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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태양계의 모든 행성은 태양 주위를 돈다. 우리는 이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데 2012년 11월, 태양계에서 불과 100광년 떨어진 곳에서 어느 별에도 속해 있지 않은 외톨이 행성을 발견했다는 발표가 나와 화제가 됐다. 사실 외톨이 행성이 발견됐다는 보도가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발견은 그 어느 때보다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CFBDSIR2149-0403이라고 명명된 이 천체는 황새치자리AB(AB Doradus) 운동성단에 속해 있다. 운동성단은 같은 방향으로 운동하는 별의 모임을 말한다. 구성원의 나이와 화학 성분이 같기 때문에 함께 태어났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런 운동성단에서 질량이 행성 수준인 천체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운동성단에서 외톨이 행성이 발견되면 성단의 나이를 바탕으로 행성의 나이를 알 수 있어서 행성인지 여부를 더 확실히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운동성단은 태양계에 가까운 편이다. 이전에도 성단에서 외톨이 행성이 발견됐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자세히 연구할 수 없었다.



갈색왜성이냐 행성이냐
상대적으로 가까운 거리 덕분에 과학자들은 이 행성의 스펙트럼을 상세히 연구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이 외톨이 행성의 온도, 질량, 대기 조성과 같은 물리적 특성을 파악했다. 태양계의 행성보다는 크고 뜨거웠다. 질량이 목성의 4~7배, 온도는 약 430℃였다. 성단의 일원이므로 나이는 성단과 같은 2000만 년~2억 년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이 외톨이 행성이 정말 행성인지는 여전히 의문스러울 수 있다. 작은 갈색왜성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왜 행성으로 단정 짓기가 쉽지 않은 걸까.

2006년 국제천문연맹(IAU)은 행성을 새롭게 정의했다. 명왕성이 행성에서 퇴출된 것도 이때다. 그러나 그때도 외계 행성에 대해서는 결정을 미뤘다. IAU에 따르면, 행성은 질량이 중수소 핵융합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최소 질량, 즉 목성 질량의 13배보다 작아야 한다. 그리고 흔히 ‘실패한 별’이라 일컫는 갈색왜성이나 별은 이보다 질량이 커야 한다고 정의했다.

이런 정의는 최근 들어 발견된 ‘외톨이 행성질량체(Isolated Planetary Mass Objects)’의 존재에 의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소속 행성계에서 쫓겨난 행성이거나, 원래 별처럼 외톨이로 태어났지만 질량은 행성의 범주 안에 있는 천체다. 질량으로 따지면 갈색왜성으로 부를 수 없는 후자에 대해서 IAU는 ‘준갈색왜성(sub-brown dwarf)’으로 부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이미 갈색왜성과 행성을 구분하는 질량 경계선이 명확하지 않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천문학자들은 어쩌면 일부 갈색왜성이 실은 외톨이 행성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CFBDSIR2149-0403도 원래 저온의 갈색왜성을 찾다가 발견한 외톨이 행성이다. 문제는 어떻게 갈색왜성과 외톨이 행성을 구분할 수 있는가였다. 현재 관측되는 질량과 역학적 상태만 따져야 하는지, 아니면 기원이나 생성 과정도 고려해야 하는지가 논란의 핵심이었다.

일반적으로 별은 거대한 성간 가스가 수축하면서 생긴다. 갈색왜성은 생성과정이 별과 동일하지만 질량이 모자라 일반적인 별이 되는데 실패한 천체다. 행성은 별 주위에 남은 물질이 뭉쳐서 생긴다. 큰 질량이 수축해서 만들어진 별과 달리 행성은 작은 질량이 뭉쳐서 자란 결과다.

즉, 질량이 비슷하다 해도 갈색왜성과 우리가 아는 태양계 행성은 생성 과정이 전혀 다르다. 따라서 갈색왜성처럼 태어난 외톨이 행성 역시 ‘행성’으로 간주해야 하는지가 천문학자의 고민인 것이다.



외톨이 행성은 많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외톨이로 태어난 갈색왜성이 아니라 별 주위에 있던 평범한 행성이 외톨이가 됐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2011년 말에 발표된 컴퓨터 수치모의실험 결과가 실마리를 제공한다.

태양계는 탄생 뒤 6억 년이 됐을 때 역학적으로 매우 불안정했다. 목성과 같은 거대 행성이 움직이면서 소행성을 이리저리 흩어지게 해 많은 충돌이 일어났다. 그때의 흔적이 수성이나 달 표면의 충돌구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그런데 태양계가 지금의 모습으로 안정되기 위해서는 당시에 거대 행성인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외에 제5의 또 다른 거대 행성이 있었어야 했다. 그 미지의 행성은 해왕성 정도 크기였는데, 목성에 의해 태양계 밖으로 쫓겨났어야만 지구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 1월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두 별 사이의 거리가 멀리 떨어진 쌍성계에 속한 행성은 매우 불안정해서 심한 타원 궤도를 돌다가 외부로 튕겨 나갈 가능성이 크다. 행성계에서 일부 행성이 쫓겨나는 것은 상당히 흔한 사건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무거운 행성은 가벼운 행성보다 쫓겨나기가 더 어렵다. 그리고 우리은하에는 가벼운 행성이 무거운 행성보다 더 흔하다. 즉, 우리은하에 있는 외톨이 행성의 상당수는 지구 정도로 작고 가벼운 행성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은하에 외톨이 행성이 흔할 수 있다는 또다른 증거가 있다. 중력 마이크로렌즈를 이용해 외계 행성을 찾는 연구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별이 그보다 더 멀리 있는 다른 별 앞을 지나갈 때 가까운 별의 중력으로 인해 먼 별의 빛이 휨으로써 마치 렌즈처럼 먼 별에서 오는 빛이 증폭되는 현상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다른 방법과 달리 훨씬 더 먼 거리까지 탐색이 가능하다. 이론상으로는 지구만 한 작은 행성도 찾을 수 있다.

이 현상은 매우 드물게 일어난다. 어떤 시점에 어떤 별을 관측했을 때 중력 마이크로렌즈 현상이 일어날 확률은 100만 분의 1이다. 그럼에도 지난 2년 동안 이 방법을 이용해 질량이 작은, 즉 행성일 가능성이 큰 천체를 500개나 발견했다. 여기서 두 가지 결론이 나왔다.

첫 번째는 우리은하에는 별보다 더 많은 목성 크기의 행성이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들 중 일부가 중심별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거나 어느 별에도 속하지 않고 우리은하 안을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외톨이 행성이라는 것이다. 만약 먼 별에서 오는 빛이 두 번 이상 증폭되면 가까운 별은 그 주위에 동반 천체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별은 중력이 크므로 긴 시간에 걸쳐 크게 증폭되고, 행성은 짧은 1시간에 걸쳐 작게 증폭된다. 그러나 짧고 작은 증폭만 관찰된다면, 이는 외톨이 행성이거나 중심별에서 아주 먼 행성이라는 의미가 된다. 두 경우를 명확히 구분하려면 더 많은 관측이 필요하지만 멀리 떨어진 행성도 언젠가 외톨이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결과는 한때 우주론에서 암흑물질의 후보로 외톨이 행성을 고려했던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암흑물질은 우주 내 물질의 84%를, 우주 총 에너지 밀도의 23%를 차지하지만, 빛과 상호작용을 거의 하지 않아서 관측이 어렵다. 사실 중력 마이크로렌즈는 원래 암흑물질을 찾기 위해 개발한 방법이다.


외톨이 행성에도 생명이 있을까
주 에너지원인 별이 없는 외톨이 행성에 생명이 존재할 수 있을까. 행성계 밖으로 쫓겨나간 행성은 차가운 우주공간에서 계속 복사열을 잃으면서 대기조차 꽁꽁 얼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행성계가 형성 초기라면, 중심별에서 멀어짐에 따라 중심별로부터 받는 자외선의 양이 줄어든다. 행성이 쫓겨나면서 중심별의 자외선 영향에서 벗어나면 주로 수소와 헬륨으로 구성된 초기 행성의 대기는 지구 크기 행성의 중력에도 쉽게 붙잡혀 있을 수 있다.

이런 원리로 지구 크기의 외톨이 행성이 수천 기압의 대기압을 유지하면, 행성의 중심핵에 남아 있는 방사성 동위원소 붕괴열이 지표면을 가열해 액체 상태의 바다가 존재할 수도 있다.

또는 행성이 목성처럼 거대한 행성이라면, 이중행성이나 행성-위성의 조석 효과 덕분에 열이 생길 수 있다. 유로파처럼 생명 거주에 적절한 환경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행성계 형성 초기에 관한 컴퓨터 수치모의실험에 따르면, 달 크기의 위성을 거느린 지구 크기 행성의 약 5%가 행성계에서 쫓겨난 뒤에도 위성을 여전히 유지했다. 더 나아가 이들 외톨이 행성이 장기간 지질학적으로 활발하다면, 지구처럼 자기장이 형성되거나 해저화산 활동이 있을 수 있다. 전자는 생명체에게 보호막을, 후자는 에너지원을 제공해줄 수 있으므로 생명 유지가 가능하다.

외톨이 행성이 다른 별에 끌려 들어가 정착할 가능성도 있다. 큰 별은 거대한 중력으로 근처에 있는 천체를 끌어들인다. 하지만 질량이 큰 별은 수명이 짧으므로 행성 역시 별과 운명을 같이 해야 한다. 영원히 외롭게 떠도는 삶과 짧아도 별과 함께하는 삶. 우리가 외톨이 행성이라면 과연 어느 쪽을 선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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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고호관 | 글 김유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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