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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 잔뜩 부풀어 오른 풍선 수천 개가 두둥실 하늘을 날고 있다. 커다란 풍선 다발과 함께 나무로 지은 집도 함께 떠올랐다. 평생 위대한 모험을 하고 싶어 하는 칼 할아버지가 드디어 풍선 다발에 집을 매달고 하늘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지난 7월 29일에 개봉했던 애니메이션 ‘업’의 하이라이트이자 가장 즐거운 장면이다. 풍선에 매달려 하늘을 나는 일은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봤을 것이다.

아직도 풍선은 사람들에게 환상적인 꿈을 이뤄주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지난 2월 스페인에서 살고 있는 10대 청소년 4명은 교사와 함께 ‘우주 사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들은 지름이 2m나 되는 커다란 풍선을 헬륨 가스로 채운 다음, 디지털 카메라를 매달아 하늘에 띄웠다. 풍선은 고도 30km 정도의 성층권에 도착했고 결국 풍선을 이용해 지구 사진을 찍는 데 성공했다. 하늘을 나는 일 외에도 풍선으로 이룰 수 있는 꿈이 있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실제로 의학계에서는 풍선을 이용하는 수술이 이뤄지고 있다”며 “풍선만이 갖고 있는 특성 덕분에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풍선으로 변비 진단한다

풍선은 안에 물이나 바람을 넣으면 커지고 안에 들어갔던 물이나 바람을 다시 빼면 원래대로 작아진다. 공기가 잔뜩 들어간 풍선은 안에 들어 있는 기체 덕분에 계속 빵빵한 모습을 유지한다. 풍선 안에 들어간 기체 분자들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풍선 벽면에 부딪힌다.

기체 분자들이 모든 방향으로 같은 힘을 가하기 때문에 풍선은 전체적으로 팽팽해진다. 풍선을 난로 옆처럼 더운 장소에 두면 기체 분자들이 더 활발히 움직이고 풍선 벽면을 미는 압력도 커져 풍선이 커진다.



반대로 풍선을 냉장고처럼 온도가 낮은 장소에 두면 기체 분자가 느리게 움직이면서 풍선이 작아진다. 결국 풍선이 커졌다 작아졌다 할 수 있는 비결은 재료인 고무가 신축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풍선은 재질이 부드럽고 접촉면이 매끄러워 다루기 쉬우며 몸속에 넣었을 때 심하게 마찰을 가하지 않는다.

의료기구로 변신한 풍선은 질환의 진단에서부터 시술에 이르기까지 쓰임새가 다양하다. 예를 들어 풍선을 이용한 질환검사 가운데 풍선배출검사(BET)를 보자. 라텍스로 만들어진 풍선을 가느다란 관으로 직장에 넣어 배변기능장애(변비)를 진단하는 검사다. 환자는 자연스럽게 풍선을 배출할 수 있는데, 만약 3~5분이 지나도 풍선을 배출하지 못할 경우 배변기능장애로 판정받는다.

주저앉은 척추 세우는 비결은 풍선 카테터

풍선으로 질환을 진단할 뿐 아니라 수술도 할 수 있다. 풍선을 이용하는 수술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바로 ‘풍선척추성형술’이다. 척추를 이루는 뼈가 부러지거나 주저앉았을 때 빈 공간에 골 시멘트를 채워 척추를 원래 모습대로 세우는 치료법이다. 이 과정에서 골 시멘트가 들어갈 자리를 부풀어 오른 풍선으로 만드는 게 특징이다.

척추는 뇌와 함께 중추신경계를 구성하며 신경세포들이 모여 있는 척수를 둘러싸고 있다. 뼈가 일렬로 늘어선 척추에는 뼈가 몇 개나 있을까. 전문가들은 머리뼈와 등뼈 사이에 있는 납작한 목뼈(경추) 7개, 가슴 부분에 있고 등 쪽으로 볼록한 가슴뼈(흉추) 12개, 다른 척추 뼈에 비해 크고 무거운 허리등뼈(요추) 5개, 총 24개의 등뼈를 척추라고 부른다.

척추 뼈는 무척 단단하다. 하지만 교통사고처럼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거나 나이가 들면서 뼈의 밀도가 줄어들고 약해지는 골다공증이 생기면 부러지고 주저앉을 수 있다. 주저앉은 뼈를 세워 고정시키고 척추를 원래대로 만드는 시술에는 척추성형술이 있다. 주저앉거나 찌그러진 뼈 부분을 마취하고 2~3mm 두께의 바늘을 넣은 다음, 골 시멘트로 채우는 방법이다. 부러진 척추 뼈 하나를 치료하는데 20여 분밖에 걸리지 않고 통증이 없다.



하지만 가천의대 길병원 정형외과 전득수 교수는“척추뼈 내에 별도의 공간을 확보하지 않은 채 높은 압력을 가하며 골 시멘트를 넣기 때문에 골 시멘트가 척추 뼈 바깥으로 새어나갈 위험이 있다”며 “새어나간 골 시멘트가 신경이나 혈관으로 들어가면 신경이 손상되거나 혈관을 막아버리는 색전증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인천 적십자병원 정형외과 이긍배 박사는“풍선을 이용하는 풍선척추성형술은 골 시멘트가 척추 뼈 바깥으로 새어나가는 부작용을 줄인다”며 “철선을 통해 풍선을 넣어 주저앉은 뼈를 회복시킨 다음, 낮은 압력으로 골 시멘트를 삽입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풍선으로 뼈 안에 있는공간을 확실하게 넓힌 뒤 골 시멘트를 천천히 넣기 때문에 골 시멘트가 척추 바깥으로 새어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병원에서 몸속으로 풍선을 넣는 기구는 ‘풍선 카테터’라고 부른다. 식염수가 들어 있는 커다란 주사기에 기다란 플라스틱 빨대가 연결돼 있고 그 끝에 가는 대롱처럼 생긴 철선이 이어진다. 철선 끝에는 풍선이 달려 있는데, 평소에는 말려 접혀 있다가 주사기 피스톤을 천천히 누르면 풍선 안으로 식염수가 이동하면서 풍선이 점점 커진다. 풍선은 재질이 대개 실리콘이나 라텍스라, 주먹 크기나 그 이상까지 부풀려도 절대 터지지 않을 만큼 튼튼하다. 풍선이 몸속에서 그렇게 크게 늘어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몸속에서 풍선이 터지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풍선 카테터로 풍선을 넣어 주저앉은 뼈를 세우는 시술의 원리는 간단하다. X선 영상을 보면서 뼈가 주저앉은 자리에 철선을 넣은 다음, 철선 둘레에 쇠로 만든 얇은 빨대를 넣어 통로를 조금 넓혀준다. 이때 빨대 안에 들어있는 철선를 빼고 그 자리에 말려 접혀 있는 풍선이 달린 철선를 넣어준다.

풍선이 뼈 안에 있는 빈 공간에 자리를 잡으면 주사기를 이용해 풍선 안에 액체를 넣어 부풀려준다. 척추 뼈가 정상적인 크기와 모양으로 돌아올 때까지 풍선을 부풀린 다음, 풍선을 빼고 그 자리에 골 시멘트를 넣는다.

막힌 혈관 뚫거나 태아 분만도 도와

주저앉은 뼈를 세울 때만 풍선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풍선으로 좁아진 혈관을 넓혀주는 풍선혈관확장술도 일반 병원에서 풍선척추성형술만큼 많이 쓰인다. 혈관 안에서 비정상적으로 피가 뭉치거나 나이가 들면서 동맥경화가 진행되면 핏덩어리나 지방덩어리를 제거해야 한다.

특히 동맥경화는 나이가 들면서 동맥 안에 콜레스테롤 같은 지방덩어리가 끼면서 생기기 시작한다. 동맥 안에 쌓이는 지방덩어리 양이 많아지면 동맥 두께가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지고 피가 지나갈 수 있는 통로가 좁아진다.

동맥경화가 70% 정도 진행되면 다른 증상이 나타난다. 즉 뇌에서 동맥경화가 일어나면 혈관이 터지는 뇌출혈이 일어날 수 있고, 심장에서 동맥경화가 일어나면 심장에 피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아 통증(협심증)을 느끼거나 심하면 쇼크 상태(심근경색)에도 빠질 수 있다.

혈관을 확장시킬 때도 풍선 카테터를 이용한다. 일단 심혈관조영술로 혈관이 좁아진 위치와 지방덩어리가 쌓인 모양을 확인한다. 그 자리에 가느다란 철선를 넣어 자리를 잡고 풍선 카테터를 넣는다. 주사기 피스톤을 천천히 누르면서 혈관의 크기에 따라 mm 단위로 풍선을 부풀려 막힌 혈관을 넓힌다. 그 뒤 철로 만든 작은 그물(스텐트)을 설치하면 혈관을 확장한 대로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풍선혈관확장술에는 한계가 있다. 넓어진 혈관이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좁아지는 혈관재협착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혈관이 다시 좁아지는 이유는 풍선혈관확장술을 할 때 생긴 작은 상처에 세포가 증식하기 때문이다. 혈관재협착 증상에 현재까지 뚜렷한 치료제가 없다. 다행히 최근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이인규 교수팀은 ‘MB12066’이라는 물질을 넣으면 종양 억제 유전자인 p53이 활성화하면서 세포 증식을 억제해 혈관이 다시 막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교수는 “최대 90%까지 혈관재협착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쓸개즙이 간에서 만들어져 쓸개로 갈 때 지나가는 통로(담도)에 돌멩이(담석)가 생겼을 때도 풍선을 사용한다. 내시경으로 담석의 위치를 확인하고 풍선을 넣어 크게 부풀리면 담도가 넓어지면서 담석이 자연스럽게 십이지장으로 빠져나와 대변을 통해 배출된다. 풍선을 일정 기간 동안 몸속에 넣어 치료하는 경우도 있다. 분만예정일이 지났는데도 자궁이 수축하는 분만 징후가 없는 경우에도 풍선을 사용한다. 임산부에게 자궁을 수축시키는 약물을 먹이고 질 안에 풍선을 넣어 부풀리면 자궁 입구가 열리면서 태아의 분만을 유도할 수 있다.

어린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이나 이벤트를 화려하게 꾸미는 장식용으로만 생각됐던 풍선이 질환을 진단하는 역할부터 치료하는 역할까지 다양한 의학 용도로 쓰이고 있다. 앞으로도 사람 살리는 슈퍼맨, 풍선의 대활약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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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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