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독일유학일기] 아헨공대 자퇴하고 카를스루에공대로

술술 읽혀요│

“견문을 넓히고, 새로운 교육을 받아 봐라.”


나는 한국 교육과정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내가 다른 방식의 교육을 받아보길 바랐고, 이민을 결정했다. 그렇게 나는 한국에서 고등학교 1학년까지 마친 뒤 가족들과 함께 독일로 이주했다. 


독일에 와서 나는 여러모로 정말 많이 배웠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졌다. 하지만 유학 생활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뼈아픈 실패를 맛본 적도 있고, 소중한 기회도 잃어봤다. 그러니 혹시라도 쉬운 길을 찾기 위해 독일 유학을 고려하는 독자가 있다면 말리고 싶다. 다만 경험상 이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독일은 열심히 노력하면 많은 기회가 열려 있고, 얻을 수 있는 결과도 분명한 곳이다. 


우리 가족은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RW)주에 살았다. 먼저 나는 독일고등학교 부속 이민자반에서 6개월간 독일어 수업을 받았다. 독일은 주마다 교육 시스템이 다른데, NRW는 주 교육청에서 김나지움(Gymnasium)을 목표로 하는 만 18세 미만 이민자를 지원해줬다. 


김나지움은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가는 중등교육 기관이다. 독일은 한국과 달리 초등학교 졸업 후 하우프트슐레(Hauptschule), 레알슐레(Realschule) 또는 김나지움 중 하나를 선택해 진학한다. 하우프트슐레와 레알슐레를 선택하면 졸업 후 보통 직업훈련을 받는 아우스빌둥(Ausbildung)으로 빠진다. 

 


김나지움에서는 파흐호흐슐라이페(Fachhochschulreife)를 취득한 뒤 전문대로 진학하거나, 독일 수능인 아비투어(Abitur)를 보고 시험 등급이 적힌 자격증(알게마이네 호흐슐라이페·AH)을 받아 대학에 진학한다. 참고로 독일은 주마다 아비투어 시험 과목이 다르다. NRW에서는 수학과 영어를 포함해 총 네 과목을 보지만, 독일어가 필수 과목이거나 다섯 과목을 보는 주도 있다.


AH 성적은 한국의 수능 성적과 달리 한 번 받으면 평생 간다. 잘 보면 좋은 대학 진학은 물론, 이후 대학 변경이나 전과도 쉽다. AH 성적이 나쁘면 커트라인이 상대적으로 낮은 유럽연합(EU)의 독일어권 국가(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에서 공부하거나 몇 년 후 대기자 전형으로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 그래서 커트라인이 높은 의대나 법대는 5~6년 기다렸다가 입학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독일은 AH 증명서를 포함한 서류를 대학에 편지로 보내 지원하는 게 보편적이다. 나는 프랑크푸르트대 경제경영학과, 다름슈타트공대 산업공학과, 카이저스라우테른공대 산업공학과, 아헨공대 산업공학과, 아헨공대 기계공학과 등 다섯 군데에 지원했다. 한두 달쯤 지났을까. 합격통지서가 도착했다. 아헨공대 산업공학과를 제외한 나머지 대학에 모두 합격했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였다. 독일은 이공계 지원자가 적어 이공계열 학과의 커트라인이 높지 않다. 독일은 성적 커트라인을 1.0(최상)~4.0(최하)으로 매기는데 아헨공대 기계공학과는 3.7 정도다. 그래서 그 유명한 아헨공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이때만 해도 대학 생활은 순탄하리라 생각했다. 


“지금 양옆에 친구를 보세요. 그중 한 명은 다음 학기에 이 자리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입학식 때 한 교수가 농담처럼 했던 말이다. 나는 그때 웃지 말았어야 했다. 한국은 대학 입시보다는 졸업이 비교적 수월하다. 반면 독일은 입학은 상대적으로 쉽지만, 대학 과정을 따라가기가 굉장히 힘들다. 특히 이공계 학과는 학생을 최대한 많이 입학시킨 뒤 학기가 끝날 때마다 우수수 낙제시킨다. 그래서 독일 대학은 학부 1~2학년 때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아비투어도 좋은 성적을 냈는데, 대학 수업 몇 번 빠져도 금방 따라잡겠지.’


그러나 이것은 안일한 생각이었다. 아비투어 결과가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거만해져 있었다. 독일 대학은 출석 체크를 안 하고, 시험도 1년에 한 번만 본다. 그래서 계속 수업을 빠졌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수업 진도를 따라가기가 벅찼다. 


첫 시험 결과, 6개 과목 중 5개 과목 누락. 여기에 개인적인 사정까지 겹쳐 나는 결국 학교를 자퇴했다. 나름 순탄하던 인생에서 처음 맛본 큰 실패였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우울증도 생겼다. 부모님을 뵐 면목도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방황했다. 하지만 결국 기댈 곳은 가족뿐이었다. 부모님께 된통 혼날 각오를 하고 돌아갔다. 


감사하게도 부모님은 너그럽게 받아주셨다. 이후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지내며 정신을 바짝 차렸고, 이듬해 현재 재학 중인 카를스루에공대 경제수학과에 지원했다. AH 성적이 나쁘지 않아 입학은 수월했고, 한 번 실수해 봤기에 열심히 공부하며 현재 3학년까지 잘 지내고 있다. 처음부터 이런 마음가짐이었다면 아헨공대에서도 잘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후회는 없다. 더 많은 걸 배웠으니까 말이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20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글 및 사진

    원창섭 독일 카를스루에공대(KIT)경제수학과 3학년
  • 조혜인 기자 기자

🎓️ 진로 추천

  • 산업경영공학
  • 경제학
  • 기계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