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 하나로 이과와 문과, 그리고 예체능 계열의 대통합을 이뤄낼 수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위 이미지가 바로 그런 짤입니다. 이공계, 국문학, 그리고 디자인 전공자를 한 번에 열 받게 할 수 있는 이미지로 유명하죠. 마침 저기 과학동아의 표지를 책임지는 이한철 디자인 파트장이 지나가는군요. 슬쩍 보여 드리면서 의견을 물어보겠습니다.
“당연히 신경 쓰이지~. 디자인할 때는 한 지면에 여러 서체를 쓰지 말라고 하는 말이 있거든. 아무런 뜻 없는 나비와 하트도 다 없어져야 해.” 단호한 지적입니다. 국문학 전공자의 관점도 비슷할 겁니다. 우리는 ‘battery’란 단어를 ‘배터리’라고 적기로 약속했습니다. 그게 사회적 약속이라 지켜야 합니다. ‘베터리’라고 적으면 곤란하죠.
요지는 디자인에도, 국어 사용에도 법칙이 있다는 겁니다. 이걸 당당히 어겨버리니 전공자들 눈에 대단히 거슬리는 거죠. 이과도 예외는 아닙니다. ‘무한동력’이란 말만 들어도 움찔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다양한 법칙이 난무하는 과학에서도 특히나 중요하게 여겨지는 ‘열역학 법칙’에 어긋나는 대표적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그간 불가능할 것 같던 다양한 과제를 이과의 이름을 걸고 해결(?)했습니다. 하지만 열역학 법칙만큼은 어쩔 수 없습니다. 연재 최초 ‘이과한테 이런 거 시키지 마라’ 특집을 통해 그 이유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단 팩트체크 해보겠습니다
무환동력 베터리가 진짜면 떼돈을 벌 텐데요
무한동력, 즉 영원히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힘이란 뜻이죠. 이걸 활용한 기계장치를 영구기관이라고 부릅니다. ‘무환동력 베터리’는 보조배터리 세 개의 충전단자와 방전단자를 서로 교차해 연결했군요. 서로 충전하고 충전되길 반복하면서 에너지를 무한하게 생산하는 영구기관 같습니다.
물론 택도 없습니다. 열역학 제1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열역학 제1법칙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라고도 불립니다. 외부와 완전히 독립돼있는 시스템 속에서 에너지의 총합은 항상 일정하다는 뜻이죠. 연결된 보조배터리 세 개는 외부와 독립돼있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무환동력 베터리 속 에너지의 총량도 늘어나지 않을 겁니다. 에너지를 무한하게 생산한다는 꿈은 접어둡시다.
더 깊게 살펴보면, 무한동력은커녕 전기에너지를 잃지나 않으면 다행인 시스템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초록색 보조배터리가 파란색 보조배터리를, 파란색 보조배터리가 은색 보조배터리를, 다시 은색 보조배터리가 초록색 보조배터리를 충전하는 구조입니다. 전류가 흐를 때 전선의 저항 때문에 전기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바뀝니다. 보조배터리를 사용할 때 배터리가 따끈따끈해지는 게 바로 이 때문이죠. 시간이 지날수록 배터리에 충전돼있던 전기에너지가 점차 줄어들 겁니다.
저항이 없는 전선을 만들면 어떻겠냐고요?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270℃ 안팎의 매우 낮은 온도에서 전기저항이 0에 이르는 물체를 초전도체라고 부릅니다. 최근엔 상온 초전도체도 개발돼 화제를 얻었습니다. 2020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된 연구결과인데요, 15℃에서 초전도성을 보였죠. 앗 참, 이 연구에선 압력 조건도 중요합니다. 267GPa(기가파스칼·1GPa는 대기압의 약 1만 배)의 압력을 가해야 상온에서 초전도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죠. doi: 10.1038/s41586-020-2801-z 그러니 저항이 없는 전선을 상용화하는 데 성공하면 꼭 기자에게 제일 먼저 알려주세요. 주식이라도 미리 사둬야 하니까요.
2런 이런 무한동력이라니, 흥.미.롭.군.요
무한동력을 바라보는 과학자의 자세
영구기관을 향한 관심은 고대 그리스부터 이어왔습니다. 지금도 유튜브를 살펴보면 영구기관을 개발했다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영상을 많이 찾을 수 있어요. 우린 매번 새롭게 등장하는 영구기관을 어떤 자세로 지켜봐야 하는 걸까요?
기자의 질문에 손승우 한양대 응용물리학과 교수는 웃으며 “오히려 재미를 느낀다”며 “아마 대부분 과학자가 그럴 것”이라고 했습니다. 손 교수는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어떤 원리를 활용했는지, 왜 이 장치가 영구기관이 될 수 없는지 생각해보는 과정이 흥미롭다”고 했죠. 학자의 탐구심이 느껴지는 답변입니다.
과학은 항상 새로운 발견을 통해 이론을 수정해나가는 학문입니다. 열역학 법칙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 여기에 위배되는 진짜 반례가 발견되면 새로운 법칙으로 대체될 수도 있겠죠. 기사 내내 무한동력이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덮어놓고 안된다고 하기보다는, 한 번쯤 자세히 들여다보며 안되는 이유를 탐구해보는 것도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