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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입은 어떻게 진화했나





사람의 입은 정교한 기계다. 입술, 이, 혀, 침샘, 구강, 인두(혀 뒤에서 식도 앞까지를 포함하는 부분)는 각각 세분화된 역할을 담당한다. 입을 벌려 음식물을 넣으면 혀가 움직여 이리저리 휘젓고 맛을 본다. 혀와 볼이 절묘하게 움직이며 음식물을 이 사이에 밀어 넣으면, 턱이 위아래로 움직여 부수고 자르고 씹는다. 다 씹고 나면 혀와 목이 움직이며 음식물을 위장으로 옮긴다.

다른 동물 역시 제 나름의 방법으로 입으로 먹이를 삼킨다. 많은 물고기는 물과 함께 먹이를 빨아들이며, 개미 핥기는 긴 혀에 개미를 묻혀 먹고, 하이에나는 강력한 턱으로 뼈까지 잘게 씹어 먹을 수 있으며, 뱀은 자기 몸통보다 굵은 먹이도 통째로 삼킨다.

동물의 입은 어떻게 이처럼 다양하게 변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턱, 입술, 이빨의 발달에 주목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중심으로 입이 지금의 모습으로 진화한 과정을 살펴보자.

1. 걸러 먹다

최초의 입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초기 척추동물의 입은 지금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모습과 달랐다. 턱과 이빨이 생기기 전, 입이란 게 몸에 뚫려 있는 구멍 수준이었던 시절 물속에서 살았던 원시 형태의 창고기나 멍게는 물을 받아들인 뒤 그 안에 있는 먹이를 걸러서 먹는 방법으로 생활했다. 이를 ‘여과섭식’이라고 한다. 섬모, 강모, 아가미 등을 이용해 먹이를 거르는 게 일반적이다. 멍게류는 대개 인두 표면에 열을 이뤄 나 있는 섬모를 이용한다. 어류는 아가미를 이용해 플랑크톤을 걸러 먹기도 한다.

가장 초기의 여과섭식 척추동물로는 캄브리아기 중기에 해당하는 캐나다 지층에서 화석이 발견된 피카이아를 들 수 있다. 이 동물은 몸을 따라 반복되는 근절(근육 섬유를 이루는 근원 섬유에 있는 마디)과 꼬리부터 몸 앞 3분의 1까지 오는 척삭(척수 아래로 뻗어 있는 구조)이 있어서 창고기와 비슷하다. 고생물학자들은 이 동물이 원시 어류와 구조가 가깝다고 여기고 있다.

턱이 생기기 전까지 어류는 여과섭식에 의존했다. 여과섭식으로 먹을 수 있는 먹이는 작고 느린 생물이었을 것이다. 더 잘 먹기 위해서는 더욱 강한 힘으로 물을 빨아들여야 했다. 고생대에 살았던 어류인 갑주어에 이르면 먹는 기능이 이전보다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갑주어는 커다란 근육성 인두를 사용해 먹이가 들어 있는 물을 더욱 세게 빨아들일 수 있었다. 여기에 대해 학자들의 의견은 둘로 나뉜다. 한쪽은 커다란 근육성 인두 덕분에 다른 무척추동물보다 빠른 속도로 먹이를 먹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자연히 더 많이 먹을 수 있었다. 다른 학자들은 갑주어 성체에서는 인두가 다른 동물을 잡아먹을 수 있는 기관으로 진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든 인두의 기능 변화가 갑주어의 초기 진화에 많이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2. 물어서 잡다

시간이 흐르자 입에는 혁신적인 변화가 생겨났다. 입을 위아래로 벌렸다 다물 수 있는 턱을 지닌 어류가 등장한 것이다. 턱은 먹이를 물 수 있었다. 입 안에 들어왔다가도 재빠르게 도망가던 먹이를 붙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들이 지닌 턱은 여과섭식과 단순 흡입만으로는 먹을 수 없었던 새로운 먹이를 안겨줬다. 초기 유악어류 화석으로는 극어류와 판피류를 들 수 있다. 턱과 쌍으로 이뤄진 지느러미는 이들을 나타내는 뚜렷한 특징이다. 고생대 후기까지 민물에서 살았던 클리마티우스는 대표적인 극어류다. 데본기에 번성했다가 빠르게 멸종한 판피류는 저서생활을 했다. 뱀과 비슷하게 생긴 레나니드, 체절로 된 가슴지느러미가 있는 안티아크스, 몸길이가 9m에 달하는 포식성 어류 던클리오스테우스가 대표적이다.

턱에는 이빨도 나타났다. 턱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어류의 입 주위에 있던 치판의 작은 돌기에서 이빨이 등장했다. 납작하고 서로 엇갈려 있는 이빨은 이전에 먹을 수 없었던 단단한 먹이도 먹을 수 있게 해줬다. 이빨은 먹이를 포획하는 새로운 방법을 생태계에 등장시킨 것이다.



이빨이 없었을 때는 먹잇감을 입 안에 넣어도 여전히 살아 있는 먹잇감이 몸부림을 치다가 도망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빨은 먹잇감을 자르거나 죽일 수 있었기 때문에 포식 활동의 효율성을 매우 높였다. 삼킨 먹잇감을 놓치지 않게 됐을 뿐만 아니라 조개처럼 껍데기로 싸여 있는 먹잇감도 이빨로 부순 뒤 안에 들어 있는 여린 조직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즉, 유악어류를 비롯한 턱을 가진 동물이 번성해 지금까지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는 결정적인 열쇠를 제공한 셈이다.

턱이 없는 어류인 무악어류는 점차 유악어류에게 자리를 내줬다. 현생 어류는 거의 모두 유악어류로, 움켜잡거나 찢거나 씹는 포식 행동을 할 수 있다. 현재 무악어류는 단 2종만이 살고 있다. 칠성장어와 먹장어다. 이들은 다른 물고기에 기생하거나 사체를 먹는 등 생태계에서 제한적인 지위만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턱의 기원은 무엇일까. 많은 학자들은 원시 동물의 여과섭식과 호흡을 담당했던 인두의 새궁(아가미를 이루는 뼈)이 턱으로 바뀌었다고 본다. 새궁은 양옆에 한 쌍씩 총 9쌍으로 돼 있고, 그 끝이 뒤를 향한 V 모양의 격자구조로 돼 있다. 이 중 앞에 있는 1, 2, 3번째 새궁의 모양이 바뀌고 결합하면서 턱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새궁은 두개골의 일부가 됐다. 두 번째 새궁의 위쪽은 위턱으로, 아래쪽은 아래턱이 됐다. 세 번째 새궁은 두개골과 아래턱의 일부로 변했다.



3. 씹어 먹다

물속에서 유악어류가 번성하던 어느 날 일부 어류는 땅 위로 진출해 육상동물의 조상이 됐다. 이후 양서류, 파충류, 수궁류, 포유류로 이뤄지는 진화 과정에서 입은 더욱 향상된 기능을 지니게 됐다. 양서류에서 파충류까지는 먹이 전체나 먹이를 크게 잘라 삼키는 방식으로 먹는다. 반면 수궁류(현 포유류의 조상)에 이르면 크고 작은 어금니가 왕관 모양의 뾰족한 표면을 가지고 있어 이를 이용해 먹이를 잘게 부수거나 자를 수 있었다. 포유류로 진화하면서 먹는 동안 입 안에 들어 있는 음식물이 호흡을 방해하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혁신적인 변화도 나타났다. 대부분의 양서류과 육지 파충류는 비도개구(콧구멍에서 안쪽까지 이르는 부분)가 입의 앞쪽에 있어 입안에 먹이가 가득 차 있는 동안에는 호흡을 일시적으로 중단한다. 이와 달리 포유류는 산소 공급이 중단되면 금방 질식한다. 그래서 호흡이 멈추지 않도록 입 부위를 넘어 공기가 오고 갈 수 있도록 진화했다. 포유류로 진화하기 전에 나타난 또 하나의 커다란 변이가 바로 이빨의 교체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이빨의 추가와 교체는 성장기 동안 두개골과 이의 크기가 어떻게 변하는지와 관계가 있다. 섭취하는 먹이의 크기가 늘어나는 것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커다란 이빨의 수가 늘어나고 더불어 머리와 입까지 커지는 일련의 관계는 성장하는 동물에게 상당히 의미가 크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파충류는 크기가 작아 턱 가장자리를 따라 난 이빨의 크기가 작다. 이런 작은 이빨은 교대로 좀 더 큰 이빨로 바뀐다. 각각의 이빨이 완전해지고 턱 가장자리에 더욱 견고하게 고정되면서 인접해 있는 오래된 이빨은 약해지다가 결국 빠진다. 완전히 성숙한 파충류는 두개골이 이빨이 교체되기 시작했을 때의 10배로 커진다. 이렇게 주기적으로 이빨이 교체되는 것은 항상 적당한 크기의 단단한 이빨이 유지될 수 있게 해준다.

포유류는 다르다. 포유류는 신생아가 다른 동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고 머리가 훨씬 더 커지기 전까지는 어미의 젖을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에 이빨의 필요성이 거의 없다. 젖니가 모두 빠지고 젖을 뗀 유년기 포유류는 성체와 같은 먹이를 먹기 시작하는데, 이때쯤에는 두개골이 완전히 성장했을 때의 80%에 달한다. 따라서 젖니가 모두 영구치로 바뀌기 전까지 두개골은 조금만 성장하면 된다.

만약 파충류처럼 교차적인 방식으로 이빨이 계속 바뀌면 윗니와 아랫니가 정확히 맞물리지 않게 된다. 그래서 포유류는 한 벌 단위, 즉 위아래가 쌍으로 교체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앞니, 송곳니, 송곳니 뒤쪽의 젖니성 어금니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젖니성 어금니는 미성숙한 포유류에서는 씹는 기능을 하지만, 나중에 좀 더 안쪽에 성체용 어금니가 나기 시작하면 영구적인 앞어금니로 교체된다. 윗니와 아랫니가 정확히 맞물리는 포유류의 특징은 먹이를 더 잘게, 즉 효율적으로 씹어먹을 수 있게 해줬다.



4. 맞춤형 이빨을 갖다

입은 포유류가 신생대를 장악하면서 가장 빠른 변화를 겪은 곳이다. 단순한 형태의 이빨 하나만 있었던 파충류와 중생대의 공룡과는 매우 다른 양상이다. 신생대의 기후와 생태 환경은 중생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분화했다. 온도 차이도 커지고 식물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먹이도 다양하고 풍부해졌다. 포유류의 입 또한 여기에 맞춰 적응하고 변화한 것이다. 포유류에 이르면 입술도 매우 발달한 형태를 갖춘다. 입술은 부드럽고 유연하며 잘 접히는 표피와 결합조직으로 이뤄져 있는데, 유악어류, 양서류, 파충류의 입술은 보통 이빨 앞쪽에 작은 피부주름이 있는 수준이다. 거북류나 조류의 딱딱한 부리 같은 입술은 표피의 케라틴 성분이 쌓인 것이다. 사람은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릴 수 있어 물을 빨아 먹을 수 있지만, 개나 고양이만 해도 혀를 이용해 물을 떠먹어야 한다. 포유류는 턱의 끝부분에 있는 깊은 틈을 경계로 입술과 턱뼈가 완전히 분리돼 있다. 덕분에 안면 근육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겨 자유롭게 움직이는 게 가능해졌다. 일부 설치류는 입술이 어금니가 있는 곳까지 길게 늘어나 있어 먹이를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이처럼 고등 동물의 입은 원시 동물의 입과 매우 다르게 변했다. 특히 이빨의 다양성이 눈에 띈다. 철갑상어 같은 일부 경골어류, 일부 양서파충류, 개미핥기나 단공류 같은 일부 포유류처럼 이빨이 없는 종류를 제외하면 현재 번성하는 동물은 모두 용도에 잘 맞는 이빨을 갖고 있다. 황소처럼 풀을 씹어 먹어야 하는 포유류는 앞니와 송곳니가 별로 필요 없다. 큰 덩치 덕분에 천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입을 이용해 싸울 필요도 없다.

따라서 공격에 쓸 앞니와 송곳니는 서서히 사라졌고, 풀을 잘 씹는 데 필요한 앞어금니와 어금니의 크기가 커졌다. 구조도 잘 씹을 수 있도록 바뀌었다. 이와 반대로 개와 같은 육식 동물은 먹잇감을 공격하고 살을 잘라 먹어야 하기 때문에 송곳니가 크고 잘 발달했다.

매머드나 마스토돈 같은 포유류의 입은 형태가 더욱 특이하다. 앞니가 아주 크게 발달해 있다. 높이 쌓인 눈을 치우고 그 밑에 있는 풀을 먹기 때문에 앞니가 크게 진화한 것이다. 천적인 검치호가 달려들 때 막는 용도로도 쓸 수 있다. 바다코끼리의 송곳니는 교미기에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다른 수컷과 싸울 때 쓰는 무기다. 송곳니에 의해 깊은 상처를 입고 목숨을 잃는 경우도 허다할 정도로 처절한 전투를 벌이기도 한다. 영장류에 속하는 사람은 입의 형태가 매우 발달해 있어 다양한 기능을 담당한다. 앞으로 많이 튀어나와 있는 입은 직립 이족보행에 불리했기 때문에 입이 안쪽으로 들어왔다. 또한, 완벽한 잡식동물로서 다양한 먹이를 먹을 수 있도록 각 이빨이 서로 다르게 분화해 발달했다. 즉, 다른 포유류는 주로 먹는 먹잇감의 종류에 맞게 이빨이 발달했지만, 사람은 무엇이든 다 잘 먹을 수 있는 이빨을 발달시킨 것이다.
 

 
 
5. 먹는 게 다가 아니다

입이 단순히 먹는 데만 쓰였다면 입의 중요성은 지금보다 훨씬 작았을 것이다. 입은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기능인 호흡을 담당하는 기관이며, 타액과 같은 분비물을 내는 기관이기도 하다. 나아가 입을 이용해 새끼를 기를 수 있는 둥지를 만들거나 알을 더 잘 돌볼 수 있게 됐고, 교미하는 동안 상대방을 붙잡는 행동에 쓰는 등 좀 더 다양한 기능에 이용하기도 한다.

사람에 가까워질수록 입은 감정 상태를 더 잘 나타낸다. 입을 벌려 이빨을 드러내거나 소리를 내서 감정을 표현한다. 침팬지는 입을 내밀고 야유하는 모양을 만들기도 하는 등 다른 포유류가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입 모양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사람에 이르면 발성 기관과 혀가 발달해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

현재 지구에 살고 있는 수많은 척추동물이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었던 건 다양하게 진화한 입 덕분이다. 단순한 구멍에서 시작한 입은 이제 사람이 문명을 유지하는 데도 빼놓을 수 없는 기관이 됐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는 구절만큼 입에 걸맞은 말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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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임종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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