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실험 결과가 앞으로 미칠 영향은 무엇일까. 물리학을 바꿀까. 우주와 우리 일상에 영향을 미칠까. 무엇보다 이번 실험 결과로 힉스 입자와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다 밝혀진 걸까. 앞으로 CERN과 물리학계는 어떤 연구를 해야 하는 걸까.
힉스 연구는 끝났다?
CMS 연구그룹에 이어 두 번째로 결과를 발표한 아틀라스 그룹은 마지막에 “역사적인 이정표지만,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롤프 호이어 CERN 소장의 말로 발표를 마쳤다. 겸손의 말 같지만, 이 말은 사실이다. 힉스 연구는 한참 남았다. 이는 CERN이 조심스레 고른 ‘관측’이라는 말에서도 드러난다. 물리학에서 ‘통계적으로 데이터를 쌓고, 이를 연구에 이용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아직도 데이터에 배가 고프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진행해왔던 연구의 목표는 ‘힉스 입자로 볼 가능성이 있는 입자를 실험을 통해 검출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검출기에서 힉스 입자가 없을 경우보다 ‘튀는’ 결과를 얻어야 했다(잉여 사건). 그런데 만약 잉여 사건의 수가 적다면, 이것이 우연한 결과인지 아닌지 판단하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지금까지 CERN의 LHC(가속기)나 선형전자양전자가속기(LEP, 2000년대 이전에 가동), 미국국립페르미연구소의 테바트론이 했던 연구는 모두 충분한 수의 충돌을 일으켜 잉여 사건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충분한 양의 데이터를 얻은 단계를 나타내는 통계 용어가 바로 ‘5시그마’다). 특히 LHC는 해마다 성능을 높여가면서(양성자 빔의 에너지를 높이고 양성자 뭉치의 밀도를 높였다-파트3 참조) 데이터의 양을 늘려왔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올해 안으로는 확정할 수 있을 거라고 예측해왔다.
이제 과학자들은 힉스 입자에 대해 무엇을 연구할 수 있을까. 우선 새로운 입자가 아직 ‘힉스’라는 보장은 없기에 특성을 밝히는 데 주력해야 한다. 최수용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는 “이번 발표는 힉스 입자 발견을 선언한 게 아니라 125GeV/c2에서 새로운 입자가 있다는 것을 알린 것”이라며 “정말로 표준모형에서 말하는 힉스인지 10년은 더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준곤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도 “두 개의 광자로 붕괴했기 때문에 (힉스 입자의 특징과 같은) 스핀이 0인 스칼라 입자로 추정할 수 있지만, 다른 특성들을 포함해 더 연구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스핀은 힉스 여부를 판가름하는 데 가장 중요한 특성 중 하나다. 힉스를 포함해 표준모형의 기본입자 17개 가운데 스핀이 0인 입자는 힉스 입자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스핀을 확인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데이터를 많이 확보하면 된다. 이강영 건국대 물리학부 교수는 “입자의 스핀이 0이라면 입자가 충돌해 나타나는 궤적(새로운 입자를 뜻한다)이 모든 방향에 대해 완전히 고르게 나타난다”며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훨씬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올해 말이 되면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의 대략 4배 정도의 데이터를 얻겠지만, 이 정도로도 부족해 몇 년은 더 연구해야 스핀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발견하지 못한 입자는 없나
이번 힉스 입자 관측으로 물리학의 마지막 입자가 발견되고 물리학이 완성된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그 사실은 CERN의 발표문에서도 드러난다.
CERN은 이번 발표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지금 우리가 아는 물질은 전체 우주의 4%에 불과하다는 표현이다. 이는 23%에 달하는 암흑물질과, 나머지 72%의 암흑에너지를 의식한 말이다. 왜 이런 말을 했을까.
힉스 입자를 ‘마지막 입자’라고 표현하는 것은 바로 물질을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이론인 표준모형의 마지막 기본입자라는 뜻이다. 표준모형은 인류가 만든 가장 성공한 이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 이론은 우주의 기본적인 힘 4가지 가운데 3가지(전자기력, 약한 상호작용, 강한상호작용)를 성공적으로 통합시켰고, 이를 바탕으로 우주를 정교하게 설명하고 분석하며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오직 기존에 알던 물질만 설명할 수 있고 암흑물질이나 암흑에너지는 잘 설명하지 못한다. 최준곤 교수는 “암흑물질을 설명하려면 기존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물리학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런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표준모형을 넘어서는 다른 이론이 나왔다. 그런데 이런 이론에서는 힉스 외에도 발견되지 않은 입자가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예가 ‘초대칭이론’이다. 초대칭이론은 표준모형에서 이야기하는 각종 입자에 모두 또하나의 초대칭(아주 높은 에너지 영역에서 추상적인 대칭을 지니는 특징) ‘짝’이 있다는 이론이다.
초대칭 짝에 해당하는 입자들은 표준모형 입자와 스핀이 2분의 1씩 차이가 나기 때문에 보존(스핀이 정수인 입자)은 페르미온(스핀이 분수 형태인 입자)을, 페르미온은 보존을 짝으로 지닌다. 물리학자들은 이들이 표준모형 기본입자보다 질량이 월등히 높다고 예측하고 있는데, LHC에서 아직까지 단 한 개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강영 교수는 “쿼크의 초대칭 짝들은 LHC에서 이론상 힉스보다 훨씬 더 많이 나올 수도 있지만 발견되지 않았다”며 “생각보다 초대칭 입자의 질량이 크거나 특성이 복잡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초대칭이론에서는 힉스 입자도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또다른 가상 입자인 중력자가 있다. 중력자는 자연에 존재하는 네 번째 기본 힘(중력)을 매개하는 입자인데, 아직까지 중력을 나머지 세 힘(전자기력, 약한 상호작용, 강한 상호작용)과 같이 설명하는 이론은 없다. 나머지 세 힘까지만 설명한 표준모형에는 당연히 중력자가 존재하지 않지만, 초대칭이론에는 중력자가 있고 ‘그래비티노’라는 초대칭 입자도 있다(물론 발견되지 않았다).

암흑물질과 물리학의 미래
초대칭이론이 제안하는 새로운 입자들 중 일부는 대표적인 암흑물질 후보다. 광자와 W입자, Z입자, 그리고 힉스 입자의 초대칭 짝이 그들로, 이들은 ‘약한 상호작용을 하는 무거운 입자(WIMP, 윔프)’라고 부르는 범주에 속한다. CERN이 발표문에서 암흑물질을 언급한 것도 바로 초대칭이론 연구를 계속하겠다는 신호가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초대칭입자가 암흑물질일 가능성에 대해 모든 학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금용연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WIMP는 아주 큰 규모의 우주 구조는 잘 설명하지만, 은하 등 수십KPC(킬로파섹. 1KPC=3260광년) 규모의 구조는 설명하지 못한다”며 “초대칭 입자가 아닌 다른 입자가 암흑물질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금 교수는 “아직까지 LHC에서 증거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초대칭이론 자체도 기로에 서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굳이 초대칭 이론까지 가지 않더라도, 표준모형 자체에도 아직 연구할 내용이 일부 남아 있다. 만약 이번에 관측된 입자가 힉스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면 힉스를 따로 찾아야 하고, 표준모형도 수정해야 한다. 표준모형은 높은 에너지 상태에서 불안정해진다는 한계도 남아 있다.
누가 연구 계속 주도할까
힉스를 발견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연구 시설은 LHC다. LHC는 앞으로도 활약을 계속할까. 암흑물질과 초대칭이론 등을 암시한 발표문에서 알 수 있듯, LHC는 연구 분야를 넓히며 더 활약할 것이다. 힉스 자체의 특성을 밝히는 일도 최전선에서 할 것이다.
더 큰 출력을 지니는 고에너지 가속기 건설은 어떨까. 일단 새 가속기를 짓기는 쉽지 않다. 가속기는 거대 연구시설로,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를 할지 계획이 세워진 상태에서 건설된다. 그런데 힉스 입자 관측에 성공하면서 이제 표준모형에서는 더 이상 매달릴 부분이 별로 남지 않게 돼 건설 필요성을 설득시키기 어려울 수 있다.
다만 전자양전자가속기 건설은 힘을 받을지 모른다. 전자양전자가속기는 과거 CERN의 렙(LEP)과 같은 선형가속기로, 질량이 가벼운 전자와 양전자(전자의 반입자)를 직선으로 가속한 뒤 충돌시킨다.
이 가속기의 장점은 깨끗하고 효율 높은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LHC와 같은 원형 가속기는 양성자와 양성자가 충돌한다. 파트 3 일러스트에서 밝혔듯, 양성자 안에는 두 종류의 쿼크와 글루온, 양자 효과에 의해 형성 중인 쿼크 등이 뒤섞여 충돌 반응이 복잡하다. 원하는 반응을 얻으려면 데이터를 많이 얻어서 그 가운데에서 필요한 것만 골라 기록해야 한다.
이강영 교수는 “LHC에서는 현재 충돌 사건 10만 개 중 하나 이하 꼴로 기록하고 나머지는 버린다”며 “하지만 전자양전자충돌기는 모든 충돌 사건을 기록하기 때문에 입자의 특성을 상세히 밝히기에 좋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원형의 가속기로는 같은 실험을 할 수 없을까. 원형 가속기는 가속 과정에서 진행 방향이 휘며 전자기 방사가 일어나 에너지 효율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양성자보다 전자처럼 가벼운 입자에서 이런 일이 더 잘 발생하기 때문에 현재 규모 이상으로 하기엔 무리가 있다.
현재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은 국제선형가속기(ILC)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약 31km 길이의 지하 구조물로, 이 안에서 광속에 가깝게 가속된 100억 개의 전자와 양전자가 1초에 1만 4000번씩 충돌한다. 앞으로 10년 안에 완공하는 게 목표지만 예산 등의 문제로 진척이 더뎌 장소도 미정이다.
Epilogue
마지막으로, 모두의 궁금증을 해결하고 끝맺자. “힉스 입자를 발견하면 내 생활의 어떤 점이 달라지는가?” 답은 “일상생활은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다. 없던 입자를 발견하는 것도 아니고, 일부 언론이 실수했듯 우주 탄생 직후 사라진 화석 입자를 발굴한 것도 아니다. 단지 이론 상의 예측을 확인한 것뿐이다. 더구나 아직 힉스 입자라는 공인은 없는 ‘관측’ 단계다. 질량을 준 입자가 아니니 질량의 근원 입자를 찾았다고 농담할 필요도 없다. “내 몸무게의 근원인 (못된) 입자를 찾았다”는 농담 말이다.
하지만 인류는 모르는 사이에 아주 큰 일을 하나 성취했다. 이제 인류는 과거의 인류와는 다른 존재가 됐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근원인 우주를 보다 잘 이해하게 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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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힉스
PART 1. CERN에 가다 “21세기 물리학 최대 발견”
PART 2. 힉스, 등장에서 관측까지
PART 3. “힉스 입자가 질량을 준다는 말은 잘못”
PART 4. 신의 입자는 아직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