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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는 포항공과대학이 개교준비에 부산하다. 해외 과학자의 대거유치로 화제를 뿌리고 있는 이 대학의 이모저모를 알아본다.

영재 과학기술 교육의 물결이 영일만에도 일고있다.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연구중심대학'을 내세우는 포항공과대학이 내년 3월의 개교를 앞두고 단장의 손길이 바쁘다.

멀리 포항제철의 굴뚝숲이 내려다 보이고 형산강이 끼고 도는 언덕의 중턱에 37만평의 학교부지가 펼쳐져 있다. 포항시 효곡동에 소재한 학교부지 위엔 골조공사를 끝낸 건물들이 내부공사에 한창이다. 공사의 진척도는 57%. 아직 제대로의 학교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이곳에 금년 말까지 교양학부동 도서관 연구동 교수 및 학생회관 기숙사 등 9개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포항공과대학이란 이름이 일반인에겐 아직 생소하다. 학교가 문을 열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지방에 대학이 선다는 사실이 그다지 큰 관심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방대학이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포항제철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지방에 '일류대학'을 세우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연구중심대학이란 대체 어떤 형태의 대학일까. '한국의 MIT' '강의 보다는 연구 우선' '학생 5명당 교수1명' 등 포항공대가 내세우는 기치와 함께 이런 궁금증은 더욱 깊어진다.
 

공정도 57%의 포항공대 공사현장


머리 작은 공룡은 도태

포항종합제철의 박태준(朴泰俊·59)회장은 이 대학 설립의 동기를 이렇게 말한다.

"첫째 인구 25만 이상의 도시중 유일하게 4년제 대학이 없는 포항에 대학다운 대학을 만들고, 둘째 회사가 앞으로의 과제로 안고 있는 첨단기술 개발과 인재확보를 도모하며, 셋째 국제수준의 대학을 서울 아닌 지방에 세움으로써 국토의 균형적 발전에 기여하고 끝으로 기업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계기로 삼기위해 학교설립을 결정했읍니다"

이 네가지 이유 중 기업으로서 가장 절실한 이유는, 기업이 살아남기 위한 첨단기술의 개발과 그것을 담당할 우수인력의 확보를 말하는 두번째 이유일 것으로 보인다.

세계의 철강산업을 이끌어온 미·일·독·영 등은 철강기술의 개발을 위해 제각기 특성화대학과 연구소를 갖추었다. 영국의 세필드대학과 BISRA, 독일의 아헨대학과 막스플랑크연구소 그리고 일본의 도호쿠대학과 금속재료기술연구소 등이 좋은 예이다.

포항제철도 설비가 매머드화 함에 따라 연구개발을 담당할 브레인의 확보가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 몸통만 크고 머리가 작은 공룡은 도태된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것이다.

연구중심대학이란

포항공대가 표방하는 연구중심대학이란 미국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칼텍)처럼 대학 자체가 하나의 대규모 연구소인 대학을 말한다. '자동차로 치면 롤스로이스'라고 자부하는 칼텍은 학부학생수 8백75명의 작은 대학이지만 첨단연구를 수행하는 대학원생은 9백30명, 교수는 7백80명이나 되며 개교이후 지금까지 11명의 졸업생과 9명의 교수들이 노벨상을 수상했다.

칼텍도 처음에는 '시골(서부) 사막에서 학교가 될 리 없다'는비관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쇼클리' '아인슈타인' '오펜하이머' 등 세계적인 석학을 교수로 초빙하여 대학원 중심의 연구대학을 성공시키자 MIT 버클리 등 동부의 명문 공과대학도 대학원 중심의 연구대학으로 변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칼텍은 공과대학의 '지방시대'를 연 셈이다.

포항공대가 구상하는 연구중심대학도 칼텍을 모델로 한 것이다. 김호길(金浩吉·53)학장은 포항공대의 성격을 집약하는 산·학·연(産·学·研) 협동체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미국의 스탠퍼드대와 실리콘밸리, 독일의 아헨공대와 루르공업지대와 같은 뛰어난 산학협동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교수와 연구원은 학교강의와 연구를 병행해야만 미래지향적이고 실용적인 학문의 정립이 가능합니다. 포항공대의 경우 포항제철과 그 기술연구소를 연계시키면, 기업연구소는 기업과 관련있는 분야의 응용연구를, 학교연구소는 첨단과학이나 기초연구를 담당하여 학교와 기업 연구소가 서로 협조하면 상승적 효과를 얻을 수 있읍니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서 연구중심대학의 논의가 없었던 것은 '교수를 연구를 위해 모아본 예가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학생과 적은 연구비에 쪼들려 왔기 때문이라고 김학장은 지적하면서, 포항공대에서는 '교수들이 인접한 기술연구소와 제철소 현장을 이용해 문제해결에 참여하고 학생들은 강의와 실험을 통해 익힌 이론을 산업현장에 직접 적용해 볼수 있다'고 했다.

학생5명당 교수1명

이런 생각을 구체화시킬 학사운영 계획을 알아보자. 우선 내년 3월 개교시에는 포항제철의 기술개발과 직접 관련있는 금속공학 재료공학 화학공학 기계공학 전기·전자공학 계측제어공학 산업공학 전자계산학 등 8개학과를 개설, 총 2백40명의 학생을 모집한다. 각 과의 정원은 30명.
2단계에는 기초과학 분야인 물리 화학 수학 등 3개학과 (정원 30명)를 추가로 개설하고 앞서 개설한 8개 학과의 대학원을 설치한다. 3단계로는 포항제철의 경영다각화와 관계있는 첨단기술 관련 4개 학과와 대학원을 개설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총 15개 학과에 전체 학생수는 학부생 2천명, 대학원 석사과정 8백명, 박사과정 1백50명 등 총 2천9백50명에 이르게 된다.

연구중심대학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연구에 필요한 교수를 다수 확보해야 하므로 자연히 교수1인당 학생수가 적어지며, 또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수준높은 대학원이 있어야 하므로 대학원 중심 대학이 된다.

포항공대의 학부학생 대비 대학원생 비율은 48%로서 칼택의 1백5%에는 많이 떨어지나 국내평균 8%, 국내최고 27%에 비해서는 월등하다. 교수 1인당 학생수는 5명. 최종 단계에 가서도 7명 이내를 유지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밀도있는 교육을 실시하는 유럽과 맞먹는 수준이며 국내평균 40명이나 한국과학기술대의 10명 보다 훨씬 나은 형편이다.

교육과정 운영상의 특징은 현장실습에 학점을 부여하여 교과과정에 포함시키는 샌드위치 시스템과 관련학과를 학부로 묶는 다학문적 교육체제를 채택한다는 점이다.

김학장은 '등록금으로 학교를 운영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단언한다. 학생의 80%가 장학금을 받을수 있도록 등록금의 70%를 장학금으로 환원하고 나머지 돈은 성적이 우수하나 생활이 어려운 학생을 집중 지원한다는 것. 아울러 졸업생 전원에게는 전공을 살리는 취업과 진학을 보장하며, 우수 졸업생에게는 박사학위 취득까지의 학업을 보장할 것이라고 한다.

학생 전원이 기숙사에

연구중심대학이 제기능을 발휘하는데 꼭 필요한 것은 첨단의 연구기자재와 제반 지원시설이다.

학교 시설물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전산시설과 기숙사이다. 91년까지 1백18억원을 들일 전산시설로는 각 학과별로 특성화한 컴퓨터 시스템과 워크 스테이션은 물론 교수와 학생에게 PC XT/AT급의 시스템을 공급하고(단말기는 교수 1인당 1대, 학생 4인당1대) 이를 근거리 지역 통신망(LAN)으로 묶을 계획이다. 메인 컴퓨터는 국내 대학에서는 최대 규모라는 용량 2기가 비트(giga bit)의 VAX8800. 행정 및 도서관 전산망 그리고 학생교육실습에는 IBM4381이 채택될 예정이다.

모두 40여동이 들어설 기숙사에는 학부학생과 대학원생 전원이 수용된다. 2인1실에 1인당 8.4평의 넓이. 특징적인 것은 외국어 학습을 위한 4채널의 시청각 시설과 컴퓨터 단말기가 설치된다는 점이다. 도서관도 대출·반납에 이르기까지 모두 전산화될 계획인데 20만권의 장서를 갖춘다고 한다.

한편 모두 1천만 달러를 들여 설치할 연구 기자재로는 과학기술대에 이어 우리나라에선 두번째로 도입되는 3백MHz NMR(1백만 달러) GC 매스 스펙트로미터(50만 달러) 3백 30만배로 확대해 원자를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는 TEM 전자현미경(26만 달러) 등을 들 수 있다. 또 89년부터는 2백억원 규모의 입자가속기 건설에 착수할 예정이다.

해외과학자 유치작전

포항공대의 설립과정에서 가장 이목을 끌었던 것은 교수유치였다. 금년 1월 한달 동안 실시한 국내외 교수요원 공개채용 때는 2백38명의 박사학위 소지자가 응모해 5.5대1의 치열한 경쟁을 보여 박사에게도 '좁은 문'이 있음을 실감케 했다. 총지원자의 절반이 해외과학자.

포항공대는 작년 9월과 금년 1월 및 4월의 3차례에 걸쳐 미국 영국 프랑그 독일에서 해외 한국인 과학자의 유치활동을 벌였다. 이런 종류의 공식적인 활동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 홍보활동은 해외에서 상당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해외 과학자들의 설득에 큰 수완을 보였던 김학장은 그들의 반응을 이렇게 설명했다.

"처음엔 한국에 연구중심의 대학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하면서도 지방에 일류대학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상당수가 회의적이었읍니다. 그러나 한국에 연구중심대학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역설하고, 이런 대학을 정부가 설립하기엔 국립대학의 수가 많아 곤란하며, 사립대학의 재단은 대개 취약하므로 포항제철만이 이러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이런 사업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과학자의 사명이라고 호소했더니 점차 관심을 끌더군요."

이미 기반을 잡은 원로 과학자에게 김학장은 애국심에 호소하는 '전략'을 썼다고 한다. "당신, 한국 떠날 때 유학하러 왔소, 이민하러 왔소?"라고 아픈 곳을 찌른 뒤 "어쩌다 이리 됐지만 마음은 한국에 있는 것 아니오. 죄책감 떨쳐버리고 조국을 위해 일하러 갑시다"라고 권유하는 방법이 잘 먹혔다.

젊은 연구자들에게는 야심을 부추기는 방법을 썼다. "머리에 자신 있으면 오라"는 것이다. "당신의 목표가 교수가 되는 것이라면 서울대나 과학 기술대로 가라. 그러나 연구가 목적이라면 포항공대로 오라. 우리는 당신의 길러진 두뇌를 최대한 활용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는 설득에 진취적인 젊은 학자들이 귀국에 동의했다고 김학장은 말한다. 연구비를 받기가 쉽지 않은 미국의 상황이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다.

1차로 초빙이 확정된 교수는 46명. 5명을 뺀 나머지는 모두 해외 유치 케이스다. 교수급으로는 11명이 유치되었는데 그 가운데는 국내에도 잘 알려진 중진 해외두뇌들이 포함돼 있다. 이론화학의 국제적인 권위로 알려진 변종화(卞鍾和·56) 전 재미 과학기술자협회 회장인 김동한(金東漢·52) 위상수학의 석학인 권경환(權景換·57) 이정묵(李貞默·51) 박사 등이 그들이다.

부교수급으로는 성우경(37·뉴욕주립대)박사 등 7명, 조교수급으로는 홍창호(38·매릴랜드대) 박사 등 20명이 초빙되기로 확정되었다. 조교수들은 대개 30대 중반이고 20대도 있어 흥미롭다. 예를 들면 제정호(29·유리히 원자력연구소) 오종훈(28·KAIST)교수는 모두 20대에 학위를 땄다.

커트라인 미리 공표

아무리 훌륭한 교수와 시설이 완비됐다고 해도 우수한 학생을 모집할 수 없다면 좋은 학교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신입생 모집과 관련하여 대학건설본부장인 이대공(李大公·46) 이사는 "금년 입시 전에 커트라인을 미리 공표한다"는 복안을 밝혔다. 정책당국의 재가 아래 학교측이 정한 이 방침에 따르면 학력고사 성적 2백80점 이상의 지원자만을 받아들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원 미달도 불사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첨단산업 관련학과들은 이름만 그럴싸할 뿐, 형편없이 낙후된 시설과 부족한 교수진 등 산적한 장애를 안고 있어 고급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할 여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포항공대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연구중심의 특성화대학으로 출범하는 데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확보된 학생에게 장학금과 취업기회를 제공하고 교수의 안정된 연구를 계속적으로 지원하는데는 엄청난 재원과 인내가 필요하다. 모처럼의 야심찬 의욕과 엄청난 투자가 '용두사미'가 되지않도록 하라는 것은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든 사람의 바램일 것이다.

1986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조홍섭 기자
  • 사진

    김용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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