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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이순신 그리고 란체스터 법칙

명량, 이순신 그리고 란체스터 법칙

 

“三尺誓天山河動色 一揮掃蕩血染山河 삼척서천산하동색 일휘소탕혈염산하”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인다.)


개봉 17일 만에 누적관객 1400만 명을 돌파하며 한국 영화의 역사를 새로 쓴 영화 ‘명량’의 이순신 장군(최민식 분)은 뛰어난 리더십과 불굴의 용기로 수십 배의 적을 격파한다. 하지만 약세를 강세로 바꾸기 위해 지형을 살피고 신묘한 전략을 세운 과학적 사고력이 없었다면 명량은 오히려 비극적인 해전에 그쳤을 것이다.


전투 법칙 뒤집은 울돌목의 좁은 지형


본래 전투에는 ‘란체스터 법칙’이 통용된다. 영국 발명가 프레드릭 란체스터가 제1차 세계대전의 항공전 기록을 분석해 1916년에 발표한 전투 법칙이다. 이 공식에 따르면 공격자와 방어자 간의 상대적 힘을 계산할 수 있다. 그 중 란체스터 제2법칙에 따르면, 해상전이나 항공전 같이 수준이 높은 원거리 전투에서는 양측의 총 공격력은 병력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 동시에 여럿이 한 목표를 집중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해전은 란체스터 법칙이 가장 잘 통하는 무대다. 바다에는 숨거나 도망갈 곳이 없기 때문. 이 법칙을 명량해전에 대입해 보면, 조선과 일본의 공격력 차이는 132:1332=169:17689라고 볼 수 있다. 조선과 일본 해군의 공격력 차이는 압도적으로 벌어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법칙에는 전제가 필요하다. 전장에서 정면으로 충돌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쪽이 숨어 있다가 기습하거나 성벽 위아래에서 싸우는 공성전에서는 이 법칙이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전제가 성립되지 않는 방향으로 전투를 이끌면 수적 약세를 보완하거나 심지어 뒤집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아군 병력은 모으고 적의 병력은 분산시켜 전장에서 직접 맞붙는 병력을 비슷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맞아 준비한 것은 바로 이런 전략이었다.


9월 15일, 전투가 임박했음을 안 이순신 장군은 진영을 벽파진에서 울돌목의 우수영으로 옮겼다. 적은 수다. 그 중 란체스터 제2법칙에 따르면, 해상전이나 항공전 같이 수준이 높은 원거리 전투에서는 양측의 총 공격력은 병력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 동시에 여럿이 한 목표를 집중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해전은 란체스터 법칙이 가장 잘 통하는 무대다. 바다에는 숨거나 도망갈 곳이 없기 때문. 이 법칙을 명량해전에 대입해 보면, 조선과 일본의 공격력 차이는 132:1332=169:17689라고 볼 수 있다. 조선과 일본 해군의 공격력 차이는 압도적으로 벌어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법칙에는 전제가 필요하다. 전장에서 정면으로 충돌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쪽이 숨어 있다가 기습하거나 성벽 위아래에서 싸우는 공성전에서는 이 법칙이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전제가 성립되지 않는 방향으로 전투를 이끌면 수적 약세를 보완하거나 심지어 뒤집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아군 병력은 모으고 적의 병력은 분산시켜 전장에서 직접 맞붙는 병력을 비슷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맞아 준비한 것은 바로 이런 전략이었다.


9월 15일, 전투가 임박했음을 안 이순신 장군은 진영을 벽파진에서 울돌목의 우수영으로 옮겼다. 적은 수의 함선으로 울돌목을 등지고 싸울 수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남 해남의 화원반도와 진도 사이의 해협인 울돌목은 길이가 약 1.5km, 폭이 가장 좁은 곳은 약 300m다. 한강 폭이 약 1km라는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좁은 바다인지 상상할 수 있다. 조선 수군의 판옥선은 좌우 폭이 약 12m로, 이 정도로 좁은 바다라면 이론적으로 약 10m씩 사이를 두고 일자 진을 펼칠 수 있었다. 폭이 약 4.8m로 작은 왜군의 세키부네도 한 번에 20척 이상은 들어오기 어려운 지형이었다. 즉 이순신 장군은 울돌목의 좁은 지형을 활용해 란체스터 법칙을 뒤집었다.


 
총 공격력이 병력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란체스터 제2법칙은 전장에서 정면으로 충돌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이순신 장군은 폭이 300m에 불과한 울돌목으로 진영을 옮겨 적의 병력을 분산시켜 전력의 차이를 극복하려 했다.



이순신은 과연 해류를 이용했을까?



이순신이 울돌목 해류를 귀신처럼 이용한 건 아냐


 영화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울돌목의 좁은 지형보다는 거친 파도를 살피는 것으로 묘사된다. 함께 물살을 살피던 노인은 곧 조수간만의 격차가 가장 큰 ‘대조기’라고 조언한다. 실제로 울돌목은 밀물과 썰물 때 바닷물이 한꺼번에 빠져 나가 조류의 흐름이 무척 빠르다. 바닷물이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가 너무 커 바다가 우는 것처럼 들린다고 울돌목이란 이름이 붙었을 정도. 명량은 울돌목의 한자 표기다. 영화 후반부 해전 장면에서는 조선 수군의 맹공격으로 깨진 왜선이 거친 소용돌이에 휩쓸려 그대로 가라앉는 모습이 다수 등장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순신 장군이 울돌목의 해류를 귀신같이 활용해 명량해전에서 승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2011년 국립해양조사원과 해군사관학교가 명량해전 당시의 조류현상을 추측해 발표한 결과를 보면, 왜군이 어란진에서 출정한 1597년 9월 16일 오전 6시 30분께, 남해안에서 서해안으로 밀물이 시작됐다. 오전 10시 10분께 해류의 속도는 시속 약 15km에 달했다. 다시 말해, 왜군도 빠른 밀물을 타고 손쉽게 서해로 진입하고자 했던 것이다. 조선 수군은 수적으로 열세였을 뿐만 아니라 역으로 밀려드는 조류와도 맞서 싸워야 했다. 만약 썰물이 시작되는 정오까지 이순신 장군이 버티지 못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거친 파도가 치는 울돌목은 조선 수군이나 왜군 가릴것 없이 위험한 사지(死地)였다. 영화 속에서 해전이 끝나갈 때쯤 이순신 장군이 탄 대장선이 거대한 회오리에 휩쓸렸다가 어민의 도움으로 빠져 나오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의 극적 재미를 위해 연출된 설정이지만, 거친 바다는 조선 수군에게도 그만큼 위압적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판옥선은 갑판 위에 갑판을 하나 더 올린 2층 구조에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이라, 거친 풍랑을 만나면 균형을 잃고 전복될 위험도 있었다.

 
판옥선 vs 세키부네



질적 우세로 수적 열세 극복


그렇다면 명량해전 승리는 정말 하늘이 도운 결과였을까. 란체스터 제2법칙에는 전제조건이 하나 더 있다. 병력 수를 제외한 나머지 조건이 동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으로, 화력이나 전술이 더 우세하면 수적 열세를 극복할 수 있다. 명량해전 당시 조선 수군은 왜군보다 배의 내구성, 화포 성능, 활솜씨가 뛰어났다. 다시 말해 원거리 전투에서 더 유리했다. 영화 ‘명량’은 극적 재미를 살리기 위해 해상 전투신을 갑판 위에서 병사가 직접 맞붙는 처절한 ‘백병전’으로 채웠지만, 실제 명량해전에서 백병전을 치른 것은 장수 ‘안위’의 배 한 척뿐이었다.


왜군의 주력 함대인 ‘세키부네’는 먼 거리를 항해해 침략하는 빠른 쾌속정으로 가벼운 삼나무로 만들어졌다. 반면 조선의 주력 함대인 판옥선은 한국산 소나무를 이용해 표면 두께를 12cm로 만든 단단한 배였다. 나무가 단단한 정도는 수분의 이동 통로인 물관이 기둥 속에 얼마나 촘촘하게 있는지에 따라 다르다. 물관이 빽빽할수록 무르다. 또한, 왜선은 쇠못을 썼기 때문에 충격을 받으면 못 구멍이 차츰 넓어져 물이 새고 쉽게 부패했다. 반면 판옥선은 나무못을 이용했는데, 물을 머금으면 나무못이 팽창해 이음새가 더 단단해졌다. 실제 명량해전에서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화에 묘사된 것처럼 배와 배가 부딪치는 충파 전술이 행해졌다면 판옥선이 충분히 세키부네를 깨뜨렸을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고려시대부터 적선에 충격을 줘 깨뜨리는 ‘당파(撞破)’전술이 있었는데, 임란 당시에는 판옥선과 거북선에 장착한 화포를 이용해 먼 거리에서 당파 전술을 행했다. 즉 배와 배가 직접 부딪치는 일은 별로 없었다.


판옥선에는 화포를 10문 이상 실었던 것과 달리, 세키부네에는 1문도 싣기 어려웠다. 이 차이도 란체스터 법칙을 역으로 이용하는 데 유효했다. 무거운 탄환을 수 백m 날려보내는 화포는 작용 반작용의 원리에 따라 큰 반동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화포에 충격을 덜 주도록 발사시 포신 전체가 뒤로 후퇴하게 만들어졌다(영화에서 조선 화포가 반동이 없는 것은 옥의 티다). 판옥선은 갑판이 평평하고 넓어서 반동을 감당할 수 있었지만, 세키부네는 갑판이 좁고 배의 내구성이 약해 화포를 쓰기 어려웠다.

 
영화 속 '화포 모아 쏘기' 과연 가능할까


그에 맞서려는 듯, 해적왕 구루지마의 부하 하루는 뛰어난 실력으로 대장선에 초요기를 세우려는 군인을 쏘아 맞추고 이순신 장군을 노린다. 당시 왜군이 이런 뛰어난 화기를 가졌다면, 이순신 장군도 란체스터 법칙을 뒤집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왜군의 주력 화기였던 조총의 유효 사정거리는 50~100m에 불과했다. 이보다 성능이 좋았던 유럽의 머스켓이 ‘적과 얼굴이 마주쳐 눈동자까지 보일 때 사격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전해지는 것을 보면 조총의 사정거리는 더 짧았을 것이다.


영화는 관객들의 마음에 진한 여운을 남기며 끝을 맺는다. 두려움에 질린 나머지 2마장 밖으로 물러난 부하들을 뒤로 한 채 대장선 홀로 수십 척의 왜적과 맞서 버텼던 전투 초반 수 시간은 역사속 현실에서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지만, 이순신 장군은 란체스터 법칙을 뒤엎는 또 다른 전술을 마련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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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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