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3/09/3983991955242736958331.jpg)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3/09/264054235242735bbe282.jpg)
지구 생물 역사에서, 중생대의 육상은 상당히 특이하다. 땅 위에서 눈에 띄는 대형 척추동물은 거의 대부분 공룡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이 이 시대를 방문했다고 해보자. 대한민국에서 아무나 붙잡고 성을 물으면 거의 다 김, 이, 박 세 성 중 하나인 것처럼, 당시 육상 대형 척추동물은 만났다 하면 다 공룡이었다(부디 육식공룡이 아니었기를). 반대로 공룡이 현재의 지구를 방문한다면, 대형 척추동물이라고는 거의 포유류밖에 보이지 않으며, 특히 단 하나의 종이 70억 마리 이상 전세계에 퍼져 있다는 사실에 놀라겠지만 말이다. 호모 사피엔스 이야기다.
중생대에 공룡을 제외한 대형 척추동물은 악어류 정도였다. 유대류나 설치류, 태반 포유류(새끼를 태반 속에서 길러 낳는 포유류), 다구치류(먹이를 으깰 수 있는 어금니를 가진 원시 포유류. 지금은 멸종) 등 포유류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 작고 종도 다양하지 않았으며, 지상을 호령하는 공룡의 위세에 눌려 구석에 숨어 살 뿐이었다.
그런데 ‘그날’이 왔다. 중생대 백악기 말, 지구에 격변이 일어났다. 중생대 지구에서 번성했던 생물 다수가 갑자기 멸종했다. 바다에서는 유공충과 규조류 등 플랑크톤과 초산호가 멸종했고, 조개류와 고둥류 일부, 암모나이트 등 서서히 수가 줄어들던 연체동물도 이 무렵 완전히 사라졌다. 대형 해양 파충류인 모사사우루스도 대략 이 시기에 모습을 감췄다. 육상에서는 더욱 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각종 식물과 함께 공룡이 멸종했다. 지구의 생물 종이 3분의 1에서 3분의 2 정도가 멸종한 중생대 백악기-신생대 제3기 사이의 대멸종 사건, 즉 ‘K/T’다.
생태계는 균형이 중요하다. 대멸종을 겪은 생태계는 급속하게 변화했다. 공룡이 차지하고 있던 대형 파충류의 자리는 포유류가 꿰어 찼다. 공룡 때문에 변변한 진화를 겪지 못하던 포유류는 생물 역사로는 눈깜짝할 사이인 약 1000만 년 만에 작은 쥐(설치류)부터 원시 고래, 박쥐까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다양하게 진화했다(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종이 다양하게 분화하는 현상을 적응방산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 우리 인류가 속한 영장류의 조상도 있었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3/09/13329112165242734d35cfe.jpg)
영장류의 조상, 태반 포유류가 등장하다
지난 2월 ‘사이언스’는 태반 포유류의 조상을 유전자와 형질(생물의 생김새 등의 특징) 정보를 이용해 추정한 연구를 소개했다. 태반 포유류는 현재 전세계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포유류로, 몸무게가 몇g 정도인 박쥐부터 190t에 이르는 대왕고래까지 다양한 포유류가 속해 있다. 인류가 속한 영장류 역시 태반 포유류다.
연구팀은 최초의 태반 포유류는 몸무게가 6~245g으로 작고, 곤충을 먹었을 것으로 예측했다. 털이 없는 새끼를 한 번에 한 마리씩 낳았으며 수컷의 정자는 머리 부분이 평평했다. 전체적인 모양은 당시의 다른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쥐와 비슷했다.
이상한 것은 나타난 시점이었다. 약 6600만 년 전으로, K/T 직전이었다. 이는 실제 화석 연구 결과보다 무려 1억 년이나 늦은 시점이다. 가장 오래된 태반 포유류 화석은 2011년 8월, 중국 연구팀이 중국 랴오닝성의 중생대 쥐라기 지층에서 발견해 ‘네이처’에 발표한 ‘주라마이아 시넨시스’로, 연대가 1억 6000만년 전이었다. 나무를 기어오르기 좋게 바닥에 착 달라붙는 앞발 구조를 가졌고 치아 구조에서도 태반 포유류의 흔적이 있었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3/09/14611087015242733c5daa4.jpg)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3/09/9170909175242732e6e193.jpg)
어느 쪽이 진실이든, 이 태반 포유류는 공룡 멸종 직후 일어난 포유류의 폭발적인 적응방산때 다양한 종으로 분화했고, 원시 영장류도 이 때 태어났다.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6300만 년 전 북아메리카 지층에서 발견된 ‘푸르가토리우스’가 최초의 영장류로 꼽힌다.
푸르가토리우스는 크기 약 15cm에 몸무게가 1kg 정도 나가는 큰 쥐 형태의 동물이었고 이빨로 식물과 곤충을 먹었다. 지난해 10월 스티븐 체스터 미국 예일대 교수팀이 미국척추고생물학회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이 동물은 발목이 매우 유연해 나무에서 균형을 잡기에 유리한 구조를 가졌다. 나무에서 균형을 잡는 특성은 중요하다.
영장류는 오늘날에도 뚜렷한 특징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게 손 또는 발로 물건을 쥘 수 있다는 점이다. 이 특징은 초기 영장류가 나무에서 살았기 때문에 진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푸르가토리우스가 살던 때의 북아메리카 대륙은 울창한 숲으로 뒤덮여 있었다.
약 5800만 년 전, 북아메리카에 ‘플레시아다피스’가 등장했다. 플레시아다피스는 오늘날의 여우원숭이와 비슷했고, 그 때문에 최근까지 대표적인 원시 영장류로 꼽혔다. 하지만 올해 6월, 미국 카네기자연사박물관의 크리스토퍼 비어드 연구팀이 ‘네이처’에 발표한 연구 결과 조상이 아니라 날다람쥐 등과 비슷한 ‘사촌’일 가능성이 높아졌고, 현재 논란에 휩싸여 있다.
플레시아다피스가 살던 시대(에오세 초기)에 북아메리카 대륙은 남아메리카 대륙과는 떨어져 있었고, 대서양이 아직 충분히 생기지 않은 탓에 유럽과도 거의 연결돼 있었다(왼쪽 가운데 지도). 플레시아다피스는 곧 유럽에도 진출해 번성했다. 반면 아시아는 유럽과 아랄해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영장류가 많지 않았다. 학자들은 5500만 년 전부터는 아시아에서 영장류가 아예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올해 ‘아르키케부스 아킬레스’ 화석이 공개돼 당시 아시아에도 직비원류가 존재했음이 밝혀졌다(60쪽 사진).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3/09/13437657695242731f2a4ac.jpg)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3/09/11638202052427310a3a15.jpg)
원시적인 원숭이가 북반구에서 태어나다
같은 시기, 북아메리카에서는 진정한 영장류의 시조가 둘 나타났다. 안경원숭이의 시조인 ‘오모미드’와 여우원숭이의 시조인 ‘아다피스’다. 두 영장류는 성공한 조상이었다. ‘가문’이 고스란히 신생대내내 이어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영장류를 크게 둘로 나눌 때 쓰는 분류 기준 ‘직비원아목(오모미드)’과 ‘곡비원아목(아다피스)’이다(자세한 내용은 61쪽 참조).
북아메리카에서 오모미드와 아다피스는 금세 플레시아다피스를 대신해 나무 위를 점령하고 유럽까지 진출했다. 이 때(에오세)만 해도 지구는 신생대 중에서도 가장 따뜻한 때였다. 북아메리카에는 지금의 동남아시아처럼 울창한 밀림이 우거져 있었고, 아직 지리적으로 충분히 떨어져 있지 않은 유럽과 아시아까지 이어졌다. 영장류는 이 밀림을 타고 아시아까지 진출했다. 필립 깅거리치 미국 미시건대 지질학과 교수가 2006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이 시기에는 반대로 아시아에서 자체 진화한 직비원류 영장류가 북아메리카로 진출하기도 했다.
그것도 불과 2만 5000년 만에 세 대륙으로 퍼졌다. 당시의 북반구는 영장류의 전성시대였고, 이들의 대륙 진출은 인류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아시아 전체로 퍼진 것 이상으로 빨랐다. 하지만 에오세 중기가 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추위가 시작됐고 밀림은 사라졌다. 아직 혼합림 형태의 숲이 남아 있었지만 더 이상 영장류가 마음껏 생활할 곳은 아니었다. 포유류의 주도권은 나무 위가 아니라 땅 위에서 생활하는 동물이 쥐게 됐다. 영장류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유럽의 영장류는 에오세 후기에 완전히 사라졌고, 아시아와 북아메리카에서도 점차 사라져 갔다.
약 3400만 년 전부터 시작된 올리고세는 영장류에게는 더욱 큰 고난이었다. 기온이 더 떨어졌고 일교차가 커졌다. 밀림은커녕 숲도 드물어졌고, 나무타기의 명수 영장류는 북반구의 모든 대륙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3/09/14612635465242730662181.jpg)
기구한 화석 ‘아이다’와 ‘잃어버린 고리’
화석이지만 유명한 과학자의 이름을 딴 학명과 별명까지 갖고 있는 영장류가 있다. ‘아이다’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다위니우스 마실라이(사진)’다. 4700만 년 전 살았고 오늘날의 여우원숭이나 로리스 원숭이가 속한 곡비원아목의 조상(아다피스류)에 속했다. 원래 1983년 독일에서 신체의 95%가 완벽하게 보존된 화석으로 발견됐는데, 아마추어 화석 발굴가에 의해 둘로 쪼개진 뒤 각각 따로 팔려 잊혀졌다가 2007년에서야 다시 둘을 모아 연구가 시작됐다. 연구 결과는 2009년 5월 ‘플로스원’에 발표됐으며, 마침 당시가 다윈 탄생 200주년이라 다윈의 이름을 딴 학명이 붙었다.
이 종에 ‘감히’ 다윈의 이름이 붙은 건 직비원아목과 곡비원아목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라는 연구진의 주장 때문이다. 스웨덴 오슬로대 자연사박물관 외른 후룸 박사팀과 필립 깅거리치 미국 미시건대 지질학과 교수팀은 다위니우스가 곡비원아목보다 좀더 진화했으며 직비원아목으로 진화하는 중간과정이라고 주장했다. 둘에게 각각의 조상(오모미드와 아다피스)이 있다는 기존 주장과는 완전히 반대였다.
이 연구는 순식간에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책과 다큐멘터리 영화가 나오고, 세계의 언론이 다뤘으며 구글은 2009년 5월 20일 회사 로고로까지 만들어 기념했다. 하지만 연구팀의 주장은 곧 반격을 받았다. 많은 고생물학자들은 다위니우스가 아다피스의 일종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논란은 그해 10월 ‘네이처’에 이집트에서 나온 3700만 년 전 영장류 화석을 연구한 결과 이 영장류와 다위니우스는 곡비원아목이 맞다는 연구가 실리며 잠잠해졌다.
올해 6월, 새로운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연구 결과가 ‘네이처’에 실렸다. 직비원아목에 속하는 새로운 영장류의 화석이 완벽한 형태로 발견됐기 때문이다. 중국 랴오닝성에서 발견된 ‘아르키케부스 아킬레스’다. 무려 5500만 년 전으로 다위니우스보다 800만 년이나 연도가 빠르다. 무엇보다 새로운 분류를 통해 다위니우스가 속한 아디피스 하목을 여우원숭이의 ‘조상’에서 ‘친척’으로 재분류하며 조상의 지위에서 밀어냈다(논란은 많다). 다위니우스를 ‘인류의 조상’이자 ‘잃어버린 고리’로 만들려던 후룸 교수와 깅거리치 교수는 이래저래 씁쓸하게 됐지만, 정작 다위니우스 화석은 말이 없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3/09/1149650570524272fad160b.jpg)
아프리카에서 부활해 전세계로 퍼지다
하지만 영장류는 멸종하지 않았다. 겨우 살아남은 곳이 있었으니, 바로 남반구에 위치한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였다. 아프리카는 이제껏 영장류 진화에서 눈에 띄는 역할을 하지 않았지만, 다른 곳에서 모두 영장류가 사라지자 비로소 진화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아프리카는 에오세 이전인 팔레오세(6500만~5500만 년 전)에 잠시 유럽과 연결돼 있었다. 이 무렵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초기 영장류가 진출했는데, 이들은 북반구가 영장류 천국이던 에오세 동안 조용히 번성해 원숭이(바로 아래에 소개할 남미의 ‘신세계 원숭이’와 구분하기 위해 ‘구세계 원숭이’라고 부른다)와 초기 유인원까지 진화시켰다. 대표적인 영장류는 ‘아피디움’으로 약 3600만~3200만 년 전 아프리카 북부에서 진화했다. 나무에서 살며 다람쥐원숭이처럼 움직였다.
이 시기에 남아메리카에서도 독자적인 원숭이가 진화했다. 어떻게 들어갔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 된 신세계 원숭이 화석은 2000년 일본 교토대 영장류연구소가 연구해 미국체질인류학회에 보고한 ‘브라니셀라 볼리비아나’로, 볼리비아의 2600만 년 전 지층에서 나왔다. 이 화석은 아프리카의 멸종한 영장류와 비슷해 아프리카가 기원이라는 사실을 추측하게 해줬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하위 목들이 모두 진화한 뒤 남아메리카로 건너왔는지 혹은 조상 하나가 건너와 남미에서 여러 목으로 나뉘었는지는 여전히 불명확하다.
다만 아직 얕고 가까웠던 대서양을 통해 건너왔다는 정도만 추측하고 있다. 참고로 올해 7월 독일 연구팀이 미토콘드리아 게놈을 이용해 밝힌 새로운 영장류 계통도를 보면 (‘플로스원’ 게재) 최초의 신세계 원숭이는 4600만 년전 에오세 초기에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이들이 다양하게 진화해 꼬리감는원숭이, 거미원숭이, 비단원숭이 등이 돼 지금에 이르렀다.
2300만 년 전 마이오세가 되자 아프리카는 유럽 대륙과 보다 확실하게 연결됐다. 아프리카의 원숭이는 유라시아로 건너갔다. 유인원 중 일부도 1600만 년 전부터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럽에 갔다. 하지만 이들은 900만 년 전에 멸종하고, 유럽은 이후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이 진출할 때까지 영장류를 볼 수 없게 됐다.
아프리카는 여전히 영장류의 천국이었다. 침팬지, 고릴라 등 유인원이 살았고 개코원숭이 등 구세계 원숭이도 끊임없이 진화했다. 약 700만 년 전, 전에 없던 새로운 유인원이 나타났다. 사하라 남부의 차드에서 나온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의 두개골은 침팬지나 고릴라와는 구분되는 색다른 특성을 여럿 보였다. 인간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진화의 물줄기였다.
인류는 결코 영장류 진화의 종착역이 아니었다. 아시아에서는 여전히 구세대 원숭이들이 진화하고 있었다. 남아메리카에서는 신세계 원숭이가 활개를 쳤고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원원류인 여우원숭이가 끊임없이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고 있었다. 오랑우탄과 긴팔원숭이도 꾸준히 서식지를 지켰고 고릴라와 침팬지도 세대를 이어가며 아프리카의 숲에 머물렀다. 지구는 다양한 영장류가 어울려 사는 곳이 됐다.
그 후 500만 년이 다시 지난 지금, 영장류는 세계에 480종이 사는 대가족으로서 여전히 번성하고 있다. 다양성으로만 보면 태반 포유류 중 세 번째다. 하지만 인간에 의해 서식지를 잃고 진화의 기회를 빼앗긴 종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에게 시간을 줄 방법은 없을까. 6500만 년을 이어온 기나긴 진화의 역사를 계속할 시간을.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3/09/1151303726524275d445924.jpg)
편집자 주
이 기사는 여러 최신 논문을 주로 다뤘지만, 몇몇 기초적인 배경 사실은 다음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 로널드 프로세로, ‘공룡 이후’
- 신두 라다크리슈나, ‘푸르가토리우스에서 호모 사피엔스까지’
- 닐 캠벨, ‘생물학’ 6판 중 3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