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태양물리학자들은 신이 나 있다. 최근 세계적으로 가장 큰 태양망원경이 문을 연 데다 태양이 점점 활동극대기로 접어들면서 아주 역동적인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양물리학자들은 “별 볼일은 없지만 해 볼만 하다”는 우스개를 하곤 한다. 태양은 2차원, 때로는 3차원 입체 영상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별이다. 이런 태양에서 가장 역동적인 현상이 바로 흑점이다. 태양 흑점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다. 1610년 망원경이 개발된 뒤 갈릴레이는 태양을 관찰하다 우연히 흑점을 보게 됐다. 최신 필터를 사용하더라도 너무 오래 태양 관측을 하면 눈이 나빠진다. 성능이 떨어지는 당시 필터를 생각하면 갈릴레이가 시력을 잃은 이유는 태양 흑점을 너무 열심히 관측했기 때문이 아닐까.
갈릴레오 이후 흑점은 과학자들의 큰 관심 대상이 됐다. 17세기 유럽에는 흑점 기록이 상세하게 남아 있다. 이 때는 흑점의 수가 적은 기간에 해당하는데 당시 유럽은 추운 겨울을 보냈다. 특히 태양활동이 이례적으로 적었던 1645~1715년은 마운더 미니멈(Maunder Minimum)이라 부르며 흑점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이 때가 유럽의 소빙하기로 비교적 저위도의 호수까지 얼어붙었다는 기록이 있고 이를 그린 명화도 있다.
새끼흑점은 자기장이 만든다
흑점은 망원경으로 보면 까만 점으로 보인다. 왜 까맣게 보일까? 주변보다 온도가 낮기 때문이다. 흑점 중심의 온도는 주변 즉, 태양 표면(6000℃) 보다 낮은 4000℃ 정도다. 이런 상태가 며칠에서 몇 주 동안 지속된다. 또 하나의 특징은 흑점이 태양에서 가장 자기장이 센 곳이며 지구 자기장보다 수천 배 강한 자기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흑점은 중심에서 자기장이 가장 세고 아주 어둡게 보인다. 이 영역을 본영이라고 한다. 주변에는 자기장이 비교적 약하고 약간 어두운 부분이 있는데 이를 반영이라 한다. 흑점은 온도가 낮아 까맣게 보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지만 현대 태양물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자기장이 아주 센 지역이라고 보는게 더 정확하다. 즉, 흑점을 만드는 근본 원인은 온도가 아니라 자기장이다.
역사상 가장 큰 흑점은 1947년에 관측됐는데, 지구가 약 100여 개나 들어갈 정도로 컸다고 한다. 일반적인 흑점의 크기는 지름이 1만~10만km다. 작은 것은 미국의 텍사스 주 하나, 큰 것은 북아메리카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흑점은 태양활동 극대기에는 늘어나고 극소기에는 줄어든다. 이런 주기가 약 11년 정도다(흑점 주기는 1파트에 자세히 나와 있다).
이런 흑점의 씨앗이 바로 새끼흑점이다. 고성능 태양망원경으로 보면 일반 흑점의 100분의 1 정도 크기(작은 것은 지름이 1000km, 큰 것은 5000km 정도)인 아주 작은 점이 간혹 보인다. 태양 표면은 뜨거운 상승기류 때문에 요동치는 쌀알무늬로 가득한데, 이런 쌀알무늬에 이리 밀리고 저리 치이는 작고 검은 점이 새끼흑점이다. 작은 새끼흑점이 자라나 일반적인 크기의 흑점이 된다.
새끼흑점도 주변보다 온도가 낮고, 그래서 어둡게 보인다. 또 새끼흑점도 강한 자기장 다발이다. 그러나 새끼흑점은 본영 구조만 갖고 있다는 점에서 본영과 반영 모두 있는 흑점과는 다르다. 특히 새끼흑점은 생존 시간이 수 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새끼흑점이 운좋게 살아남아 커지고, 가까이 있는 새끼흑점과 합쳐지면 커다란 흑점이 돼 지구까지 위협하는 것이다.
새끼흑점에 대한 연구는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고분해능 태양망원경이 개발되면서 과학자들은 태양 표면의 미세 구조에 관심을 갖게 됐다. 처음에는 새끼흑점의 자기장 세기에만 관심이 많았다. 점점 큰 망원경이 개발되면서 지금은 새끼흑점의 크기나 형태, 어두운 정도와 자기장 세기, 성장과 쇠퇴까지 전반적인 모습을 연구하고 있다.
새끼흑점이 왜 생기는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흑점과 마찬가지로 태양 안의 자기장이 표면 밖으로 튀어나와 생긴 것은 확실하다. 새끼흑점은 태양 표면에서도 활동이 많은 지역의 주변에서 많이 생긴다. 드물게는 흑점 무리에서 멀리 떨어진 조용한 지역에서도 생긴다. 새끼흑점의 밝기는 주변의 20~80% 정도다. 흑점이라고 해서 아주 어두운 것은 아닌것이다.
새끼 흑점의 중심 자기장 세기는 1700~2600G이다(가우스, 지구자기장의 세기는 0.5G, 보통 막대자석은 500G). 새끼흑점의 자기장은 눈에 보이는 검은 구조보다 넓게 퍼져 있다. 자기장 세기는 중심에서 밖으로 나오면서 줄어든다. 옆에서 보면 자기장이 분수처럼 위로 올라가면서 퍼진다(시선방향에 대해 약 40°). 새끼흑점은 이 퍼지는 정도가 일반 흑점에 비해서 매우 적기 때문에 반영구조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직까지 새끼 흑점이 심한 대류운동을 하는 태양의 쌀알무늬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아 성장하거나 쇠퇴하는지는 잘 모른다. 그 이유는 태양망원경 때문이었다. 성능도 문제지만, 아무리 큰 태양망원경을 이용하더라도 지구대기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교란을 교정해 줘야 한다. 최근에는 지구대기의 교란에 영향을 받지 않는 우주태양망원경이나 대형 태양망원경이 가동돼 흑점 연구가 크게 발전하고 있다. 최근에 밝혀진 관측결과 중에 재미있는 것들을 살펴보자.
물질이 빠져나가는 태양의 작은 구멍
많은 사람들이 흑점이 왜 어두운가 궁금해한다. 새끼흑점도 마찬가지다. 새끼흑점의 어두운 정도는 자기장의 세기에 비례한다. 새끼흑점의 자기장이 세면 주변물질의 대류운동을 막아 열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새끼흑점은 주변보다 차갑고 어두워진다(4000℃가 차갑다니 태양 연구는 확실히 해볼만 하다).
그렇다면 어떤 새끼흑점은 살아남고 어떤 것은 사라지는가. 새끼흑점은 욕조 하수구처럼 물질이 빠져나가는 태양의 작은 구멍이라고 할 수 있다. 새끼흑점을 시뮬레이션해 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보인다. 새끼흑점의 주변부에서는 물질이 빨리 표면 아래로 하강한다. 이러한 하강운동이 주변에서 벌어지는 쌀알무늬 같은 대류운동의 침입에서 새끼흑점을 보호한다. 만일 하강운동이 약해 주변 대류운동이 안쪽으로 침범하면 새끼흑점은 점점 줄어들고 마지막에는 사라진다.
이번에는 성장하는 새끼흑점을 보자. 자기장을 가진 주변 물질이 모여들면 새끼흑점이 커진다. 마치 자석가루가 합쳐지듯이 태양 표면에서 대류운동으로 떠도는 자기장이 합쳐지면서 새끼흑점이 만들어지고 성장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필자를 포함한 한국 천문연구원 연구팀이 2010년 미국천문학회의 ‘천체물리학지’에 발표해 화제가 됐다. 당시 네덜란드 신문(NRC handelsblad)이 “태양의 작은 구멍 발견하다”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 태양 표면에서 일어나는 물질의 수평운동과 수직운동이 새끼흑점의 성장과 쇠퇴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새끼흑점의 상공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나고 있을까? 흑점 아래로 물질이 빠져 들어가듯이 상공대기(채층)의 물질이 태양 표면 쪽으로 내려올까. 이런 의문을 풀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관측기가 최근 우리나라 기술로 개발됐다. 채층의 물질흐름을 관측할 수 있는 고속태양영상분광기(Fast Imaging Solar Spectrograph)다. 이 분광기는 2010년부터 세계 최대 태양망원경인 미국 빅베어 천문대의 신태양망원경(NST)에 달려 있으며 새끼흑점을 포함한 태양의 미세 구조를 관측하고 있다.
관측 결과, 예상 밖의 성과를 얻었다. 새끼흑점의 상공을 보면 대기에서 태양 표면으로 물질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로 물질이 올라가는 것이다. 물질은 올라갈수록 태양중력 때문에 속도가 느려져 높은 상공에서는 아래로 떨어진다.
정글보다 뜨거운 ‘태양의 법칙’
다시 한번 새끼흑점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세하게 보자. 수치모델과 실제 관측에 따르면 새끼흑점 주위에서 대류운동을 하던 물질이 흑점의 자기장 때문에(열전달이 안 되므로) 온도가 낮아져 태양 표면 아래로 떨어진다. 떨어지던 물질 일부가 새끼흑점 아래에서 밀도가 높은 곳을 만나면 다시 튕겨 위로 올라간다. 이 힘으로 대기층(채층)에서도 어느 정도 상승운동을 하다가 중력에 끌려 점점 속도가 줄어들다 다시 떨어진다. 아직 자세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새끼흑점은 흑점폭발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새끼흑점이 태양 표면의 자기시스템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CME나 플레어 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기존 흑점 주변에 자기적으로 반대인 새끼흑점이 새로 나타나면 자기재결합으로 폭발이 쉽게 발생할 수 있다. 새끼흑점이 마치 방아쇠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새끼흑점에 대한 연구는 2013년에 빈번히 발생할 태양폭발의 초기 현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내년에 태양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많은 새끼흑점이 생길 것이다. 어느 것은 흑점으로 성장하거나 합쳐지고 또 어떤 것은 소멸할 것이다. 새끼흑점들이 어떤 식으로 서바이벌을 펼칠지 TV 리얼리티쇼보다 훨씬 흥미진진한 드라마가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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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태양의 분노
Intro . 지구를 지배하는 절대자, 태양
Part 1 . 2013년, 태양은 과연?
Part 2 . 새끼흑점의 서바이벌
Part 3. 태양의 눈부신 비밀
Part 4. 검은 태양이 유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