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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동통신 시장 잡아라" 불꽃다툼

요즘 세계의 내노라하는 통신회사들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방식의 통신을 구현하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저궤도 통신을 이용해 아무 제약없이 지구 어디에서나 누구와도 통신을 한다는 이 계획은 일면 황당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앞으로 10년 이내에 이들 계획은 모두 현실로 나타난다.

지금 세계는 새로운 '별들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80년대 스타워즈는 미국과 소련의 군사무기 개발경쟁이었지만, 21세기를 앞두고 벌어지는 두번째 스타워즈는 미래의 핵심 사회간접자본인 정보통신망을 확보하려는 다국적 기업들의 주도권 싸움이다.

이들 업체들은 수십-수백 개의 인공위성을 지구상공에 띄워 위성이동 통신망을 구축함으로써 전세계를 하나의 통신망으로 묶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지상에 광케이블을 이용한 정보고속도로(informationsuper highway)가 깔린다면 위성이동통신망은 지구상공을 거미줄처럼 엮는 '우주슈퍼하이웨이' 계획이라 부를 만하다.

'정보고속도로 건설' 선언으로 관심집중

이 사업에 가장 먼저 뛰어든 기업은 미국 모토로라사. 지난 90년 모토로라는 지상 8백 50㎞ 상공에 77개의 소형 통신위성을 띄워 지구촌을 하나의 통신망으로 만든다는 '이리듐 계획'을 발표했다. 이리듐(Ir)은 77번 원소기호의 이름으로, 위성을 77개 띄운다는 뜻에서 이리듐 계획이라 이름 붙여졌다.

모토로라는 전세계 휴대폰 시장을 석권할 만큼 이동통신분야에 강하고 반도체 컴퓨터 통신장비 등에도 다른 일류기업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모토로라가 이러한 계획을 발표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실현 가능성을 의심했다.

"전세계 위성 통신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한 인텔새트(국제 전기통신위성 기구)도 겨우 20여개의 인공위성을 운영하고 있고, 더구나 모토로라는 위성통신은 커녕 일반 통신 서비스를 해본 경험도 없지 않은가.'

많은 사람의 우려대로 한동안 이리듐 계획은 난항을 거듭했다. 미국과 유럽의 통신사업자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였고 기술적으로도 어려움이 뒤따랐다. 일본이 20여개 업체로 컨소시엄을 구성, 이리듐 계획에 투자하기로 하고 러시아와 중국이 위성발사 시장을 보고 이 계획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것이 모토로라에 다소 위안이 됐을 뿐이다.

그러나 지난 해 말을 고비로 이리듐 계획은 급진전되고 있다. 미국 클린턴 정부가 정보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통신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비슷한 프로젝트들이 잇따라 추진됨으로써 이리듐 계획을 보는 다른 기업들의 시선이 달라진 것이다.

이러한 기회를 틈 타 모토로라는 재빨리 이 사업을 추진할 이리듐사를 설립했고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등 세계 각국의 통신사업자들로 구성된 국제 컨소시엄을 통해 16억 달러의 사업비까지 모금했다. 우리나라도 지난 9월 한국이동통신이 7천만달러를 투자, 4.45%의 지분을 받고 위성관문국을 국내에 한군데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위성수는 통신기술의 발달로 원래 계획보다 11개 적은 66개로 최종 결정됐다. 오는 96년말 첫 위성을 발사하며 98년부터 서비스가 개시된다. 총투자 비용은 42억 달러로 3백 40㎏짜리 초소형 위성이 11개씩 줄지어 지구 양극을 축으로 한 6개의 궤도를 돌게 된다. 단말기 가격은 2천5백달러 수준이고 분당 통화요금은 3달러로, 일반 국제전화요금보다 약간 비싸다. 모토로라는 2010년 경 이리듐 가입자가 전세계적으로 5백만명 정도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리듐계획 개념도. 델타Ⅱ 로켓에 실려 저궤도로 발사된 위성이 지구 전역을 단일 통신권으로 묶는다. 정보고속도로 구축과 관련해 주목받고 있는 이 계획은 PDA 등과 같은 디지털 통신기기를 통해 인류의 커뮤니케이션 행태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유럽의 자존심 대결

글로벌 스타(Global Star)는 지난 3월 현대전자와 데이콤이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위성이동통신망 사업에 참여한다고 발표, 관심을 끌었던 사업이다. 미국 로럴 에어로스페이스사와 퀄컴사가 주도하는 이 사업은 총 18억 달러를 들여 1천3백90㎞ 상공에 48개의 위성을 발사할 예정인데, '글로벌'이란 이름과는 달리 98년 말 북미대륙을 대상으로 서비스가 시작된다.

새로운 디지털 이동통신방식인 CDMA(코드분할 다중접속) 기술을 개발한 퀄컴사가 주도한다는 점과 다른 프로젝트에 비해 단말기 가격 (7백50달러 이하)과 통신요금(분당 0.3달러)이 싸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리듐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인마르새트(국제해사위성기구)의 '프로젝트 21'. 인마르새트가 현재 10여개의 정지궤도 위성을 운용하고 있고 75개국의 주요 통신사업자들이 이 기구에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프로젝트보다 무게가 실려 있다.

더구나 이 기구는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두고 브리티시텔레콤(BT) 프랑스텔레콤(FT) 등 유럽의 주요 통신사업자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어 미국이 주도하는 이리듐 계획과 '자존심 대결'의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이리듐'과 '글로벌 스타'가 지상 7백-1천4백㎞의 저궤도를 이용하는데 비해 '프로젝트 21'은 고도 1만㎞ 상공을 도는 12개의 중궤도 위성을 이용한다. 이 위성들은 6개씩 2개의 궤도를 줄지어 지구상공을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돌게 된다.

한국 통신과 '프로젝트 21'사업을 협의하기 위해 지난 10월 방한한 자이싱 인마르새트 부사장은 "저궤도 방법은 단말기가 작아지고 위성 제작 및 발사에 비용이 적게 들지만 위성 숫자가 많아지고 위성의 수명이 짧은 것이 단점"이라며 "인마르새트는 정지궤도 위성 운영 경험이 많아 중궤도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휴대용 단말기는 현재 휴대폰과 무게나 크기가 비슷하다"며 '이리듐 계획'을 의식한 듯" 단말기의 가격은 1천달러를 넘지 않고 통화요금도 분당 2달러 이하로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프로젝트 21'의 서비스 시기는 21세기를 한달 앞둔 99년 12월로 잡혀있다.
 

현재 구상중인 저궤도 위성 이동통신 계획은 위성 이동통신망간의 호환성이 없어 각국의 유선 전화망 사업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에 분주하다.
 

빌게이츠의 참여 선언

소프트웨어 천재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과 미국 최대의 이동전화회사인 맥코사의 크레그 맥코 회장은 올해 초 "2001년까지 90억달러를 들여 8백40개의 저궤도 위성을 띄운 다음 영상회의 원격의료 등 멀티미디어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발표,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리듐'보다 무려 13배나 많은 위성을 띄운다는 이 계획이 만약 게이츠와 맥코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아무도 믿으려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 최대의 갑부인 게이츠와 마침 AT&T에 맥코사를 매각, 수십억 달러를 손에 쥔 맥코가 이를 추진하자 사람들은 '농담'이 아님을 알았다.

'텔레데식'이라 이름 붙여진 이 프로젝트는 음성전화보다 무선을 이용한 데이터 영상 소리 등 멀티미디어 정보교환에 주목적을 두고 있다. 그러나 위성의 수명이 10년 미만인 점을 감안할 때 8백여개의 위성을 유지하려면 매년 1백개의 위성을 쏘아야 하는 등 현재의 첨단기술로도 도저히 경제성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외에도 '오디세이' '엘립소' '아리아스' '오브 콤' 등 10여개의 위성이동통신계획들이 추진되고 있다.

'오디세이'는 미국의 위성제작사인 TRW사가 추진 중인 중궤도 위성통신망 사업. 13억 달러를 투자, 고도 1만㎞ 상공에 12개의 위성을 띄워 올리고 97년부터 북미대륙을 대상으로 음성전화 팩스 데이터통신 등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엘립소'는 미국 엘립새트사가 모두 24개의 타원형 위성을 올려 97년부터 서비스를 개시한다는 계획으로, 지난 90년에 제안됐다. '아리에스'도 저궤도에 50여개의 위성을 올려 98년부터 서비스한다는 계획이고, '오브콤'은 미국 오비탈사가 중심이 돼 26개의 위성을 띄울 예정이지만 서비스 개시시기를 1년도 안 남긴 지금까지 아무런 구체적 움직임이 없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이리듐'과 '프로젝트 21'이 가장 실현가능성이 높고 '글로벌 스타'와 '텔리데식'이 그 뒤를 쫒고 있는 형편이다.

지구가 한 통신망으로

위성이동통신망의 발상은 '소형 휴대폰으로 지구촌 어디서나 원하는 사람과 통화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위성이동통신은 현재의 이동전화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동전화는 통화할 수 있는 지역이 기지국(cell)이 설치된 도시지역으로 한정되지만 위성이동통신은 단말기에서 바로 위성으로 전파를 쏘아 통신이 이뤄지므로 '통화불능지역'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사막이나 밀림, 바다 한가운데, 북극 남극 히말라야 등 오지에서도 휴대용 전화기 하나만 있으면 지구 어디 와도 통화할 수 있다.

또 지구 전체가 하나의 통신망으로 연결돼 국내에서 사용하던 이동전화기를 외국에 들고 가서 쓸 수 있고, 전세계가 하나의 전화번호체계를 갖춰 국가별 전화번호를 누를 필요없이 단말기 번호만 누르면 그 사람이 어느 나라에 있더라도 통화가 가능하다.

위성이동통신망을 이용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아프리카 밀림에서 탐험중인 A씨가 서울에 있는 가족과 통화한다고 가정하자. 그는 우선 주머니 속에 넣어둔 휴대용 전화기를 꺼내 고국에 있는 집 전화번호를 누른다. 그러면 이 휴대폰이 아프리카 상공에 있는 위성에 전파를 쏘고 이 전파는 위성간 통신으로 한국 상공의 위성까지 전달된다. 이어서 한국 상공의 위성은 이 전파를 지상관문국으로 내려 보내고 여기서 한국통신의 공중 전화망(PSDN)에 연결된다.

여기서부터는 전화국의 교환기가 A씨 가족이 살고 있는 서울 전화번호를 찾아 A씨가 가족과 통화를 나눌 수 있도록 연결해준다. 서울의 가족이 A씨에게 전화를 걸 때는 이 과정의 역순으로 전파가 진행된다. 이 모든 과정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휴대용 전화기는 항상 전파를 쏘아 자신의 위치를 상공에 떠있는 위성에게 알려준다. 언제 누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위성이동통신망을 이용하면 사용자의 위치를 추적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동전화로 컴퓨터통신을 하거나 자료를 주고받을 수 있고 영상회의 원격 의료진단 등 멀티미디어 서비스도 위성이동통신망을 통해 가능하다.

현재의 통신위성보다 고도가 낮은 저궤도나 중궤도 위성을 이용하므로 국제 통화시 통화품질이 좋아진다. 정지궤도 위성의 고도는 3만6천㎞. 아무리 빠른 전파라도 이 위성까지 갔다 오려면 0.2초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국제 전화시 상대방이 말한 후 0.2초 후에 이쪽에서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이것은 통화지연이라고 하는데, 위성이동통신은 고도가 낮아 이러한 통화지연이 없다.
 

● 위성이동통신망 사업현황
 

통신산업 규제 무의미

98년경 위성이동통신망들이 구축돼 서비스에 들어갈 무렵 이들 통신망들은 각국의 유선전화망과 접속해야 하기 때문에 한차례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위성이동통신망이 아무리 잘 갖춰지더라도 일반 전화가입자와 통화가 안된다면 누가 비싼 돈을 들여 이 통신망에 가입하겠는가. 그래서 업체들로서는 필사적으로 각국의 유선전화 사업자들과 제휴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각국의 주요 유선통신사업자들이 참여한 '프로젝트 21'이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

유선 전화망은 위성이동통신망과 연결되지만 위성이동통신망끼리는 서로 호환성이 없다. 가령 이리듐 가입자와 프로젝트 21 가입자 간에는 통신이 불가능하다. '지구촌을 하나로'라는 구호 아래 시작된 위성이동통신망이 자기들끼리는 서로 통화할 수 없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전문가들은 위성이동통신망 가입자수가 2010년경까지는 극히 제한적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통신요금이 현재의 국제전화요금과 비슷한 분당 2백-2천5백원이기 때문에 해외출장이 잦은 사람들이 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통신기술에서 월등한 경쟁력을 가진 미국 기업들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어 '통신제국주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80년대 스타워즈는 미국과 소련의 대결구도로 진행됐지만 90년대 스타워즈는 미국 통신기업들간의 세계시장 쟁탈전이 될 것"이란 지적이다.

위성 이동통신망이 완성되면 각국의 통신산업 규제가 사실상 무너져 현재 진행중인 통신 개방 협상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외국인이 휴대용 전화기를 국내에 들고 오는 것을 막을 수도 없고 위성 이동통신사업자들이 위성으로 통신서비스를 하는 것도 무조건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국내 업체들은 한국 이동통신이 이리듐 계획에, 데이콤과 현대전자가 글로벌 스타에 각각 참여했고, 한국통신이 프로젝트 21에 참여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투자조건을 인마르새트와 협의중이다.

정부는 애초 "유력한 위성이동통신사업에 국내업체들의 참여를 유도한다"는 방침을 정했다가 뚜렷한 이유없이 민간업체들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기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었다. 이에 대해 체신부는 "국내 통신사업자들의 위성 이동통신망에 대한 지분 참여는 각자 판단에 맡기지만 이들 통신망의 국내 서비스는 98년 이후 허용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994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김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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