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생활과 농업활동은 뗄 수 없는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수천년의 농경사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농업이 차지하는 막중한 비중에 비해 이에 관련되는 기술이나 도구 자료들은 거의 정리되지 않은채 묻혀버리거나 사라져온 게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농협중앙회가 서울 한복판에 농업박물관을 개관한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만큼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말로만 듣던 무자위 따비 써레 매통 도리깨 등 각종 농기구를 비롯, 사시사철 농사짓는 모습을 재현해놓았고 각종의 곡물과 가축을 실물 혹은 박제로 보여주고 있으며 농업사적으로 중요한 기록들을 발굴, 전시하고 있어 일반인들에게 생생한 교육자료가 되는 것은 물론 전문적인 연구작업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선사시대 화전경작을 재현
연면적 3천4백여㎡(약 1천42평) 가량 되는 구농협자리(서울 서대문 적십자병원 맞은편)에 지난 12월1일 문을 연 농업박물관은 △선사시대실 △삼국시대실 △고려·조선시대실(재래농업유물실) △농기구분포실 △농가월령실 △협동유적실 △현대농업실 등으로 구성, 모두 1천6백11점이 전시돼 있다.
이처럼 시대별로 전시한 것은 세월의 흐름에 따른 농업의 변천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라는 게 박물관측의 설명이다.
먼저 선사시대실에서부터 살펴보자. 이곳에는 신석기유물(돌도끼 등), 청동기유물(農耕文靑銅器 등) 55점이 진열돼 있는데, 대부분 국립중앙박물관 경주박물관 진주박물관에 소장된 농업유물을 복제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 이미 화전농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화전경작도(火田耕作圖)는 국내최초의 전시물로 주목된다.
전문가들의 고증을 거쳐 제작된 화전경작도를 보면 선사시대에 이미 평야나 산지에 불을 놓아 풀과 나무를 태우고 밭을 일구어 피 조 기장 수수 콩 등 곡식을 가꾸었음을 알 수 있다. 또 나무나 돌로 만든 따비와 괭이로 밭을 갈고 돌낫으로 곡식을 거두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선사시대에는 곡식이나 도토리 같은 야생열매를 갈아먹기 위해 갈판이나 갈돌 같은 석기가 사용된 것도 흥미롭다. 가장 오래된 쌀은 부여에서 발견된 탄화미(炭化米)로 청동기시대로 추정됐으며, 이 시대의 보관용구들이 모두 자그마한 것이어서 곡물의 수확량이 매우 적었으리라는 추측도 흥미있다.
삼국시대로 넘어오면 디딜방앗간에서 두 여인이 방아찧고 있는 사진을 볼 수 있다. 이 디딜방아 사진은 황해도 안악3호분에서 나온 고구려시대의 디딜방아를 근거로 재현한 것인데, 선사시대에 곡식을 갈던 것과 비교해보면 본격적인 농업이 시작됐음을 짐작케 한다. 그리고 삼국시대의 보관용구는 큰항아리 형태로 발전, 수확량이 증대됐음을 알려준다.
고구려시대의 쇠화덕은 당시에 화식(火食)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물인 셈이고, 가야시대의 가래날은 여러 사람의 협동으로 농사짓기가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삼국시대실에는 이외에도 이시대 농민들의 생활을 자세히 알 수 있는 휴한직파도(休閑直播圖)와 당시 축조된 저수지인 벽골제(碧骨堤)의 사진이 대표적인 유물이며, 신라시대의 쇠스랑이라든가 백제 때의 장군 등 볼만한 것들이 50여점 전시돼 있다.
가래질과 쟁기질 광경
고려·조선시대실에서 가장 볼만한 것으로는 겨리쟁기질과 가래질을 꼽을 수 있다. 협동작업의 시원이라 할 가래질은 가래의 양쪽에 줄을 매 한사람이 자루를 잡고 흙을 떠서 밀면 두사람이 줄을 당겨 흙을 던지는 작업인데 실제 작업광경을 복원해놓았다.
겨리쟁기질은 두마리의 소가 쟁기를 끌며 논밭을 가는 것으로 역시 실제 상황을 재현해놓았는데, 두마리의 소는 순수한 한우(韓牛)를 박제한 것이어서 더욱 흥미롭다. 이 겨리쟁기는 토질이 거친 중북부산간지대에서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전시된 것은 강원도 철원과 경기도 양주에서 출품한 것. 겨리쟁기와 함께 호리쟁기도 전시돼있는데 이는 평지서 한마리의 소가 끄는 것이다.
무자위도 이 시대의 중요한 농기구. 물을 대는 연장으로 18세기 중엽에 사용됐는데 전시된 무자위는 부여와 부안에서 출품된 것으로 수차(水車)와 답차(畓車) 두종류중 답차이다.
이앙(移秧)두레도와 조비시비도(造肥施肥圖)도 주목할만한 자료다. 조비시비도는 고려·조선시대에 들어와 비료를 주었음을 알려주는 귀중한 것. 이들 두 그림은 선사시대의 화전경작도, 삼국시대의 휴한직파도와 각 시대의 농법(農法)을 보여주는 그림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밖에도 달구지 도리깨 키 등의 농기구도 볼만한 것들이다. 특히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생생한 달구지는 썪은 상태의 것을 발굴, 복원했는데 본래는 말이나 소 한필이 끄는 짐수레였으나 일제때 네바퀴짜리가 나왔다고 한다. 복원된 달구지에는 조선못이 박혀 있는 것도 이채롭다.
각종의 계량용기들도 조선시대의 농업과 관련되는 유물들. 네모진 말에 엇비슷하게 손잡이를 붙이거나 고리를 단 모말 종류와 곡식 액체 가루 따위를 헤아리는 정방형그릇인 되 종류들이 한 장소에 일목요연하게 전시돼 있다.
국내최초의 농가월령도
농가월령실은 특별전시실격으로 꾸며놓은 곳. 1월부터 12월까지 농가에서 매월 행하는 행사와 풍속 범절 등을 읊은 월령체로 된 가사인 농가월령가를 그림으로 표현한 농가월령도(1월령도부터 12월령도까지) 12점을 비롯, 가사에 나오는 밀다리벼 농기구 곡물 등을 발굴 전시했다.
특히 농가월령도는 국내최초의 전시물.
밀다리벼는 중국에서 도입된 품종으로 밀다리(경기도 김포군 통진면과 하성면 사이에 놓인 다리) 근처에서 재배돼 밀다리벼라 명명된 것으로 미질이 좋아 왕실에 진상되었는데 쌀이 스스로 빛을 낸다 하여 왕이 자광(自光)벼라고 이름지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협동유적실(協同遺跡室)은 우리 민족의 협동의 역사를 기리기 위해 마련된 전시실이다. 이곳에는 대동계 문헌을 비롯한 계(契)유물 5점과 두레유물 2점이 전시돼있고, 창녕지방의 농요를 시현, 제작하여 비디오로 방영해서 입체적으로 전달해준다.
이곳에는 여러가지 긁정이의 형태 및 낫과 호미의 분포를 지도와 함께 보여주고 있다. 커다란 한반도지도 위에 지역별로 쓰이는 낫과 호미를 배치시켜 놓고 있어 한눈에 비교해 알아볼 수 있게 했다.
마지막으로 박물관 3층에 전시해놓은 게 현대농업실. 이곳에는 1, 2층에 전시된 옛농업관련 유물 등과 연계된 현대의 각종 농업을 분야별(작물 과수 원예 등)로 전시했다. 이 전시실에는 현대농업의 개관을 보여줌은 물론 미래코너를 마련하여 미래농촌의 발전상을 표현했다.
또 현대농업실에는 특용작물을 포함한 채소 과수 곡물 등 주요 농산물과 함께 토양 비료 농기계 병충해 등이 모두 전시되고 있으며 세계 농어촌을 소개하는 비디오 방영코너 등이 복합적으로 설치돼 있다.
이상진부관장은 "농업박물관은 건물 자체가 농업과 깊은 관련이 있는 유서깊은 곳이며, 민속부문을 제외한 순수한 농업사박물관의 성격을 띠고 있다. 외국에도 농업박물관은 드문 것으로 안다"고 말하고 있다.
개관된지 며칠 안돼 아직은 하루 1백여명 정도의 관람객이 찾아오고 있지만 앞으로 널리 알려지고 방학이 시작되면 관람객이 크게 늘 전망이라는 것이 박물관측의 전망이다.
이상진부관장은 또 전시품 대부분이 무상으로 기증받아 마련한 것이라며 계속해서 농업관련 자료들을 제공해주기를 희망했다.
농업박물관은 월요일과 국경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관하는데 요금은 어른 3백원, 학생 군인 노인 농민조합원은 1백50원이며 20인 이상의 단체관람에는 할인혜택이 있다.