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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켄튼과 그의 아들, 그리고 고철덩어리 로봇 ‘아톰’의 성장스토리다. 주인공과 아톰은 서로를 보며 성장한다.]

무명의, 혹은 퇴물이 된 권투선수가 강력한 적수를 하나씩 물리치고 챔피언을 향해 다가간다. 여기까지만 말해도 보통은 저절로 “아~” 소리가 나온다.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부단한 노력 끝에 점점 높은 곳으로 올라가며 그 과정에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가족이나 친구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록키 시리즈’나 비슷한 스포츠 영화의 공식이다. 하지만 ‘리얼스틸’은 조금 다르다. 이야기 자체는 전형적이지만, 등장인물이 색다르다.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주먹에 맞아 튀는 건 피와 땀이 아니라 쇳조각과 윤활유다. 리얼스틸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 권투를 한다.
 

 

 

흥미로운 로봇 인터페이스

허름한 뒷골목, 길게 뻗어 있는 시골길, 덜컹거리는 트럭. 주인공 찰리 켄튼이 트럭을 세운 곳은 축제가 벌어진 어느 시골이다. 처음에는 여기가 어떻게 2020년인가 의아하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키 2.5m인 로봇끼리 맞붙는 권투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숀 레비 감독은 권투라는 스포츠와 어울리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복고를 택했다. 그 결정은 성공한 듯하다. 시간이 갈수록 배경과 로봇 권투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만약 로봇 권투가 화려한 미래 도시에서 벌어졌다면 오히려 더 이질적이었을 것이다.

전직 권투선수였지만 챔피언의 문턱에서 크게 좌절한 경험이 있는 찰리는 이제 3류 프로모터다. 말이 프로모터지 직접 권투를 하는 로봇은 의식이 없는지라 조종사나 코치도 겸한다. 별로 성공적이지는 못하다. 로봇 상대조차 못 구해서 소와 싸우는 시골 축제에서는 여자에게 한눈팔다 아까운 로봇을 잃는다. 부품도 제대로 회수를 못하고 돈마저 잃기전에 도망가려는 찰나 찰리에게 한 번 더 기회가 온다.

10여 년 전에 사귀었던 여자 친구가 죽었는데, 둘 사이에 아들이 있다는 것. 영화는 여기서부터 본론으로 들어간다. 찰리는 잠시 맡은 아들 맥스와 함께 ‘노이지 보이’라는 새 로봇으로 재기를 노린다.

눈여겨볼만한 부분은 로봇을 조종하는 방법이다. 남자라면 만화영화에서 거대 로봇에 타고 외계에서 쳐들어 온 괴물과 싸우는 주인공이 어떻게 로봇을 조종했는지 기억할 것이다. 보통은 단순해 보이는 조종간을 앞으로 밀거나 당기면서 ‘스핀 드릴!’, ‘초전자 요요~!’ 같은 무기 이름이나 동작을 외치면 로봇이 그대로 움직인다. 어린 시절 기자는 여기에 의문을 품어본 적이 있다. 어떻게 단순한 조종간 한두 개와 버튼 몇 개만으로 로봇이 사람처럼 복잡한 동작을 할 수 있게 만들까. 로봇은 어떻게 조종하는 게 가장 좋을까.

찰리가 처음에 쓰던 로봇은 리모콘을 이용한다. 노이지 보이는 리모콘으로 조종할 수 있지만 음성인식장치도 갖추고 있다. ‘어퍼컷’, ‘스트레이트’ 같은 단어를 외치면 로봇이 그 동작을 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손에 쥘 수 있을 정도의 리모콘이나 단순한 단어로 이뤄진 음성 명령은 정교하게 조종하기에 부족하다. 영화에서도 펀치의 각도나 힘, 회전 따위를 정교하게 조작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권투에 필요한 기본적인 동작이 로봇에 저장돼 있다는 추측이 가장 그럴 듯하다. 오락실에서 즐길 수 있는 격투 게임처럼 점프, 회피, 펀치와 같은 동작에 해당하는 명령어가 정해져 있고, 리모콘이나 음성으로 명령을 내리면 정해진 대로 행동하는 방식이다. 경기 전에 각각의 명령에 따른 동작을 바꾸거나 상대에 맞게 각도나 힘을 조정해 놓는다면 충분히 말이 되는 얘기다. 평소에 코치가 선수를 훈련시키듯이 말이다.
 


[일본에서 온 로봇 ‘노이지 보이’. 멋있는 외관을 가졌지만, 켄튼과 함께 치른 첫 경기에서 무참히 패한다]
 
로봇 권투는 언제 가능할까

그러나 찰리는 그렇게 성실한 코치가 아니다. 노이지 보이를 받자마자 아무 준비도 없이 시합장에 나간다. 처음에는 좋았지만 아무 전략 없이 나온 경기라 곧 위기에 몰린다. 다급한 나머지 사람을 대하듯이 소리치며 지시를 내려 보지만 먹힐 리 없다. 결국 로봇 권투 마니아인 아들에게까지 창피한 모습을 보이며 참패하고 만다.

로봇의 음성인식장치가 단순한 명령어 인식 수준을 넘어 자연어처리까지 가능하다면 어떨까. 자연어처리는 사람의 말을 컴퓨터가 이해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그러면 미리 저장된 명령어가 아니더라도 사람이 하는 말을 로봇이 알아들을 수 있다.

최근에 애플이 발표한 ‘아이폰4S’에는 이 기능이 기본으로 들어가 화제가 됐다. ‘시리(siri)’라는 이름이 붙은 이 기능을 켜고 ‘오늘 날씨가 어떻지?’, ‘엄마에게 오늘 늦는다고 문자 보내’, ‘근처에 괜찮은 식당이 있나?’와 같이 말하면 정보를 알려주거나 필요한 어플리케이션을 실행시킨다.

하지만 이미 상용화가 시작된 현실과 달리 10년 뒤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속에서는 이런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인간 선수에게 하듯이 ‘맞받아치지 말고 슬슬 유인하다가 오른손 어퍼컷을 날려!’처럼 지시할 수 있다면 훨씬 조종이 편리했으련만 영화 제작자들은 거기까지 생각 못한 듯하다. 오히려 찰리는 아들인 맥스가 로봇에게 말하는 모습을 보고 빈정거리기도 한다.
 

 


[아들과 로봇 권투를 함께 하며 켄튼은 아버지임을 자각한다.]
 
노이지 보이를 잃은 찰리와 맥스는 폐기물 보관소에서 우연히 ‘아톰’을 얻는다. 아톰은 구세대의 스파링파트너용 로봇이다. 그래서인지 색다른 기능이 있다. 바로 동작인식이다. 아톰은 상대의 동작을 그대로 보고 따라할 수 있다. 스파링을 하면서 상대 선수의 움직임을 조사하기 위해 넣은 기능이다. 이 기능은 지금도 마이크로소프트가 발매한 동작인식게임기 ‘키넥트’처럼 어느 정도 구현돼 있다. 로봇 권투 시합에 응용할 수 있으려면 지금보다 더 정교하고 속도가 빨라져야겠지만 10년 뒤의 미래라는 점을 감안하면 불가능하다고 할수는 없다.

정작 2020년에 이루기 가장 힘들어 보이는 건 권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발달된 로봇이다. 펀치를 날릴 때 우리 몸의 변화를 생각해보자. 단순히 주먹만 앞으로 뻗는 게 아니라 두 다리를 벌려 균형을 잡고 허리도 비틀며 빠르게 움직인다. 두발 로봇 ‘마루’를 개발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유범재 박사는 “현재 가장 발달한 두발로봇은 시속 6~8km로 달릴 수 있지만 이는 정해진 동작을 반복하는 차원”이라며 “권투처럼 움직임이 다양하고 고속으로 온몸을 쓰는 동작을 하려면 몸 전체의 균형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도 사람이 밀쳤을 때 균형을 잡아 넘어지지 않도록 버티는 로봇이 있지만, 아직 권투 같은 격한 동작을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키가 2.5m나 되는 로봇이 격렬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해 주는 동력원도 문제다. 최강의 챔피언인 ‘제우스’와 맞붙을 때 아톰은 제우스의 강력한 펀치를 맞으며 버틴다. 그러자 결국 제우스의 동력이 떨어진다. 전선을 달고 있지 않는 이상 로봇의 동력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 일본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에도 거대한 전선을 꽂은 채 움직이는 모습이 나온다.

재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영화 속 로봇 권투는 따로 체급이 나뉘어 있지 않다. 인간 권투에 비해 불공평해 보일 수도 있지만, 로봇 제작자는 가볍고 빠른 로봇을 만들 것이냐 무거워서 느리지만 힘이 센 로봇을 만들 것이냐를 놓고 고민할 수 있다.

로봇 권투는 언제쯤 실제로 가능할까. 유 박사에 따르면 로봇 업계에서는 2025년경 간단한 일을 도와주는 로봇이 상용화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2020년보다 5년이나 뒤의 일이다. 권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로봇이라면 더 오래 기다려야 할 듯하다.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 아톰의 정체

기술적인 면으로는 종종 허점이 보이지만 즐겁게 관람하기에는 충분하다. 전형적인 이야기지만 연출이나 연기, 컴퓨터그래픽 모두 나무랄 데가 없다. 망나니 같았던 찰리가 점차 과거의 열정을 되찾고 스스로 아버지임을 자각하는 과정도 볼 만하다. ‘트랜스포머’에서는 로봇이 주인공이라면 리얼스틸에서는 로봇이 중요한 역할을 하되 어디까지나 사람이 주인공이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아톰의 정체다. 구세대의 스파링파트너용 로봇에 지나지 않은 아톰이 어떻게 연전연승을 거듭하며 챔피언에 도전할 수 있을까. 찰리가 권투 동작을 가르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

감독은 아톰의 승승장구를 통해 애정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맥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톰을 애지중지하며 마치 친구처럼 대화를 나눈다. 그 모습을 비웃던 찰리도 나중에는 자기도 모르게 아톰에게 말을 건다. 아무리 기술적으로 뛰어난 로봇이 등장해 권투를 하고 화려한 조명을 받는 시대가 와도 결국 인간성의 본질에는 변화가 없다는 소리다. 사람과 기계 사이도 그런데 사람과 사람 사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아톰은 스파링로봇답게 작고 가볍지만 맷집이 강한 로봇이다. 아톰은 동작을 모방하고 학습하는 기능이 있다. 전직 권투선수인 켄튼의 권투 자세를 배우며 날이 갈수록 발전한다.]

2011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고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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