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인간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발명가의 소원이기도 하다. 1백년 전의 발명가가 현대의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기계나 생활방법을 한번만 본다면 명예는 물론 거부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미래를 점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시대에 적합한 발명품이더라도 미래의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발명품의 평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당장에 세계를 석권하는 물품이 10년 후에는 아무 소용없는 물건이 돼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즉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실패한다는 뜻이다. 그 대표적인 발명이 바로 타자기다.
여성 사회진출 촉진시킨‘글씨 쓰는 피아노’
사실 타자기는 30여년 전만해도 오늘날의 컴퓨터에 못지않은 혁신적인 기계였다. 타자기는 인간 노동력의 질을 높였고 특히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변모시킨 주인공으로 찬사를 받았다.
타자기는 1867년 인쇄업자인 크리스토퍼 쇼울즈가 아이디어를 내고 몇몇 친구들(카를로스 글리덴과 새뮤얼 술레)의 기술적 도움을 받아 태어났다. 그는 오늘날 널리 쓰이는 키보드도 고안했다. 그의 발명 이전에도 여러 아마추어 발명가들이 타자기를 발명했지만 이들의 발명품은 손으로 쓰는 것보다 더 느린 경우가 많아 ‘글씨 쓰는 피아노’라고 불릴 정도였다.
쇼울즈의 타자기도 역시 처음 전망은 좋지 않았다. 기술적으로 완벽했지만 생산비가 워낙 비쌌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생산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때 무기와 재봉틀로 유명한 미국의 레밍턴사가 그의 특허권을 산 것이 행운이었다. 레밍턴사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1873년 최초로 타자기다운 타자기를 시장에 내놓았다.
여기에서 타자기의 보급을 앞당긴 사람은 ‘톰소여의 모험’으로 유명한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었다. 그는 1874년 ‘타자기는 한 페이지에 엄청나게 많은 단어를 쏟아놓는다. 물건을 흐트려 놓거나 여기저기 잉크 얼룩을 남기지도 않는다’고 칭찬했다. 저명한 소설가인 마크 트웨인의 추천은 원고를 쓰는 작가로 하여금 타자기 구입에 불을 붙였다.
무엇보다 타자기의 가장 큰 역할은 19세기말까지 남자의 성역이었던 사무실에 여성이 등장하게 만든 일이다. 미국의 경우 1870년에는 전체 사무직의 98%를 남성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1920년에는 여성사무직 근로자의 비율이 전체의 절반으로 늘어났다. 타자기의 등장으로 글을 읽고 쓸줄 아는 근로자에 대한 수요가 커짐으로써 여성의 취업이 용이해진 것이다. 더구나 타이피스트에 대한 대우가 좋았던 것도 여성의 사회진출을 촉진시켰다. 공장 근로자 주급이 1.5-8달러였는데 1890년대에 타이피스트는 6-15달러를 받았다.
메모리 장치를 부착한 타자기?
그러나 컴퓨터의 등장은 타자기의 운명을 순식간에 바꿔놓았다. 컴퓨터는 방대한 양의 정보를 제공할 수 있으며 데이터베이스와 문서를 다운받을수 있고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할 수도 있는 등 모든 면에서 타자기보다 편리했다. 하지만 타자기는 컴퓨터가 갖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간과했다. 타자기 회사는 컴퓨터와 경쟁하는 타자기를 개발하려고 총력을 기울였고, 타자기마다 타이피스트가 친 글을 기억하는 메모리 장치를 부착한 타자기를 개발했다.
하지만 이 일은 타자기의 제작비를 상승시켰다. 타자기 회사는 이러한 제작비의 상승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타이피스트가 새로운 사무기기, 즉 컴퓨터에 눈을 돌리지 않고 평소에 익숙하게 다루던 타자기만 고집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타이피스트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생활 패턴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1995년 타자기 메이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던‘스미스 코로나’사가 파산했다. 한때 전세계 직장인이 현대의 노트북과 같이 들고 다니던 수동 포터블 타자기를 제조하던 타자기의 대명사‘스미스 코로나’사도예외일수없었다.‘ 스미스코로나’사의파산은 미래의 제품에 대한 선견지명이 없으면 결국 대회사일지라도 순식간에 도산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예다. 물론 이러한 예는 발명가의 책임과 기회가 더욱 많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