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초 동안 상대방의 엄지손가락을 몇 번이나 누를 수 있는지 세 보세요.”
참가자들은 태국 마히돌대 시라폴 신투나와 교수의 말에 따라 상대방과 오른손을 맞잡고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운 채로 마주 앉았다. “시작!” 소리와 함께 엄지손가락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앞 다퉈 손가락을 누르려는 통에 대부분은 몇 번 누르지 못한 채 30초가 흘렀다. 신투나와 교수는 웃으며 다시 묻는다. “그런데 여러분. 제가 언제 여러분에게 경쟁하라고 했나요?”
아시아 태평양 지역 9개 나라에서 모인 27명의 청소년 환경대사들은 간단한 게임으로 첫 만남을 시작했다. 경쟁심을 버리고 협력해서 다시 게임을 하자 모두 수십 번 이상 손가락을 누를 수 있었다. 본능이 돼 버린 경쟁심을 버리고 협력해서 목표를 이루는 것. 이것이 환경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는 ‘에코마인즈 2007’의 출발이었다.
에코마인즈는 바이엘과 유엔환경계획(UNEP)의 공동주관으로 2년마다 열리는 국제 청소년 환경포럼으로 이번이 3회째다. 올해는 ‘매클롱 강의 물 공급’을 주제로 지난 5월 31일부터 6월 3일까지 태국에서 열렸다. 우리나라와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싱가포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에서 선발된 17~24세의 청소년 환경대사들은 태국의 매클롱 강을 탐사하고 그룹별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홍수와 가뭄 다스리는 대나무 숲
매클롱 강은 태국 중서부 지역을 적시고 수도 방콕으로 흘러들어간다. 우리나라 경상도 넓이인 3만km2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의 생명줄이다. 청소년 환경대사들이 처음 방문한 곳은 매클롱 강 상류의 야생동물 보호구역 ‘카오남푸’(Khao Nam Pu). 7~8명으로 이뤄진 탐사그룹마다 마히돌대 환경학과 교수와 산림경비원이 함께해 친절한 설명으로 탐사를 도왔다.
카오남푸는 대나무 천국이다. 태국 강은 대체로 대나무가 많은 편이지만 매클롱 강은 대나무가 섞인 숲이 전체 강 유역의 57%를 차지할 정도로 그 비율이 높다. 신투나와 교수는 “대나무는 홍수가 나면 물을 빨아들였다가 가뭄이 들면 물을 내놓아 매클롱 강의 수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며 대나무 숲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곳곳에 야생동물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곳에서 거대한 야생 코끼리의 발자국과 배설물, 코끼리가 몸을 비벼 부러진 대나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평화로워 보이는 카오남푸지만 매년 수량이 줄고 있어 걱정이다. 우기임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바닥이 드러난 강을 볼 수 있었다.
커피 한잔에 40L의 물 필요
청소년 환경대사들은 매클롱 강의 댐 두 곳을 방문했다. 댐은 인간이 물을 이용하기 위해 도입한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다. 상류에 위치한 스리나가린드 댐은 대량의 물을 저장하고 수력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하며, 중류에 위치한 매클롱 댐은 두 갈래로 나뉜 물줄기의 방향을 조절해 주변 지역에 공급하는 물의 양을 결정한다.
댐 방문 뒤 이어진 강연에서 바이엘의 ‘환경과 지속가능한경영’ 책임자 요아힘 겐즈 박사는 “25년 내 세계 인구의 절반이 물 부족에 시달릴 것”이라며 “그 대부분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집중돼 있다”고 경고했다. 계속해서 그는 “대부분 사람들이 물 부족을 이야기할 때 병에 담긴 물만 생각하는 오류에 빠진다”고 설명했다.
사실 물 부족은 마시는 물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제품이 만들어지려면 반드시 물이 필요하다. 이를 ‘가상의 물’(virtual water)이라고 부른다. 커피 한잔이 만들어지려면 약 40L의 물이 필요하다. 커피원두가 자라기 위한 물, 커피원액을 추출하는 데 쓰이는 물 등 커피가 만들어지기까지 필요한 모든 물을 합친 양이다. 쇠고기 1kg을 위해서는 약 1만6000L, 쌀 1kg을 위해서는 약 300L의 물이 필요하다. 가상의 물로 계산하면 한 사람이 연간 소비하는 물의 양은 어마어마하게 늘어난다.
청소년 환경대사들이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매클롱 강 하류 공장지대였다. 이곳에는 특히 강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점토를 이용해 도자기를 만드는 공장이 많다.
3대째 도자기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수파니치보라파치 사장은 “우리는 화학염료 대신 환경친화염료를 쓰고, 석유 대신 가스로 도자기를 구워 환경을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은 태국 도자기 공장 중에 유일하게 환경친화염료를 사용하고 있다. 그는 “부끄럽게도 태국 공장들은 환경 문제에서 아직 걸음마 단계”라며 아쉬워했다.
‘지속가능한개발’을 위하여!
행사 마지막 날에 탐사와 강연을 통해 배운 것을 토대로 ‘매클롱 강의 지속가능한 물 공급’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환경전문가 입장에서 매클롱 강의 자연생태와 사람들의 물 소비 등 모든 것을 고려해 종합적인 대책을 내놓는 것이다. 대책에는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의 필요를 모두 만족시키는 ‘지속가능한개발’ 개념이 포함돼야 했다. 서로 다른 나라 학생들로 구성되도록 5개의 발표그룹으로 나눴다.
청소년 환경대사들의 전공은 매우 다양하다. 자연과학, 공학은 물론 정치학, 법학, 심리학 등의 인문학 출신 학생들도 섞여있다. 4그룹의 피디(인도네시아?수산학) 씨는 “댐은 물 흐름을 단절시키므로 회귀어류를 위한 우회수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프란시스(필리핀?법학) 씨는 “태국 정부가 기업을 상대로 단호한 환경 규제에 들어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나라의 김지은(성균관대 심리학) 씨는 “한번 굳어버린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며 어린이들의 환경 교육을 강조했다.
각자가 가진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모아 하나의 해결책을 만들기 위해 이들은 전날 저녁부터 새벽까지 토론했다. 제한시간 15분 내에 발표하도록 여러 번 연습하고, 심사위원을 감동시킬 노래도 준비했다. 이들의 해결책은 결국 국가, 기업, 시민단체, 국민이 연합해서 대화로 매크롱 강의 물 부족을 해결해야 한다는 쪽으로 모아졌다.
모든 그룹은 공통적으로 “대화와 교육이 환경문제를 해결할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입을 모았다. 서로 다른 문화에서 자란 젊은이들이 환경을 주제로 하나가 된 사실이야말로 이번 행사의 가장 큰 수확이다.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운 이들이 앞으로 사회의 리더가 됐을 때 국가를 초월한 환경문제의 해법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제4회 에코마인즈
한국 바이엘과 환경운동연합은 25세 미만의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환경대사를 선발해 국내?외 환경 프로그램에 우선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올해 에코마인즈 2007에 참여한 3명은 기존 환경대사들을 대상으로 영어 인터뷰를 실시해 최종 선발했다.
매년 6월까지 환경에세이를 접수해 20명을 1차 선발하며, 7월 에코캠프를 통해 10명을 환경대사로 선발한다. 환경대사가 되기를 원하는 청소년은 환경운동연합(www. kfem.or.kr, 1588-3337)과 바이엘코리아(www.bayer.co.kr)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제4회 에코마인즈는 2009년 뉴질랜드에서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