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2년 10월 7일 새벽 2시 23분 강하
“강하!”
두 발을 비행기에서 떼는 순간 무중력이 주는 아찔한 감각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여기는 10km 상공. 헬멧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흉포하다. 지금 나는 추락하는 중이다.
두어 바퀴 쯤 공중에서 회전했을까. 나는 허공에서 가까스로 균형을 잡았다. 야간투시경을 통해 보는 녹색 화면 위로 목표지점이 밝게 표시됐다. 방향을 수정한 나는 ‘그리핀’에 그대로 몸을 맡겼다. 그리핀은 고고도 강하작전용 글라이더다. 탄소섬유로 만든 1.8m 길이의 날개는 스텔스 설계 덕분에 적 레이더에 보이지 않는다. 또 자동항법장치로 온갖 기상 악조건 속에서도 목표지점까지 정확하게 도달할 수 있다. 40km를 활강해 적의 대공방어망을 유유히 통과한 우리 팀은 일제히 낙하산을 펼쳤다.
발 아래 저 멀리 성냥갑만 한 크기로 2층짜리 시멘트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정보원은 포로가 된 아군 비밀요원이 이곳에 붙잡혀 있을 거라고 했다. 우리 임무는 비밀리에 그를 구해내는 것이다.
“1시 방향, 보초병 확인.”
낙하하는 도중인데도 저격병은 저격소총으로 적을 겨눴다. 바람 같은 변수를 확인해줄 관측병도 없고, 낙하산을 탄 상태라 불안한 자세임에도 저격병은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바람소리와 소음기 때문에 내 귀에는 총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찰나의 시간이 흐른 후 적이 풀썩 쓰러졌다.
“목표 제거 완료.”
‘능동제어탄’의 등장은 사격 전에 필요한 까다로운 계산을 옛 이야기로 만들어버렸다. 능동제어탄은 날아가는 동안 스스로 탄도를 수정하는 첨단 저격용 탄환이다.
2시 40분 침투
착지한 곳은 허리높이까지 자란 풀이 무성한 들판이었다. 혹시 몰라 열감지 센서로 확인했지만 다행히 숨어있는 적은 없어 보였다. 우리는 즉시 아지트를 포위했다. 그러나 섣불리 들어갈 순 없다. 적병과 마주치기도 전에 클레이모어(대인지뢰)에 당할지도 모른다. 나는 캡슐 안에서 나방을 꺼내 날려보냈다. 그냥 나방이 아니다. 나방 안에는 미세전자제어기술(멤스, MEMS)을 활용한 칩이 들어있어 날아가는 방향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 휴대용 게임기를 닮은 컨트롤러의 화면 위로 나방에 달린 초소형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이 들어왔다.
내가 조종하는 나방은 유유히 아지트 창문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1층에는 지뢰는커녕 아무것도 없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 마침내 도착
한 2층. 나방을 조종해 방 구석구석을 살피던 나는 마침내 우리가 구하려던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얼굴이 두건으로 덮인 채로 의자에 묶여 있었다.
“진입.”
나방으로 아지트 구석구석을 확인한 이상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순식간에 2층까지 진입한 우리는 의자에 묶여 있는 그의 두건을 벗겼다. 그러나 두건 아래에 우리가 찾던 얼굴은 없었다. 우리를 맞이한 것은 로봇의, 백화점 마네킹을 닮은 새하얀 얼굴이었다.
“스파이를 침투시켰다는 사실을 인정해라.”
새빨간 빛이 나는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던 놈이 턱을 덜커덕거리며 우리에게 말했다.
2시 49분 함정
우린 지금 함정에 빠졌다. 우리를 사로잡아 우리가 보낸 스파이의 존재를 입증하려는 적의 계책에 말이다.
“쿠과과광!”
그 순간 난데없는 엄청난 폭음과 함께 나를 포함한 모두가 쓰러졌다. 양쪽귀가 먹어버린 듯 멍멍한 상태에서 나는 필사적으로 두리번거렸다. 상황을 파악해야만 했다. 한쪽 벽과 천장이 함께 날아가 별빛이 그대로 쏟아지고 있었다. 본부로부터 무전이 왔다.
“남서쪽으로부터 레일건 포격이다.”
“거리는 얼마나 됩니까?”
대답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스텔스 탱크(투명 전차)인 것 같다. 여기서는 탱크의 위치나 속도가 확인되지 않는다. 북동쪽 탈출루트B를 이용하라.”
무전을 끝내기 무섭게 나는 동료들에게 즉각 탈출할 것을 지시했다. 스텔스탱크는 진정 전장의 사신이었다. 120mm 재래식 포보다 4배 이상 강력한 레일건으로 무장했으며, 탱크 자체는 레이더 전파는 물론 육안과 적외선에도 보이지 않는다. 또 가벼워진 장갑 덕분에 승용차만큼 빨리 달릴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빠른 속도로 포위해 올 스텔스 탱크를 따돌리고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나는 다시 본부로 무전을 보냈다.
“라이트닝 볼트로 공중 지원을 해주십시오.”
“불가능하다. 스텔스 탱크의 위치를 확인할 수가 없다.”
“유도는 저희가 하겠습니다.”
“도착까지 약 8분. 최대한 탈출 장소로 이동하라.”
또 한 발의 레일건 포탄이 어마어마한 폭발을 일으켰다. 건물 바로 옆이었다. 일부러 오조준을 해 위협사격을 가한 것이다. 나와 동료들은 건물을 빠져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길게 자란 풀 때문에 전속력으로 달리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풀 때문에 곤란한 건 스텔스 탱크도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무성한 풀 사이를 아무 일 없다는 듯 유령처럼 달릴 순 없을 것이다.
잠시 후 풀이 제 스스로 쓰러지는 신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풀이 쓰러지는 곳이 바로 스텔스 탱크의 현재 위치였다. 우리는 수풀 속에 최대한 몸을 숨긴 채로 스텔스 탱크의 위치가 짐작되는 곳을 향해 적외선 레이저를 조준했다. 스텔스 탱크는 개인 화기로는 어찌할 수 없는 막강한 상대다. 이제 다음은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콰지지직!”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에서 갑자기 푸른색 번개가 일직선으로 내리꽂혔다. 아군 건쉽이 공중에서 발사한 라이트닝 볼트였다. 번개는 단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연이어 적의 스텔스 탱크들을 타격했다. 디젤엔진 대신 전기모터, 재래식 포 대신 레일건(전자기포)으로 무장한 최신식 스텔스 탱크는 번개 같은 고압 전류 충격에 취약했다. 스텔스 탱크가 마침내 작동을 멈췄다. 우리는 다시 달렸다. 잠시 후, 바다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3시 13분 탈출
탈출루트B는 잠수함을 이용한다. 즉석에서 공기를 불어넣은 고무보트를 타고 약속지점까지 나가자, 바다 속에서 새카만 잠수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에서 헬리콥터의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나와 동료들은 잠수정 안으로 재빨리 몸을 실었다.
“첨벙, 첨벙, 첨벙!”
우리 잠수정이 다시 바다 속으로 숨기 무섭게 적의 대잠헬리콥터는 소노부이(sonobuoy)를 바다 속에 뿌렸다. 보통 소노부이는 잠수함이 있거나 지날 것으로 의심되는 지역에 집중투하한다. 우리가 탄 잠수정의 패시브 소나 스크린에 소노부이의 위치가 선명하게 표시됐다. 소노부이가 마치 올가미처럼 우리잠수정을 사방에서 죄고 있었다. 발각되는 순간엔 곧장 대잠 로켓의 밥이 될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숨을 죽인 채 패시브 소나 모니터만을 주시하는 것뿐이었다. 우리가 탄 잠수정은 과연 소노부이의 틈을 통과할 수 있을까.
로그오프
나는 3D영상 헬멧을 벗었다. 땀이 그만 후두둑 하고 쏟아졌다. 아무리 가상훈련이라고 해도 훈련 자체는 진짜였다. 사방에 깔린 소노보이 틈에서 우리가 탄 잠수정은 어떻게 탈출할 수 있었을까. 정답은 ‘초전도추진잠수정’이다. 프로펠러가 없는 초전도추진잠수정의 비밀은 다음 파트에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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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미래 전장에 뛰어들다
Part 2. 창 대 방패, 미래무기 물리학
Bridge. 비살상무기
Part 3. 미래전은 5차원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