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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시대의 기술자립 기초 연구의 활성화가 해결책이다

한국 외국어대학 경영정보 교수 이주헌


미국은 둘째치고 바다건너 일본가보는 것 조차 어려웠던 때가 엊그제였다. 미제하면 전쟁후에 남겨진 지프차도 감지덕지하면서 새나라 택시 한번 타보는 것이 소원이었던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러나 어느틈에 미국 일본은 물론이요 유럽 중동지역까지 한국인들의 왕래가 번잡해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지구촌의 한국'이라는 낱말들이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미국행 비행기 타보는 것 정도는 이젠 우습고 소련과 중공 방문 욕심의 목소리들까지 들린다. 마치 올림픽 캠페인 표어처럼 세계는 이미 하나가 되어버린 듯 하다.
 

각종 국제회의가 열리고 세계적인 인사들이 내왕하는 한국의 새얼굴을 지켜보면서 그 실속과 뒷이야기들은 무엇이건간에 썩 기분나쁜 심정만은 아니다. 제아무리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이라지만 지질이도 못나게시리 기나긴 역사동안 핍박만 당하고 상납하고 얻어먹기 바쁘던 민족이 바로 우리 한민족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난 우리 텔리비전이 세계제일의 미국시장에서 판치고 우리 자동차가 미국의 하이웨이를 질주하고 있는 현실을 뿌듯한 고마움으로 받아 들인다. 서러움과 눈물 많았던 4천만의 국민이 이제 우리도 해낼 수 있다는 긍지감을 현실성 있게 접해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삶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생존경쟁의 원칙하에서 반복되나 보다. 이제 겨우 숨좀 쉬고 살려나보다 하였더니 속셈이야 어떠했든 예전엔 잘해 보라며 어깨를 두들겨 주던 미국부터 앞장서서 자유경쟁하에서 한 판 붙어보자고 주먹질을 하기 시작했다. 자동차가 그렇고 컴퓨터시장이 그러하며 남의집 수입개방의 문을 활짝 열어놓다시피한 경제압력이 바로 그것이다.
 

공짜기술 제공은 없고 책도둑질 소프트웨어 도둑질도, 배움에 대한 성의는 가상하나 이제부터는 현금으로 챙기겠다 한다. 대한민국도 이젠 어엿한 국제무대의 주역이며 개방시대를 맞아 선의의 경쟁자로 팔소매 걷고 나오라는 것이다. 하기야 꼭 틀린말도 아니다. 동냥질 도둑질 계속할 때는 지났고 좀 매정스럽기는 하지만 우방국들과의 사이에서 이젠 우리도 지금 느끼고 있는 긍지감과 단합심을 토대로 한번 겨뤄보고 싶다는데 있어서는 같은 마음인 까닭이다. 올것이 조금 빨리 왔다는것뿐 악을 쓰며 부딪치면 못해볼 것도 없으리라는 오기까지 작용하는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개방시대의 자립을 이룩하려면 눈앞의 현실을 극복하여야 하고 그러자면 우리의 가까운 장래는 꼭 밝지만은 않다. 하루가 멀다하고 발전하는 과학기술분야에서 아직 안정된 토대를 마련하지 못하고 기술도입체제하에서 겨우 저렴한 생산제조설비와 값싼 노동력으로 내수 및 수출시장을 이끌어온 우리에게 있어 기술의 자립이란 너무도 힘든 과제인 셈이다.
 

장기적인 계획과 함께 연구개발에 몰두할 수 있는 선진국들에 비하여 아직 응용연구 체제조차도 마련치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산업체의 현실은 문제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표현한다. 겉만 번드르하여 귀빈용 관광코스로 애용하고 있는듯한 대기업 연구소의 연약한 내실과, 연구원들의 병역면제와 연구기자재 구매시의 세제혜택 및 정부지원자금의 수주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중소기업체의 형식위주연구소들을 피부로 느낄때면 암담한 심정이다. 단기적인 매출에만 급급하여 연구소를 아예 개발소로 칭하고 '사다가 껍데기 바꾸어 팔면 이윤추구에 더욱 현실적이다'는 자격미달인 중역들이 대권을 쥐고 있는 한 우리나라 산업체의 기술자립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이제 우리의 생각은 바뀌고 각오는 새로와져야 한다. 말로만 선진국 대열을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머리에는 수건을 동여매고 허리띠는 졸라맨채 책상앞의 전기불을 밤새 켜놓는 인내와 시련의 과정으로 돌입해야 한다. 값싼 노동력 수출이 아닌 진정한 두뇌수출로 계속되어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면 몸과 마음을 새롭게 단장하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 맡겨진 일에 충실하여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첫째 정부의 미래지향적인 기술자립구상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일관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미 컴퓨터 분야에는 정부부처들의 5대기간전산망 구축사업, 한국과학기술원의 슈퍼프로젝트, 한국전자통신연구소의 전전자교환기 개발사업, 표준연구소의 표준컴퓨터 부호체계 수립 등지목할만한 과제들이 추진중인 바, 이와 더불어 보다 현실적인 우수 인력 확보대책과 기초연구의 중점지원이 시급하다. 과학기술원과 서울대학위주의 학위과정과 연구자원을 전국의 모든 대학에 파격적으로 확장시켜 인력양성의 폭을 넓히고 정부출연연구기관 및 산업체의 연구소 경영을 범 국가적인 차원으로 승화시켜 조화있는 기초연구 활성화체제로 나아가야 한다.
 

둘째 산업체의 투철한 연구개발의지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존중되고 기술자들이 우대받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저 팔기위해 개발하는것 보다는 개발한 후에 판매하겠다는 의식구조가 뿌리를 내려야 하고 모방기술에서 신기술개발로, 그리고 순수연구의 순조로운 토착화가 너무도 요구된다. 중소기업의 발전만이 산업의 성공을 가져올 수 있다는 차원에서 대기업체는 정부의 중소기업 전문화를 유도하는 지원정책에 순응할 때 비로서 굳건한 산업구조가 형성된다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
 

경제의 민주화는 단기적인 고통은 있겠으나 먼 앞날의 성공을 점쳐주는 까닭에 존중되어야 한다. 우리의 뜻있는 젊은이들이 모여 개발한 첨단 소프트웨어가 해외에서 깜짝 놀랄만큼 판매되기 시작하는 시점이 바로 우리나라가 기술자립국의 문턱으로 들어서는 때다.
 

세째 학계 및 연구기관의 기초연구에 대한 집념이다. 우수한 제품의 개발은 응용학문으로 가능하고 응용학문의 기초는 순수 과학임은 자명하지 않은가? 기술의 자립이란 튼튼한 기초 연구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며 기본을 갖춘 인력의 배출은 바로 기술자립의 원동력이 된다. 성공은 좋은 경험에서 이루어지고 좋은 경험이란 실패를 거듭했을때만 얻어진다면 상아탑안에서의 고뇌는 각오되어야 한다.
 

기술자립국으로의 또 하나의 과제는 산학협동의 활성화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산학협동이란 유명무실하다고 산업체에서 학교로 자리바꿈을 한 후에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산업체에서 보는 교수들에 대한 시각은 우물안 개구리식으로 현실을 떠난 이론 탐구가들이요, 대학이 보는 기업은 돈벌기에만 급급할 뿐 기본을 갖출줄 모르는 장사꾼들의 집합이라는 사고방식이 대립되어 있는 한 기술자립을 위한 협력과 단함은 이루어질 수 없다. 사실 학자들은 권위의식과 함께 고지식한 순수 이론만을 전개할 뿐 세상 돌아가는 것 모르는 소리 많이들 해왔고, 기업가 역시 배워서 스스로 개척해보겠다는 정신보다 당장 필요한 개발기술만 걷네받고자 해왔는데 이는 반성되어야 한다.
 

정부의 실무 책임자와 기업의 관리자들이 전문서적을 읽고 교수와 연구원들이 해외 신제품 개발 동향과 기술추세를 이해할때 진지한 산학협동이 가능하고 비로소 기술자립을 위한 세부과제들이 뚜렷이 부각될 것이다. 기초 연구의 활성화는 정부, 산업체, 학교의 삼위일체가 필수요건이다.
 

미국을 포함한 세계의 강국들이 링위에 올라와 싸우자고 할 정도로 우리의 대한민국이 부강해졌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라 판단된다. 또한 이왕 피하지 못할 싸움이라면 차라리 자부심을 가지고 힘든 고통과 시련을 이겨나갈 실력을 쌓는데 노력에 노력을 다해보자. 어차피 예전과는 달리 힘으로 싸우던 시대는 지났고 우리의 머리도 우수하다고 긍지감을 느끼고 있는 요즈음 한번 부딪쳐 보는것이다. 기초연구를 토대로 정부의 주도하에 산업체와 연구기관 그리고 학교의 기술자들이 합심한다면 머지않아 우리도 기술자립국으로 나아설수 있을것 아닌가? 차라리 우리 국민은 위대하다는 점, 이 기회에 온세계에 또 한번 과시해 보고 싶은 욕심이다.

1987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이주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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