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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역사를 재현하기 위해, 대형 건축물을 건설하기 위해, 교육효과를 살리기 위해 모형제작은 점점 과학화 산업화 되고 있다.

유명 박물관을 찾으면 수백~수천년 전의 유물들이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관람객들을 맞는다. 번쩍이는 왕관을 비롯한 장신구들, 각종 생활도구들, 그 시대에 살았던 짐승들의 뼈 등은 물론 생활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풍속까지도 재현시켜 놓았다. 이들은 대부분 모형(模型). 그중에는 발굴된 그대로의 원형유물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전시용은 원품을 그대로 닮게 만든 모형이다. 하지만 모형이라고 해서 원품과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부 장신구와 화석류들은 훼손된 부분이나 미발굴 부분을 정확히 고증해 옛모습을 더욱 완벽하게 재현시켜 놓은 것도 있다.

수억원대의 초대형모델 등장
 

레저산업의 발달로 수요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동물모형. 산성에 강하고 자외선에 변색되지 않는 새로운 소재(GFC-2R)로 만들어진다.
 

아직 체계적으로 이론화되지는 않았지만 모형은 대체적으로 플랜트모형 교육용모형 유물 및 화석모형 세가지 종류로 나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발전소나 대형건물 등을 축소시켜 놓은 플랜트(plant)모형이다. 이는 건설회사가 수주를 따내기 위해 제작하는 것이 우선의 목적이었지만, 최근에는 넓은 공간에 산재돼있는 모든 시설을 한눈에 파악하기 위한 필수품이 돼버렸다. 요즘 웬만한 연구소나 발전소 또는 기타 대형시설물을 방문하면 먼저 안내되는 곳이 바로 모형 앞이다.

플랜트모형 중 어떤 것은 제작하는데만 1년 이상씩 걸리는 초대형모형도 있다. 최근 일본에서 제작돼 화제가 된 원자력발전소 모형은 10여평 규모로 제작기간만 1년이 소요됐다. 이 모형은 각 부분이 실물과 거의 차이가 없는 고급(advanced)모형으로서 실제 건물 설계도를 갖고 만들어진다. 원자력발전소에 직접 가지 않아도 모형만으로 원자력발전에 관련된 어지간한 지식은 얻을 수 있는 교육적 효과도 대단하다. 원전모형의 판매가격은 수억원대.

선진국의 경우 이 분야는 모형부품들이 규격화돼 있어 주문만 하면 배달이 가능하다. 예를들어 지금 2mm파이프라든가 혹은 두께 1mm판 등으로 분류돼 이를 잘라 조립만 하면 곧바로 완성시킬 수 있을 정도. 그만큼 모형제작이 산업화돼 있다. 물론 특수한 부품은 직접 제작해야 하지만 모형 부품이 60% 가까이 부품화돼 있다는 것을 모형 수요가 엄청나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플랜트모형제작은 아직 수공업단계에 머물고 있다. 한국과학모형 기술연구소 소장인 조경철박사는 "우리도 최근 대형선박이라든가 쓰레기처리공장 모형을 만들어 외국에 수출할 정도에 이르렀지만 모형산업이라고 부르기는 아직 수준이 낮다"고 말하면서 "건물 설계도와 비슷한 정밀도를 갖는 제품의 모든 부품을 하나하나 사람의 손으로 깎아서 만들려면 대단한 고충이 따른다"고 덧붙였다.

플랜트모형과는 성격이 다른 모형종류 중 대량생산이 가능한 것이 교육용모형이다. 인체의 기능을 모형화한 것이 중심인데 초·중·고등학교의 부교재로 주로 쓰인다. 이중 정밀도를 더욱 높인 것은 의과대학의 교육자료로 활용된다. 특히 해부학에서는 인체모형이 필수적. 이들 모형은 금형을 이용한 기본틀을 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덧칠(외장)이 생명이다. 신경회로나 피의 흐름을 색감으로 표시하려면 뛰어난 색채감각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미술을 전공한 전문가들의 참여가 요망된다.

교육용 모형은 조립분해가 자유로와야 하며, 전시용과는 달리 직접 사람의 손이 자주 닿기 때문에 소재선택이 중요하다.
 

인체모형은 주로 교육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밀랍에서 신소재로

모형소재의 고전은 밀랍류(파라핀계통)와 나무 또는 종이를 물에 풀어서 반죽한 종이찰흙류. 밀랍은 최근까지도 사람모형을 만드는데 사용되지만(미국 헐리웃의 배우박물관) 이것으로 교육용 모형을 대량생산하기는 적합지 않다. 이를 대체한 것이 합성수지나 깨지기 쉬워 모형소재로 장수하지 못했다. 최근에 개발된 것이 잘 깨지지 않고 조형성이 좋은 FRP. 공공장소나 레저시설 백화점 등에 설치된 인공바위 등은 모두 FRP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FRP는 화재위험성이 많고 산성에 약해 산성비 등을 맞으면 변색하며 자외선에도 약하다. 오랜기간 모형제작에 전념해온 대성실업 장재호사장은 "요즘 모형은 단순한 전시물에서 밖으로 나와 관람객들과 같이 호흡해야 하기 때문에 고강도는 물론 산성에 강하고 고열(1천℃이상)에도 녹지않으며 자외선에 변색되지 않는 새로운 소재를 만들어 쓰고 있다"고 밝혔다. 유리섬유 시멘트 세라믹을 합성해 만든 이 소재(GFC-2R)는, 자연미를 내는데 FRP보다 월등하다는 설명. 화석이나 유물모형은 돌이나 뼈의 질감을 자연스럽게 표출해야 하는데, FRP의 기름성분 때문에 덧칠색이 소재속으로 침투하지 못해 질감을 내는데 적당치 못하다. 반면에 GFC-2R은 외장염료가 소재속으로 스며들어 다양한 색감과 함께 자연스러움을 표현해준다.

국내에서는 화석이나 유물모형제작이 그다지 활성화되지 못했으나 최근 박물관 과학관이 늘어나고 각종 유물전시회 등이 자주 개최됨에 따라 점차 활기를 띠고 있다. 이 분야는 전문학자들의 자문을 받는 것이 중요하고 제작자들의 조형감각이 뛰어나야 한다. 특히 대부분의 화석이 완전하게 발견되지 않고 부분적으로 발견되기 때문에, 일부를 갖고 전체를 제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최근에 개최된 공룡전은 아주 간단한 몇가지 화석을 갖고 몇 m짜리 거대모형을 만든 대표적인 예다.

모형은 옛모습을 재현한다든가 또는 실물을 축소하는데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시켜내는데 중간단계로 활용할 수 있다. 처음부터 완벽한 설계도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초창기의 아이디어가 3차원 1단계모형으로 인간의 눈에 보일 때 비로서 더욱 발전된 아이디어가 가능하다.

앞으로 모형제작은 대규모 레저시설과 연결되면서 산업화될 가능성이 많다. 이처럼 모형제작이 산업화되고 질적으로 한단계 발전하려면 모형전문제작자가 대량으로 배출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전문대학에서도 모형이론에 관한 강의조차 개설되고 있지 못한 상태. 또한 제작자들이 자긍심을 갖고 모형을 창조한다는 자세를 갖지 못하고 스스로를 단순한 기능인으로 생각하는 것도 모형제작의 발전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모형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원시사회에서 맹수들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조각들, 인간의 위엄을 돋보이기 위해 치장한 장신구들, 피라밋을 건설하기 위한 소형구조물 등은 모형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앞으로 모형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보다 인간의 기호에 맞는 대형건축물을 제작하기 위해, 과거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모형은 한층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모형론 모형제작론 모형문화론 등의 이론적 접근이 필요한 때다.

1990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지재만 기자
  • 김두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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