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기농이 유행이다. 식료품점이나 마트에 가면 한 켠에는 늘 유기농 전문 코너가 있다. 고급이라 가격도 꽤 나간다. 채소부터 고기까지, 우유부터 치즈까지 가공 정도도 다채롭다. ‘나는 안 먹어도 가족을 위해 유기농 제품을 선택한다’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막상 유기농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우물쭈물한다. 무엇이 좋기에 선택하냐고 물어도 똑 부러지는 답을 듣기 어렵다. 건강에 좋아서? 영양이 더 풍부해서? 농약이 없으니 안전해서? 또는 뭔가 환경을 생각하는 큰 마음에?
유기농에 대한 허와 실을 과학적으로 살펴보자. 마침 직접 만 7년째 준채식을 하고 있는 기자가 ‘유기농 채소’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최대한 다양한 시각을 전하기 위해 농업 관련 연구소 연구원은 물론 유기농업 관련 민간기업 대표, 그리고 ‘4무(농약, 화학 비료, 제초제, 비닐을 쓰지 않음)’의 전통농업을 배우고 실천하고 있는 10년 차 귀농 농부가 있는 농장을 찾아가고 만났다.
“정확히 유기농이 뭔데?”
언뜻 몸에 나쁜 것, 그러니까 화학비료나 농약을 안 쓴 식품이라는 건 안다. 근데 둘 다 안 준 건지 아니면 조금만 준 건지, 하나는 주고 하나는 안 준 건지 헷갈린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가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조금 알아보니 그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급한 내용이 모두 맞았다!
유기농과 관련한 용어는 단계가 여럿 있다. 비슷해 보이는 ‘농법’도 다양하다. 유기농법, 자연농법, 무농약농법, 저농약농법, 전통농법 등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유기농산물, 무농약농산물, 저농약농산물은 우리나라 정부가 전문기관(심사를 통해 지정한다)을 통해 인증하는 ‘친환경농산물’의 세 단계에 속한다. 단계로 보면 유기농산물이 가장 엄격하고 저농약농산물이 가장 너그럽다. 다시 말해 셋 중에는 유기농산물이 가장 친환경적이다. 하지만 유기농에 대한 인식이 아직 낮아서인지 이 세 단계조차 혼동하는 소비자가 많다.
“무농약농산물이 유기농산물보다 더 친환경적이라고 아는 경우가 많을 정도예요.”
이민호 국립농업과학원 유기농업과 농업연구사의 말이다. ‘무농약’이라는 말이 없으니 유기농산물에는 농약을 쓰는 것으로 오해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실은 무농약농산물에 화학비료도 쓰지 않은 게 유기농산물이다. 심지어 그 해에만 안 쓴다고 되는 게 아니라 최소 2년(다년생 작물은 3년) 이상 쓰지 않아야만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참고로 ‘자연농법’이나 ‘전통농법’ 등은 국가인증체계에는 없고, 농가 사이에서 개발돼 전해오는 방법이다. 유기농산물보다 더욱 엄격한 방법(제초제나 비닐도 쓰지 않음)을 고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문 1 건강에는 차이가 없다?
그런데 먹거리 초심자의 눈에 이상한 논문 하나가 눈에 띄었다. 크리스탈 스미스-스팽글러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연구원팀이 9월 4일 ‘내과학 회보’에 낸 리뷰 논문이다. 결론을 요약하면 “유기농으로 지은 농축산물의 영양 성분이 기존 농법(흔히 ‘관행농’이라고 부르지만 이 용어에 반감을 느끼는 현장 농업인들이 많다. 이 글에서는 ‘비유기농’이라고 부르기로 한다)으로 지은 농축산물보다 결코 높지 않다”는 내용이다. 연구팀은 관련 논문 수천 편에서 237편의 논문을 골라 데이터를 상세히 분석했다.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비타민은 통계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 인 성분은 차이가 났는데, 인 부족증은 드물기 때문에 별로 중요치 않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단백질이나 지방도 차이가 없었는데, 아주 일부 연구에서만 유기농 우유에 몸에 좋은 오메가3 지방산 비율이 조금 높다고 나왔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왜 유기농을 먹느냐는 질문에 ‘건강에 좋을 것 같아서’라는 답이 많아요.”
그래서인지 이 연구도 여기저기 상세히 소개됐다. 그런데 사실 유기농이 건강 면에서 좋을 게 없다는 ‘유기농의 불편한 진실’ 류의 연구는 예전부터 가끔 나온 상투적인 뉴스다. 올해만 해도 2월에 “유기농 현미 시럽으로 만든 감미료에 비소가 나왔다”는 연구가 나왔고(미국 다트무스대 연구진, ‘건강보건전망’), 작년 1월에는 “유기농 양파와 당근, 감자가 비유기농 채소에 비해 건강에 좋은 항산화물질이 더 많지 않다”는 연구가 나왔다(덴마크 국립 농업연구소, ‘농업식품화학저널’).
약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다. 네이처는 2001년 8월 “400개의 논문을 비교 분석해 봤는데 비타민이나 미네랄, 식품안전성 측면에서 차이가 별로 없더라”는 영국 토양협회의 주장을 소개했다(이번 스탠퍼드대 연구와 논법이 비슷하다). 2004년 4월에는 아예 ‘유기농 FAQ’라는 제목으로 다양한 의문을 소개하며, “영양 면에서 비타민이나 철분, 페놀 대사물 등 (몸에 좋은) 성분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지만, 개발국에서는 부족하지 않은 영양인데다 많이 섭취하면 오히려 발암물질이 될 수 있다”는 구구절절한 의견을 소개하도 했다.
물론 재반론도 있다. 스탠퍼드대 논문이 나오고 바로 그 날 발표된 찰스 벤브룩 미국 워싱턴대 지속가능농업및천연자원센터 교수의 논문은 “단기간의 영양 평가로 의학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며(스탠퍼드대 연구에는 장기 연구가 포함돼 있지 않다), “연구에 포함되지 않은 논문을 보면 유기농 식품은 기형 출산이나 학습장애, 천식 등의 건강 문제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눈치 챘겠지만, 공방을 보면 건강 중 영양 면에서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논란이 지극히 지엽적이다. 주요 영양(단백질이나 지방)에 큰 차이가 없다는 데에는 일단 이견이 없다. 미네랄이나 비타민, 항산화물질, 인 등은 유기농이 약간 많을 수 있다. 이 연구사에게 영양에 대해 문의했을 때에도 “농약을 쓰지 않으니 외부 곤충이 달려들고, 이를 물리치기 위해 작물은 면역물질을 만든다. 그게 사람에게 이로운 항산화물질이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와 별개로, 미세 영양소가 많은 게 좋은 일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애매하다. 정리해 보면, 유기농산물이 ‘영양 면에서 더 좋은지는 확신할 수 없다’가 된다. 물론 나쁘지는 않다. 스탠퍼드대 연구 결과도 나쁘다는 말은 없었다. 가만. 그럼 된 것 아닐까.
하지만 다음 반문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럼 우리는 영양적으로 뚜렷한 장점이 없는 식품을 비싸게 먹고 있다는 건가?”
의문 2 맛도 덜하고 크기도 작고 벌레 먹어야 유기농?
“유기농을 영양 때문에 선택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요?”
㈜산들의 임현수 대표는 연구 결과가 불만이다. 산들은 시아노박테리아(남세균 또는 남조류) 등 광합성을 하는 미생물을 토양에 투입해 토질을 개선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기업이다. 이렇게 만든 토양에서 직접 유기농 방식으로 채소를 기르기도 한다.
“영양이 적다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더 좋죠. 하지만 그런 이유로 유기농을 먹는 게 아니에요. 차라리 맛이라면 모를까.”
임 대표에 따르면, 맛은 차이가 월등하다. 특히 상추류는 제대로 된 유기농과 그렇지 않은 채소의 차이가 특히 크다. 임 대표의 표현을 빌리면, 유기농이 아닌 방식으로 키운 상추는 잎이 얇고 색이 진하며 ‘찝찔한’ 맛이 난다고. 실제로 건네준 잎채소를 먹어보니 둔한 미각에도 두툼하고 상쾌한 맛이 느껴지긴 했다. 앞서서 이민호 연구사도 “풍미가 다르다”고 말한 기억이 났다.
“비유기농 채소에서 탁한 빛과 맛이 나는 건 비료 속에 있는 질소 성분 때문이에요. 화학 비료나 축산 분뇨를 잘못 발효해 만든 비료에는 질소 성분이 많아 오래 쓰면 토양에 질소 성분이 많아져요. 토양을 망칠 뿐만 아니라 채소의 맛도 나쁘게 하죠.”
크기나 모양, 맛 등 소위 ‘상품 가치’는 어떨까. 흔히 유기농은 ‘농약을 안 써서 벌레가 먹어야 정상’ ‘크기가 작지만 맛은 좋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이 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이 연구사는 “크기가 왜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임 대표는 “크기도 얼마든지 클 수 있다”고 말했다. 눈으로 보기엔 둘 다 일리가 있어 보였다. 마트에서 보는 유기농 중에는 작은 것도 꽤 보였다. 하지만 임 대표가 수확한 채소는 반대였다. 가지는 태어나서 본 가지 가운데 가장 컸다. 거의 팔 길이만했다. 벌레 먹은 흔적도 없이 깨끗했다. 잎채소도 두툼하고 구멍이 없었다. 유기농도 유기농 나름이란 뜻이다.
의문 3 안전하긴 할까
만약 제대로 키운 유기농이 아니라 이런 ‘어중간한 유기농’이 문제라면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건강 문제를 하나 더 생각해 봐야 한다. 안전성이다.
“이번 스탠퍼드대 논문에서도 잔류 농약이나 항생제 내성균이 적다는 것은 인정했죠.”
논문에 따르면 유기농 채소와 과일에서는 살충제가 발견될 경우가 7%로, 비유기농의 38%보다 크게 낮았다. 닭이나 돼지는 유기농 여부에 관계없이 박테리아가 나왔지만, 3종 이상의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가 발견될 위험은 33% 낮았다(벤브룩 교수는 통계가 잘못됐다며 67%라고 주장했다). 건강을 다룬 연구를 분석해 보니, 일부(두 개 논문)에서 유기농산물을 먹은 어린이의 소변에서 농약이 적게 발견됐다. 전반적으로 농약 위험은 확실히 유기농에서 적었다. 하지만 스탠퍼드대 논문에서는 이런 내용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벤브룩 교수도 반박 논문에서 “유기농 식품의 가장 중요한 장점은 세 가지”라며, “태아와 어린이 발달 시기에 내분비 교란 물질에 노출될 위험을 줄여 주고, 고기와 유제품의 경우 오메가6 지방산과 오메가3 지방산을 더 섭취할 수 있으며, 항생제내성 박테리아의 위험을 감소시켜 준다”고 말했다.
“하나 더 있어요. 잘못 키운 유기농 채소는 오히려 비유기농 채소보다 더 잘 썩을 수 있다는 거 아세요?”
임 대표가 뜻밖의 말을 했다.
“화학비료를 안 쓰기 위해 유기농에서는 축분을 발효시켜 퇴비를 만들어 쓰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발효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아요. 해로운 미생물이 증식할 수 있죠. 그래서인지 채소를 방치해 두면 쉽게 썩어요. 그런데 유기농도 천차만별이라서, 제대로 키운 유기농은 썩지 않고 마릅니다. 일본에서 유행한 ‘기적의 사과’처럼요.
조직이 치밀하고 밀도가 높은데다, 부패를 일으키는 미생물이 없다는 얘기죠.”
기적의 사과는 일본 아오모리 현에 사는 농부 기무라 아키노리 씨가 키운 사과로, 비료와 농약, 제초제 없이 자연재배로 키워 유명해졌다. 이 사과는 오래 보관해도 마를 뿐, 썩지 않는다. 비슷한 경우로, 우리나라에서는 송광일 국립한국농수산대 교수가 독립적으로 하우스에서 무농약, 무제초제, 무비료, 무경운 농법을 성공시켜 ‘기적의 채소’로 불리고 있다.
이런 사례도 ‘유기농도 유기농 나름’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시중에 판매되는 유기농 가운데에는 기계적으로 인증 자격만 갖춘 유기농이 적지 않다. 개중에는 비유기농산물보다 품질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임 대표는 “유기농도 최종생산물의 품질을 보고 평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2~3년 동안의 토지 전환 기간과 농약, 제초제 사용 여부 등 정해진 ‘과정’만으로 유기농을 정의하면 진짜 좋은 유기농이 소비자에게 선택 받을 기회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이 연구사도 “유럽처럼 조합 등 민간에서 인증하는 프리미엄 유기농 인증제를 통해 더 우수한 유기농산물 생산을 장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문 4 유기농의 진정한 장점은 생태
마지막으로 유기농의 진정한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이 연구사는 생태적 가치를 들었다.
“요즘 유기농에서 새로 시작하고 있는 연구 분야가 생태 서비스입니다. 생물다양성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어요.”
이 연구사가 하는 연구도 유기농경지를 이용해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는 기술이다. 제초제를 쓰면 토양 유실이 늘고 주변 나물도 오염돼 건강에도 해롭다. 이럴 때 논둑의 식생만 바꿔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벼줄무늬잎마름병을 일으키는 해충인 애멸구는 논둑의 화분과 잡초에 서식하다 봄에 보리, 밀을 거쳐 벼까지 옮겨온다. 이 경우 논둑에 허브를 심으면 자연스럽게 막을 수 있다. 콩밭 주변에 코스모스나 메리골드 같은 꽃을 심으면 천적 노린재는 떠나고 나비가 날아드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경기도 이천에서 실험한 결과 2년 만에 미기록종 곤충을 발견하기도 했다.
전통농법 역시 생태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기도 안산의 한 농장에서 10년째 전통농법을 공부하고 실천하고 있는 김석기 씨는 농약, 비료, 제초제는 물론 비닐도 쓰지 않은 채 농사를 짓는다. 뿐만 아니라 농장 안에서 나오는 모든 부산물을 다시 퇴비로 만들어 논과 밭에 되돌리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와 분뇨, 낙엽도 각각 톱밥을 섞어 자연 발효시킨다. 하지만 농장에서는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만든 퇴비를 손으로 만져봤는데 고운 흙을 만지듯 보송보송했고, 불쾌한 느낌도 전혀 없었다. ㈜산들이 연구하는 남세균 토양 증식법도 미생물의 힘으로 퇴비나 농약을 대체하는 더욱 강화된 유기농법이다.
물론 이런 농법을 대량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모든 농가에 적용할 수 없다. 전통농법은 아직은 소규모 자급자족 농사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미생물 증식법은 일반 농가에서도 응용 가능하지만, 정부 보조금을 받는 퇴비와의 경쟁 때문에 고심 중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곳에서 유기농 농민의 ‘초심’을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요즘 백화점 등에서는 ‘좋은 유기농’을 위해서라며 수입 유기농산물을 사요. 자연에 화학 약품을 적게 뿌린다는 유기농의 원래 취지를 잊어버린 일이죠. 자연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면, 가까운 지역에서 키워 소비해야 맞지 않나요?”(2004년 ‘네이처’에 따르면, 당시 전세계 유기농산물의 97%를 북미와 유럽이 소비했지만 생산의 절반은 아시아와 남미였다.) 농민의 마음은 유기농을 구입하는 소비자의 마음 역시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무엇을 먹고 왜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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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먹거리 X파일 - 당신은 제대로 알고 먹는가?
Part 1. 조미료
Part 2. 유기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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