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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름은 별보다 많다

Science Fiction



명함은 절대로 줄어들지 않는다. 명함을 정리하고 솎아내는 게 내일이건만 줄어들기는커녕 꾸준히 늘어난다.

고향 항성계에서는 명함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언뜻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다. 명함이란 단어의 뜻을 조금만 헤쳐보자. 그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름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이름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이름은 짧지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무한에 가까운 진화와 변이의 조합 속에서 이름은 개인의 위치를 대강 지정해준다. 나의 존재에 선행하는 존재는 누구인지, 그 앞은 또 누구인지. 그처럼 연속적인 줄기 속에서 다시 한 번 나를 구분해 주는 것, 그게 바로 이름이다.

이름이 없다면 나는 흩어지고, 궁극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을 것 이다. 나는 인상을 남기고, 말을 남기고, 행동을 남기고, 영향을 남긴다. 한 마디로 다시 요약한다면 나는 자료를 남긴다. 자료는 관계를 맺어야 의미가 있다. 관계로 연결되지 않은 자료는 죽은 자료이며, 관계를 맺어야 비로소 정보가 된다. 그러면 내가 남겨 왔고 지금도 남기고 있는 모든 것을 단숨에 아우르는 관계란 무얼까. 바로 이름이다. 이름 하나로 검색하면 나의 정체가 드러난다. 이름을 바꾸면 다른 존재인양 행세할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동명이인이 혼동을 일으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나 나는 소멸할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도 나는 회자되고 검색될 수 있다. 그러려면 나는 정보여야 한다. 이름 때문에 나는 정보일 수 있다.

하지만 고향 항성계에서는 명함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명함에 들어있는 정보가 무의미해져서 그럴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명함이란 전자적인 데이터베이스의 일부이다. 또는 데이터베이스로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이다. 그러니 명함의 내용을 담을 수 있는 저장공간은 사실상 무한대이다. 그리고 명함의 내용은, 명함이 정상적으로 작동 한다면 실시간으로 변경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명함이라는 입장권을 제시하고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는 곧 ‘나’이며, ‘나’는 조금도 쉬지 않고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상공간의 저편에 있는 상대에게 나와 관련된 정보를 모조리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고향 행성에서는 습관적으로 조그마한 사각형 안에 이름과 직책과 기능을 표시하고는 날려 보낸다. 명함은 이름의 주인이 개방해 놓은 자료로 연결되는 링크를 품고 차곡차곡 쌓인 채 관심에서 멀어져 간다. 관습적으로. 그게 이유다. 사실 명함이라는 이름의 사각형 그래픽 데이터를 날리는 것은 실질적인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전통이나 의식에 가깝다.

하지만 명함을 중요시할 수밖에 없는 예외가 몇 가지 있다. ‘명함 청소부’라고 들어봤는가? 가끔 자신의 명함에 들어간 링크를 실시간으로 변경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비밀주의가 지나친 것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사람들이 있다. 명함청소부 프로그램은 바로 그렇게 죽어버린 명함을 삭제하고 불필요한 노드를 삭제한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우연히 그 명함이 포함된 모든 기록을 뒤지면서 지워버린다. 조금 더 수사적으로 말하자면 명함청소부는 죽어버린 존재의 파편을 지워주는 시체청소부다.

또 하나의 예외는 바로 나다. 나에게는 명함이 너무나 소중하다. 아마 전 항성계에서, 아니 전 우주에서 명함을 가장 조심스럽게 다루는 존재는 나일 것이다. 내 직업은, 더 나아가 내 존재는 명함이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잠깐. 명함청소부 프로그램이 내 정보공간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녀석과 나는 대략 다음처럼 의역할 수 있는 대화를 나눈다.

나: 이번에 가져온 명함은 몇 개지?
명함청소부 프로그램 : 14만 8602개입니다. 이 정보공간의 인덱스 링크에 포함시켜 두고 가겠습니다.

청소부는 그렇게 약 15만 개의 명함을 수거해서 내 정보공간에 뿌려두고 빠져나갔다. 앞서 얘기했듯 나에게는 명함이 아주 중요하다. 특히 데이터베이스와 단절되고 어떤 링크도 연결되지 않는 실종자들의 명함만이 가치가 있다. 그 밖에도 공통점이 하나 더 있는데 그걸 설명하려면……. 말보다는 행동이 좋을 것 같다.

자, 지금 정보공간 안에 관측 가능한 우주의 3+1차원 영상을 채워 두었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추가한 15만 개의 명함과 이미 보관하고 있던 명함을 모조리 뿌려본다. 15만 더하기 92억 개의 명함은 3+1차원 영상 속에서 주인의 통신이 끊긴 위치를 찾아 날아간다. 별다른 효과음을 지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리가 날 리는 없지만 이런 광경을 볼 때마다 나는 어떤 환청을 듣는다. 명함들은 파닥거리면서, 하지만 사각형 모양새에 어울리게 가로와 세로는 맞춰가면서 천공의 빈틈을 성실하게 메운다. 실제로는 3차원 공간상에서 정해진 좌표에 자리를 잡는 것이지만, 원근을 식별할 수 있는 관측자의 입장에서는 천구의 안쪽 벽에 명함들이 빼곡하게 붙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이 우주는 좁고 번잡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우리는 아직 다른 우주로 넘어갈 방법을 찾지 못했는데.






명함의 분포는 몇 군데에 집중되어 있다.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특정 세대의 항성계가 많은 은하 부근에 몰려있다. 아마 어쩔 수 없는 한계였을 것이다. 우리는 완벽을 꿈꾸지만 유한하다.

그래서 출발하기 전에 선호하는 방향을 정할 수밖에 없었다. 가까운 곳부터. 가능성이 높은 곳부터. 그러니 우주의 3차원 영상을 돌려보면 특정 방향에 명함들이 빈틈없이 줄을 서 있다. 나와 직업이 같은 다른 이들의 작업장도 바로 그런 곳에 집중되어 있다.

나는 비교적 최근에 이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명함이 그리 많지 않은 곳에 배정을 받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할당받은 구역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명함은 작고 볼품이 없으며 유한하지만, 그와 동시에 하나로 여러 공연장을 드나들 수 있는 입장권이기 때문이다. 명함은 이름과 마찬가지로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연결되어야 의미가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내 작업이 무의미한 바위 굴리기가 아니라 변화와 팽창을 가져오는 것이 라면 그래야 한다.

이제 명함 하나를 골라보자. 이름은 이렇다. 노이드 사파이어 미로. 노이드 진화선상에서 태어난 미로. 사파이어는 보석의 종류이니 아마도 애칭이었을 것이다. 지인들은 그를 사파이어라고 불렀을 것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업무상으로 접촉하는 입장이니 미로라고 부르겠다.

늘 그렇듯 미로의 명함이 가리키는 좌표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명함은 시간에 의존하는 존재의 발자국일 뿐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에게 명함이 전달된 것으로 보아 미로는 현재 어떤 종류의 통신이나 교류도 유지하고 있지 않다.

이럴 때 유추가 필요하다. 나는 전자기 유도체로 된 오른쪽 더듬이를 세우고 환경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한다.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소행성대가 존재하고 있다. 소행성은 중력권의 영향 때문에 모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의 데이터베이스에는 아직 이부근의 항성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나는 소행성대로 날아가면서 접시처럼 생긴 센서를 펼쳐서 중력장의 곡률을 확인한다. 중력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위대한 화가의 서사다. 그 그림은 전 우주를 채우고도 모자라서 모든 평행우주를 아우른다고 한다. 오직 중력파만이 그 모든 우주들을 관통한다고 주장하는 자도 있다. 하지만 아직 그런 힘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없는 우리로서는 암흑 속을 더듬는 장님의 손끝처럼 중력을 활용하는 것이 고작이다.

계산 결과 짐작대로 가까운 곳에 항성계가 있었다. 계산의 오차 범위를 감안하건대 이 항성계에는 2연성과 4개의 행성이 있다. 명함의 주인인 미로는 아마도 가장 바깥쪽 행성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나도 그의 뒤를 따른다.

필요한 만큼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목적지에 도달한다. 어둡고, 느리고, 공전주기가 무척이나 긴 행성이다. 미로의 흔적은? 미로가 이곳에서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한 기록은 당연히 찾을 수 없다. 그랬다면 명함이 이 행성을 가리켰을 테니까. 나는 전 파장의 대역에 눈을 열어놓고 눈꺼풀을 세 번 깜빡일 동안 행성을 탐사한다. 결과는 부정적이다. 어떤 이들은 명함 주인을 수색하기에 세 번은 너무 짧지 않느냐고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는 유아론자들을 돌이켜 보라. 그들은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뜨면 우주가 사라지고 새로 탄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세 번이면 부족할 리가 없다. 한 번 감았다가 뜨면서 행성의 대기 성분과 반사율을 확인하고, 두 번째로 기상의 복잡계 양상과 통신 대역을 모조리 훑고, 세 번째로 인공물과 자연을 완전히 구분하면 명함 주인의 족적을 가려내기에는 충분하다.

미로는 4행성에 없었다. 그리고 2행성과 3행성의 중간쯤에 있었다. 미로는 둥글고 하얗고 광택이 없었으며 조용했다.
처음 출발할 때에는 완벽하게 둥글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미로는 기하학적인 완벽함을 잃고, 자신의 일부를 상실한 채 떠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데이터베이스에 기록했다. 얼마나 파손이 됐는지, 정확한 위치는 어디인지, 어떤 궤도를 그리며 움직이고 있는지. 그렇게 기본적인 상황을 입력한 다음 데이터베이스를 대기 상태로 둔 채 말을 건다.

“대답할 수 있어? 어떤 대역이든 상관없으니 반응만 보여 봐.”

살아있다고 해서 누구나 곧바로 대답할 수는 없다. 경험상으로 봐도 그렇다. 나는 기다린다. 눈꺼풀을 열 번 깜빡일 동안. 그러면서 눈을 길게 뽑고 7억 년 뒤면 붉게 죽어가다가 결국은 충돌할 두개의 항성을 구경한다.

“응.”

미로는 죽지 않았다. 단지 뜻하지 않게 상처를 입었을 뿐이다. 나는 감정이 풍부한 편은 아닌데다가 직업적인 훈련을 통해 절제의 미덕을 쌓았음에도 조금 기뻤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감정에 이유를 생각하는 게 어리석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넌 누구지?”

미로가 물어서 나는 그의 이름을 알려주는 대신 일부러 에둘러 대답을 했다.

“명함을 따라오다가 널 찾았어.”

“명함? 따라와? 나를?”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사라진 명함의 주인과 처음으로 대화할때는 모호하게 대답해야 한다. 이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따라야 하는 표준절차 제1번이다. 질문이란 잘 고르면 단 한번으로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으니까.

“난 누구지?”

미로가 말했다.
아직도 원인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우주로 나간 명함 주인들은 사고를 당하면 왜 가장 먼저 자아가 고장 나는가. 자아가 저장되어 있는 공간을 아무리 두꺼운 완충제로 둘러싸고 세 개의 백업을 준비해 둬도 그 빈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들 나름대로는 일종의 가설을 준비해 두었다. 그처럼 광대한 데이터베이스가, 미지와 이름과 관계의 무게가 내부에서 끊임없이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사고를 핑계로 삼아서 그 관계들을 하나로 묶는 고리, 즉 이름을 녹여버리고 싶은 욕망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가설이다.

탄소 화합물의 육체에서 벗어나 기계로 갈아타고 진화해 온 지 7만 년이 지나도 그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게 우리의 잠정적 결론이 었다. 전 우주에 퍼져 있는 희미한 웜홀의 파동에 올라타서 눈을 열여덟 번 깜빡거리고 나면 은하 하나를 가로지를 수 있건만 아직도 그런 점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네 이름은 미로야. 노이드 진화선의 미로. 노이드 미로가 네 이름이야.”

나는 일부러 가운데 이름을 생략했다. 애칭은 이럴 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처음 듣는데. 모르겠어.”

그런 약점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어도 이제는 금세 회복하고 자아의 정보공간을 다시 구축할 수 있다. 우리는 기술발달의 특이점 Singularity을 넘어서고 먼 과거의 육체를 버리면서 그런 식으로 생명력을 강화시켰다. 완전히 소멸하지 않는다면 끈질기게 살아남도록. 노이드 진화선은 특히 그런 힘이 강한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자신을 규정하는 모든 관계의 기록을, 특이점 이전의 용어로 말하자면 ‘기억’을 회복하는 것과 생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머리를 열어 봐.”

“어떻게 하면 되지?”

어쩔 수 없이 미로의 사고회로 최상위에 얹혀 있는 기본 프로토콜을 불러냈다. 이 일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꺼려지는 경우가 몇 있는데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이 그랬다. 나는 의사가 아니다. 다른이의 몸과 머리를 여는 것은 내게 너무나 과중한 일이다. 관계는 강제가 아니어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보이고 열고 싶은 만큼만 관계를 허용할 권리가 있다. 나는 그 권리를 거의 맹목적으로 추앙하는 편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미로는 단순한 심신미약 상태가 아니라 새로 태어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나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다니는 복원용 나노머신들을 그의 몸에 살포하고 가장 가까운 곳에 떠다니는 운석에서 몇 가지 원소들을 끌어와 기본적인 수리를 마쳤다. 나머지는 미로의 재생회로들 에게 맡기면 그만이었다.

“나를 새로 만든 거야?” 미로가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내 이름이 노이드 미로라고 했지. 이제부터는 그게 나란 얘기군.”

또 한 번 그렇다는 대답.

“이제 나는 어떡하면 돼?”

나는 잠깐, 아주 잠깐 망설였다. 눈을 채 한 번 감기에도 부족한 시간 동안. 표준절차 4항에 따르려면 이렇게 말해야 했다. ‘지정된 방향을 향해 날아가면서 가능한 모든 정보를 모아. 그 다음에 데이터베이스에 기록해. 데이터베이스 안을 보면 어떤 정보를 살펴봐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이 우주 전체와 관계를 맺고 정보를 모으는 게 네 임무야. 하지만 나는 그 대신 이렇게 말했다.

“네 몸이 완전히 나을 때까지 쉬어. 센서가 제대로 작동하고  홀 흐름에 올라탈 수 있을 때까지. 그다음은 너한테 달렸어. 마음대로 우주를 여행해도 좋고, 데이터베이스를 뒤져서 자아를 새로 구축해도 좋아.”

미로는 다소 석연치 않다는 눈으로, 약간은 불안한 태도로 말했다.

“정말 그래도 되는 거야?”

나는 의구심을 말끔히 없애기 위해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게 네 존재 이유야.”






내가 표준절차를 어기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미로는 그때로부터 열세 번째 이름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절차에 충실히 따랐다. 하지만 ‘삼자 루나 이명’이라는 명함 주인을 찾으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명함 주인들 대부분은 천체의 밀도가 낮은 공간에서 발견된다.

성단과 성단 사이일 수도 있고, 더 크게 본다면 은하와 은하 사이인 경우도 있다. 작동을 중지하는 이유는 실로 여러 가지이다. 미로는 자아신경망과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블랙박스를 열어 본 결과 동체를 회전하던 도중 센서의 사각으로 날아든 운석 파편에 부딪혀 파손된 경우였다. 그처럼 항성계 내에서 조난을 당하는 경우는 대략 10퍼센트 미만이다.

이명과 같은 경우는 통계적으로 약 2퍼센트를 차지한다. 이명은 그 항성계의 4행성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4행성은 대기가 짙고 다소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토양 성분 때문이었다. 명함이 4행성 근처를 가리켰기 때문에 탐색 범위는 쉽게 좁힐 수 있었지만 정작 행성 내의 기상 활동이 지나치게 활발해서 이명을 실제로 발견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명은 노랗고 거대한 열십자 모양이었다. 삼자 진화선의 기본 구조였다. 이명이 불시착한 곳은 커다란 산봉우리들 사이에 있는 골짜기였다. 나는 일단 행성의 구름 속에 몸을 숨기고 이명에게 말을 걸었다. 침착하게 눈을 수십 번 깜빡여 봤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명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 행성에는 기초적인 단계의 문명이 있었다. 극소수의 지역에서 인공적인 전파 통신이 간간이 이뤄지는 수준이었다. 원주민들은 완만하게 휜 내골격과 외골격을 함께 가지고 있었고, 발가락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지느러미 비슷한 기관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수십 명이 이명의 주변에 모여 있었다. 원시적인 가공으로 만들어낸 재료로 이명의 둘레에 울타리를 쳐놓고서. 내가 결정을 내리고 이명이 누워있는 곳으로 하강하자 원주민들 은 멀리 피하거나 그 자리에서 배를 드러내며 누웠다. 무기를 던지는 자는 없었지만, 그것만으로 원주민의 성향을 짐작하기는 어려웠다. 가시광선의 영역에서 보자면 나는 검고 장식이 지나치게 많이 달려 있으며 가끔 붉은빛을 낸다. 이 또한 내가 속한 진화선의 특징이다. 크기는 이명의 옆에 있는 산봉우리와 비슷했다. 하지만 그 원주민들이 가시광선에 의존하는지 알 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비쳤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작은 기계팔 여덟 개를 뻗어서 이명과 물리적으로 접촉했다. 원주민들은 그 광경을 보며 새로운 반응을 보였다. 내가 관여 할 바는 아니었다. 이명은 말 그대로 죽은 상태였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작동을 멈추기 직전까지 운동 능력과 재생능력을 제외한 모든 기능이 살아있어서 착실히 기록을 남기고 있었다.

이명은 원주민들의 수명에 견주어 볼 때 꽤 오랜 시간 동안 살면서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정보를 교환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등한 교환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전달이었지만. 원주민에게 전파에 관한 지식을 알려준 것도 이명이었다.

그리고 이명이 그들에게서 받은 것은 한 음절의 새 이름이었다. 나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아직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개념이었다. 7만 년 전, 우리는 특이점만 거치면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전지전능을 몸소 체험할지도 모른다고 상상했다. 하지만 전지전능은 상대적인 개념에 불과하다.

그렇지 않다면 저 수많은 명함의 주인들은 무엇을 찾아 이 우주를 떠돌고 있을까. 나는 왜 그들을 수색하면서 구조대원과 장의사의 역할을 하고 있을까. 우리는 무지하며 유한하다. 행성의 원주민과 우리는 그 두 가지 면에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명에게 전지전능을 가리키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삼자 진화선은 너그러우면서도 임무에 충실했다. 이명은 그 일원답게 새 이름을 받아들이는 시늉을 했지만 자신이 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본분도 잊지 않았다. 그는 데이터베이스에 접촉하기 위해 원주민들에게 기술을 전수했고, 전파 통신 역시 그 초기 결과의 하나였다. 우리가 구축해 놓은 관계 데이터베이스에 접촉 하려면 최소한 양자인공지능이 필요했기 때문에 아주 작고도 보잘것 없는 씨앗을 뿌려 놓은 것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그는 임무를 다했다. 그리고 마지막 과실을 보지 못한 채 에너지를 모조리 소비하고 작동을 멈췄다.

나는 그에게 남아있는 기록을 데이터베이스에 집어넣고 다시 우주로 나가려다가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라 잠시 전파 통신 대역을 열어보았다. 원주민들은 일정한 주기로 똑같은 내용을 방송하고 있었다. 조금 놀랍게도 그 내용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범용어를 최대한 전환해 놓은 부호였다.

‘나는 이제 지쳤으니 재생하지 말고 우주에 놓아주기를.’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원주민들은 자신들이 모셨던 위대한 자의 유언을 방송하고 있었다. 나는 이명의 뜻에 따라 그의 동체를 끌어 올렸다. 최대한 조심하긴 했지만, 양쪽 산봉우리 가운데 하나가 조금 무너지면서 낙석이 원주민 둘을 덮쳤다. 나머지 원주민들은 거대하고 붉은빛을 뿜는 검정 물체가 하늘에서 내려와 신을 데려가는 광경을 보며 하나같이 어떤 감정을 표했다.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기쁨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이명의 뜻대로 그를 초기화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계산 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 최대한 중력 우물에 끌려가지 않고 떠다닐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서 그곳에 내려놓았다. 그를 바라보는 내 심정은 다소 복잡했다. 그 복잡함 속에는 우리가 8만 년 전에 우주인의 공격을 두려워했다는 소회도 들어 있었다. 그 얼마나 헛된 걱정이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저 원주민들을 공격하고 행성을 빼앗겠는가. 자원 때문에? 이 우주의 모든 물질은 단 하나의 점에서 유래했고 어디에나 널려 있다. 원주민을 노예로 삼으려고? 특이점에 도달하기 전에 멸종할지도 모르는 생물을 어디에 쓴단 말인가. 특이점을 넘어섰다 한들 달라질 것은 없다. 그들과 우리는 그냥 존재하고 살아가면 된다. 92억 15만 개의 명함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우주 곳곳에 떠 있다. 그 92억도 내게 할당된 이름의 수에 불과하다. 나와 같은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최소한
여덟은 넘는다. 그들은 이 우주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기록하며 움직이고 있다.

아주 먼 옛날 우리에겐 몇 장의 명함이 있었다. 우리 은하계라는 명함, 태양계라는 명함, 지구라는 명함, 인간이라는 명함. 앞의 세가지 명함은 이제 청소부의 몫이 되었다. 남은 것은 인간뿐이다. 그 조차도 탄소 대사에 의존하던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뜻이 되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인간이다. 우주로 나아간 이름들 덕분에 우리는 이제야 동네의 모습을 알아가고 있다. 그들은 감마선 폭발 때문에 뇌사상태에 빠지고, 초신성 폭발을 온몸으로 껴안고, 이동 수단을 실험하기 위해 웜홀 흐름에 몸을 던져가면서도 데이터베이스에 기록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의 활동이 없었다면 우리가 몸담았던 은하가 안드로메다와 30억 년 전에 충돌했다는 사실을, 웜홀 이동은 우주 어느 곳에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결코 확증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행적이 임무와 의무라는 미명 하에 등을 떠밀려서는 안 된다. 아주 단순하게 계산해보자. 92억에 8을 곱하면 우주에 흩어져서 정보를 모으다가 실종된 인간의 수가 나온다. 720억의 인간이 진화를 거듭하면서 형성하는 관계와 정보의 총합, 그건 다름 아닌 ‘삶’이라고 불러야 한다. 삶을 임무로 치환하는 것은 너무나 모욕적인 단순화 아닌가. 나는 이명의 마지막 말을 듣고 그런 생각이 들어서 표준절차를 무시하는 방식으로 반항하기 시작했다. 데이터베이스를 뒤지던 누군가가 그 점을 지적하면 나는 그동안 쌓아 온 지식을 바탕으로 변론할 것이다.

어쩌면 그 의무감이야말로 실종자들이 가장 먼저 이름을 잊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우주는 그토록 좁다. 인간과 인간이 아닌 이들의 이름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 중 대다수는 과거를 잊고 다시 활동할 테고, 누군가는 지쳐서 작동을 멈추고 자발적으로 영원한 휴식을 선택하든가 사고를 당해 정지하기도 할 것이다. 나와 같은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실종자들을 찾아서 이름을 돌려주거나 일종의 자유를 선물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별보다 많은 이름이 옆 우주로 흘러들어 갈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김창규
2005년 과학기술창작문예 중편 부문 수상. SF 창작과 각종 번역에 몰두하며 SF 창작 강의도 병행하고 있다.
소설 ‘파수’, ‘세라페이온’, ‘발푸르기스의 밤’과 번역작으로는 ‘영원의 끝’ 외 다수가 있다.
sohardplanet@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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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글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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