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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마그마가 올라오는 소리를 감시한다




“저길 봐요. 마침 용암이 터지네요.”
이탈리아 지구물리화산연구소 카타니아 지부의 살바토레 지아만코 선임연구원이 인터뷰 도중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고개를 돌리자 적외선 영상 속에서 붉은색 용암이 터져 나오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카타니아가 있는 시칠리아 섬 북쪽 에올리에 제도의 대표적인 화산, 스트롬볼리에서 막 벌어진 일이었다.

지금도 활동 중인 스트롬볼리 화산에서는 수시로 용암이 분출한다. 이곳에서 감시하는 화산은 스트롬볼리와 카타니아 북쪽에 있는 에트나다. 에트나 산은 스트롬볼리보다 활동은 뜸하지만, 높이가 해발 3300m로 유럽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이다.

어디서 언제 얼마나 크게 터질까
“에트나 산은 2011년에서 2012년 상반기까지 28번이나 폭발했습니다. 그 때문에 공항도 대여섯 번이나 폐쇄됐죠.”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이 지척에 있기 때문에 감시센터는 24시간 돌아간다. 지아만코 박사는 에트나 산에만 해도 60여 개가 넘는 센서가 있다며 다양한 센서의 종류를 나열했다. 대부분은 지진계였다. 지진은 화산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기 때문에 지진이 나면 곧바로 위치와 규모를 파악하고 대비한다. 나머지는 중력 센서, 자기장 센서, 이산화황(SO2) 감지 센서, 적외선카메라, 광학카메라 등이 있었다. 지아만코 박사는 “에트나 산에만 있는 신기술 센서인 ‘인프라사운드(저음파탐지기)’는 지진계에 잡히지 않는 가스 분출 소리를 감지해 마그마가 언제 지표면에 올라오는지를 알아낸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얻은 정보는 감시센터의 한쪽 벽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나타난다. 들어가자 한 명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감시시스템이 대부분 자동화돼 있어 겉으로는 다소 한가로워 보였다. 온도가 갑자기 높아지거나 진동이 생기면 바로 근무자에게 알려준다. 상시 대기 중인 근무자는 자동감시시스템이 감지한 위험 요소 중에서 헬리콥터에서 나오는 열이나 자동차, 천둥 때문에 생기는 진동 같은 잡신호를 걸러낸다.

지아만코 박사는 화산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어디서’, ‘언제’, ‘얼마나 크게’라는 세 가지 요소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산이 정해져 있으니까 ‘어디서’는 쉬워 보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아요. 마그마가 중앙 통로를 이용하지 않고 새로운 통로를 만들거나 아예 화산 밖에서 터져 버리면 위험하거든요. ‘언제’는 인공위성으로 지형의 움직임이나 열 발산을 측정해서 추정합니다. ‘얼마나 크게’는 3D로 측정한 화산의 모양, 국지적인 중력 변화, 분출되는 이산화황 가스의 양 등으로 추정하고요.”

용암이 분출해 지형이 바뀌면 매번 지형도를 새로 그려야 한다. 다음에 용암이 분출했을 때 흘러내릴 경로를 예상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24시간 감시의 시선 떼지 않는다
지아만코 박사에게 현장에서 감시 활동을 벌이는 모습을 취재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안내해 줄 사람을 찾으면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일단 연구소를 나와 카타니아 시내를 구경했다.

카타니아는 고대 그리스 시대까지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는 도시다. 곳곳에서 그리스-로마 유적을 볼 수 있었다. 지하에 묻혀 있는 유적지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에트나 산은 과거 여러 차례 카타니아를 용암과 화산재로 뒤덮었고, 사람들은 그때마다 도시를 재건했다. 그 대신 에트나 산에서 나온 화산재는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 농사를 도왔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지아만코 박사의 문자 메시지였다. 다음날 만날 사람과 약속 장소, 시간이 적혀 있었다. 약속 장소는 에트나 산 바로 아래에 있는 마을인 니콜로지였다. 다음 날 아침, 니콜로지에 도착해 성당이 있는 광장에 내려서 두리번거리자 근처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기자를 보고 자동차 한 대가 다가와 경적을 울렸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사람은 자신을 에밀리오 페코라라고 소개했다.

페코라 씨는 지구물리화산연구소에서 17년 동안 일한 엔지니어다. 그가 먼저 데리고 간 곳은 에트나 산 봉우리가 올려다보이는 한 초등학교 옆 건물이었다. 이곳에서는 다른 두 명의 엔지니어가 에트나 산에 설치할 감시 카메라를 조립하고 있었다. 이곳 사무실에서도 에트나 산 영상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었다. 페코라 씨가 기자를 이끌고 카메라가 설치돼 있는 초등학교 옥상으로 갔다.

“이런 산 아래 마을부터 분화구 근처까지, 다양한 고도와 각도에서 정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여러 군데 카메라를 설치했어요. 엔지니어들이 거의 매일 돌아다니면서 이런 카메라와 각종 센서를 점검하지요. 가끔은 용도에 맞는 센서를 직접 개발하기도 합니다.”

산 위에 올라가는 건 대개 장비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산 위에 있는 관측소는 전부 무인으로 운영된다. 카타니아로 오기 전에 들른 베수비오스 산 위에 있던 최초의 화산관측소도 현재는 박물관으로 바뀌어 있다.

잠시 후 우리는 그곳을 떠나 에트나 산으로 향했다.







감시 카메라도 몇 년에 한 번씩 파괴돼
얼마 뒤 도착한 곳은 에트나 산 남쪽 해발 1900m에 있는 리푸지오 사피엔자였다. ‘지혜 대피소’라는 뜻의 이 시설에는 식당과 호텔, 케이블카 승강장이 있다. 남쪽에서 에트나 산을 오르는 등산객이 거쳐 가는 곳이었다. 이 시설과 이곳까지 이어지는 도로는 모두 지난번 폭발로 파괴된 뒤 복구한 것이라 했다.

여기서 케이블카를 타면 해발 2500m까지 올라갈 수 있다. 거기서 다시 자동차를 이용하거나 걸어서 오르면 정상에 약간 못 미치는 3000m까지 올라갈 수 있다. 정상 봉우리는 위험해서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다. 여름이 가까운 계절이었지만, 산 위는 0℃를 약간 웃도는 정도라 추웠다. 미처 두꺼운 옷을 준비해 오지 못한 등산객들은 대여소에서 2유로를 주고 재킷을 빌렸다. 기자도 하나 빌려 입었다.

밖으로 나서자 난생 처음 보는 기괴한 풍경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시커먼 땅. 군데군데 덮인 하얀 눈은 땅과 강렬한 대조를 이뤘고, 하얀 가스가 땅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어느 외계 행성에 와 있다고 생각해도 될 정도였다.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주변에 작은 산봉우리처럼 솟아 있는 다른 분화구 몇몇이 한눈에 들어왔다.

페코라 씨가 안내해 준 무인관측소는 케이블카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오른쪽 앞 언덕 꼭대기에 있었다. 등산객의 접근이 뜸한 곳이었다. 높지 않은 언덕이었지만 고지대인 데다가, 화산재 속으로 발이 푹푹 빠져 힘이 들었다. 다 오른 뒤에 휴대전화 GPS로 고도를 측정해 보니 해발 약 2600m였다.

작은 오두막처럼 생긴 무인관측소 안에서는 광학카메라와 적외선카메라가 나란히 정상을 주시하고 있었다. 날씨가 좋지 않을 때나 밤에도 적외선카메라로 가스나 용암의 온도를 알 수 있다.

“에트나 산에는 이런 카메라가 8곳에 있으며, 스트롬볼리 산에는 5곳에 있어요. 분화구에서 수백 m 이내에 있는 카메라는 몇 년에 한 번씩은 파괴되지요.”

사진을 찍고 숨을 고른 뒤에 자동차를 타고 정상 가까이 올라갔다. 지난 폭발 때 화산재에 뒤덮여 파괴된 건물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정상 근처에는 자욱한 가스를 뿜어내고 있는 분화구가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먼발치에 높이 솟은 봉우리 두 개가 보였다. 에트나 산의 정상이었다. 하얀 가스가 안개처럼 사면을 덮고 있었고, 꼭대기는 유황으로 뒤덮여 황록색을 띠고 있었다.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눈앞에서 갑자기 화산이 폭발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풍요와 재앙의 상징
일정을 마치고 카타니아로 돌아갈 때는 따로 버스를 이용했다. 화산이 터질 때마다 파괴되고, 다시 짓는다는 도로 가장자리에는 화산 활동으로 생긴 바위와 흙이 시커멓게 쌓여 있었다. 생명이 자랄 수 없는 불모지 같은 분위기였지만, 군데군데 식물은 자라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활동적인 화산을 머리맡에 두고 사는 기분은 어떨까. 흙에 영양분을 공급해 농사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동시에 관광자원으로도 유용한 고마운 존재지만,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에트나 산으로 향할 때 페코라 씨가 들려줬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2002년 폭발 당시 예보에 따르면 우리 집에도 용암이 들이닥칠 예정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전부 대피했지만, 다행히 용암이 비켜나가서 무사했지요.”

화산 감시는 국지적으로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로마에 본부를 둔 이탈리아 지구물리화산연구소는 나폴리, 밀라노, 카타니아, 팔레르모 등지에 지부를 두고 관측한 결과를 서로 공유한다. 전날 지아만코 박사는 “에트나 산 감시를 위해서 나폴리에서 관측한 지진파, 팔레르모에서 측정한 지하수 온도 같은 지구화학분야의 측정 수치도 이용한다”고 말했다.

지구가 살아 있는 한 화산은 언제까지나 사람을 위협할 것이다. 따라서 지구가 완전히 식어 버리는 날까지 이런 감시 활동은 멈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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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글·사진 이탈리아 카타니아=고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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