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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진안의 명소 마이산은 볼록 솟은 두 개의 바위 봉우리로 유명하다. 바위 봉우리는 눈이 쌓이지 않고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인다 해서 겨울철에는 문필봉(文筆峰)으로 불리기도 한다. 수많은 작은 돌로 쌓아올린 마이산 탑은 산을 찾는 이들에게 묘한 신비감을 던진다. 특히 겨울철에는 신비로운 자연 현상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래서 위쪽으로 자라는 고드름인‘역고드름’이 그것이다.



마이산 북쪽 주차장에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은수사(銀水寺)’란 절이 나온다. 조선 후기 전북 임실에 살던 이갑용이라는 사람이 25세 때인 1885년에 들어와 솔잎을 먹으며 수도하던 중 계시를 받고 돌탑을 쌓기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이 절에서는 매일 밤 맑은 물을 담은 그릇 50개를 밖에 내놓는다. 이튿날 보면 그릇 안에 꽁꽁 얼어 있는 물 위로 고드름이 자라난 모습을 볼 수 있다. 크기나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10cm 넘게 자란 것도 있다.

고드름이 어떻게 아래서 위로 자라는 걸까. 물을 떠놓은 사발 위로 물이 떨어져 석회 동굴의 석순처럼 자란 것일까. 만에 하나 그게 사실이라면 신비한 현상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울 수 있겠다.
그러나 마이산에서 거꾸로 자라는 역고드름은 그런 방식으로 형성된 것은 아니다. 그릇에 담겨 있는 물이 위로 솟아서 생겨난 고드름이다. 어째서 마이산에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1928년 원불교 교단이 작성한 한 사료에는 역고드름에 관해 다음과 같은 언급이 나온다.
‘마이산에서 청수를 떠놓고 기도를 드리면 물이 거꾸로 올라와서 얼음이 돼 불체로 화한다.’불심이 얼음을 위로 솟아오르게 했다는 뜻이다. 일부 역술가들은 마이산이 한반도에서 기가 아주 센 곳이고, 그 기(氣)가 중력을 이기게 했다고 풀어내기도 한다.



물이 용암처럼 흘러 얼음 기둥 형성

미스터리 마니아들은 아쉽겠지만 마이산 역고드름은 과학으로 설명하기 힘든 불가사의한 현상은 아니다. 또 마이산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서양에서도 1990년대부터 ‘아이스 스파이크’라고 불러 왔다. 우리말로 바꾸면 ‘얼음 대못’쯤 될까.

너무 기이한 현상이라 20세기 초부터 과학자들의 호기심을 끌어왔다. 이 현상을 연구한 첫 과학 논문은 1921년에 나왔다. 초기 연구는 어떻게 이런 얼음이 생기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지금도 학계에서 타당한 것으로 인정받는 이론이 이때 등장했다. 이론을 만든 연구자 이름을 따서 ‘발리-도시’ 이론이라고 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얼음은 물이 담긴 그릇의 가장자리 표면에서 처음 생겨난다. 그러다 살얼음이 점점 가운데 방향으로 얇게 퍼지며 물 위에 생긴다. 이와 동시에 그릇 아랫부분에도 얼음이 언다. 이는 우리가 얼음을 만들려고 냉동실에 물을 담아 넣어둔 그릇을 얼음이 완전히 얼기 전에 꺼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가장자리는 얼었지만 가운데가 텅 비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듯이 말이다.

역고드름이 생성되는 단계는 그 다음부터다. 얼음이 점점 늘어나다 보면 표면 가운데 부분에만 물이 얼지 않는 상태로 남게 된다. 물이 얼면 부피가 커지는데 가장자리 얼음이 늘면서 부피도 점차 커진다. 따라서 아직 얼지 않는 상태인 가운데 부분 물은 빠져나갈 부분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표면 가운데 부분의 구멍이다.

구멍을 통해 밀려나온 물은 구멍 가장자리에서 다시 얼게 된다. 아래에서는 얼음이 계속해서 얼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가운데가 얼지 않는 얼음 기둥이 생겨나는 것이다. 마치 용암이 분화구에서 흘러나오면서 화산이 더 높게 솟아나듯 말이다. 그러다 얼음 기둥 위 구멍이 막히면 고드름은 더는 성장하지 않는다.

마법의 조건 3가지 역고드름이 생성되는 비밀을 알게 되면 의외로 단순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은 부분이 있다. 대다수 역고드름은 젓가락이나 못처럼 길쭉한 모양이다. 하지만 두꺼운 기둥 모양도 있고 네모난 화병 모양, 심지어 역피라미드 형도 있다.



과학자들은 이런 특이한 모양의 역고드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또 역고드름을 왜 보기 힘든지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사실 이 점은 역고드름 연구 자체의 걸림돌이다. 역고드름이 생성되는 과정을 밝혀내려면 직접 생성 환경을 관찰해야 하지만 일상에서 쉽지는 않다.

과학자들은 대신 역고드름을 실험실에서 만들어 보기로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물리학자 케니스 리브레츠트 교수는 2003년 케빈 루이라는 제자와 역고드름 연구에 착수했다. 리브레츠트 교수는 눈 결정 모양이 왜 다양한지, 또 어떤 모양이 있는지 밝혀내는 연구로 명성을 얻고 있었다.

그가 역고드름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누군가 보낸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사진은 일반 가정용 냉장고에서 역고드름이 맺힌 장면을 담고 있었다. 이미 역고드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던 터라 이 사진은 그의 호기심에 불을 지폈다. 그는 “머릿속은 온통 어떻게 역고드름을 쉽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고 회고했다.

그는 직접 역고드름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몇 차례 실패를 반복한 끝에 그는 어쩌다 한 번씩이지만 역고드름 모양을 얻었다. 역고드름을 만들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의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여러 차례 실험을 거치면서 역고드름을 생성하는 마법의 조건 3가지를 발견했다.

그중 하나가 얼음을 만들 때는 수돗물이 아니라 증류수를 써야 한다는 점이다. 실제 증류수로 만들 경우 누구나 냉동실에서 역고드름을 만들 수 있다. 왜 수돗물은 안 되고 증류수는 되는 것일까. 비밀은 물의 성분에 있다. 수돗물에는 소금을 포함해 각종 미네랄 성분이 들어 있다. 반면 물을 끓여 만든 증류수에는 불순물이 거의 없다.

리브레츠트 교수는 수돗물에 들어 있던 불순물이 역고드름 형성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추측한다. 물이 얼면 불순물은 함께 얼지 않고 물에 그대로 남는다. 그래서 점점 얼음이 늘어날수록 물의 불순물 농도는 올라간다. 얼음기둥으로 솟아 나오는 물도 불순물 농도가 올라간다. 문제는 불순물이 역고드름을 만들어줄 구멍을 막아 버린다는 데 있다.

따라서 불순물이 포함된 물에서는 역고드름이 잘 생겨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리브레츠트 교수는 불순물의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물 속 염분 양에 따라 역고드름이 얼마나 만들어지는지를 알아봤다. 그리고 염분의 양이 적을수록 역고드름이 잘 생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팀이 밝혀낸 두 번째 비밀은 온도다. 조사 결과 역고드름이 가장 잘 만들어지는 온도는 영하 7℃였다. 이 온도에서는 얼음그릇의 중간쯤에서 역고드름이 솟아올랐다. 반면 온도가 더 높거나 낮으면 역고드름이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리브레츠트 교수팀은 이유를 알아내지는 못했다.

다만 온도가 그보다 내려가면 역고드름이 성장하기 전에 얼음기둥의 구멍이 막혀 버리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간의 연구에 따르면 냉장고 냉동실에 넣은 아이스크림이 너무 딱딱해질 정도면 역고드름이 생성되기에 온도가 낮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역고드름을 생성하는 마지막 마법의 시약은 바람이다. 실제 냉동실 팬을 돌렸을 때와 돌리지 않았을 때 확연한 차이가 난다. 역고드름이 자라는 적정 온도인 영하 7℃에서 팬을 돌렸을 때는 역고드름이 자랄 확률이 50%였다. 팬을 가동하지 않으면 고드름이 위로 솟을 확률이 30%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즘 신혼부부에게 인기 있는 냉장고는 성에가 끼지 않도록 냉동실 공기를 순환시키는 방식이 많다. 그래서 역고드름이 생기기 좋은 구조다.

타포니 지형이 만든 자연의 신비

마이산은 리브레츠트 교수가 발견한 3가지 비법에 딱 맞는 환경일까.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변희룡 교수팀은 2003년 마이산에서 자라는 역고드름의 비밀을 풀기 위해 연구에 나섰다. 변 교수팀은 역고드름이 생겼다는 연락을 받고 다음 날 마이산을 찾았다.

그가 마이산에 머문 기간은 7일로, 이 중 하루만 역고드름이 관찰됐다. 연구팀은 마이산의 환경이 리브레츠트 교수팀이 제시한 기준과 어느 정도 맞는지 비교해보기로 했다. 먼저 수질을 조사했다. 놀랍게도 역고드름이 생긴 물에서는 불순물이 적은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역고드름을 만든 물은 보통 수돗물보다 칼륨이 9배나 많았고 미네랄 성분을 많이 포함한 암반수와 비슷한 수질을 보였다. 이는 리브레츠트 교수의 실험 결과와 정반대 결과다. 실제 흔치 않지만 수돗물에서도 역고드름이 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직도 이 점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마이산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은수사 외의 지역에서도 역고드름이 쉽게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인근 사찰인 갑사와 주변 민가에서도 거꾸로 솟은 고드름이 발견되기도 한다. 심지어 물에 젖은 나뭇잎에서도 역고드름이 자라는 현상이 발견된다. 이에 대해 변희룡 교수는 마이산 일대의 독특한 지형에서 원인을 찾는다.

마이산은 굼바위로 된 두 개의 봉우리가 서 있고 주변을 낮은 산이 둘러싸고 있으며, 쉽게 바스라지는 표면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타포니(Tafoni) 지형을 이룬다. 타포니 지형은 전형적으로 외부 기온 변화를 적게 받는다. 기온의 일변화도 적다. 마이산의 경우 한번 기온이 떨어지면 주변보다 오랫동안 추위가 계속된다. 이 냉기를 유지해주는 건 산 정상의 바위산이다. 밤에 바위산이 차가워지면서 찬 공기를 계속해서 형성하기 때문이다. 변 교수는 이런 지형적, 기후적 특성이 마이산에서 역고드름이 잘 생성되는 환경 조건을 만드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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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박미용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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