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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 우리는 왜 입으로 딴짓을 할까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의 입은 제각기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그 안에서도 종에 따라 입은 그야말로 제각각이다. 입이 이렇게 제각각으로 발달한 것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였다. 먹이를 더 효율적으로 먹을 수 있도록, 남들이 안 먹어서 찾기 쉬운 먹이를 먹을 수 있도록, 먹이 경쟁에서 상대를 물리칠 수 있도록 입은 동물의 먹고사니즘을 도왔다. 여기서 다루지 않은 곤충 같은 동물도 마찬가지다.

턱과 함께 생긴 이빨은 작은 동물도 큰 동물을 사냥할 수 있게 해줬다. 입으로 빨아들여야만 했던 시절에 작은 물고기는 큰 물고기의 밥이었다. 하지만 이빨이 생기면서 작은 물고기도 큰 물고기를 공격해 뜯어먹을 수송곳 같은 이빨은 무서운 무기다. 어떤 뱀은 이빨로 독을 주입할 수 있도록 해 더욱 강력한 무기로 만들었다.

포유류는 씹는 능력을 키웠다. 잘게 자른 먹이는 소화를 더욱 쉽게 해준다. 턱뼈는 작아지고 귀에 더 가까워졌다. 파충류의 아래턱이 직선이라면 포유류의 아래턱은 휘어 있다. 턱이 두개골에 상당 부분 융합되면서 포유류는 파충류처럼 입을 크게 벌리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뱀처럼 자기 몸통보다 굵은 먹이는 못 먹어도, 포유류는 다양하게 생긴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먹으라고 생긴 입이지만, 어디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게 돌아갈까. 동물, 특히 사람은 입으로 먹기만 하지 않는다. 어쩌면 입은 처음부터 다양하게 쓰도록 진화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쩌다 써 보니 우연히 잘 맞아떨어져서 다른 용도로 쓰는 걸지도 모른다. 이런 현상을 ‘굴절적응’이라고 한다. 진화든 굴절적응이든 우리가 입을 딴짓에 쓰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 딴짓은 우리의 삶에 대단히 중요하다.


1. 뚫린 입이니까 말을 한다​

“아아아~, 아아아~.”

타잔의 입에서 우렁찬 소리가 터져 나오면 밀림의 뭇 짐승이 타잔을 돕기 위해 달려온다. 젖먹이 아기가 빽빽거리는 소리를 내며 울면 엄마는 밥을 먹다가도 얼른 젖을 먹이려 달려온다. 야심한 시각에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려던 양상군자는 눈치 빠른 개가 짖는 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 도망간다.

소리를 내서 다른 사람(동물)의 행동에 변화를 준 건 바로 입이다. 동물이 입으로 하는 여러 일 중에서 먹는 걸 빼면 가장 중요한 건 소리다. 조류와 포유류는 대부분 입으로 소리를 내 서로 의사소통한다. 파충류는 성대가 발달되지 않아 제대로 된 소리를 내지 못한다. 개구리와 같은 일부 양서류는 번식기가 되면 울음소리를 낸다.

소리 마스터, 인간

입으로 소리를 낼 수 있는 건 입이 호흡도 담당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공기가 흐르는 통로를 좁혀서 드나드는 공기의 흐름을 압축하면 소리가 난다. 성대가 없어도 공기가 불규칙하게 진동하면서 내는 소리 정도는 낼 수 있다. 파충류도 쉿쉿거리는 소리를 낼 때가 있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소리를 낸다고 하려면 멀었다. 목소리라고 할 수 있는 소리를 내려면 성대가 발달해야 한다. 성대가 팽팽해지고 공기의 흐름이 성대를 진동시킬 정도로 강해지면, 목소리의 기본이 되는 주기적인 음파를 만들 수 있다. 주파수는 성대의 길이와 팽팽한 정도에 따라 다르다. 이 소리는 혀와 입술의 위치와 움직임에 따라 더욱 다양한 소리로 바뀐다.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달리 언어를 쓸 수 있는 건 이렇게 소리를 변형시키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사람이 쓰는 언어에서 찾을 수 있는 기본 음성은 100가지가 넘는다. 발성을 시작하는 타이밍이나 후두와 폐에 의해 변하는 억양, 혀와 입술의 조합과 움직이는 속도 등에 따라 음소가 다양하게 변한다. 때로는 다른 사람이나 동물의 울음소리, 심지어는 악기 소리까지 기가 막히게 흉내 내는 사람도 있다. 그야말로 소리의 달인이다.

덕분에 사람은 그 어느 동물보다도 정교한 소리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구관조처럼 구강 구조가 특이한 일부 동물이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낼 수는 있지만, 그 어느 동물도 사람처럼 복잡하고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언어를 갖고 있지 않다.
 
 
들숨은 짧게, 날숨은 길게

사람의 입에는 어떤 특징이 있어서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걸까. 유전자와 뇌의 변화 이외에 입의 해부학적인 변화도 언어 구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사람의 입은 가장 가까운 동물인 침팬지 같은 영장류와도 많이 다르다. 전부터 다른 영장류에게 사람의 언어를 가르쳐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다른 영장류는 언어에 쓰이는 발음을 상당수 책임지는 상부 기도를 정교하게 움직일 수 없었다.

소리의 종류뿐 아니라 속도도 다르다. 사람은 다른 영장류보다 더 빠르게 소리를 낼 수 있으며, 호흡 한 번에 여러 개의 소리를 낼 수 있다. 해부학적으로 보면 사람은 다른 영장류와 달리 후두에 기낭이 없다. 영장류는 보통 기낭에 공기를 들락거리게 하거나 입구를 진동시켜서 한 호흡에 낼 수 있는 소리를 조금 더 복잡하게 만든다. 사람은 기낭이 없는 대신 호흡을 더 정교하게 제어해 복잡한 소리를 낸다.

호흡의 길이를 제어하는 능력도 사람이 더 뛰어나다. 사람은 오로지 날숨에서만 말을 한다. 평소에는 들숨과 날숨의 길이가 비슷하지만, 말을 할 때는 들숨이 짧아지고 날숨이 평소의 7배 정도로 길어진다. 다른 영장류는 대부분 날숨의 길이를 기껏해야 2~3배 밖에 늘리지 못한다.
 
부드러운 혀와 입술로 만드는 소리

혀와 입술 역시 사람에게 언어 능력을 부여하는 핵심적인 기관이 다. 혀의 원래 용도는 입 안에 들어온 음식물을 뒤섞거나 움직여 삼키는 것이다. 포유류의 혀는 보통 납작하고 평평한 상태로 입 안에 수평으로 놓여 있다. 사람의 혀는 인두 깊숙한 곳, 후두에 있는 설골까지 길게 이어져 있는 굽은 모양이다. 즉, 입 안에 있는 수평 부분과 후두로 이어지는 수직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후두도 다른 영장류보다 낮다.

굽어 있는 혀는 턱의 움직임과 연동돼 폭넓은 소리를 낼 수 있게 해 준다. 혀 자체의 형태도 더 자유롭다. 사람은 혀의 길이나 두께를 조절할 수 있으며, 한 바퀴 꼬는 등의 행동도 할 수 있다. 그래서인가. 예부터 혀놀림을 조심하라고 했다. 입술의 역할도 뒤지지 않는다. 입술이 없으면 모음은 물론 ㅂ, ㅍ 같은 폐쇄음, f나 v 같은 마찰음을 제대로 낼 수 없다. 폐쇄음은 어느 언어에나 있는 소리기 때문에 입술은 현재 사람이 쓰는 언어에 필수적이다.

먹기 위해 생긴 입으로 다른 짓을 하게 된 덕분에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다른 고도의 문명을 이뤘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건 다른 동물과 조금 다르게 생긴 입이다.
 
2. 마음의 창은 눈이 아니라 입

앞서 먹는 것을 빼면 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말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만 말하면 입이 조금 섭섭해할지도 모르겠다. 입은 그것보다 더 바쁘게 산다. 평소 아무 소리를 내지 않을 때도 입은 모양을 가지고 말을 하기 때문이다. 표정 말이다.

흔히 눈을 일컬어 마음의 창이라고 한다. 눈빛 혹은 눈매를 보면 그 사람의 감정이 어떤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딘가 좀 마뜩찮다. 눈만 내놓고 입을 가린 중동 여인을 보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마나 알 수 있을까?

반대로 지나가는 아리따운 여인에게 눈빛으로 추파를 날려보자. 상대 여인은 자신이 유혹당하는 건지 긴가민가 할 것이다. 당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도 기껏해야 무시당하는 정도에서 그칠 것이다. 하지만 상대를 향해 혀를 내밀어 음란하게 입술을 핥아 보자. 미친놈 취급을 당하거나 경찰관을 영접할 가능성이 높다. 얼굴이 원빈급이라고 해도 별로 권하고 싶지는 않다.

입만 봐도 알 수 있다

 입은 눈보다도 더 마음의 창에 가깝다. 입은 사람의 표정을 가장 잘 만드는 신체 기관이다. 사람뿐 아니라 여러 동물도 입으로 감정을 나타낸다. 나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개가 있다면 굳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눈빛을 보지 않아도 녀석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침팬지 정도가 되면 입 모양으로 화난 모습과 즐거워하는 모습을 구분할 수 있다.

  입이 이처럼 다양한 표정을 나타내는 건 얼굴 피부 바로 밑에 있는 표정근육 덕분이다. 이런 ‘피부밑근육’은 동물에게는 몸 전체에 있지만, 사람에게는 거의 유일하게 얼굴에만 남아 있다. 표정근육은 얼굴 피부를 움직여 표정을 만드는데, 입꼬리올림근, 입꼬리내당김근, 입둘레근, 윗입술올림근, 아랫입술내림근, 윗입술콧방울올림근 등 입술을 움직이는 여러 개의 근육이 움직여 입 모양을 만든다. 입을 움직이는 근육은 눈과도 연결돼 있다. 입으로 어떤 표정을 지으면 연결된 근육이 움직이면서 눈 모양도 바뀐다.

김희진 연세대 치대 교수는 “이런 근육이 만드는 조합의 수는 매우 많으며 사람마다 근육의 위치나 변이, 세기가 제각기 달라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양쪽 입꼬리 옆에 있는 볼굴대를 보자. 볼굴대는 주요 근육 8개가 한 곳에 모여 단단해진 부위다. 김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의 절반 이상은 볼굴대가 두 입꼬리를 잇는 선 아래에 있다. 이런 유형은 웃을 때 큰광대근이 입꼬리를 위쪽과 옆쪽으로 잡아당겨 모나리자와 비슷한 미소를 보인다. 평소에는 입꼬리가 처져서 슬퍼 보인다.

표정이 아니더라도 입으로 하는 특정한 행동이 의사를 전달하기도 한다. 상대를 향해 혀를 쑥 내밀어 보이는 건 놀리는 행동이며 침을 뱉는 건 기분이 나쁘다는 뜻이거나 모욕하는 행동이다.


감정 표현은 눈보다 입

요즘에는 표정을 만들고 인식할 때 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연구도 속속 나오고 있다. 2004년 미국 스미스-케틀웰 눈연구소 연구팀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 ‘모나리자’에 약간 변형을 가한 뒤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표정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조사했다. 모나리자를 고른 건 기쁨도 슬픔도 아닌 모호한 표정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한 그림이기 때문이었다.표정의 변화를 가장 뚜렷하게 만든 건 입이었다. 눈에 변형을 가했을 때보다는 입에 변형을 가했을 때 표정 변화가 뚜렷했다. 입만 각각 슬픈 표정과 기쁜 표정일 뿐 눈은 똑같이 생긴 그림 두 개를 보여주고 눈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평가하라고 했을 때도 결과가 갈렸다. 양쪽 그림의 눈이 똑같았음에도, 대부분은 입이 슬픈 그림을 보고서는 눈이 슬퍼 보인다고, 입이 즐거운 그림을 보고서는 눈이 즐거워 보인다고 대답했다. 반대로 입을 똑같이 두고 눈만 바꿨을 때는 별 차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눈에서 느꼈다고 생각하는 감정은 사실 입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눈보다는 입이 모양을 바꾸기가 쉽고 그 결과도 훨씬 더 뚜렷하다. 만약 감정을 감추고 싶다면 선글라스보다는 마스크를 애용하자. 둘 다면 더 좋다. 물론 사람들이 당신을 슬슬 피하는 건 감수해야 한다(마스크에 선글라스,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 아닌가?).

2007년 일본 홋카이도대 연구팀은 마음의 창이 눈인지 입인지에 대한 동서양의 차이를 연구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일본이나 한국처럼 감정 표현을 억제하는 문화권에서는 타인의 감정을 해석할 때 눈에 좀 더 주목하고, 미국처럼 감정 표현에 적극적인 문화권에서는 입에 더 주목한다고 주장했다. 이모티콘의 예를 봐도,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웃음을 ^^, ^_^로 쓰는 반면, 미국에서는 :D 또는 :-)로 나타낸다. 일본의 헬로키티에 입이 없는 걸 생각해 보라.

표정과 관련된 입의 중요성이 문화권에 따라 차이가 나는 데에는 언어의 영향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김 교수는 “한국어보다는 영어를 말할 때 입이 움직이는 동작이 더 크다”며 “언어 특성상 입을 적게 움직이게 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코가 작아지면서 입술이 해방되다

이렇게 의사소통에서 표정이 중요해진 건 입, 특히 입술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된 덕분이다. 입술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건 표정뿐 아니라 언어 사용에도 매우 중요하다. 학자들은 그게 사람이 진화 과정에서 시각이 중요해지고 후각을 덜 필요로 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두 발로 걸으면서 낮에 활동하려면 주위를 잘 볼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냄새를 전처럼 잘 맡아야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다른 포유류에 있는 ‘젖은 코’가 사라지면서 후각과 관련된 기관이 작아졌다. 그 결과 그동안 억압받던 표정근육과 입술이 활개를 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진화하다 보니까 운 좋게 얻어걸린 셈이다. 하지만 덕분에 우리의 감정 표현은 더욱 다채로워졌다.

3. 입으로 하면 더 잘 느껴요

아름다운 여인이 눈앞에서 바나나를 먹고 있다. 탐스러운 바나나가 붉은 입술 사이로……. 내 안의 음란마귀가 깨어난 걸까. 사람이 바나나 먹는 게 뭐 그리 특이한 일이라고 야한 생각이 떠오른단 말인가. 아니다. 충분히 그럴 만하다. 바나나뿐만 아니라 오이나 메로나처럼 뭔가 길쭉한 것을 입 안에 넣는 동작은 성행위를 연상시킬 수 있다. 입은 섹스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기 때문이다.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면 더욱 확실해진다. 개그우먼 곽현화가 몸소 이를 보여주지 않았던가.

사람의 입술은 다른 영장류보다 두꺼우며 뒤집어져서 점막이 밖으로 드러나 있다. 그래서 다른 부위보다 접촉에 더 민감하다. 색깔도 붉어서 얼굴의 다른 부분에 비해 확연히 눈에 띈다. 성적으로 흥분하면 더욱 붉어지고 팽창한다. 게다가 빨갛고 도톰한 여성의 입술은 여성기의 모양을 떠올리게 한다. 혀는 또 어떤가. 어떤 동물보다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혀는 남성기를 상징한다. 살짝 벌린 입술 사이로 혀를 내밀어 핥는 동작은 노골적인 유혹의 표현이다.
우리는 왜 키스를 하는가

촉촉하고 따뜻한 입으로 하는 애무는 손가락보다 더 정교하고 부드럽다. 연인이나 부부는 보통 입술을 맞대고 부비는 키스로 애정을 확인한다. 키스는 최근에야 생겨난 애정 행위가 아니다. 성경에도 키스가 나온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75권에 실린 “낮에도 목을 맞대고 혓바닥을 빨았습니다”라는 기록을 보면 우리 조상들도 혀를 깊숙이 넣는 ‘프렌치 키스’를 즐겼음을 알 수 있다.

많은 학자들은 키스가 어미가 입으로 새끼에게 먹이를 먹여주던 행동에서 유래했다고 추측하고 있다. 침팬지도 그런 식으로 새끼를 먹이는 것으로 보아 사람의 조상도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 요즘 엄마들은 질색하겠지만,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이가 나지 않은 아이에게 어른이 밥을 대신 씹어서 먹였다.

어떤 과학자들은 키스가 짝짓기 상대를 선택하는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키스할 때 두 사람은 서로 침을 교환하고 상대의 냄새를 맡는다. 그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상대가 함께 지내며 아이를 기르기에 적합한 사람인지 판단한다는 것이다.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서 만났는데 막상 키스를 해 보니 느낌이 오지 않는다면 혹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한편으로는 과거 먹이를 채집할 때 빨갛게 잘 익은 과일에 끌리던 성향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성향이 성적 취향에 반영이 됐고, 그에 따라 성기와 입술이 빨갛게 진화했다는 것이다.
 
 
동물도 오럴섹스를 한다

이런 이유는 아직 가설일 뿐 사람이 키스를 하게 된 까닭은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키스를 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알고 있다. 일단 키스는 건강에 이롭다. 키스를 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의 농도가 낮아진다. 아드레날린 분비는 늘어나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혈압이 높아져 심혈관계 건강에 좋다. 연인이나 부부가 키스를 자주 하면 관계만족도가 높아지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진다는 연구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솔로 생활을 멀리하고 애인을 만들어 키스를 하는 게 낫다.

 폼페이에서 발견한 로마 벽화. 한 남성이 여성의 성기를 입으로 애무하는 모습이다.

키스에서 더 멀리 나가면 입을 성기와 직접 접촉하는 오럴섹스가 있다. 10월 중순 개봉한 영화 ‘러브레이스’는 1970년대 미국에서 개봉해 큰 화제를 일으킨 포르노 영화 ‘딥스로트’에 출연해 유명해진 배우 린다 러브레이스(아만드 사이프리드 분)를 다룬다. 딥스로트는 포르노 영화지만 미국 현대 대중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영화의 제목은 남성기를 목 깊숙한 곳까지 넣는 행위로, 이후 널리 유행하게 된 용어다.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워싱턴포스트의 편집장은 익명의 정보원을 딥스로트라고 불렀다.

하지만 오럴섹스 자체는 포르노가 유행시킨 게 아니라 오래전부터 있었던 성적 행위다. 심지어는 동물도 오럴섹스를 한다. 개나 늑대는 자기 성기를 핥기도 하며, 보노보 원숭이 같은 일부 영장류가 때때로 오럴섹스를 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2009년에는 과일 박쥐에 속하는 한 종이 오럴섹스를 한다는 연구도 발표됐다. 중국과 영국 공동연구팀은 이 박쥐가 교미 도중 암컷이 수컷의 성기를 핥는 모습을 관찰했다고 학술지 ‘플로스원’에 보고했다. 암컷이 핥았을 때는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교미 시간이 길었다.

연구팀은 이들이 오럴섹스를 하는 이유로 몇 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암컷의 침이 윤활유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성기를 자극해 강직도를 유지해 준다는 게 하나다. 그러면 교미 시간이 늘어나고 임신에 성공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다른 가설로는 침에 들어 있는 항균 성분이 성병 전염을 막는다는 게 있다.

 
오럴섹스가 임신에 도움될까

그렇다면 사람은 왜 오럴섹스를 하는 걸까. 올해 학술지 ‘진화심리학’에 실린 미국 오클랜드대 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오럴섹스는 남성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 여성이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명의 남성과 관계를 맺으면 정자 경쟁이 벌어진다. 이때 경쟁에게 이기기 위해 남성은 여성이 오르가슴을 더 잘 느낄 수 있도록 오럴섹스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여성이 성교 도중 오르가슴을 느끼면 자궁이 수축해 정자를 더 잘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정도 연구로는 아직 사람이 오럴섹스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어쩌면 문화적인 요인이 클 수도 있다. 그러나 동물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면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 생물학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설령 아무 이유가 없다 한들 이런 즐거움을 사람이 포기할 리 없지 않은가.
 

4. ○○ 대신 입


손발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처지가 된다면 어떨까. 상상만 해도 무서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굴의 의지로 감동 스토리를 들려주는 사람들이 있다. 손 대신 입에 붓을 물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내는 화가들이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평범한 사람을 뛰어넘는 노력을 했겠지만, 손 역할을 해준 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입은 그만큼 다재다능하다. 많은 동물은 입으로 물건이나 새끼를 나른다. 새는 투박한 부리를 가지고도 풀이나 진흙을 날라 둥지를 짓거나 벌레를 물어와 새끼를 먹인다. 의외로 정교하기도 하다. 늑대는 뼈도 부숴 먹을 정도로 턱힘이 세지만, 새끼를 나를 때는 상처 하나 내지 않는다. 힘 조절에 실패해서 주인을 세게 물었다가 얻어맞는 애완견도 많겠지만.
 
입은 뒀다 뭐 하려고

지구에 사는 동물은 무수히 많고 그만큼 입도 제각각이다. 심지어는 입을 쓰지 않고도 먹을 수 있는 녀석이 있다. 태평양 먹장어로, 척추동물 중에서는 유일하게 이런 재주를 선보이고 있다. 먹장어는 척추동물의 조상과 가까운 어류다. 칠성장어와 함께 현존하는 유일한 무악어류기도 하다.

지난 2011년 뉴질랜드 캔터베리대 연구팀은 먹장어가 피부와 아가미로 직접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다는 논문을 ‘영국왕립학회보B’에 발표했다. 먹장어가 먹이를 먹을 때 종종 시체 속으로 아예 몸을 파묻어 버린다는 데서 실마리를 얻었다.

연구팀은 태평양 먹장어의 피부 표본을 영양분이 풍부한 바닷물과 먹장어의 체액과 같은 성분의 액체 사이에 넣었다. 그러자 바닷물 속에 있는 아미노산이 피부를 통과했다. 보통 피부는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물질을 잘 통과시키지 않는다. 먹장어는 물에서 직접 영양분을 흡수하던 무척추동물과 입으로 시작하는 소화기관을 갖고 있는 척추동물 사이에 있는 단계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아예 입을 원래와 반대 용도로 쓰는 동물도 있다. 앞으로 먹은 것을 뒤로 뽑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거꾸로 앞으로 뽑아 버린다는 소리다. 지난해 싱가포르국립대 연구팀은 습지에 사는 자라가 입으로 오줌을 배출한다는 내용이 담긴 논문을 학술지 ‘실험생물학’에 발표했다. 폐로 숨을 쉬는 자라가 자꾸 머리를 웅덩이에 담그는 모습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다 시작한 연구였다.

소변을 통해 배출되는 노폐물은 요소가 많다. 그런데 연구팀은 자라의 신장을 통해 걸러지는 요소가 전체의 6%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자라가 머리를 담그고 있던 웅덩이의 요소 농도 변화를 측정한 결과 입을 통해서 배출하는 요소는 배설기관을 통해 나오는 양의 50배나 됐다. 자라에게 요소를 주입한 뒤 침과 혈액을 조사하자 침 속의 요소 농도가 혈액보다 250배나 높았다. 연구팀은 소금기 있는 물에 적응해 사는 이 자라가 짠물을 마시지 않기 위해 입을 헹구려고 이런 성질을 발달시켰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귀 없으면 입으로 들으면 되지

 입을 듣는 데 쓰는 가디너개구리.

비위가 약한 독자를 위해 이번에는 더럽지 않은 용도로 입을 활용하는 사례를 보자. 인도양 세이셸 군도에 사는 가디너개구리는 귀 대신에 입을 사용한다. 지난 9월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된 국제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이 개구리에게는 고막이 달린 중이가 없다. 개구리는 보통 피부 아래에 귀가 있어서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중이가 없다면 소리를 들을 수 없어야 한다. 그러나 가디너개구리는 울음소리도 잘 내며 다른 개구리 소리도 멀쩡히 듣는다. 비밀은 입이었다. 가디너개구리는 입 안의 공간으로 소리를 증폭시킨다. 입속 공간과 내이 사이는 조직이 얇고 층이 적어서 소리를 전달하기에 유리한 구조로 돼 있다. 소리를 모아주는 귓바퀴와 고막이 없어도 입이 그 역할을 충분히 대신할 수 있다는 소리다.
마지막으로 입을 손 대신 쓰는 동물을 소개한다. 이런 동물은 많지만, 하와이에 사는 한 망둑류 물고기는 좀 다르다. 이 물고기는 입을 이용해 수직에 가까운 폭포 절벽을 기어오른다. 입은 하나인데 절벽을 기어오를 수 있을까? 사람도 두 팔이 있어야 암벽을 오를 수 있지 않은가.

이들은 배에 있는 빨판을 한 팔 삼아, 입을 다른 한 팔 삼아 절벽을 오른다. 빨판으로 절벽을 붙잡고 지탱하는 동안 입으로 더 높은 곳을 붙잡아 몸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위아래로 달렸다는 점만 빼면 사람이 두 팔로 절벽을 오르는 원리와 같다. 이 물고기는 이런 방법으로 무려 90m나 되는 폭포 절벽을 기어오르기도 한다.

 
햄스터의 입 안에 있는 주머니(위). 
일부 설치류는 입 안의 주머니로 먹이를 보관하거나른다.



입은 팔방미인

이 외에도 입의 쓰임새는 더 많다. 개는 땀을 흘리지 못해 체온이 올라가면 혀를 내밀고 헉헉거린다. 공기를 움직여 혀와 폐의 표면에 있는 수분을 증발시켜 온도를 낮추고 몸 안의 뜨거운 공기를 밖으로 빼내기 위해서다. 다람쥐나 햄스터 같은 동물은 입 안에 주머니가 있다. 그래서 여러 번 돌아다니지 않고 한꺼번에 많은 양의 먹이를 모아서 보관할 수 있게 해준다. 귀여운 다람쥐의 양 볼이 부풀어 있는 모습을 보면 징그럽기도 하지만 생존에는 훨씬 유리하다.

어떤 동물은 넓은 입 안에 새끼를 넣어서 보호하기도 한다. 지금은 멸종된 개구리 중에는 위에서 알을 부화시켜 입으로 새끼를 낳는 종도 있다. 입이 위험한 외부 환경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는 은신처 구실까지 하는 것이다.

입의 다양한 쓰임은 어디까지일까. 여러 동물의 사례를 보면 사람보다 훨씬 더 창의적인 방법으로 입을 활용하는 듯하다. 우리 사람의 입에도 아직 잠재된 능력이 더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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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짓하는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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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고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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