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마감이 임박한 기자. 어제 너무 늦게 잔 탓에 집중력이 떨어진다. 원고 마감을 독촉하는 무언의 소리(?)가 무겁게 짓누른다. 에잇. 바람이나 쐬러 나가야겠다 마음먹은 기자, 편의점에 들른다. 음료수나 하나 마셔볼까. 과일음료, 탄산음료, 건강음료, 우유, 요구르트, 그리고 커피. 눈길을 끄는 건 커피뿐인데 아침에 마셨으니 패스~. 고민하던 중 눈에 들어온 것은 편의점 한켠에 가득 자리잡고 있는 캔 음료. ‘핫식스’ ‘레드불’ ‘번인텐스’…. 에너지드링크다. 마시면 밤도 거뜬히 새고(밤샘 후유증…, 나이 들수록 치명적이다) 집중력도 높아진다는 바로 그 음료.

기사도 잘 써지지 않는데 한번 마셔보는 것도 괜찮겠지. 설마 한 캔 마셨다고 부작용에 허우적댈까. 그래도 뭔가 부담스럽다. 그렇지. ‘직업정신’ 투철한 기자. 인터넷 검색창에 ‘에너지드링크’를 입력해 살펴보기에 이른다.

두근거림, 수면장애, 호흡장애…붕붕주스까지 이게 뭐꼬?

먼저 눈을 확 끄는 기사는 에너지드링크 판매 실적. 레드불은 세계 161개국에서 매년 40억 캔이 팔렸고 누적 판매량이 300억 캔을 넘었다. 2011년 1월에 2억5000만 원에 불과했던 우리나라 에너지드링크 월별 시장 규모는 지난해 12월 23억 9000만 원으로 급성장한 것을 확인하고 화들짝 놀란 기자. 한 번도 마셔본 적 없는 에너지드링크를 누가 이토록 사먹었을까.

이번엔 부작용으로 눈길을 돌렸다. 청소년들과 20~30대 카페인 중독 우려, 카페인 다량 섭취에 따른 심장 두근거림, 수면장애, 호흡장애 등 보기만 해도 끔찍한 문구들이 PC 모니터에 올라온다. 그런데 이건 뭐지? 카페인 과다 섭취로 시력 저하. 미국 프로야구 유명 선수의 사례다. 헐~ 시력까지 영향을 미친다니.

이보다 더한 것도 있었다. 다름아닌 ‘붕붕주스’. 청소년들이 시험기간이면 밤을 새기 위해 즐겨 먹는다는 바로 그것. 박카스와 같은 자양강장제에 이온음료와 비타민C, 에너지드링크 등을 섞어 만든 것으로 ‘서울대 주스’로도 불린다. 붕붕주스 한 잔의 카페인은 식품의약품안전청 기준 청소년 1일 섭취 적정량 ‘몸무게 50kg 기준 125mg’을 훨씬 뛰어넘는 양(대략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의 10배)이다.

더 궁금한 건 따로 있다. 전문가들은 고카페인 음료가 수면장애, 두근거림, 신경과민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붕붕주스는 실제로 마신 사람들이 부작용을 토로한 사례가 있지만 부족하다. 또 카페인 외에 다른 성분은 무엇이고 부작용은 없는 걸까.

다시 편의점으로…논문을 찾아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다시 편의점으로 향한 기자. 이번엔 마음먹고 에너지드링크에 과연 무엇이 들어있는지 살펴보는 걸로. 하나씩 꼼꼼이 살펴본 결과 과연 듣던 대로 많은 성분이 에너지드링크에 들어 있었다.

정제수, 액상과당, 비타민C 등은 대략 봐도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것들은 무얼까. 타우린, 이노시톨, 니코틴산아미드, 비타민B6, 리보플라빈… 일단 타우린은 자양강장제 박카스 때문에 잘 알려졌지만 나머지는 생소하다. 이것들은 도대체 몸에 어떤 생리학적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논문을 찾아 그 궁금증을 풀어봤다.



이 중 가장 논란이 많은 카페인. 하루에도 몇 잔씩 커피를 마시는 기자에게 카페인 적정 섭취량을 알아보는 것은 중요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따르면 카페인 1일 권장 섭취량은 성인 400mg 이하, 임산부 300mg 이하, 청소년 체중 kg당 2.5mg 이하다. 무슨 소린지 감이 잘 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음료별 카페인 함량을 살펴 보자.

이상하다. 아니 이상할 것도 없다. 커피에 역시 가장 많은 카페인이 들어 있었다. 반면 에너지드링크는 콜라 수준의 카페인이 들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커피의 절반이나 3분의 1 정도다. 크게 문제될 것 없어 보이는데…. 마셔볼까. 그런데 과연 집중력 향상과 졸음을 쫓는 각성 효과는 있는 걸까.






‘진짜’ 효과가 있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맛을 안다는 말이 생각난 기자. 마셔본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닌 수십 명, 아니 수백 명의 경험을 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앞서 방법을 고민하던 중 낭보가 전해졌다.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학생들이 지난 10월 8일 기능성 음료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한 것. 수소문해 자료를 입수한 기자. 서울대 재학생 30명 대상으로 효과에 대한 실험을 진행한 내용에 눈이 번뜩 떠졌다(자료를 제공한 학생에게 끊이지 않는 소개팅의 축복이~).

실험 내용은 이랬다. 피실험자에게 실험 3일 전부터 카페인 음료 섭취를 금지했다. 실험 당일 1초 간격으로 지나가는 20개 단어를 최대한 많이 외우게 하고 1분 후 몇 개의 단어를 외웠는지 파악했다. 이후 15명에게는 에너지드링크(250ml)를, 15명에게는 비타민음료(250ml)를 마시게 했다(물론 피실험자는 자신이 무엇을 마셨는지 모르게 한 채). 30분 후 앞선 단어 외우기 실험과 동일한 방법으로 실험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비타민 음료를 마신 학생들은 마시기 전 평균 9개의 단어를 외웠지만 마신 후 평균 12개로 늘었다. 에너지드링크를 마신 학생들은 마신 후 14개의 단어를 외웠다. 비록 30명밖에 안되지만 놀라운 결과다. 이것은 정말 효과가 있다는 뜻 아닌가.



에너지드링크에 함유된 다양한 성분은 영양제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영향을 인체에 미친다.


부작용, 그리고 간과한 사실들

서울대 학생들이 진행한 심포지엄에서는 부작용에 대한 220명 대상의 설문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설문 응답자의 66.4%가 부작용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물론 설문조사의 한계는 있다. 주관적인 데다 여러 부작용들이 반드시 에너지드링크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너지드링크를 마신 후 변화를 답했다는 점에서, 또 전문가들이 고카페인 섭취를 경고한다는 점에서 부작용이 존재하는 것은 틀림없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2002년부터 에너지드링크 관련 사고를 조사한 결과 간 손상, 신부전증, 호흡기관 장애, 불안, 발작, 사망 등이 보고됐다. 카페인 과다 섭취와 카페인 중독에 대한 위험성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대뇌피질에 작용해 정신기능, 감각기능을 일시적으로 활발히 만드는 각성효과를 주지만 부작용으로 심각한 불면증, 신경과민, 운동장애, 두근거림, 구토를 일으킬 수도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 외에 간과한 사실들이 있다. 에너지드링크에 함유된 다양한 성분의 개별 기능과 영향에 대한 연구는 많지만 각 성분이 체내에서 복합적으로 화학 반응을 일으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는 부족하다. 또 장기간 꾸준히 마시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 궁금증은 꼬리를 물었다. 이쯤 되면 직업정신이라기보다는 에너지드링크 한 캔을 두고 마셔야 할지를 고뇌(?)하는 소심함의 극치다(실제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관련 연구를 찾아보고 몇 명의 의사에게 취재를 요청했지만 명쾌한 답을 얻지 못했다).

확실한 것은 청소년에게 더 큰 부작용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잦은 에너지드링크 섭취는 이뇨작용을 촉진해 칼슘과 철분 공급이 원활하지 않게 막아 성장을 방해한다. 어렸을 적 커피 마시면 안 자란다는 어른들의 말씀은 틀린게 없다.

소심한 기자, 결국…

다시 편의점으로 향하는 기자. 에너지드링크 앞에 섰다. ‘나는 편의점에 왜 왔을까? 내가 왜 여기 있지? 에너지드링크 꼭 마셔야 할까?’ 여러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부작용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엄청나게 팔려나가면서도 아직 신문에 큼지막하게 날 만한 사건이나 사고는 없지 않은가. 다만 에너지드링크가 없을 때에도 잘(과연?) 마감했는데 그까짓 음료 하나 마신다고 더 잘(?) 마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글이 써지지 않고 뭔가 허전할 때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리는 버릇이 더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편의점을 나서는 기자의 손에는 커피가 들려 있었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Intro. 먹거리 X파일 - 당신은 제대로 알고 먹는가?
Part 1. 조미료
Part 2. 유기농
Part 3. 에너지드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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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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