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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수현 GIST 생명과학부 교수와의 인터뷰에 앞서 연구실을 잠시 들렀을 때 기자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이 있었다. 연구원들이 극장에서 3D 영화를 볼 때나 쓸 법한 검은색 편광안경을 쓰고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혹시 보안경인가?’ 하고 갸우뚱했지만 정말로 3D 영화를 볼 때 쓰는 그 안경이 맞았다. 연구원들은 실험실에서 규명한 단백질 3차 구조를 입체로 관찰하던 중이었다. 기자도 안경을 빌려 단백질을 입체로 보는 체험을 직접 해봤다. 3D로 보니 교과서에서 평면으로 볼 때보다 단백질의 입체구조를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문득 미세한 단백질의 구조를 어떤 방법으로 이리 상세하게 볼 수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단 1대 뿐인 ‘모스키토’

옆 실험실에서 현미경을 닮은 커다란 실험기구를 찾을 수 있었다. 혹시 저 기구가 단백질 구조를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초고배율 현미경일까. 실험기구의 정체에 대해 엄수현 교수에게 물었다.

“현미경이 아니라 단백질을 반고체 상태의 시료로 결정화시켜주는 ‘모스키토’라는 장비입니다. 우리나라에 1대뿐이죠.”

모스키토는 수작업보다 최소 6배 이상 빠르며 적은 양의 단백질로도 고품질의 결정 시료를 만들 수 있다. 또 이렇게 결정으로 만들어야 ‘X선 결정학’이라는 방법을 쓸 수 있다. X선 결정학이란 시료에 쪼인 X선이 만드는 회절 무늬를 분석해 구조를 유추하는 방법으로, 움직이지 않는 고체 시료만 관찰이 가능하다. 3D로 본 단백질의 구조는 모두 X선 결정학으로 알아낸 것이다.

X선 결정학은 1895년 빌헬름 뢴트겐이 X선을 처음 발견한 이후 생물학 발전에 꾸준히 기여해왔다.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제임스 왓슨, 프랜시스 크릭, 모리스 윌킨스가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히는 데도 X선 결정학의 공이 컸다. 또 노벨스타이츠구조생물학센터의 센터장이기도 한 토머스 스타이츠 미국 예일대 및 하워드휴스의학연구소 석좌교수는 리보솜의 3차원 구조를 원자 수준의 정밀도로 밝혀 2009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리보솜의 크기는 15~20nm(나노미터, 10억 분의 1m)로 세포에서 가장 크기가 작은 소기관이다.

엄 교수는 “1억 배율에 해당하는 원자 수준의 해상도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X선 결정학과, 또 다른 관찰 방법인 핵자기공명분광학법(NMR) 뿐”이라고 설명했다.



구조기반 신약개발에 앞장선다

엄 교수는 “X선 결정학과 핵자기공명분광학법은 구조생물학에 8:2 정도의 비율로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조생물학이란 세포내 소기관이나 단백질의 구조를 분석해 그 기능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X선 결정학은 고체 결정으로 만든 단백질만 관찰할 수 있는데, 결정이 되면 실제 생물체 안에서 존재하는 단백질과는 구조나 특징이 다를 수 있다. 반면에 핵자기공명분광학법은 용액 안에 있는 단백질 구조도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적인 제약 때문에 큰 단백질은 관찰하기 어렵다. 엄 교수는 “다행히 단백질 구조는 결정 상태일 때와 용액 안에 존재할 때가 크게 다르지 않아 두 방법을 상호보완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노벨스타이츠구조생물학센터는 X선 결정학으로 박테리오파지 바이러스(T7)의 DNA중합효소와 DNA의 복합체 구조를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는 박테리오파지 대신 인간의 DNA중합효소와 DNA의 복합체 구조를 규명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엄 교수는 “이전까지 현상만을 관찰했다면, 이제는 구조를 알게 됨으로써 그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알 수 있다”며 “미래의 신약개발은 단백질이나 세포소기관의 구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연구하는 ‘구조기반 신약개발’이 주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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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광주 = 이우상 기자 | 사진 이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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