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아줄기세포는 우리 몸의 어떤 세포로든 분화할 수 있는 발달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성체에 있는 줄기세포들보다 발달 잠재력이 높은 셈인데요.
하지만 배아줄기세포를 사용하는 데에는 항상 생명윤리 문제가 따라다닙니다. 발달을 시작한 지 5~7일 된 배아에서 세포를 꺼내 실험실에서 배양시킨 것이 배아줄기세포입니다. 세포를 채취하고 나면 배아는 결국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합니다.
생명의 시작을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시각이 다르지만, 미성숙 배아 역시 생명으로 보는 사람들은 이것이 윤리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미국 조지 부시 전(前) 대통령은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연구에 정부자금을 지원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발달 잠재력 높이는 ‘유전자 레시피’
그런데 2006년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弥) 일본 교토대 교수가 이런 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논문을 생명과학 학술지 ‘셀’에 발표합니다(doi:10.1016/j.cell.2006.07.024). 이미 분화한 세포를 역분화 방법을 통해 배아줄기세포와 비슷한 발달 잠재력을 가진 세포로 만드는 논문이었습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저도 ‘아, 이런 방법이 있을 수 있구나’ 하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야마나카 교수팀은 먼저 배아줄기세포가 발달 잠재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유전자 24개를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이 유전자들을 이미 분화한 피부세포에 넣어 발현시켰습니다. 처음에는 24개의 유전자를 모두 발현시켜보고, 그 이후에는 유전자를 하나씩 빼면서 가장 적합한 조합을 찾아냈습니다.
결국 유전자 4개(Oct3/4, Sox2, c-Myc,Klf4)를 발현시키면 체세포들의 발달 잠재력이 회복돼 여러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위 그림).
연구팀은 역분화를 통해 만들어진 세포를 유도만능줄기세포(iPSC·Induced Pluripotent Stem Cell)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야마나카 교수팀은 다음 연구 프로젝트로 유도만능줄기세포를 배아에 삽입해 개체를 생성해 내기로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깁니다. 유도만능줄기세포가 자라 만들어진 개체의 20%에서 암세포가 발견된 겁니다! 역분화 유전자 4개 중 1개(c-Myc)가 종양 유전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역분화 과정 이후에 이 유전자가 다시 활성화되면서 암을 유발한 것입니다(doi:10.1038/nature05934).
다행히 후속연구에서 이 유전자를 빼거나, 다른 유전자 조합으로 역분화를 유도하는 해결 방법이 나왔습니다. 세포의 유전체에 유전자를 삽입하는 대신, RNA나 화학물질을 이용해 이미 분화된 세포를 유도만능줄기세포로 만드는 연구들도 발표됐습니다.
발달생물학과 재생생물학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야마나카 교수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 했습니다.
유도만능줄기세포, 의과학에서 핫한 이유?
앞서 유도만능줄기세포의 장점이 생명윤리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점이라고 했는데요. 또 하나의 큰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유도만능줄기세포의 유전물질이 역분화 이전 체세포의 유전물질과 같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특징이 중요할까요?
질병 중에는 특정 세포가 퇴화하거나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생기는 것들이 있습니다. 사고로 척수가 손상된다든지, 염증으로 간 기능이 저하된다든지, 유전자 돌연변이로 근육이 급격히 퇴화한다든지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겠는데요. 이때 병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문제가 되는 세포들을 정상 세포로 교체하는 방법입니다. 유도만능줄기세포는 바로 이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고로 특정 신경세포에 손상이 생긴 환자라면, 이 환자의 피부세포를 떼어다가 유도만능줄기세포를 만든 뒤, 다시 신경세포로 분화시켜 이식할 수 있습니다. 유도만능줄기세포 자체가 환자의 체세포에서 시작한 것이기에 환자가 이식거부반응을 일으킬 염려도 없죠.
자폐증 발달 과정을 밝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과학자들은 유도만능줄기세포가 분화하는 과정을 보면서 병의 원인을 밝힐 수 있습니다. 2015년에 발표된 플로라 바카리노 미국 예일대 교수팀의 자폐증 연구가 그중 하나입니다(doi:10.1016/j.cell.2015.06.034). 그전까지 자폐증은 뇌의 발달 과정 중에 이상이 생겨 발병하는 질환이라는 것 외에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발달 과정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고자 발달중인 인간 배아의 뇌를 살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죠.
바카리노 교수팀은 자폐증의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이용했습니다. 연구팀은 자폐증이 있는 아이의 가족을 섭외해, 자폐아와 그 아버지에게서 피부세포를 떼어냈습니다. 그리고는 각각을 유도만능줄기세포로 역분화시키고 다시 대뇌로 분화시켰습니다. 자폐아의 유도만능줄기세포와 정상인 아버지의 유도만능줄기세포가 실험실 배지에서 대뇌로 발달하는 과정을 비교한 겁니다.
바카리노 교수팀은 이를 통해 자폐아의 경우 ‘FOXG1’이라는 유전자가 더 많이 발현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또 이로 인해 자폐아의 유도만능줄기세포가 뇌로 발달할 때 억제성 신경세포가 상대적으로 더 많이 생긴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위 사진). 늘어난 억제성 신경세포가 어떻게 자폐증을 일으키는지는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유도만능줄기세포가 자폐증 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유도만능줄기세포는 신약 개발에도 쓰입니다. 특정 돌연변이가 병을 일으키는 경우, 이 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체세포를 떼어내 유도만능줄기세포를 만듭니다. 이것을 원하는 세포로 대량 분화시켜 1000가지가 넘는 신약 후보물질에 노출시켜 봅니다. 그중 세포가 반응하는 물질만 추려내면 환자 맞춤형 약이 탄생하는 거죠. 앞으로 유도만능줄기세포가 의과학 분야의 지형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