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1000km로 에베레스트 산보다 더 높은 허공을 날아가는 알루미늄 원통. 그 안에 있는 좁은 의자에 앉아서 길게는 10여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마음이 불안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확률적으로 따지면 평소에 별 걱정 없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가 오히려 비행기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다. 이게 과연 사실일까.
2008년 미국 국립안전위원회가 발표한 사망 원인별 확률은 비행기가 더 안전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사람이 한 평생을 살면서 자동차 사고로 죽을 확률은 98분의 1이다. 반면 비행기 사고로 죽을 확률은 7178분의 1이다. 비행기가 70배 더 안전하다.
한편,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의 2008년 통계에 따르면 그해 미국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1억 마일 당 1.27명 이었다. 이 확률로 계산하면, 어떤 사람이 평생 7874만 마일(1억 2598만 4000km)을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면 그 사람은 결국 자동차 사고로 죽게 된다는 뜻이다.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에 따르면 같은 해 미국에서 발생한 비행기 사고에서는 사망자 없이 부상자만 몇 명 생겼다.
먹다가 죽을 확률이 비행기 사고보다 높다
물론 자동차와 비행기의 위험성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당장 위의 통계도 거리당 사망자가 아니라 여행당 사망자나 여행 시간당 사망자로 계산하면 달라질 수 있다. 비행기는 자동차에 비해 훨씬 더 긴 거리를 이동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고가 이착륙 시기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이동 거리가 늘어나도 사고 가능성이 별로 커지지 않는다. 또한, 사람마다 자주 다니는 장소와 이동 패턴이 다르기 때문에 통계를 개개인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
이번 아시아나 항공기 사고 이후로 여러 언론 매체가 이와 비슷한 확률과 통계를 보도했다. 통계의 기준에 따라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비행기를 자동차보다 특별히 더 두려워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1984년 NASA와 FAA의 비행기충돌실험 당시 사진.
오른쪽은 실험에 쓰인 더미(인형).
그런데 우리는 왜 비행기 사고를 더 두려워하는 걸까. 일단 언론에 크게 보도될 정도의 비행기 사고라면 보통 사상자가 대규모로 생긴 경우다. 빈도는 드물지만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이 죽는 사고는 뇌리에 잘 남기 때문에 비행기 사고가 나면 거의 죽는다는 선입견이 강하다. 반면 매일같이 일어나는 교통사고는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게다가 비행기와 달리 자동차는 운전자가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다는 점도 두려움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
이처럼 실제 위험과 사람들의 인식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앞서 언급한 미국 국립 안전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음식을 먹다가 목이 막혀 죽을 확률은 3842분의 1로 비행기 사고로 죽을 확률보다 높다. 하지만 식사를 할 때마다 불안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차이가 생기
는 것은 인간이 느끼는 감정 때문이다. 고통스럽고 끔찍하게 죽을 수록 우리는 더 두려움을 느낀다. 비행기 사고는 이런 면에서 최상위권에 속한다.
그러나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비행기 사고의 생존률은 의외로 높다. 지난 1983년부터 2000년 사이에 미국에서 568건의 비행기 추락 사고가 일어났는데, 총 5만 3487명의 승객 중 5만 1207명이 살아남았다. 95%가 넘는 생존률이다. 이쯤 되면 비행기 사고의 생존자들을 가리켜 기적이라고 할 게 아니라 사망자들이 불운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뒤쪽이 충격을 덜받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불운한 사람에 끼지 않을까.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바로 비행기의 뒷자리가 생존률이 높다는 것이다. 2007년 미국의 기술잡지인 파퓰러 메카닉스는 1971년 이래 미국에서 추락한 20건의 사고를 조사했다. 전부 사망자와 생존자가 동시에 나온 사고였다. 이들은 비행기의 좌석을 네 구역으로 나눠 각 구역의 생존률을 알아봤다. 그 결과 20건 중 11건의 사고에서 뒷좌석에 앉은 승객의 생존률이 분명히 높았다. 이 11건 중 7건의 사고에서는 특히 맨 뒤쪽에 앉은 승객이 유리했다. 5건은 앞쪽 승객이 더 많이 살았으며, 나머지는 특별한 경향이 없었다.
이 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뒤쪽에 앉으면 조금 더 생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실험도 있다. 자동차 충돌테스트를 하듯이 비행기를 추락시켜 어떤 곳이 충격을 더 받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자동차와 달리 비행기로 추락 실험을 하기는 어려워 사례는 많지 않다. 지난 1984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연방항공청(FAA)이 보잉720기를 추락시킨 실험과 지난해에 다시 NASA가 미국의 디스커버리 채널과 함께 보잉727기를 추락시킨 실험이 있다.
두 번째 추락 실험은 앞선 파퓰러 메카닉스의 조사 내용과 일반대중의 통념을 뒷받침했다. 비행기의 앞바퀴가 부러지면서 동체에 충격을 줘 조종사와 가장 앞쪽 승객이 탄 부분이 통째로 뜯어져 나갔다.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가장 앞쪽의 더미(충돌실험용 인형)가 받는 힘은 12G에 달했다. 날개 부근에 탄 더미는 8G, 꼬리 쪽에 탄 더미는 가장 적은 6G의 힘을 받았다. 뒤쪽에 승객이 탔다면 걸어서 비행기를 탈출할 수도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이번 아시아나 사건처럼 비행기가 뒤쪽부터 부딪쳤다면 오히려 앞쪽이 안전할 수도 있다. 이처럼 비행기 추락이 어떤 양상으로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특별히 더 안전한 좌석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비행기가 앞쪽부터 부딪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뒤쪽이 조금 더 안전하다고 볼 수는 있다. 무엇보다도 비행 자료를 기록해 사고 원인을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블랙박스가 있는 곳이 바로 꼬리다. 그만큼 충격을 덜 받는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다.
브레이스 포지션으로 머리를 보호하라
아무리 충격을 적게 받는다고 해도 안전띠를 매지 않았다면 의미가 없다. 이번 사건에서도 비행기 밖으로 튕겨 나가 사망한 승객이 있었다.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면 안전띠를 매고 ‘브레이스 포지션’(Brace Position)을 취해야 한다. 앞에 좌석이 있을 경우에는 두 손을 깍지낀 채 머리를 감싸고 팔을 앞좌석 등받이에 딱 붙이는 자세다. 앞에 좌석이 없을 때는 허리를 숙이고 두 손으로 무릎을 감싼 뒤 머리를 무릎에 대면 된다.
보잉727 추락 실험에서는 이 브레이스 포지션이 실제로 유용한지도 알아봤다. 더미 두 개를 비슷한 위치에 앉힌 뒤 하나는 브레이스 포지션으로, 다른 하나는 곧게 앉아 있는 자세로 뒀다. 브레이스 포지션을 하고 있던 더미는 종아리가 압박을 받아 뒤로 밀리면서 의자 아래쪽에 발목이 부딪쳤다. 발목 골절을 당할 가능성이 있었다. 만약 실내에 화재가 발생했다면 재빨리 밖으로 빠져나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앉아 있던 더미는 앞좌석 등받이에 머리를 세게 부딪쳤다. 뇌진탕을 당했을 가능성이 컸다. 상체가 급격히 앞으로 기울어지면서 허리에도 강한 충격을 받았다. 또한, 파편에 얼굴과 가슴 부위를 맞아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위험이 컸다. 더미 실험을 담당한 신디비르 미국 웨인주립대 바이오공학과 교수는 “브레이스 포지션이 머리를 보호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세”라며 “사고가 날 경우 브레이스 포지션으로 충격에 대비할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추락한 비행기가 멈췄고, 다행히 움직일 수 있는 상태라면 재빨리 밖으로 빠져나와야 한다. 실내에 연기가 나고 있다면 몸을 낮게 하고 움직여야 한다. 좌석이 비상구에 가깝다면 더욱 빨리 탈출할 수 있다. 하지만 비행기 상태에 따라 비상구가 안 열릴 수도 있다. 탈출에는 이른바 ‘90초 규칙’이 적용된다.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승객 전원이 90초 안에 탈출해야 한다는 규칙이다. 추락한 뒤 화재가 발생하고 90초가 지나면 불이 서서히 타다가 산소가 공급되면서 선실 안이 일순간 화염에 휩싸이는 ‘플래시오버’ 현상이 일어나기 쉽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모든 새 여객기는 승인을 받기 전에 90초 탈출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비상구가 50%만 열린 상황에서 모든 승객이 90초안에 탈출할 수 있는지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2008년 에어버스의 A380기 시험 때도 870명의 승객이 78초만에 전원 탈출했다. 물론 실제로는 부상과 화재, 장애물 등 걸림돌이 많다. 보잉727 추락 실험에서는 비행기의 배선이 튀어나오면서 길을 막아 승객의 움직임을 방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살고 싶다면 정석대로
솔직히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승객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좌석을 마음대로 골라 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고가 어떻게 날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결국 응급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받은 승무원의 지시에 따라 모범 교본대로 행동하는 것이 가장 생존 확률을 높이는 방법이다. 탈 때 비상구의 위치를 확인해 두고, 산소 마스크와 구명조끼의 사용법을 숙지하며, 사고가 예상될 경우 브
레이스 포지션으로 대비하는 것이다.
또한, 몸에 지니고 있는 뾰족하거나 단단한 물건은 충격을 받았을 때 흉기로 돌변할 수 있다. 술은 많이 마시지 말자. 사고가 났을때 재빨리 대피하려면 맑은 정신으로 있어야 한다. 게다가 기압이 낮은 공중에서는 평소보다 알코올의 영향을 더 받는다. 가방이나 짐은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 비행기 밖으로 빠져나온 뒤에는 폭발에 대비해 최대한 빨리 멀어져야 한다. 새어 나온 연료가 완전히 증발할 때까지는 접근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구조를 기다리기 위해서는 비행기 잔해 근처에서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직항을 이용하면 사고 확률을 낮출 수 있다. 대부분의 사고는 이착륙시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면? 그렇다면 이제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어차피 앞으로 비행기를 타야 할 일은 점점 늘어날 것 이다. 막연한 두려움으로 벌벌 떨기보다는 생존 지침을 철저히 숙지한 뒤 확률과 맞서 보자.
아시아나항공 214편은 어떻게 추락했나?
사고 비행기는 한국 시각으로 7월 6일 오후 5시경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현지 시각으로 오전 11시 28분경 비행기는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착륙을 시도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기상상황도 좋았고, 엔진과 바퀴도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승객들에게는 착륙 안내 방송을 내보냈고, 관제탑과의 교신도 정상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상황은 돌변했다. 조종석에 있던 음성녹음장치를 조사한 결과 충돌 7초 전 조종사들이 속도가 너무 낮다며 속도를 올려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착륙을 위해서는 최소 시속 253km가 필요했는데, 그보다 시속 60km 이상 느렸던 것이다. 충돌 4초 전에는 조종간이 심하게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비행기의 양력이 떨어져 추력을 잃는 현상(실속)을 경고하는 장치인 ‘스틱 쉐이커’가 작동했다. 충돌 3초 전에는 처음으로 누군가 착륙을 포기하고 다시 상승하는 ‘고 어라운드(복항)’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충돌 1.5초 전에는 다른 조종사가 두 번째로 ‘고 어라운드’를 외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못 미쳐 내려오면서 꼬리 부분이 활주로 앞의 방파제에 충돌했다. 꼬리 부분은 비행기에서 떨어져 나갔고, 나머지 동체는 미끄러지다가 활주로 왼쪽으로 벗어난채 멈췄다. 방파제에서 610m 떨어진 지점이었다. 비행기가 멈추고 1~2분 뒤 대피하라는 경고 방송이 나오며 탈출 슬라이드가 펼쳐지고 승객들은 승무원의 지휘를 받으며 탈출했다. 충돌 10여 분 뒤, 승객과 승무원이 모두 빠져나온 상태에서 비행기는 불길에 휩싸였다.
➊ 자동속도조절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
착륙 당시 비행기는 권장 속도보다 시속 60km 정도 느렸다. 그런데 조종사들은 비행기의 “자동속도조절장치가 작동 중이었으며 정확한 권장 속도에 맞춰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자동속도조절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면 원인은 기체 결함일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7월 11일 데보라 허스먼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 위원장은 “비행기록장치를 조사한 결과 자동속도조절장치는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라고 발표했다. 조종사의 과실 쪽에 무게를 두는 발언이었다. 허스먼은 “자동속도조절 장치를 켜 놓은 상태였다고 해도 속도를 감시하고 유지하는 것은 조종사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➋ 조종사의 경험이 부족했다?
이번 비행에서 조종을 맡은 두 기장은 관숙비행 중이었다. 관숙비행은 기장이 새로운 기종을 조종하는 데 필요한 경험을 쌓기 위한 훈련과정이다. 사고 당시 기장 역할을 맡은 이강국 기장은 총 비행시간이 9793시간으로 베테랑 조종사지만, 사고 기종을 조종한 경험은 총 9회, 43시간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과 국토교통부는 “관숙비행이 국제 항공업계에서 통용 되는 절차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밝혔다. 게다가 사고 기종을 조종한 경험이 풍부한 이정민 부기장이 교관 역할을 했기 때문에 조종에는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NTSB가 사고의 원인을 조종사 과실 쪽으로 몰아가려 한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➌ 관제탑의 잘못은 없나?
이날 관제탑이 사고 비행기에 배정한 활주로는 28L 활주로였다. 그런데 이 활주로는 지상에서 유도전파를 발사해 비행기를 안전하게 유도하는 장치인 계기착륙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상태였다. 그러나 사고 당시 조종사들은 수동으로 착륙을 시도하고 있었고, 날씨도 맑아서 수동 착륙이 어려운 상황은 아니었다. 계기착륙장치의 고장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불확실하다. 충돌 30초 전에 관제사가 교대를 했다는 사실도 문제가 됐다. 관제가 부실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허스먼 위원장은 “충돌 90초 전에 이미 최종 착륙 허가가 났다”고 밝혔다.
➍ 대피는 적절했나?
결과적으로는 침착하게 대응한 덕분에 화재가 발생하기 전 인명피해 없이 탈출했다. 그러나 NTSB는 기장이 탈출 명령을 내린 시점을 문제 삼고 있다. 충돌 직후 조종사들은 관제탑과 통신을 하면서 탈출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왼쪽 두 번째 문에 앉은 승무원이 외부에 화재가 발생한 것을 조종실에 보고했고, 그에 따라 탈출 명령이 나왔다. 그때까지 걸린 시간은 비행기가 멈춘 뒤 약 90초였다. NTSB는 비상사태시 90초 이내에 탈출시켜야 하는 규칙을 어겼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국토부와 아시아나항공 측은 90초 규칙이 비상사태 발생부터 90초인지 기장의 탈출 명령으로부터 90초인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