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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지질도 보면 싱크홀 피할 수 있다?

세계 최초 지질도 200년


 

1815년, 세계 최초로 발간된 영국 지질도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충격적인 동영상이 퍼졌다. 20대 남녀가 서울 용산역 인근에서 발생한 깊이 3m 싱크홀에 추락하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잡힌 것이다. 수많은 시민이 경악했지만, 싱크홀 공포에서 벗어날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발생할 위험이 있는 지역을 분류해 관리하면 된다. 이 때 필요한 도구가 바로 ‘지질도’다. 지질도란 지표를 이루는 암석의 종류·분포·시대·순서·구조·광산·화석 같은 여러 지질학적 정보를 다양한 색과 무늬, 기호로 표시한 지도다. 주요 선진국 지질조사소들의 과학적 생산물 가운데 사회에서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품목으로 꼽힌다.

200년 전 아마추어 측량사가 만든 최초의 지질도

세계 최초의 지질도는 200년 전 영국에서 탄생했다. 런던 북서부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대장장이의 장남으로 태어난 윌리엄 스미스(1769~1839)는 열여덟 살이 되던 해 우연히 전문측량사를 만나 측량사가 됐다. 그는 영국 중부지역에서 탄광 측량, 계획과 배수 등의 일을 하던 중 석탄이 묻힌 지층들의 순서가 일정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일정하게 경사진 지층이 있을 경우 지표 위에서도 순서가 동일하다는 ‘층서학’의 기본 개념과, 각 지층에서 나오는 화석을 자세히 분석하면 지층의 나이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원리를 이용해 영국 전역에서 특정 암석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고 확신한 스미스는, 이 중요한 발견을 지질도 발간을 통해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했다.

역마차를 타고, 때론 걸어서 무려 20년 동안 영국 방방곡곡을 다녔다. 암석 노출부와 화석을 독학으로 연구한 끝에 1815년,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지층 및 스코틀랜드의 일부 지층에 대한 개설’이라는 위대한 지질도를 발간했다. 1:315,000 축척으로 매우 세밀하게 인쇄한 뒤 손으로 채색한 지도였다. 크기가 가로 세로 각각 1.8m, 2.6m로 매우 컸으며, 열악한 인쇄 기술 탓에 16장으로 나뉘어 발간됐다. 아마추어 측량사라며 스미스를 견제하고 차별했던 당시 귀족 중심의 영국 학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이후 전 세계의 석탄·석유 개발과 광업, 운하와 철도 건설이 이 지질도에 근거해 이뤄졌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던 유럽은 발 빠르게 국립기관을 설립하고 자국 지질조사에 매진해 지질도를 만들었다. 지질도는 화성암석학, 변성암석학, 구조지질학, 퇴적학, 고생물학, 층서학, 광물학 등 지질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 지식을 총동원해 만든다. 때문에 당시 지질학의 다양한 분야가 함께 발전했다. 프랑스의 척추동물학자 조르주 퀴비에(1769∼1832)와 무척추동물학자 장바티스트 라마르크(1744∼1829)가 고생물학을, 요한 헤셀(1796~1872)이 광물학과 암석학을 확립했다. 영국의 찰스 라이엘(1797~1875)은 불후의 명저 ‘지질학의 원리(Principles of Geology)’를 통해 지질학을 체계화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응용 면에서도 가치가 대단히 크다. 미국 최초로 1:24,000 축척으로 지질도를 완성한 켄터키 주를 보자. 1960년부터 1978년까지 켄터키 지질조사소와 미국지질조사소는 천연자원을 개발하는 데 쓸 707개의 상세 지질도를 생산했다. 이 지질도는 당시 자원을 개발할 때뿐만 아니라 이후로도 오랜 시간 동안 공해 방지와 제거, 교통계획, 주택구획, 댐 건설 등 켄터키 토지를 이용하는 데 쓰였다. 2000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가 켄터키 지질도의 경제성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1999년 화폐가치 기준으로 최대 33억5000만 달러(약 3조7000억 원)에 이른다. 개발비용의 39배에 달하는 값이다.
 

영국의 측량사 윌리엄 스미스. 그는 독학으로 지질학을 깨치고, 직접 영국 방방곳곳을 돌아다니며 세계 최초의 영국 지질도(왼쪽 페이지)를 만들었다.]



조선지질도는 자원 수탈을 위한 도구로 쓰였다

모든 지질도가 인류의 행복을 위해 쓰인 건 아니다. 착취와 핍박의 역사를 반영하기도 한다. 18세기 서구 열강이 해외 식민지의 자원을 수탈하려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지질조사였다. 우리나라도 이때 최초의 지질도를 갖게 됐다. 조선을 강제 합병한 일제는 1918년 조선총독부 산하에 지질조사소를 설립하고 1924년 밀양과 유천 지질도가 포함된 조선지질도 제1집을, 연일, 구룡포, 감포 지질도가 포함된 조선지질도 제2집을 발간했다. 이후 1938년까지 남한지역 9집(지질도 25개 포함)과 북한지역 10집(지질도 36개) 등 총 19집의 조선지질도를 발간했다. 일제가 지질도에 매진한 이유는 자명하다. 지하자원을 수탈하고 철도와 운하를 건설하기 위해서였다.

아픈 역사를 담고 있지만, 지질도 자체의 문화적 가치는 충분히 높다. 지난해 6월, 조선지질도 총 19집은 문화재 603호로 등록됐다. 암석이나 지층이 지표 위에 드러난 ‘노두’와 지질 조사 장면을 담은 사진 등 다양한 정보가 수록돼 있어 당시 한반도 상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는 평가다. 아직 지질도가 발행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지금도 조선지질도를 쓰고 있다.

우리 손으로 만든 진정한 의미의 최초의 지질도는 1956년에 상공부 중앙지질광물연구소(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와 대한지질학회가 공동으로 연구해 발간한 1:100만 축척의 대한지질도다. 문화재 604호로 등록됐다. 1:50,000 축척의 기본지질도는 1960년대가 돼서야 만들어졌다. 1961년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주도로 태백산에 매장된 석탄 개발을 위한 지질조사가 시작됐고, 1962년 ‘태백산지구 지질도’가 발간됐다. 이후 현재까지 남한지역에서 총 359개 구획 가운데 275개 지역의 지질도가 발간됐다.

세계 최초의 지질도가 발간되고 141년이 지나서야 우리 기술로 지질도를 갖게 됐지만, 이제 우리나라는 지질도 관련 기술을 전수하는 나라가 됐다. 인도네시아와 호주 사이 티모르 섬 동쪽에는 2002년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한 신생국가 동티모르가 있다. 금·은·동·크롬·망간·석탄·석회석·인산염 등 다양한 광물자원을 갖고 있지만, 탐사에 필수인 지질자료가 대부분 식민시절에 작성된 것으로 너무 오래돼 실효성이 없다.




이제는 지질도 기술 전수하는 나라

동티모르 천연자원청 지질광물자원국은 우리나라에 남서부 수아이 지역의 지질도 작성과 교육을 의뢰했다. 필자를 포함한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연구팀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공적개발원조 지원을 통해 2011부터 2년간 한국의 지질조사 및 자원탐사 기술을 전수했다. 현지 조사를 통해 1:25,000 축척 정밀지질도도 발간했다.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동티모르와 인도네시아 국경 근처의 마을에서 암석시료를 채취할 때였다. 갑자기 정글도를 손에 쥔 마을 사람 30여 명이 나타나 우리를 촌장 집으로 연행했다. 그들은 운전사를 보내 동티모르 지질광물자원국 직원을 데려오도록 한 뒤, 남은 일행에게 플라스틱 컵 가득, 걸죽한 커피를 권했다. 동료는 도저히 못 마시겠다고 했지만, 나는 “여기서 살아 나가려면 마셔야 한다”며 그 커피를 다 들이켰다. 사약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시료를 채취하던 산이 신성한 곳이라 함부로 들어가선 안 됐던 것이다.

앞으로는 지질도 연구가 정보통신기술(ICT)과 연계해 이뤄질 전망이다. 우리 연구팀도 디지털로 만든 지질자료에 증강현실 기술을 접목하는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인류가 지구라는 행성에서 과학기술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안 지질학의 기본을 이루는 지질도는 더욱 정교해질 것이다. 다만, 지질학 전공자들이 기초 연구보다는 응용 연구를 선호하는 현실은 다소 아쉽다. 지질도를 만드는 우수한 인적자원의 부족 현상이 앞으로는 개선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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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송교영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 에디터

    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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