리로 가득 찬 실험실이 등장했다. 냄새의 진원지였다.

파리왕국에 온 느낌이었다. 가로세로 50cm쯤 되는 반투명한 정육면체 통 안에 파리 수천 마리가 가득 들어차 분주하게 날고 있었다. “○○에서 발견된 변사체에서 채집한 파리 유충들을 키운 겁니다. 아, 이건 밝히지 말아주세요. 돌아가신 분 가족이 보면 기분이 안 좋을 수 있으니….” 통 앞쪽에 붙은 메모지엔 ‘○○경찰서, 4월 24일 우화, 구리금파리’라고 적혀있었다.

신 박사는 실험실 한쪽 구석의 인큐베이터를 열어서 보여줬다. 총 8개 챔버가 있었는데, 설정온도가 각각 달랐다. “유충의 성장속도를 측정하는 곳입니다. 12시간에 한 번씩, 챔버별로 한 마리씩 꺼내서 끓는 물에 담가요. 구더기 크기라는 게 워낙 들쭉날쭉해서 살아있으면 제대로 측정하기 어렵거든요.” 성장속도 그래프를 만들려면 한 종을 최소 다섯 개 온도대(20℃, 24℃, 28℃, 32℃, 35℃)에서 각각 한 달씩 관찰해야 한다.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한 온도에서 다섯 번은 반복해서 실험한다. 챔버 8개를 전부 가동해도 한 종의 성장속도를 파악하는 데 최소 세 달 이상 걸린다.

실험실에서 파리와 구더기를 키우는 모습이 아무래도 기이했다. “먹이는 뭘 주나요?” “얘네가 돼지나 소 간을 좋아해서, 가끔 마장동에 고기 떼러 갑니다.” 신 박사는 “앞으로 5~10년 정도는 계속 연구해야 실제 현장에서 쓸 수 있는 자료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 다음은 딱정벌레

파리를 연구하면 죽은 지 2주가 지난 변사체도 사망시점을 정확히 밝혀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상 지나면 시점을 밝혀내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파리가 다 자라서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2주가 넘은 시체에선 다른 곤충을 찾아야 한다. 바로 딱정벌레다. 딱정벌레는 사망 후 2달이 지난 시점에도 여전히 시체에 머물러 있다.

우리나라에서 딱정벌레 연구는 이제 막 시작됐다. 파리보다도 한참 늦다. 시체를 찾아오는 딱정벌레의 종류와 시점을 연구하는 단계다. 신 박사는 기자를 서울 근교의 한 농장으로 데려갔다. 야외실험실이 있는 곳이다. 여기선 진짜 시체를 가지고 연구한다.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 폐가 옆에다가 죽은 돼지를 놓고 약 한 달 동안 관찰한다. “여기가 어디인지 밝히면 주민 항의 들어오니까 삼가주세요.” 신 박사가 신신당부했다. 주민들이 그의 동료를 이상한 사람인 줄 알고 경찰에 신고한 적도 있다고 했다.

삼겹살과 돼지갈비는 많이 봤지만, 돼지시체를 직접 보긴 처음이었다. 죽은 지 2주가량 지나 부패가스가 생기면서 상처부위로 내장이 튀어나와 있었다. 처음엔 조금 역했지만, 곧 익숙해졌다. 정육점에서 맡을 수 있는 생고기 냄새가 났다. “왜 하필 돼지로 연구하나요?” “돼지가 사람이랑 가장 비슷하거든요.” “원숭이가 더 가깝지 않나요?” “원숭이는 피부에 거친 털이 있잖아요. 집돼지는 사람처럼 바로 피부가 노출돼 있고, 안쪽에 지방이 있어서 비슷하거든요. 구하기도 쉽고….”


신 박사가 돼지 귀를 넘기자, 구더기 수백 마리가 우글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구더기는 어둡고 축축한 장소를 좋아해요.” 귀와 입, 겨드랑이, 상처부위 곳곳에서 구더기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숨구멍이 있는 꼬리를 하늘로 들고, 살점에 머리를 박은 채 식사에 여념이 없었다. 진물이 흘러나왔다. 충격적인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혹시 사람 시체도 이런…가요?” “똑같아요.” “보기 힘들진 않으세요?” “저도 처음 봤을 때 좀 그랬는데…, 부검할 때마다 계속 보고 하니까 괜찮아지더라고요.”



딱정벌레는 구더기를 잡아먹기 위해 시체로 모여든다. 딱정벌레 중에서도 반날개, 풍뎅이붙이, 개미붙이 같은 종류가 특히 파리 유충을 좋아한다. 송장풍뎅이나 수시렁이처럼 가죽이나 털 등 마른 물질을 먹기 위해 시체를 찾는 종류도 있다. 신 박사는 얇은 집게로 땅 속을 뒤지더니 금세 딱정벌레 한 마리를 잡아 올렸다. 발 빠르게 도망쳤지만, 손이 더 날렵했다. 이날 잠깐 머물면서 신 박사는 딱정벌레 6종을 채집했다. 이런 식으로 2~3일에 한 번씩 야외실험실을 찾아 채집하고 있다. 올해 시작한 딱정벌레 연구는 내후년까지 이어진다. 딱정벌레는 파리보다 연구가 좀 더 어렵다. 온도뿐 아니라 먹이조건이 달라도 성장속도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먹이도 일정하게 맞춰주면서 성장을 관찰해야 하니, 연구가 까다롭다.

우리나라에서 아직 법곤충학은 연구할 분야가 많이 남아있다. 사람이 죽은 형태에 따라서도 곤충이 처음 산란하는 시기가 다른데, 이 부분은 아직 연구가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목을 매달아 죽었는지, 상처가 나서 죽었는지, 매장이 됐는지 등 제각각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도 사체감정 업무에 적용하기 위한 법곤충 연구를 최근에야 시작했다. 유 씨와 같은 사례가 또 생긴다면, 그땐 법곤충학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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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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