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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남자에서 아빠로

가정의 달 특별기획



솔직히 그동안 억울한 면이 없지 않았다. 이제 와서야 아빠의 역할을 제대로 인정하는 분위기라니.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아빠의 중요성이
주목을 덜 받은 건 상대적으로 눈에 더 띄는 ‘엄마의 사랑’ 때문이 아닌가.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변화가 없다고 해서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아빠도 자식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은 똑같다. 게다가 요즘에는 아빠도 육아에 많이 참여한다. 이게 흔한 일은 아니다. 포유류, 아니 지구에 사는 동물을 통틀어서 수컷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영장류 중에서도 인간만큼 수컷이 새끼를 돌보는 사례는 없다. 지난해 9월호 과학동아 특집 기사 ‘엄마도 몰랐던 임신의 비밀’에서는 여성이 엄마가 되면 호르몬의 분비가 달라지고 기억력과 용기가 뛰어나게 변한다는 내용을 다뤘다. 출산과 육아 경험은 여성의 뇌 구조도 바꿔 놓는다.

그런데 여성만 이런 변화를 겪을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남성도 다르지 않다. 남성 역시 몸과 마음의 변화를 거치며 아빠로 변신하는
것이다. 남성의 동공은 벌거벗은 여자를 볼 때는 커지지만, 아기를 볼 때는 커지지 않는다는 유명한 실험이 있다. 이처럼 남성은 직접 아기를 갖기 전까지는 아기에게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빠도 몰랐던 임신의 비밀
하지만 아내의 임신과 함께 남성은 아빠로 변하는 과정을 시작한다. 2004년 미국 조지워싱턴대 에드워드 바틀렛 박사가 ‘남성 건강 및 성 학회지’에 발표한 리뷰논문(광범위한 관련 연구를 종합해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배우자가 임신하면 예비아빠 역시 눈에 띄는 생리학적 변화를 겪는다. ‘쿠바드’라고 하는 가상 임신 경험이다. 수면 장애, 불안감, 식욕 감소 또는 식성 변화, 구역질 등으로 임신한 여성이 겪는 증상과 비슷하다.

증상은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임신 기간인 280일을 3등분 하면, 예비아빠는 첫 번째 시기에 증상을 겪다가 두 번째 시기에서는 정상으로 돌아오며 세 번째 시기에는 다시 증상을 겪는 경향이 있다. 조심스러운 임신 초기, 임박한 출산을 앞두고 긴장되는 임신 말기와 증상이 심해지는 시기가 일치한다.

가장 큰 변화는 출산 직후에 일어난다. 이 시기에 초보아빠는 피로나 두통, 집중력 장애 등을 호소한다. 이건 단순한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다. 남성이 아빠로 변신하는 건 생리학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엄마와 마찬가지로 아빠의 뇌에 아기를 인식하는 신경이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최근 연구 결과는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엄마는 냄새로 자기 자녀를 구분할 수 있지만, 아빠는 그렇지 못하다는 잘 알려진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러나 2009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연구팀은 9세 정도의 자녀를 둔 아빠 39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3분의 2에 해당하는 아빠가 냄새로 자녀를 알아 냈다. 학술지 ‘휴먼 네이처’에 발표된 이 연구에 따르면 자녀에게 애정을 많이 쏟고 가까운 아빠일수록 냄새를 알아채는 경향이 높았다.

촉각도 마찬가지다. 1994년 이스라엘 헤브류대 연구팀이 ‘유아 행동과 발달’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아빠도 엄마와 마찬가지로 촉각으로 자기 아이를 구별할 수 있다. 2005년에는 동물 실험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도 나왔다. 미국 UC데이비스 연구팀은 수컷 티티 원숭이가 새끼의 손과 팔을 많이 만질수록 뇌의 ‘체감각대뇌피질’이 커진다는 결과를 학술지 ‘대뇌 피질’에 발표했다.

2010년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실린 캐나다 캘거리대 연구팀의 논문은 새끼가 태어난 뒤 며칠 사이에 아빠 쥐의 뇌에서 후각을 담당하는 영역에 새로운 신경세포가 생긴다는 연구 결과를 담고 있다. 그러나 그건 수컷이 새끼와 함께 둥지에 있을 때뿐이었다. 수컷을 갓 태어난 새끼와 만나지 못하게 하면 신경세포가 생기지 않았다.

거친 남자에서 푸근한 아빠로
뇌의 호르몬 분비도 변한다. 자녀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신경 써서 돌보는 행동을 유발하는 호르몬인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 프로락틴이 높아진다. 이는 들쥐를 이용한 연구로 잘 알려져 있다.

바소프레신과 옥시토신을 동시에 차단한 들쥐는 부성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2000년대 들어서는 사람을 대상으로도 직접 실험해 연관성을
보였다. 아기 울음 소리를 녹음해 들려주었을 때 프로락틴이 더 많은 남성은 그렇지 않은 남성보다 좀 더 관심을 갖고 기민하게 반응했던 것이다.

반대로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줄어든다. 아빠가 된 직후에 이전보다 테스토스테론이 줄어든다는 연구는 이미 여러 차례 발표된 바 있다. 심지어는 ‘여성’과 결혼하는 것만으로도 테스토스테론의 양이 줄어들 수 있다. 2006년 학술지 ‘정신신경내분비학’에 실린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 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여성과 짝을 이룬 남성은 독신 남성에 비해 테스토스테론이 적지만 남성과 짝을 이룬 동성애자 남성은 테스토스테론이 줄어들지 않는다.

이 정도면 아빠들이 억울한 마음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까. 직접 임신과 출산을 겪지는 않지만, 그 옆에서 빛을 못 받고 있는 남성들 역시 공격적이고 무모한 남성성을 버리고 점차 푸근한 아빠로 변하는 것이다. 아빠가 더 이상 야성미 넘치는 멋진 남자가 아니라고 해서 아쉬워하지 말자. 그건 다 자녀를 위해 남자에서 아빠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PART 1. 5색 아빠,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PART 2. 남자에서 아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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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고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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