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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_ 우주의 종말은 뜨거울까, 차가울까?

노스트라다무스? 마야 달력? 휴거? 이런 식의 종말론이 종종 세상을 휩쓸고 지나간다. 전부 의미 없는 이야기다. 21세기 인류답게 사고의 규모를 키워보자. 진정한 종말은 이 광대한 우주의 끝이다. 그리고 그건 바로 암흑에너지에 달려 있다.


거의 2000년 동안 서구 과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가 영원불멸하다고 생각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거의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아인슈타인도 우주가 팽창하거나 수축하지 않도록, 즉 시작과 끝이 없도록 우주상수를 도입했다. 프레드 호일은 우주 팽창이 발견된 뒤에도 우주가 계속 정상 상태를 유지한다는 이론을 고수했다. 그러기 위해서 우주가 팽창해 물질이 희박해진 만큼 물질이 저절로 생겨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우주가 영원히 지금 상태를 유지한다고 생각했던 시절에도 과학적으로 따져본 종말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었다. 이른바 ‘열적 죽음’이다. 닫힌 계에서는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전 우주에 걸쳐 열적으로 평형상태가 이뤄지면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안정한 상태가 된다. 여기서는 더 이상 아무런 활동이 생길 수 없으며 그건 곧 종말이라는 소리다.

쉽게 생각하면 이렇다. 똑같은 양의 0℃인 물과 100℃인 물을 섞으면 얼마 뒤 전체 물이 50℃가 된다. 열이 전달되면서 평형 상태가 된 것이다. 50℃의 물을 가만히 놓아둔다고 해서 0℃의 물과 100℃의 물로 반씩 나뉘는 일은 사실상 없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이런 일은 우주 전체에서 일어난다. 연료를 다 쓴 별은 주위에 열을 전달하지 못하고 똑같은 온도로 식어간다. 그러다 결국 우주의 모든 물질이 똑같은 온도로 평형 상태를 이루는 것이다. 에너지 전달이 전혀 이뤄지지 않으므로 생명 유지는 물론 어떤 활동도 할 수 없다.

영원불멸한 우주에서도 이처럼 종말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면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왜 아직 열적 죽음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우주가 영원하다면 과거이전에도 우주는 무한한 시간동안 지금처럼 있었던 것이다. 무한은 열적 죽음이 일어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런데 우주는 왜 아직 멀쩡한 걸까. 이것이 바로 열적 죽음의 패러독스다.


가속팽창으로 밀려난 빅크런치

이 패러독스는 빅뱅 이론이 등장하면서 의미를 잃는다. 우주에도 엄연히 시작이 있었던 것이다. 시작이 있으니 끝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훨씬 더 자연스러워졌다. 게다가 한 점에서 시작한 우주가 꾸준히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우주가 변하는 존재가 됐으니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종말도 달라질 가능성이 생겼다.

우주의 종말은 수축하느냐 팽창하느냐의 줄다리기에 달려 있다. 그건 곧 물질과 암흑물질이 발휘하는 중력과 암흑에너지가 유발하는 우주팽창의 싸움이다. 우주에서 물질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5%로 95%의 보이지 않는 존재가 우주의 운명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는 셈이다.

여기서 몇 가지 시나리오가 나온다. 첫 번째는 ‘빅크런치(BigCrunch)’다. 중력의 힘이 우주팽창을 저지할 정도로 크다면 팽창 속도는 점점 줄어들다가 멈춘 뒤 우주가 다시 수축하게 된다. 빅뱅 이후의 과정을 거꾸로 돌린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모습은 다르다. 초기 우주는 모든 게 고르게 퍼져 있었지만, 수축하는 우주는 중력에 의해 수축한 물질이 군데군데 퍼져 있을 것이다.

우주가 점점 수축하면서 서로 가까워진 물질은 서로 합쳐져 블랙홀이 되고, 이들 블랙홀도 서로 합쳐져 하나의 커다란 블랙홀을 만든다. 결국 하나의 점으로 수축하면서 종말을 맞는다는 것이다. 플랑크 길이보다 작게 수축한 우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현재 물리학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다만 한 점으로 수축한 뒤에 여기서 다시 빅뱅이 일어나 우주가 새로 생긴다는 이론도 있다. 이 경우 우주는 빅뱅과 빅크런치를 주기적으로 반복하게 된다. 매번 새로운 우주가 태어난다면 열적 죽음도 피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의 관측 결과에 따르면, 줄다리기에서 이기고 있는 건 암흑에너지다. 우주의 팽창 속도는 줄어들기는커녕 거꾸로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우주가 다시 한 점으로 수축해 종말을 맞는다는 ‘빅크런치’ 이론은 종말 시나리오에서 일단 탈락이다. ‘일단’이라는 단서를 붙인 건 현재 암흑에너지의 성질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팽창이 중력을 이긴다

우주가 가속팽창하고 있음이 밝혀졌으니 이제 우주가 앞으로 계속 팽창할 경우 어떻게 종말을 맞이할지 생각해 보자. 우주가 영원히 팽창할 경우에 대한 시나리오는 이미 1970년대에 나왔다.

우주가 팽창하면서 물질과 물질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끝내는 절대 0도에 가깝게 식어 버린다. 그래서 이 시나리오를 ‘빅프리즈(Big Freeze)’ 또는 ‘빅칠(Big Chill)’이라고 부른다. 현재 과학자들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동의하고 있는 시나리오가 바로 이것이다. 인류가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다면 갈수록 희한한 현상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국지적인 규모에서 시작하자. 암흑에너지는 우주를 팽창시키고 은하를 서로 멀리 떨어뜨리지만, 이미 가까이 있는 은하단을 흩뜨려 놓을 정도는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30억~40억 년이 지나면 우리은하와 안드로메다은하는 서로 충돌해 하나의 은하가 된다. 이 은하를 ‘밀코메다(MILKy way +andrOMEDA)’ 또는 ‘밀크로메다’라고 부른다.

이쯤이면 태양이 적색거성으로 부풀어 올라 지구는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워져 있거나 태양에 끌려 들어가 소멸했을 것이다. 은하가 충돌해도 태양은 다른 별과 충돌하지 않은 채 좀 더 목숨을 부지할 가능성이 높다. 태양의 크기에 비해 태양과 다른별 사이의 공간이 훨씬 더 넓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80억 년 뒤 태양은 모든 연료를 소모하고 붕괴해 백색왜성으로 변한다. 그로부터 수백억 년이 더 지나면 백색왜성도 주변의 온도와 똑같이 식어버려 빛을 내보내지 못한다. 이를 흑색왜성이라고 한다. 흑색왜성이 생기는 데는 수백억 년이 걸리기 때문에 나이가 138억 년에 불과한 우주에는 아직 흑색왜성이 없다.

우리은하와 안드로메다은하(이제는 밀코메다은하), 그리고 몇 개의 은하가 포함된 국부은하군 정도의 규모에서는 아직 암흑에너지보다 중력의 영향이 크다. 따라서 여기에 속한 은하는 서로 가까워지다가 점차 하나의 거대한 은하로 합쳐진다. 중력보다 우주팽창의 영향을 크게 받는 먼 은하들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멀어진다.


블랙홀마저 증발하다

이때까지 아직 인류가 남아 있다면 우리는 점점 어두워지는 우주를 보게 될 것이다. 다른 은하가 멀어지면서 하나둘씩 점차 우리 시야에서 사라진다. 급기야는 우리가 속한 은하 외부의 은하가 전혀 보이지 않게 된다. 우주는 훨씬 더 넓어졌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바깥이 보이지 않는 고립된 섬우주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100조 년 정도 지나면 더는 우주에서 별이 태어나지 않는다. 연료가 모두 떨어지기 때문이다. 별이 빛을 발하지 않으면서 우주는 극도로 어두워진다. 중성자별과 흑색왜성, 갈색왜성, 살아남은 행성 등은 우주를 떠돌아다니다 서로 중력의 영향을 주고받아 은하를 탈출하기도 한다. 이렇게 탈출한 천체는 막막한 우주를 하염없이 떠돌아다니며, 은하에 남아 있는 천체는 점차 블랙홀로 끌려 들어간다.

우주를 홀로 떠돌아다니는 바위덩어리라면 우주가 끝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천체를 이루는 물질 역시 영원하지는 않다. 과학자들은 양성자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오랜시간이 걸리면 붕괴할 수 있다고 추측한다. 워낙 드물게 일어나는 현상이라 현재로서는 정확한 평균 수명을 1028~1034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어쨌든 블랙홀에 끌려 들어가지 않은 물질도 결국에는 서서히 증발해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러면 이제 블랙홀이 남는다. 한동안 우주는 블랙홀이 지배하게 된다. 그러나 블랙홀도 영원하지는 않다. 호킹 복사를 통해 서서히 에너지를 방출하며 증발한다. 무거운 블랙홀일수록 증발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블랙홀이 모두 증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0100년. 그 뒤에 우주에 남는 것이라고는 드문드문 보이는 광자와 중성미자, 전자뿐이다.

이쯤 되면 우주의 종말이라고 볼 수 있을까. 우주에 있는 물질의 밀도는 거의 0에 가까워진다. 광자나 중성미자가 우주를 돌아다녀도 서로 마주칠 확률은 지극히 낮다. 열적 죽음과 마찬가지로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이 상태가 영원히 지속된다면 종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어떤 과학자들은 이 뒤에 빅립이나 새로운 빅뱅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급격한 파열로 죽는다

그런데 앞서도 말했듯이 우리는 암흑에너지의 성질을 잘 모른다. 암흑에너지의 크기가 앞으로 줄어들지 늘어날지 모르는 것이다. 우주가 지금처럼 팽창한다면 빅프리즈가 가장 그럴듯한 우주의 종말이겠지만, 무슨 조화에선지 갑자기 우주가 팽창을 멈추고 수축하지 않는다고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암흑에너지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커질 수도 있다. 2003년 미국 다트머스대 로버트 칼드웰 교수는 암흑에너지가 극단적인 음의 압력을 발휘한다면 우주가 급격히 팽창해 산산조각난다는 가설을 제안했다. 이른바 ‘빅립(Big Rip)’이다.

그는 이런 극단적인 형태의 암흑에너지를 유령에너지(PhantomEnergy)라고 불렀다. 암흑에너지가 갈수록 커진다면 우주의 팽창 속도는 현재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증가한다. 영원히 팽창해 차가운 죽음을 맞이한다는 시나리오에서는 은하단 같은 국지적인 규모에서 중력이 이겼지만, 이 경우에는 어림도 없다. 암흑에너지는 우주를 유한한 시간 동안 무한히 팽창시킬 것이고, 척력이 너무 강해 중력으로 묶여 있는 물질이 모두 떨어져 나온다. 전자기력과 강한 상호작용, 약한 상호작용까지 넘어서면서 분자, 원자, 양성자, 중성자도 모두 찢어 버린다.

그러면 우주의 종말은 앞당겨진다. 앞으로 약 200억 년 뒤면 우주는 아주 작은 단위로 찢어져 종말을 맞이한다. 종말 10억 년 전에는 은하단이 흩어진다. 빅립이 일어난다면 빅프리즈 때와는 달리 밀코메다 은하가 탄생하지 못한다. 이어서 6000만년 전에는 우리은하가, 3개월 전에는 태양계가, 30분 전에는 지구가 (아직 있다면) 산산이 흩어진다. 종말 10-19초 전에는 마침내 원자가 분해된다. 영원한 팽창보다는 시간도 덜 걸리고 화끈한 종말이다. 다행히 최근 관측한 결과로는 빅립은 일어날 가능성이 낮다.
 


우주에 정말 끝이 있을까?

지금까지 언급한 시나리오는 모두 추측에 불과하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의 시나리오는 먼 미래에 보기 좋게 빗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시나리오가 맞는지, 혹은 새로운 방식의 종말이 일어날지 충분히 오랫동안 살아남아서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 우리 중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심지어는 종말이 아예 없을 수도 있다. 만약 우주가 하나가 아니라면, 끝없이 새로운 우주가 태어난다면 종말이란 게 의미 없는 소리일 것이다. 안드레이 린데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제창한 ‘영원한 인플레이션’ 이론은 인플레이션(우주 초기의 급격한 팽창)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곳곳에서 계속 일어난다는 이론이다. 그 결과 우주가 주렁주렁 매달린 포도송이가 생겨난다.

어디선가는 종말을 맞이하는 우주가 있을 수 있고, 어디선가는 새로 태어나는 우주가 있을 수 있다. 이 전체가 우주라면 우리가 아는 우주가 끝장난다고 해서 우주의 종말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을까. 사실 먼 미래에 우주가 어떻게 종말을 맞이하든, 현재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사는 우주의 시작과 끝을 궁금해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감히 인간이 감당하기조차 어려운 규모의 우주를 끝없이 관측한 결과 빅뱅이라는 시작을 밝혀냈듯이, 오늘날 암흑에너지를 찾아 헤매는 과학자들이 우주 종말의 비밀을 속 시원히 밝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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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고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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